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신 20:1
그의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
시 147:18
오늘도 우리는 말씀으로 산다. 하나님은 항상 매순간 말씀을 보내시고 우리 영혼을 돌보신다. “그 말씀을 보내사” 하는 부분은,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며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하셨은즉(사 9:8).” 이와 같이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시 107:20).
하시는 데서 주가 함께 하심을 확신하게 된다. 이에 우리에 필요한 것, “바람을 불게 하신즉” 바람은 성경에서 호흡 또는 영으로 이해된다.
오늘 본문에서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신 20:1).” 하실 때에 우리의 대적이 사방에 널려, 건강을 위협하거나 삶을 어지럽게 하는 여러 요소들이라 해도 이는 다시 ‘하나님의 대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시기 위한 것으로 우리는 이를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는 권능이 있다.
우리를 대적하는 것들이 다소 위협적이라 해도 “두려워 말라” 하신다. 이는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하심으로 말씀은 이미 종결형으로 이 모든 상황을 다스리신다. 우리의 현실이 비록 광야의 역경 중에 있는 것과 같이 어려움으로 우릴 낙심하게 한다 해도 그때마다 실현되는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 믿는 자의 특권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요 11:40).” 이로써 오늘 말씀은 여러 환경과 여건으로 마음이 어려워 힘들면 돌려보낸다.
가령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하지 못해 마음이 어려운가?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낙성식을 행할까 하노라.’ 또한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자가 있나?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 과실을 먹을까 하노라.’ 또는 ‘여자와 약혼하고 그와 결혼하지 못한 자가 있나?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를 데려갈까 하노라.’ 하시면서 이르시길, “책임자들은 또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두려워서 마음이 허약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의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낙심될까 하노라 하고(8).” 하심으로 흔들리는 믿음을 강제하지 않으셨다(5-8).
살면서 우리가 사는 동안에 얼마나 자주 혹은 나약하게 믿음이 약하여져 걱정과 염려로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를 잃어버리고는 하는지…? 이러한 우리의 약함을 주가 아신다. 삶이 때로 사느라 지쳐 끌려 다니는 노예 같을 때에 우리를 각자의 ‘애굽’에서 건져주시고, 우리를 대적하는 ‘가나안의 족속’들의 손에서 구해주신다. 하나님은 생활에서 우릴 해방하신다. 구호나 신념으로가 아니라 실제의 삶에서 우리가 피부로 느끼고 삶으로 체험하면서 온전히 주의 영광을 보게 하신다.
가령 물질적인 어려움으로 치면 나야말로 대책이 없고, 육신의 건강으로 치면 어디 한 곳 위태롭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몸은 부실하고 정신은 나약하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와 같이 혹한의 날씨에도 어엿이 주의 성전에 올라와 새벽제단을 쌓을 수 있는 힘과 여력을 주신다. 이런저런 교회 경비로 카드를 사용하는데 매번 결제일보다 앞서 선결제를 할 수 있게 하시고, 수치상으로는 매달 제로에서 출발하는 것 같은데 한 번도 교회 임대료나 성도들과 같이 식사를 하거나 교회를 이어가는 데 있어 부족함이 없게 하신다. 이러한 상황으로도,
“이에 감사 찬송하는 두 무리가 하나님의 전에 섰고 또 나와 민장의 절반도 함께 하였고… 이 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느 12:40, 43).”
나의 이러한 사실이 내 곁의 아내에게 또는 친구와 교회를 지켜보며 늘 후원으로 기도하는 이의 마음에 만족함으로 감사하게 한다. 이는 우리의 노력에 의한 결과가 아니어서 더욱 희한하고 놀랍고 감사하다. 교회 형편상 목회자 사례를 지난 해 70만원으로 동결하고, 그것으로 아내가 살림을 꾸려가는 데 있어 종종 급하여 10만원, 20만원 필요로 할 때 대체하여 선금을 줄 수 있는 여력 또한 교회에 있다! 그때마다 아내도 나도 신기할 따름이다. 교회를 이뤄가고 이를 통하여 먹고 사는 ‘레위인’의 삶과 같은 나의 생활이 더러는 막연한 것 같아도 그때마다 모자람이 없이 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항상 놀란다.
건강이나 육신의 연약함에 대하여는 말할 것도 없고… 나의 기도는 늘 ‘아파도 주일은 피해서’, 아무리 힘들어도 이처럼 말씀을 묵상하고 글을 쓰고, 설교 원고를 작성하고 주일에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일에서만은 멈추지 않게 하시기를. 평일 날 아프다가도 주일에는 거뜬히 말씀을 전할 수 있는 힘을 더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감사는 저절로 넘쳐난다.
곧 우리의 감사는 실제적이다. 그저 그러려니 하는 막연한 게 아니라,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처럼 혹은 늘 같은 날의 연속 같으나 특별하게 주가 다스리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따뜻한 관심은 나의 삶을 주도한다. 그리하여 흩어진 자와 상심한 자를 돌아볼 수 있는 여력도 허락하신다. 늘 보면 내 코가 석 자인데, 나는 누구의 사연을 놓고 저를 위해 기도한다.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에 증인으로 삼으신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4).”
마치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으로 몸 둘 바를 모를 때도 그리하여 주 앞에 가만히 있어 주의 도우심을 구할 때,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그러므로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수 1:5-6).”
하여 우리는 오늘도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으로 새 힘을 얻는다. 하여 당장의 승패나 싸움이나 역경으로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1-32).” 이와 같은 확신과 믿음으로 하루씩, 이 한 날의 수고로 족한 것이다. 이는,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고후 10:4-6).”
그러므로 교만이 걸림이 된다. 행여 나의 생각이 주의 뜻을 앞지르지 않도록, 나의 의심과 걱정이 주신 한 날을 넘어 아직 오지 않은 날을 두고 신음하지 않도록,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 6:12-13).” 하여 나는 흔들리고 마음이 어려울 때 여기까지만, 오늘까지만… 하는 심정으로 새 힘을 낸다.
누구와의 대화에서도 저의 앞선 걱정에 대해 그리 말해주었다. 이제 중1 딸아이의 남은 인생을 두고 염려와 근심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는 저이에게… 또는 누가 학교에서 강제적으로 경계성장애 검사를 받으라, 통보를 받고 아이의 장래를 생각하며 눈물을 찍어낼 때에… 아직 오지 않은 날은 주께 맡김으로 놓아두고, 우리는 다만 오늘의 수고로 족한 것임을, 아이의 엄마로 그 심정들은 알겠으나 이는 감정이나 속상함의 문제가 아니다! 믿음의 일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자녀를 책임지신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 6:30-32).”
걱정을 안 하고 살 수는 없겠으나 우리의 걱정이 도리어 주의 이름을 부르는데 남다른 권능이 되기를. 우리의 약함이 오히려 주께 감사하고 찬송하는 발판이 되기를. 이는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눅 12:7).” 곧 내가 주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심으로 그리하시는 일에 대하여,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사 5:1).”
하여 주가 나를 사랑하심으로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신 7:8).”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고 찬송한다.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31:16).
이는 주가 받으신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심인데,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마 12:18).”
오늘도 우리에게 이 한 날을 더 연장하여 이 땅에서 맡기심은,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9).” 이를 위해 더러는 힘에 겨운 길에서, 좌절과 낙심 가운데서도 우리로 열심을 다해 주를 바람으로 자신을 돌아보아 회개의 자리로 나아오게 하신다. 이에 우리는 살면서 사는 동안에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위로하심을 몸소 체험하면서,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도다
(147:3-5).
이를 삶에서 나의 생활과 경험과 실제의 현실에서 목격하고 그 현장의 주인공이 되어 주의 살아계심을 몸소 알게 하려 하심이다. 하면, 우리를 구원하고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이유와 목적이 분명해진다. 곧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에 대하여 귀로만 듣거나 남의 간증으로나 알던 것을 직접 자기 눈으로 보게 하시고, 자기 입으로 찬송하게 하려 하심인데, 이와 같은 감격이 없이 온전한 감사와 찬송을 드릴 수 있을까?
감히 찬송가를 지은 작사가의 극단적인 고통은 상상할 수조차 없지만 아내와 사랑하는 딸들을 한꺼번에 잃은 뒤에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하는 고백이 찬송으로 울려날 수 있다니! 또는 정신미약으로 늘 우울과 자살충동에 시달리면서도 ‘샘물과 같은 보혈은 주님의 피로다 보혈에 죄를 씻으면 전하게 되겠네.’ 하는 고백이 드려질 수 있다는 게 가능한지….
우리 하나님은 이와 같은 땅 위에서 비를 예비하신다!
그가 구름으로 하늘을 덮으시며
땅을 위하여 비를 준비하시며
산에 풀이 자라게 하시며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
(8-9).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우리가 오늘도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나의 약한 것, 나로 힘들게 하는 여러 걱정과 염려로 오히려 ‘그리스도의 능력’을 머물게 하려 하심이니,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
(7).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 해도,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11).
우리로 그럴 수 있도록,
그의 말씀을 보내사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신즉
물이 흐르는도다
(18).
나의 완고함을 깨뜨리시고 나의 교만과 아집을 낮추신 후에,
그가 그의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그의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보이시는도다
그는 어느 민족에게도
이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셨나니 그들은
그의 법도를 알지 못하였도다
할렐루야
(19-2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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