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전봉석 2025. 2. 1. 04:50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의 땅을 다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수 8:1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시 19:13

 

 

우리의 계획은 허술하나 하나님의 계획은 치밀하시다. 우리는 단면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해결하려 드나 하나님은 복합적으로 이 모든 것을 고려하여,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이때 우리의 허물과 실수를 주 앞에 고하고 죄를 돌이킬 때 주는 다시 기회를 주신다.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하시고 주가 우릴 붙드신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정복을 맡기시면서 같은 말씀을 여러 번 하셨다.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 1:6-7, 9).”

 

지금 여호수아는 먼저 실패한 아이성을 앞두고 주 앞에 시무룩할 거였다. 이에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용기를 주시기 위해 다시 한 번 이와 같은 말씀을 반복하신다. 실로 아이성을 공략하는 데 있어 저들은 생각지도 못한, 치밀하게 허를 찌르는 전략으로 다시 공격할 수 있도록 지도하신다. 그에 따라 새로운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신다.

 

이스라엘은 앞서 아이성 전투에서 치욕스런 패배를 맛보았다. 물론 아간의 범죄로 말미암은 것이었으나 저들 또한 아이성을 대수롭지 않은 듯 자신들이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다. 흔히 우리는 이와 같이 작은 일에 더 신중하고 그것까지도 주께 의뢰하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 큰일에서는 주께 구하나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 것에는 덤벙대며 무분별하게 대처하기 일쑤다. 하여 이 패배의 주범이랄 수 있는 아간을 처형함으로 문제의 근본은 해결하였고, 자신들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함으로 주의 명령에 따라 순종한다.

 

또한 앞서와 다른 점은 저들이 승리 후에 먼저 에발산으로 가서 단을 쌓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 한 제단을 쌓았으니(8:30).” 그리고 또 하나 “그 후에 여호수아가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34).” 오늘 날로 하면 말씀을 읽고 묵상하였다.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범죄한 아간을 처형하므로 죄악이 제거된 후 아이성 정복을 재개하도록 하나님은 명령하셨다. 이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지 말 것’을 권면하시고, 복병에 따른 전술로 아이 성을 공략할 것을 지시하신다(1-2). 이와 같이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은 용기를 주시고 위로를 더하신다. 이에 따른 세부적인 계획을 하나님은 명령하시고 우리는 이를 준수한다. 시편은 이를 두고 지은 시와 같이,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 50:15).

 

이는 신앙의 기본 공식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일종의 열쇠다. 하여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하시는 말씀이 옛날에 누구에게 이르신 저를 향한 말씀만이 아니다. 나는 늘 묵상하기를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오늘은 나의 말씀이 되기 때문이다. 단지 선친을 향한 어록이나 명언의 수록이 아니다. 내가 먹고 마셔야 하는, 예수의 살과 피이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요 6:51).”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승리하는 삶으로의 초대를 받았다. 어제도 아이의 출근 전에 40여 분 줌으로나마 성경공부를 하면서 오늘, 이 하루…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 3:13).” 하신 말씀을 주목하여 하루씩, 오늘 이 하루하루가 천 날이 되고 만 날이 되어 우리의 영원한 영생으로 이어지는 것에 대하여 강조하였다. 때로는 몸이 아플 때 혹은 뜻하지 않은 일로, ‘하필 이럴 때’ 하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우리는 늘 이 하루씩의 하루치 은혜로 날마다를 사는 것이다.

 

그러할 때 우리는 승리하는 삶으로 초대를 받은 것인데, 이는 앞서 예수께서 승리하신 날이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우리가 오늘도 다투어 싸워 하루를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 사명을 가진 것이지만 실은 이미 주가 승리하신 날이다. 그러므로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12:31).” 하신 말씀을 따라 우리는 산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롬 16:20).”

 

하실 때에,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곧 우리의 승리는 믿음이다. 그리 믿었음으로 그리 되는 것이 마땅하다. 이때 미심쩍어 타협한다면 아이성과 같은 실패가 있고, 아간과 같은 해이한 마음에서 죄를 범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죄인데,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 12:32).” 성령을 거역함은 에이 설마, 작고 사소한 방심에서 시작하여 의도적인 불순종과 거절로 나아간다.

 

이에,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요일 5:17).” 하면 이는 나름 주의 뜻대로 하려 했으나 우리의 허물과 실수로 인한 것이고 그것을 인정하고 주께 고할 때 주는 언제나 너그러이 용서하신다. 이와 같은 반복으로 우리는 우리의 허물이 무엇인지 알고 이를 주의한다. 말투가 유난히 거칠거나 상대를 찌르는 사람이 있다. 본의 아니게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표정이나 행동도 있다. 저는 무심히 그러했을지 모르나 입장을 조금만 바꿔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이러한 것, 얼마든지 자신이 자신을 쳐서 복종시킴으로 고칠 수 있는 것으로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져간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엡 5:3-4).”

 

얼마든지 우리가 각성하여 옛 습관을 떨쳐버릴 수 있는 것들도 있는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나 나는 종종 아이들과 옛날 얘기를 하면 유난히 큰 애는 혼났던 기억을 자주 떠올린다. 그때마다 나는 미안하다, 하고 말하는데 내가 돌이켜볼 때도 짜증이 많았고 변덕스러웠으며 금세 싫증내거나 내 마음대로 하려 했다. 그때마다 아이들에게 나의 모습이 어떠했을까, 하는 데서 나는 기꺼이 아이들의 지적과 그런 기억에 사과해야 한다. 우리 몸에 밴 습관이란 이를 인정하고 수치스러워할 줄 알면서 자신이 의식할 때 주께 의뢰하게 한다. 습관이란 게 그런 것이어서 나는 고칠 수 없음으로 주 앞에 엎드리게 한다. 우리가 인정할 때,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 6:18).”

 

하면,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요일 3:4).”

 

그러므로 우리의 싸움에는 반드시 상급이 따른다. 때가 되었을 때 해와 달과 별과 별들 사이에도 그 영광이 다르다.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고전 15:41).” 이는 우리가 저마다 주를 믿는다 하고 나름의 신앙으로 산다고 하지만 저마다의 온전한 마음과 전심으로의 의뢰가 다른 법이어서,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선포하시되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이르렀느니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하셨느니라(사 62:11).”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시 19:9-12).

 

결국은 주의 도를 알고 그것의 소중함을 깨달아 알 때 그 맛도, 그에 따른 각각의 상급도 다른 것을 안다. 이에 오늘 나로서도 나의 허물에서 벗어난 것으로 감사한다. 누구와 대화에서 저가 아직도 옛날의 죄과에 시달리는 것에 대하여 한참을 설명했다. 우리의 회심 곧 주의 부르심에 엎드려 주를 인정하는 삶이란, 과거의 죄책으로부터 벗어났다. 오늘의 죄과에 대해서도 주 앞에 아룀으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미래에 지를 죄에 대해서도 주의 인자하심을 의지함으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여,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눅 22:29-30).”

 

하심을 따라 오늘의 인내와 주를 바라는 마음이 날로 커져간다. 욥의 고백에 이르러 심지어는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 13:15).” 하는 놀라운 신앙의 수준에까지 닿아,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오늘도 날로 새로워지고 성장하여 상급이 쌓이고 영광이 다르다.

 

하여,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나의 이 한 날의 수고와 사는 데 따른 여러 우여곡절이 더러는 힘들고 어려우나 그것으로 주 앞에 서는 날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심을 들을 것이다. 결국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난 것이라 그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사 28:29).” 곧 내가 그리할 수 있는 능력이 되고 자격이 있다는 게 아니라, 그리할 수 있는 힘과 용기로 “담대하라.” 하심을 붙들고 오늘도 이 한 날을 수고하는 것이다. 이는,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

(119:99-100).

 

곧 내가 오늘도 그리할 수 있는 것은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전 14:20).” 그러니까 세상 좀 몰라도 된다. 사람들이 어찌 사는가? 저들처럼 살아야 행복할 것 같은 착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하심은 몰라도 되는 것을 내버려두고 내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3-24).”

 

이에 대하여는 결코 물러설 수 없는 것이어서,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19:1-4).

 

이에 대하여는 그 어떤 이보다 지혜자로 살 수 있기를. 이는,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7-8).

 

그러므로 나는 양보하지 않을 것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9-10).

 

그러므로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1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