[묵상글]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리이다

전봉석 2024. 11. 7. 00:51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레 19:2


 
여호와여 오직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리이다
시 88:13
 
 

선택된 주의 백성답게 언약으로 살아야 한다. 말씀은 언약이고 장차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데 있어 지켜야 할 법도와 사회 규범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이러한 규례와 법도는 하나님과 이웃에 대해 행하여야 할 것들이고, 하나님의 선하심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곧 우리 생활이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증거해야 한다. 이와 같은 말씀은 주의 자녀로 입증되는 것이고 주의 백성들에게 국한되며, 나아가 우리 곁의 이웃들에게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것에 대하여 확증한다. 곧 성도로 사는 게 “너희는 거룩하라” 하시는 말씀으로 압축된다. 이는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하는 당위성을 갖는다.
 

거룩하다는 것은 ‘카도쉬’라 하여 ‘구별되다’, ‘분리되다’란 뜻이다. 즉 모든 일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데 있어 죄악된 것과 부정한 것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한다. 이는 스스로를 분리하는 것으로, 근신하는 삶을 말한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으로 죄악 된 모든 것과 본질적으로 분리되신다. 따라서 언약으로 사는 삶이면 하나님과 교제하는 생활이고, 이는 자신의 죄와 부정한 것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여 거룩한 백성이 되려 하는 일이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은 앞서 각종 ‘정결법’을 제정하셨고, 또한 정결법의 준수하는 데 있어 외적 정결상태와 내적이고 영적인 정결상태를 요구하셨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레 11:44).”
 

이와 같은 말씀 앞에서 주어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인정하는 것으로 드려진다. 어제는 누가 고1 남자아이인데,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받아줄 수 있는가? 하고 물었다. 그 말에 앞서 ‘안 아픈 아이들’을 했으면 하고 늘 그리 권하던 처지에 어쩌다 또 ‘아픈 아이’를 소개하게 되는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고 하며 입을 열었다.
 

어릴 때 학교폭력에 노출됐고, 그것이 이상할 정도로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이어져서 결국 이사를 했는데도 어쩌다 그리 이어졌던 모양이다. 그동안 아이는 심한 우울과 공황을 겪다 지금은 거의 은둔형으로 자신을 방치하고 있는데, 학교를 자퇴해서라도 이 상황을 어찌 극복해볼 수 있겠나? 하는 내용이었다. 동생은 난독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하고 있는데, 아이들 부친 또한 어느 대기업 연구원으로 일하기는 하나 공황으로 시달리고 있다고 하였다.
 

두루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하나님의 개입을 직감할 수 있었고 어디에서 막힌 담이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저런 일로 어디서 점도 보고 여타 좋은 방도를 찾는다고 찾는데도 그들 영혼의 문제는 해결될 방도가 없는 듯하였다. 문득 저의 처지가 사마리아 여인과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나로서는 한다 안 한다 할 수 없고, 하나님이 어찌 이어가시려는가, 하는 데서 조만간 보자고는 했다. 아이가 같이 오려는가, 하는 게 문제이기는 한데 그도 하나님이 하실 일이어서….
 

“너희는 거룩하라.”

 
하심에 대해 나는 그 방도를 하나님을 의뢰하는 길밖에 알지 못한다. 우리가 무엇으로 거룩할 수 있겠나? 그것은 거룩하신 이를 신뢰함으로 그의 곁에 머물 때이다.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롬 6:19).”
 

또한 누가 기도를 부탁했는데, 십대 후반에 수영을 하다 경추 손상으로 전신마비가 되었는데 무던한 치료와 재활로 전동휠체어를 타고 누가 옮겨주면 목은 가눌 수 있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모양이다. 그 부모의 신앙은 그로 인하여도 독실하였고, 아이 또한 믿음으로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자신의 삶에 성실한 것이었다. 그런데 엉덩이에 욕창이 생겨 결국 이를 제거해야 했는데, 피가 멎지를 않아 애를 태우다 어디에 또 염증이 생겨 현재 미국 병원에서 한국으로 귀국하려고 하는데… 하는 내용으로 이어지는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그런 거 보면 사는 게 사역이라, 주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일이 때로는 너무 가혹할 때도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주를 바라고 의지하는 게 거룩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 6:17-18).” 저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주신 삶을 살아내는 일일 텐데,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2-14).”
 

앞서 고1 아이가 여기까지 올 수 있겠나? 하는 실질적인 문제에서부터 그 동생의 경우 소아정신과에서 난독치료를 받고 있기는 한데 이를 또 어쩌면 좋은가? 하는 문제에까지… 나로서도 답이 없는 물음 앞에서 나는 저에게 하나님이 어찌 하시려는가? 하고 기도하자고만 하였다. 아이들 부모는 될 수 있다면 자신들이 돌아가며 데려오고 데려갈 수 있다고는 하는데, 나로서야 뭐라 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다만…. 하고 이어지던 말 중에 친정엄마가 아흔을 넘긴 분이신데 정정하셔서 일생을 새벽기도를 다니신다는 말에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어디서 저들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일까?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3).”
 

저들의 깊은 슬픔을 헤아릴 수는 없으나 현재의 일이 단순히 어쩌다 그리 된 게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였다. 하면,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신 27:16).” 아흔 넘은 모친의 그러한 삶은 앞서 10년 전에 10년을 중풍으로 앓다 먼저 간 부친이나 백혈병으로 뒤이어 오빠를 잃은 뒤 거의 남은 가족을 건사하는 저이의 고단한 삶이 눈물겨웠다. 그런저런 일에서 하나님을 저버린 것인지, 아이들 문제에 이르러 그 온 가족의 일들이 실상은 하나님이 손을 내미시는 것임을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

 
“만국의 모든 신은 헛것이나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도다(대상 16:26).”
 

나름의 방도와 그 삶에 열심을 다해 산다고 살았는데 그 처지가 그러하여 ‘모든 신’을 갈구하면서도 하나님만을 외면하는 중이었다. 대략적인 내용을 전해 들으며 우선은 아이가 온다면 내가 할 수 있겠는가? 하고 묻는데, 나는 그 일에 앞서 하나님이 무엇을 계획하고 계시는가? 하는 것에 더 마음이 기울었다. 하고 안 하고는 나의 선택이 아니다. 하나님이 뜻하시는 일이면 어떻게 연결이 될 것이라, 다만 저들이 회복해야 할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였다.
 

“사람마다 어리석고 무식하도다 은장이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가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그것들은 헛 것이요 망령되이 만든 것인즉 징벌하실 때에 멸망할 것이나 야곱의 분깃은 이같지 아니하시니 그는 만물의 조성자요 이스라엘은 그의 기업의 지파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라(렘 10:14-16).”
 

그러므로 나는 다만 들었고, 주께 아뢰며, 일이 되는 과정을 지켜볼 따름이다. 이어서 기도 부탁을 받은 ‘전신마비 유학생’의 무사한 귀국과 그에 따른 회복을 노트에 적어두고, 우리의 사는 이야기가 너무도 각자 힘에 겨운 일이라,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2-23).” 그러니 참 희한하다 싶은 것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한다고 하면서 점도 치고, 누가 용하다는 어떤 의원을 찾아다니면서도 왜 꼭 하나님은 멀리하려 하는 것일까? 오늘 말씀은 이를 지목하고 바로잡으신다.
 

“너희는 헛된 것들에게로 향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 19:4).”
 

저들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에는 의심할 게 없었다. 그런 가운데서 “점을 치지 말며 술법을 행하지 말며” 하시는 말씀과 달리 저마다의 노력으로 별 짓은 다한다(26). “죽은 자 때문에 너희의 살에 문신을 하지 말며 무늬를 놓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28).”
 

그러니 참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상실하고 하나님만 피해 살다 여러 꼴을 다 당하면서도 부득불 하나님은 싫다고 하는 걸 보면 그 또한 희한한 일이다. 결국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 하여 나는 거의 듣기만 하다 내가 뭘 어찌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주가 어찌 행하심을 따라 나는 준행할 뿐이다. 내가 뭘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에 대하여,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 5:41-42).”
 

보내시는 이에 따라 나는 다만 여기 있을 뿐이고, 주가 행하시는 일이라 나는 그저 듣고 보고 전할 뿐이어서…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5-17).” 그렇다면 나는 다만 행할 뿐, 내가 하고 안 하고의 문제는 아닐 거여서 아이가 온다고 하면 그 다음 일은 나도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나는 알지 못하지만 주가 하실 것은 안다. 하여,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 58:10-11).”

 
결론은 내가 할 일이나 내 일은 아니어서 주가 하신다면 그리 될 거여서… 어제는 그런 와중에 나는 가만있는데, 이곳에 냉난방기를 설치하고 그 비용이 400여 만 원 드는 일에 주인이 그리하겠다고 하여서, 나는 그 또한 희한한 일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게 주가 행하시는 일이다. 어디로 옮길까? 뭐라도 할까? 더 나이 들기 전에 어떤 일을 좀 도모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갈등이나 번민이 왜 없겠나? 그러다 문득 보면 이와 같아서 다들 이처럼 되는 일에 놀라워할 따름이다. 굳이 주인이 왜 그 큰 돈을 들여 겨울이 오기 전에 그리하려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란, 주의 자녀와 그 백성에 대한 치밀하고 놀라우며 조용하고 요란한 일들을 통해,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 20:35).” 할 수 있겠어? 하고 묻는데 나의 대답이야 늘 내 코가 석 자인데, 내가 무얼 장담하겠는가! 다만 주가 하시는 일이면 또한 내가 어찌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일이겠나? 저들 일도 때가 차매 주가 하시는 일일 테니, 그렇다면 나로서는 다만,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 2:3-4).”
 

오고 안 오고, 어찌 되고 안 되고… 그 일은 내 몫이 아니라, 나는 오직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할 때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차별 없이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며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 있거든 내게로 돌리라 내가 들으리라 하였고 내가 너희의 행할 모든 일을 그 때에 너희에게 다 명령하였느니라(신 1:17-18).” 주가 하시는 일에 나는 다만 목격자요 증언하는 자로서,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막 12:33).”
 

하여 오늘도 주님의 마음과 그 사랑을 구하며,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야로 주 앞에서 부르짖었사오니
나의 기도가 주 앞에 이르게 하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기울여 주소서
(시 88:1-2).
 

그러므로
 

여호와여 오직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리이다
(1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