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으므로 여호수아가 이 모든 왕들과 그들의 땅을 단번에 빼앗으니라
수 10:42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송하게 하소서
시 21:13
하나님이 날 위해 싸우신다. ‘여호와께서 싸우신 고로 단번에 취하니라.’ 하는 말씀으로 새 힘을 얻게 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우릴 위해 싸우셨다는 점이 오늘 본문의 핵심이다. 이 사실은 오늘 본문에서 여러 번 강조되었다.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그들 중에서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하신지라(8).” 하심은 주가 이미 그리 행하실 것을 알게 하신다.
하여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게 하시므로…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큰 우박 덩이를 아세가에 이르기까지 내리시매 그들이 죽었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칼에 죽은 자보다 우박에 죽은 자가 더 많았더라(10-11).” 마치 우리가 무얼 행하여 그 일을 이루는 것 같아도 실은 주께서 행하심으로 이루어진다. 이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14).” 우리가 주께 구할 때 주가 이를 이루신다.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 너희가 맞서서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 하고(25).”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이 행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로 정작, 쉽게, 오늘 우리가 주 앞에서 이루어가는 ‘가나안’을 점령할 수 있도록 하심도 그것이다. 곧 하나님께서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심으로 친히 싸워주고 의당 승리하게 하신다.
이는 ‘단번에’ 이루어진 일이다. 돌아보면 지난한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주 앞에 서는 날 모든 게 다 찰나였고, 단번이었다. 보면 묵묵히 순종하는 이의 삶이란 그러하다. 아이들을 여럿 지도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같이 여러 의견을 나누다가도 같이 기도하고 결정한 후에는 두 종류로 나뉜다. 한 아이는 무던히 순종하여 단번에 이룬다. 그런데 공교롭지만 나름의 자기 판단으로 따르지 않은 경우에는 여러 번 시도해도 안 된다. 아직도 그 자리인 경우도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누구를 말할 수 없으나 한 아이는 대학을 선택하고 과를 지원하고, 직업과 직장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단번에’ 다 이루어졌다. 그때마다 아이의 도드라진 특징은 순종이었다. 여전히 오늘도 좋은 직장에서 일하면서 말씀과 기도로 같이한다. 어제 오후 한 아이의 새해인사 전화가 왔다. 운전 중인 것 같아 물었더니 이번에는 대구에서 한 달 남짓 머물면서 일을 한다고 했다. 막노동에 가까운 것이라, 그 일에서도 계속 할 거면 어떤 자격증이나 개인면허 같은 것을 권해도 늘 그렇듯 시큰둥하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답은 잠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의 특징이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생각난 것이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는 과정이 단번에 이루어지면서 확장되었다. 여러 번 원정에 걸쳐 힘겹게 된 것이 아이성 하나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 한 번의 원정으로 가나안 정복이 가능했던 것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싸우셨기 때문이다. 평일 오전 출근 전 한 시간 남짓 시간을 내어 꾸준히 성경공부를 하는 아이의 경우, 오늘까지 그의 인생이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것을 아이도 인정하고 감사한다.
오늘 본문은 아이성보다 큰 기브온이 자진하여 이스라엘에 화친한 것을 듣고,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기브온을 공격하기로 했다. 그 근간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2).” 하여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헤브론 왕 호함과 야르뭇 왕 비람과 라기스 왕 야비아와 에글론 왕 드빌에게 보내어” 같이 연합할 것을 요구한다.
여기서 헤브론은 예루살렘 남서쪽 약 40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해발 850미터의 성읍이다. 이전의 이름은 기럇아르바였다(15:13, 삿 1:10). 이곳은 애굽의 소안보다도 7년 앞서 세워진 고대 가나안의 도시다. 이곳은 문화와 정치의 중심지였다. 일찍이 아브라함은 롯과 헤어진 후 헤브론으로 이주하였다.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창 13:18).” 이곳에 사라를 장사한 막벨라 굴이 있다. 이삭과 리브가도 이곳에 장사되었다. 야곱이 레아를 이곳에 매장하였고(49:31), 요셉도 야곱을 이곳 헤브론에 매장하였다(50:13).
모세 때 열두 명의 정탐꾼이 가나안을 정탐한 곳도 실은 헤브론이다. “또 네겝으로 올라가서 헤브론에 이르렀으니 … 거기서 포도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따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서 포도를 베었으므로 그 곳을 에스골 골짜기라 불렀더라(민 13:22-24).” 이후 가나안을 정복한 후에는 갈렙에게 이 기업으로 주어졌다.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수 14:13).” 나중에는 헤브론이 도피성으로 지정되었다. 후일에 다윗은 그의 통치 초기에 이 성을 수도로 삼아 7년 동안 유대를 다스렸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이 된 날 수는 칠 년 육 개월이더라(삼하 2:11).”
이처럼 아모리 사람들 곧 아모리의 다섯 왕과 그들이 이끌던 가나안 연합군들이 기브온을 공격하려 하고 여호수아가 이 소식을 듣고 달려가서 다섯 개의 동맹국을 기습 공격하여 격퇴하였다. 하나님께서 도망치는 자들에게 우박을 내리셨다. 이때에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전투를 볼이는 동안 “태양이 머무르라” 하심에 따라 한낮의 길이가 연장되었다.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 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수 10:12-13a).”
즉 기브온 전투 중에 낮이 연장되기를 바란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드린 기도를 주가 응답하신 것이다. 누구는 이를 해석하기를, ‘여호수아가 자신의 군대에게 힘을 더해 달라고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군대에게 힘을 주심으로 온종일 싸워 이길 것을 반나절 만에 승리케 하셨다’는 사실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한다. 또는 ‘여호수아가 태양의 뜨거운 열기를 멈추게 해달하고 호소한 것’이라 하여, ‘하나님께서는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잠시 구름으로 덮으셨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데 아마도 해가 머물고 달이 기다리는 이 초자연적인 역사를 어찌 설명하기가 어려워서일 것이다. 어쨌든 여호수아의 군대가 싸움에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도와주셨다는 소린데, 심지어 어떤 이는 ‘해는 졌지만 단순히 빛의 굴절현상으로 마치 해가 머문 것처럼 느껴진 것’이란 소리도 있다. 우리의 이성적인 이해와 이를 무리하게 해석하려는 데 따른 설명이 더 기이할 뿐이다.
일련의 오늘 우리 사회 사태를 두고 나름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진영논리에 따라 갑론을박하는 것을 보면 다르지 않다. 핵심은 그게 아닌데 덧붙여 자신들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여러 주장이 오히려 궁색하고 앞뒤가 안 맞는다. 심지어 1년 전 자신의 재판 결과에 대해서는 칭찬하고 두둔하다 오늘에는 공격하는 주장이 스스로들 낯부끄럽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하물며 성경 학자들로 이와 같은 전무후무한 자연현상을 이성적인 판단으로 접근하려고 하니, 그래서들 인본주의란 표현을 쓰는 모양이다.
어쨌든 14절에 분명히 이 일에 대하여 성경은,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하고 단정하셨다. “달아 너도 그리할지어다.” 하는 표현이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 해가 멈추고 달이 기다렸다! 태양이 중천에 떠 있고 달이 동시에 하늘에 이편에 떴다가 기다리고 있는 상상을 한다.
실제 기브온은 동쪽이고, 아얄론 골짜기는 서쪽에 위치했다. 때는 7월경이다. 태양과 달의 위치는 달이 3/4 공전 때로 반달이었을 것이다. 이를 상상하면 놀랍고 신기하고 아름답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란 참으로 신묘막측하시다. 도저히 우리로서는 신통하여 주측할 수도 없다.
우린 이와 같이 담대하게 구하고 말도 안 되는 것을 하나님께 바랄 수 있다. 우리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고, 우리의 요구 그 이상으로 하나님은 기이하게 역사하심을 우린 우리의 사소한 일상에서도 자주 목격한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에 대하여 나는 놀라워하고 이상하게 여기는 일을 사람들에게 설명하기란 거짓말 같은 것들도 있다. 나의 일생을 돌아볼 때 나는 가끔 나 자신에게조차 이상하다 하고 되묻게 되는 기억들이 여럿 있다. 나름 사업에 성공했는데 졸지에 홍수가 나서 모든 사업을 단번에 쓸어버리신 일이나… 그때 내 기억은 서너 살 때 할머니 등에 업혀 천호대교 위에서 붉은 탁류가 무섭게 천호동 일대를 휩쓸고, 나를 업고 조모는 발을 동동거리며 울부짖던 기억이다.
그 일로 빚더미에 올라 하늘산 기도원으로 올라간 나의 부친은 당시 사업하던 집사로 나름은 교회에 열심이었던 것을 근거로 돈을 달라고 애원하다 죽을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때 주의 강권하신 부르심으로 부친은 단번에 승복하고 전투적으로 신학을 하고 목회를 감행했다. 덩달아 우리의 어린 시절은 가난한 교회 생활과 아버지의 열정적인 설교와 전투적인 목회를 바탕으로 자랐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지만 내 기억 속의 거처는 항상 초라했고, 교회들은 비루했으나 그런 가운데서도 모자람이 없었다. 엊그제 아내와도 했던 말이 아이들 어릴 때, 참 어려웠던 시절인데도 아이들이 원하는 걸 못해준 게 없었다. 즉 그때마다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우리는 실제 생활 가운데서 ‘해가 멈추고 달이 기다리는 시절’로 살았다.
분명히 말씀은 일러,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하여 나 또한 끝까지 안 하려고 도망치듯 살다 강권하심으로 목사가 되기까지, 되고 난 뒤, 오늘에 이르기까지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나만큼 직접적으로 겪고 체험하며 살았던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돌아보면 하나님이 싫다고 도망치듯 세상을 사랑하던 때에도 하나님의 도우심은 선명하다. 그땐 몰랐어도 이젠 확실하다.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요 16:23).”
가만히 생각하면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나를 향하셨다. 나는 늘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이고 사랑의 대상이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신 4:7).” 하여 이제는 주께 기도할 때 허무맹랑한 것 같아도 구한다. 구하면 들으신다. 아니 내가 구하였던 것보다 항상 더 좋은 쪽으로 이루어 응답하신다.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사 66:22).”
하여 나는 더러 무모하다. 현실적이지 못하고, 아무 것도 모른다며 때론 아내와 아이들이 날 빼고 자기들끼리 현실적인 문제를 두고 의논할 때도 있다. 무슨 적금을 어디에 들고, 어느 보험이 어떻고 하는 등. 그럼 나는 실제 뭐가 어떻게 좋고 이율이 뭐가 더 어떻다는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내가 아는 분명한 한 가지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이를 알고부터 나는 아이들 앞날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아내가 어느 단지 조합원 무슨 자격을 사서 5년 뒤 무슨 단지가 조성되면 뭐가 어떻고, 하는 소릴 백날 설명해줘도 나는 못 알아듣는다.
다만,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시 5:3).
나로 하여금 주께 바라는 한 가지,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어제도 무슨 보험을 설명하며 내가 어떤 보장이 되고 안 되고 하면서 설명을 하는데 들어도 모르겠어서 멍하고 있었더니 아내는 속이 터질 것 같다며 한숨만 쉬다 말았다. 같이 산책을 하다 누가 친정엄마를 모시고 산책을 나온 모양인데, 넉살 좋은 아내는 연세가 어떻게 되시냐? 우리 엄마도 이 정도만 혼자 정정하셔도 좋겠다는 둥 말을 건넸다. 그러는 동안 나는 몇 걸음 앞서 가고 있는데, 그쪽 여자가 묻기를 친정 아빠랑 산보 나오셔서 좋겠다는 소리에 신랑이라는 둥 하며 둘이 마치 오랜 친구처럼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럴 때도 나는 전혀 아무렇지 않은 게 그게 뭐?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요일 1:1-2).”
우리가 이 땅을 사는 동안 우리만 몰랐지, 해와 달이 몇 번을 멈추었다 흐르고 멈추었다 흘렀는지 모른다. 오늘도 이 한 날의 역사가 그와 같아서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그들 중에서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하신지라(수 10:8).” 주가 이르신다. 이에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 … 이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13-14).” 이와 같이 오늘도 날 위해 싸우신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으므로 여호수아가 이 모든 왕들과 그들의 땅을 단번에 빼앗으니라(42).” 하신 것과 같이 오늘도 나의 마음에 소원을 들어주시며,
그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 주셨으며
그의 입술의 요구를 거절하지 아니하셨나이다 (셀라)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그를 영접하시고
순금 관을 그의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21:2-3).
그러므로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송하게 하소서
(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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