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유다가 이 맹세를 기뻐한지라 무리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그들을 만나 주시고 그들의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
대하 15:15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시 55:22
아사 왕은 개혁을 수행하고 새롭게 언약을 세우며 백성들과 결의를 다졌다. 이는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성전으로 옮기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열었던 집회 이후 처음이다. “이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 성 곧 시온에서부터 메어 올리고자 하여 이스라엘 장로들과 모든 지파의 우두머리 곧 이스라엘 자손의 족장들을 다 예루살렘으로 소집하니(5:2)” 그때와 같이 “아사 왕 제십오년 셋째 달에 그들이 예루살렘에 모이고 그 날에 노략하여 온 물건 중에서 소 칠백 마리와 양 칠천 마리로 여호와께 제사를 지내고 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기로 언약하고(15:10-12).
앞서 종교의 자유를 찾아 남하(南下)한 에브라임과 므낫세 사람들이 있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 마음을 굳게 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레위 사람들을 따라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고자 한지라(11:16).” 이것이 르호보암 때의 일인데, 오늘 본문 아사 왕 때에도 여호와께서 아사 왕과 함께 하심을 보고 남하하는 사람들이 많았음을 보여준다. “온 유다가 이 맹세를 기뻐한지라 무리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그들을 만나 주시고 그들의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15:15).” 즉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그들을 만나 주시고’ 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또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를 모으고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시므온 가운데에서 나와서 저희 중에 머물러 사는 자들을 모았으니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고 아사에게로 돌아오는 자가 많았음이더라(9).”
시므온 지파는 유다 남쪽 지방에 거주하면서 유다 자손의 기업 가운데서 기업을 얻었다(수 19:1-9). 그러므로 시므온 지파가 북쪽의 에브라임 및 므낫세 지파와 함께 나왔다는 말은, 정치적으로는 시므온 지파가 유다 지파와 함께 하였지만 종교적으로는 예루살렘에서 여호와를 숭배하지 않고 북이스라엘처럼 자기 성읍들에 우상을 세워 숭배하였다고 볼 수 있다(왕상 12:25-33). 이는 아모스서에서 시므온 땅인 브엘세바가 벧엘이나 길갈과 함께 우상의 숭배지로 언급되고 있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사마리아의 죄된 우상을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단아 네 신들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거나 브엘세바가 위하는 것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라 하는 사람은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암 4:4, 5:5, 8:14).”
그러나 시므온 지파도 분명히 정치적으로 북왕국의 열 지파에 속하였음을 안다. “여로보암에게 이르되 너는 열 조각을 가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나라를 솔로몬의 손에서 찢어 빼앗아 열 지파를 네게 주고(왕상 11:31).” 그런 가운데 시므온의 사람들이 대체로 유다 지파에 흡수되어 버렸음을 알게 한다. 오늘 본문에서도 ' 저희 중에 머물러 사는 자들을 모았으니(9)' 할 때에 이들 중에 “시므온의 아들들은 느무엘과 야민과 야립과 세라와 사울이요(대상 4:24).” 라고 밝히는 증거도 있다.
이는 역으로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의인이라 한 베드로가 말하길,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벧후 2:7).” 하는 내용을 더해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8)." 하는 베드로 사도의 설교를 역설적으로 재해석하면 될 것 같다. 즉 시므온 지파에 대해 예언한 것처럼,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창 49:5, 7).”
이처럼 오늘 본문은 실제 남유다에 유다 지파와 베냐민 반 지파만 있었던 게 아니라, 경건한 레위인들을 주축으로 남하 한 북이스라엘의 여러 지파 사람들과 '유다, 베냐민, 므낫세, 시므온' 등 '머물러 사는 자들'도 있었다. 이처럼 아사 왕 15년에 즉 앞서 10년의 평안이 있었으니, “아비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 그의 시대에 그의 땅이 십 년 동안 평안하니라(대하 14:1).” 따라서 세라가 백만 대군을 이끌고 유다를 침입한 것(14:9-15)은 아사 왕 11년경이었을 것이다. 아사와 구스 왕 세라 간의 전쟁은 적어도 4년 정도 걸렸다. 그리고 이 일 아사 왕 15년에 열린 오늘의 집회는(14-15) 세라에게서 승리한 직후였다. 실제 아사 왕이 노획물을 거두고 그랄 사면 모든 성읍들을 평정하는 데(14:13-15) 상당 기간이 소요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오늘 본문 11-15절에 언급되는 축제는 아사 왕 15년(주전 895년경)에 있었다. 그리고 아사 왕의 모친 마아가는 아사의 모친이 아니라 아비야의 모친이며(11:23, 13:2) 아사의 조모(祖母)가 된다. 마아가는 르호보암의 아내였다(11:20). 이때까지 그녀는 왕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였다. 그런 가운데 아사가 마아가의 태후의 위(位)를 폐하였다는 것은 심히 놀라운 일이다. 아사는 그뿐 아니라 ‘그 우상을 찍고 빻아’ 아세라 목상을 철저하였다.
“아사 왕의 어머니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목상을 만들었으므로 아사가 그의 태후의 자리를 폐하고 그의 우상을 찍고 빻아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니(15:16).” 그런 뒤 말씀은 직설한다.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온전하였더라(17b).” 즉 아사는 종교 개혁에 있어 일생을 바쳤음을 알게 한다.
이에,
하나님이여 주께서 그들로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시리이다
피를 흘리게 하며 속이는 자들은
그들의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나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시 55:23).
하는 오늘 시편의 찬송으로 가름할 수 있는 마음이다. 오늘 아침에도 아이가 출근 전에 성경공부를 하였는데 전날에 보내온 성경구절은 계시록이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계 2:1-3).” 하는 내용과 함께 이어지는 것이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4-5).” 하는 내용으로 같이 말씀을 나누었다.
에베소는 상업상으로 소아시아에서 제일 부유한 도시이다. 유프라테스에서 라오디게아를 경유하여 에베소까지 이르면서 동방의 산물이 종착하는 곳이었다. 종교적으로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데미 여신상이 있어 미신이 성행하였고, 황제 숭배가 행해지던 부도덕한 곳이었다. 정치적으로는 로마로부터 자치권을 인정받아 독자적 행정관이 있었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통치 기관으로서 민회관과 순회 재판소가 있었다. 이처럼 소아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에 세워진 교회가 에베소 교회이다.
에베소에 처음 기독교 신앙이 전파된 것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 의해서이다. 바울이 이 에베소 지역에서 2년 간 머무르며 목회를 하였다. 후에 디모데가 바울의 열심을 본받아 목회 활동을 함으로 예루살렘과 안디옥에 이어 기독교 선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에 오늘 본문은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말씀하신다. 이는 그리스도시다. 저는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계시다. ‘붙잡다’는 ‘요동할 수 없도록 확실하게 움켜쥐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호하고 통치하시며 지배하고 계심을 시사한다.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계 1:16).”
그리스도께서 교회들을 사랑하심으로 그의 능력 가운데서 교회에 임재하고 계심을 암시한다. 예수께서 아신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여기서 <행위>는 포괄적인 삶의 모습이고, <수고>는 고통스런 가운데 최선의 삶을 가리킨다. 바울은 이에 대해 자신의 연약함으로 수고하였음을 밝혔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인내>는 어떤 어려움도 개의치 않고 극복해 가는 모습을 의미한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 1:3).”
뿐만 아니라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도 아신다. 즉 에베소 교회는 앞서 밝혔듯 여러 유혹과 우상과 번영의 도시였다. 그런 곳에서 ‘악한 자들’ 곧 ‘거짓 사도와 거짓 교사들’을 주의하고 이를 경계하였음이다. 오늘 날 우리의 현실을 같이 설명하면서 아이와 묵상하였다. 이를 위하여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하심으로 주가 인정하시는 바이다. 즉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이단들과 내적 도전들이 많았겠으나, 에베소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잡고 복음에 확고히 서서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들의 신앙을 굳건하게 지켰다.
‘그러나 책망할 것이 있었다.’ 바로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하심이다. 즉 처음에 그리스도를 영접하면서 가졌던 그리스도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버렸다는 것이다. 즉 에베소 교인들은 자신들의 교회에 있던 ‘거짓 사도들’을 분별하느라 정작 형제를 의심하고, 엄격하게 이를 구별하느라 정작 서로를 사랑하는 데는 인색하였다. 분명 예수님은 ‘형제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불가분의 관계임을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막 12:30-31).”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증명되는 길로 형제를 사랑하는 데서 가능한 일이다. 곧 기독교적 사랑은 어느 하나도 무시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 사랑이 곧 이웃 사랑으로 표명된다. 이에 돌이킬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 생각하라. 둘째, 회개하라. 셋째, 처음 행위를 회복하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그렇지 않을 경우의 경고가 두렵다.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5).”
아이와의 성경공부 내용이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나로서는 본문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곧 아사는 그냥 주를 섬긴 게 아니다. “아사 왕의 어머니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목상을 만들었으므로 아사가 그의 태후의 자리를 폐하고 그의 우상을 찍고 빻아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니 산당은 이스라엘 중에서 제하지 아니하였으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온전하였더라(16-17).”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을 타파하였고, 저의 그와 같은 마음이 일평생을 온전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앞서 에베소 교회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에 대한 내용도 같은 의미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하실 때, 이것은 결국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하는 바울의 고백으로도 증명이 된다. 유다가 외적인 대적으로 구스 침략을 긴 세월 동안 인내하여 수고함으로 막아냈다(14:9-15). 대략 그 기간이 4년은 족히 걸렸을 것이다. 이어서 예루살렘에 입성한 아사는 2차 종교 개혁을 단행하였던 것이다. 마치 자전거처럼 멈추면 넘어진다. 굴러갈 때 균형도 잡힌다. 우리의 신앙의 행위로는 ‘수고와 인내’라는 두 바퀴를 돌릴 수 있는 페달이 필요한 것이다.
곧 그 페달은 말씀이다. 말씀을 발판으로 하여 구를 수 있는 힘은 주가 되신다. 저는 복음으로 경고와 언약을 동시에 주신다. 이는 '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곧 당시에 구스와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아사는 스스로 교만해져서 종교개혁을 중단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나님을 떠날 위험의 소지도 많았다. 그런데 아사랴의 예언에 따라 개혁 의지를 재개하였다. “하나님의 영이 오뎃의 아들 아사랴에게 임하시매 그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1-2).”
곧 아사랴의 예언과 경고(1-7)가 있고, 이에 아사의 개혁과 언약의 갱신은 이어졌다(8-19). 여기서 아사랴가 선포한 에언은 세 가지 내용이다. 첫째,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 것이다.’ 둘째, ‘너희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도 너희를 만나실 것이다.’ 셋째, ‘너희가 만일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도 너희를 버리실 것이다.’ 이와 같은 진리는 성경의 기초이다.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2).”
에베소 교회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더해 ‘처음 사랑’을 찾으라는 것,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4).” 결국 우리의 본질은 하나님의 빛, 그 사랑을 찾는 것이다. 세상이 왜 이 모양인가 하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4-5).” 그러므로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9).” 나는 아이와 함께 각자 서로의 빛, 그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서로 그렇게 살기를 당부하고 다짐하였다.
그리하여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2-13).” 이 놀라운 참으로 기이하고 신비로운 믿음으로 오늘도 산다. 오늘 본문의 아사는 하나님의 뜻(1-7)에 순종하였기 때문에(8-18) 전쟁이 없는 평안의 시절을 맞게 되었다(19). 사느라 다들 전쟁 같은 날들을 사는 가운데서도 우리 안의 평안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이것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는 스스로를 개혁해야 한다. 이는 말씀에 더 철저히 순종하는 일이겠다. 그러려고 하는 노력으로, 결코 어중간한 상태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앞서 설명하였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계 3:15).” 그러므로 오늘도,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 마소서
내게 굽히사 응답하소서
…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
(시 55:1, 5).
이 땅에서 사는 일이란 자칫 아차, 하는 순간에 훅, 간다. 아사 왕은 이를 선포하는 아사랴의 선포에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대하 15:2).” 그리하여 아사는 “마음이 일평생 온전하였더라(17).”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16-17).
그때에,
나를 대적하는 자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그가 내 생명을 구원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
(18).
오직 이 길은 단 하나,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2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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