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걸어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도 유다에서 제거하였더라
대하 17:6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시 57:7-8
10장부터 유다 왕들만의 통치를 언급하고 있다(10:1-36:21). 오늘 이 4대 왕 여호사밧에 이르기까지 르호보암(10:1-12:16), 아비야(13:1-22), 아사(14:1-16:14)의 치세를 다루었다. 연이어 여호사밧의 통치에 관해 20장까지 꽤 긴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알다시피 여호사밧은 유다의 3대 성군(聖君)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여호사밧은 주전 872년부터 847년까지 통치한 아사의 아들이다.
그의 통치에서도 몇 가지 과오가 있기는 하다. 하나는 아합 가문과 혼인하였다.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고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 인척 관계를 맺었더라(18:1).” 얼핏 보면 사사로운 일 같으나 먼저 아합과의 혼인관계는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과 아합의 딸 아달랴의 혼인을 가리킨다. 이들의 결혼은 주전 865년경에 거행되었다. 이 혼인은 동맹을 위한 것으로 아합의 제안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것으로 두 나라의 존립과 번영을 그들의 힘에 의지하려 했던 것이다.
혼인 동맹의 목적과 의도가 어떠하든지 그 결과는 솔로몬의 경우로 상상이 된다. 그에 비하면 여호사밧의 이러한 결정은 큰 실정이랄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일은 선견자 예후의 지적처럼,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19:2).” 즉 이 어리석은 행동으로 다윗 왕가의 왕손이 전멸할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다.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자기의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유다 집의 왕국의 씨를 모두 진멸하였으나 왕의 딸 여호사브앗이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몰래 빼내어 그와 그의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게 하였으므로 아달랴가 그를 죽이지 못하였더라 여호사브앗은 여호람 왕의 딸이요 아하시야의 누이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이더라(22:10-11).” 곧 아합의 딸 아달랴에 의해 우상 숭배가 유다에 유입되고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다.
또한 “마레사 사람 도다와후의 아들 엘리에셀이 여호사밧을 향하여 예언하여 이르되 왕이 아하시야와 교제하므로 여호와께서 왕이 지은 것들을 파하시리라 하더니 이에 그 배들이 부서져서 다시스로 가지 못하였더라(20:37).” ‘아하시야’와 교제하였다는 것으로 ‘여호와께서 왕의 지은 것을 파하시리라.’ 하는 예언은 “여호사밧이 다시스의 선박을 제조하고 오빌로 금을 구하러 보내려 하였더니 그 배가 에시온게벨에서 파선하였으므로 가지 못하게 되매(왕상 22:48).”
그런 가운데서도 아하시야는 계속해서 새로운 배를 건조하여 오빌로의 항해를 시도하도록 여호사밧에게 요청하였다. 여호사밧은 첫 번째 파선된 배를 건조에는 것에는 동참하지 않았다. 배가 부서진 원인은 폭풍 때문이었을 것이나 이는 동시에 요나가 타고 있던 배가 아닐까 상상해본다. 그 항로가 욥바에서 다시스로 이어지는 항로였고, 거기는 큰 폭풍이 자주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결국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와의 관계나 교제는 어떤 식으로든 사달이 난다. 이에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고후 6:14-16).” 하는 부분으로 이 일이 결코 사소하지 않음을 알게 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대체로 여호사밧은 선정(善政)을 일관했다. 종교 개혁은 단호했고, 율법 곧 성경공부에는 철저했다. 결국 우리의 결단이 우리의 행동과 결실을 좌우한다.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 갔으나 먼저 뜻을 정하였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단 1:8).” 즉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 중요하다.
오늘 본문 1절에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이 대신하여 왕이 되어 스스로 강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방어하되” 곧 다니엘과 같이 뜻을 정하여,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 이는 그가 그의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하며 그의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라(3-4).” 이처럼 우리에게 우선은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다. 그러할 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 28:15).”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우리와 관계하신다. 그럴 때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신 20:1).”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러므로 우린 곧 주의 은혜로 산다. 이를 위해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붙들고,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벧후 1:10).”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유 1:3-4).”
오늘도 믿음으로 나를 견제하고 내 안의 어떤 바람을 주목할 때 행여 ‘가만히 들어온 자’의 속성으로 지배를 받거나 ‘따라 나온 자’와 같은 나의 옛 자아는 없는지를 돌아본다.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 3:11).” 고로 이를 빼앗으려는 자들이 나의 안팎으로 포진해있다는 것이다. 하여,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시 73:2-3).
사람 마음이 그렇듯 뻔히 주가 싫어하실 것을 알면서도 누가 어떻게 잘 되고 평안할 때, 상대적으로 우리의 처지와 사정을 비교하게 된다. 또한 구하는 바 이 땅에서 잘 되고 복에 복이 더하기를 구하게 된다. 그럴 때 오늘 여호사밧에게 좋은 길라잡이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다윗과 앞서 자신의 부친 아사였다. 때론 나 역시 힘에 겨워 지칠 때면, 어릴 때 반 년 가까이 지냈던 애양원교회의 소경 장로님들을 기억한다. 예닐곱 명의 저들은 늘 둘러앉아 보이지 않는 눈으로 누가 녹음해준 성경을 듣고 또 들으며 암송하였다. 그 가운데 유난히 나를 돌보아주던 장로님은 어린 내게 성경을 어디어디 찾아 읽게 하였고, 그럼 나는 부러 틀리게 읽으면서 저가 나의 틀린 부분을 지적할 때면 진짜 성경 66권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다 암송하는 것에 놀라고는 했었다.
또한 감사하게도 나의 부친과 형제들이다. 비록 내세울 것 없고 다들 사느라 궁핍할 정도로 목회가 궁색 맞지만 오히려 나는 그런 가운데서 묵묵히 맡기신 길을 가는 데서 새 힘을 얻는다.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친구 아무개 형님이 미국 어디 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모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목회를 한다는 둥 누구는 몇 권의 신학서적을 쓰고 내로라하는 교회에서 담임을 한다는 둥 누구는 교회도 성장하고, 어디에 땅을 사서 수양관도 가지고 있어 철마다 수련회 겸 교인이며 가족들이 휴가를 간다는 둥… 하는 그런 소식에는 부럽기는 하나 별로 감동은 없다.
오늘 이 여호사밧의 신앙이 가능했던 것은 다윗과 아사와 같은 길라잡이 신앙의 선배가 있었다. 그리하여 즉위 초에 ‘전심으로’ 여호와의 도를 행하여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을 제하였다. “그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걸어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도 유다에서 제거하였더라(6절).” 뿐만 아니라 방백과 레위인과 제사장들을 파견하여 율법 지도와 사법 제도를 개편하는 개혁을 단행했다. “그가 왕위에 있은 지 삼 년에 그의 방백들 벤하일과 오바댜와 스가랴와 느다넬과 미가야를 보내어 유다 여러 성읍에 가서 가르치게 하고(7).” 더불어 그의 부친 아사가 탈취한 에브라임 도시에 수비대를 주둔시켜 국방도 강화했다.
단지 저는 북이스라엘의 악명 높은 아합 왕과 교제하였다는 것, 이 시기에 여호사밧의 범죄가 뚜렷이 밝혀진 바는 없으나 악하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아합 왕과 사돈을 맺음으로, 길르앗 라못 전투에 함께 참여한 것은 큰 죄로 지적된다.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19:2).” 이처럼 여호와의 진노에 대한 말씀을 받았는데, 저는 곧바로 돌이켜 2차 개혁을 시도하였다. 이 개혁은 1차 때보다 재판에 관해 더욱 세밀한 것이었다.
우리가 신앙을 유지하는 데 있어 태만하고 나태해서는 어림없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4:16).” 하고 바울은 스스로를 신앙의 본이 되려고 애썼던 것이다. 그리하여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빌 3:17).” 하면서 스스로를 독려하였다.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11-12).”
오늘도 이처럼 말씀 앞에 앉아 나를 채찍 하듯 아사에 이어 여호사밧의 행적을 살피면서,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약 5:10).” 의당 우리는 주를 따르는 자들이어야 하나 더러는 눈에 안 보이는 진리와 사명의 길을 두고 회의와 갈등이 들 때,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딤전 6:11-12).” 우린 우리 자신과도 싸워야 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신 10:12-13).”
스스로에게 끝없이 자문하며, 이를 위해 묵상을 글로 쓴다. 이것을 수시로 어디서든지 열어서 다시 읽을 수 있게 한다. 화장실에서나 엘리베이터에서나 병원에서나 가릴 것 없이… 나는 나의 이 허접한 글쓰기이나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주가 더하신 의미를 성경으로들어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읽는다. 그러면 이 이야기는 고스란히 나의 이야기로 들어온다. 오늘 여호사밧은 개인적으로도 우선 경건하였다! 새삼 나의 묵상 쓰기가 귀하게 여겨진다. 잃지 말아야 할 습관 같다.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 이는 그가 그의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하며 그의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라… 그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걸어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도 유다에서 제거하였더라(3-4, 6).”
그의 강력한 통치는 <전심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결과였다. 하나님께 축복을 받았음을, 이는 세상이 주는 결탁과 외형적인 성공이 아니다. 저는 우선 계명을 지키고(3-4), 우상을 타파하고(6), 말씀 교육에 열심이었다(7-9). 곧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지고 유다에서 가르치되 그 모든 유다 성읍들로 두루 다니며 백성들을 가르쳤더라(9).” 결국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여부가 축복과 진노의 기준이다. 여호사밧은 통치기간에 외적인 형식과 제도를 개혁하는 것뿐 아니라, 내적 영적 각성을 위해 말씀 교육 사업에도 전념하였던 것이다.
먼저 주변에 동화된 산당과 아세라 목상을 제거하고, 내적 성숙을 위한 계명을 연구하였다. 부친 아사도 동일한 성격의 개혁을 두 차례에 결쳐 행하였었다(14:3-5, 15:8-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상 숭배는 사라지지 않았고, 우상은 어느 시대나 백성들 사이에 공공연히 행해지는 독버섯 같았다. 그래서 여호사밧은 아사 때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방백들과 제사장, 레위인들을 보내어서 신앙 교육도 같이 시행하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경건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것은 개혁을 주도하는 인물로서 필수적인 일로,
“그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걸어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도 유다에서 제거하였더라(6).”
전심(全心)이란 온전한 마음으로, 오로지 한 곳에 마음을 두는 것으로의 전심(專心)이다. 마음을 한 곳에 기울여 온전한 마음으로 다하기란, 에베소 교회를 향해 주님이 알아주셨던 것 같이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계 2:2-3).” 그런 가운데서도 처음 사랑을 찾으라고 하심은,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4).” 언제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은혜가 더없이 필요하다.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시 57:1).
아니면 언제든지 내가 어찌할 수 있을 것처럼 교만이 또 나태함이 나를 엄습하기 일쑤여서,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5).
고로 오늘 나의 행함으로든지 수고로든지 인내로든지 구하고 또 바랄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으로,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7-8).
그리하여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1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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