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하현. 2025. 8. 11. 16:54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사람이 다시 여호사밧을 선두로 하여 즐겁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이 그 적군을 이김으로써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대하 20:27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이심이로다

시 60:12

 

 

죄는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그러나 회개 또한 반드시 용서를 더하신다. 뿐만 아니라 도우시고 인도하심으로 피할 길을 주신다. 이는 오늘 본문의 중심이다. 곧 성경의 주된 메시지도 그러하다.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만 회개가 더 중요하다. 하나님은 다만 기다리실 뿐이다. 하여 우리로도 참고 인내하면 영원한 면류관을 약속하신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곧 우리의 환난과 궁핍을 다 아신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9).” 그럼에도 주를 바라며 참고 인내하는가 하면 그리하여 하나님을 떠나고 그릇 행하기도 한다.

 

이에,

 

내가 회초리로 그들의 죄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그들의 죄악을 벌하리로다

(시 89:32).

 

또한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주의 오른손으로 구원하시고 응답하소서

(60:5).

 

이를 오늘 여호사밧과 유다를 통해 알게 하신다. “그 후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이 마온 사람들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고자 한지라(1).” 이는 여호사밧이 아합과 결탁하여 사돈 관계와 군사 동맹을 맺음으로, 부수적으로 북이스라엘의 우상숭배 곧 아합 왕과 이세벨 왕후가 바알과 아세라 상을 섬김으로 온 이스라엘이 죄에 빠졌다. 이를 여호사밧은 묵과하셨고 그 일로, ‘그 후에’ 오늘 본문과 같이 모압과 암몬이 마온 사람들과 쳐들어왔다.

 

이를 여호사밧에게 전하자,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3).” 먼저 저는 백성들에게 금식을 공포하였다. 곧 기도하기를 구한 것이다. 하여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4).” 이처럼 왕 한 사람의 판단으로 백성들의 대응은 이처럼 달라진다. 왕인 여호사밧도 ‘여호와의 전 새 뜰 앞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회중 가운데 서서’ 기도하였다.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6).”

 

먼저는 백성들의 금식과 합심 기도를 명하고, 다음은 자신도 엎드려 하나님의 권능하심을 찬양한다. 하고 저는 부르기를 “우리 하나님이시여”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주께서 사랑하시는 아브라함의 자손”들로 자신들에게 영원히 주시기로 한 땅인 것을 붙들었다(7). 그리고 또 성전을 붙들고 구한다. “주의 이름이 이 성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성전 앞과 주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에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9).”

 

비록 이러한 결과가 설령 자신의 과오와 죄과로 인한 것이라 해도, “이제 그들이 우리에게 갚는 것을 보옵소서 그들이 와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의 기업에서 우리를 쫓아내고자 하나이다(11).” 하며 저들의 부당한 공격을 아뢴다. 그러면서 여호사밧은 “유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아내와 자녀와 어린이와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13).” 하는 것과 같이 온 백성이 온 마음을 다해 주 앞에 서서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구한다(12).

 

여호사밧의 통치 내용을 언급하는 과정(17:1-20:37)에서 지금까지는 그가 행한 종교적 개혁(17:1-6), 교육정책(17:7-9), 군사적인 사역(17:12-19:18) 그리고 사법 제도 개혁(19:4-11) 등을 기술하였다. 아합과 연합해서 아람과 싸운 후 폐하고, 난세를 맞게 된 유다에 걸쳐 사법 조직을 개편함으로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한 여호사밧의 통치에 관해서는 앞 장에서 언급하였다.

 

이어지는 오늘 말씀은 사해 남쪽, 모압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매우 위험한 곤경에 처한 유다의 환난을 보여준다. 이에 대처하는 여호사밧의 신앙과 그 중심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심으로 승리하게 되는 것을 보여준다. 모압과 암몬의 침략을 받고, 여호사밧이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자신도 성전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을 묘사한다(1-13). 이어 이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과 그에 따른 승리를 예언하고 있다(14-19). 한편 이 예언이 성취되어 결국 침입자들이 자멸하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유다의 평안을 드러낸다(20-30). 여기서 여호사밧의 군사적 승리를 언급하고, 추가로 기술하는 것은 여호사밧의 행적과 통치 말기를 기술함으로 여호사밧의 치세를 정리한다(31-37).

 

결국 보면 우리의 실상은 환난에서 표가 난다. 곧 그 신앙의 진실함이 환난을 어떻게 대처하고 그러므로 주를 얼마나 의지하고 신뢰하는가, 하는 모습을 말하고 있다. 결국 고난의 대명사 욥의 고백으로 알 수 있듯이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 1:20-21, 22).”

 

물론 고난은 어렵고 끔찍한 일이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이를 인내로 믿음하였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히 10:32).” 나는 여기서 ‘믿음하였다’고 표현하는 것은 물론 우리의 믿음이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이에 따른 증거는 믿음을 받은 우리의 의지로 나타난다.

 

하여 믿음하였다고 하는 것은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히 10:33).” 생각처럼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조롱거리가 되어 힘들고 어려워도 이를 오히려,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34).” 곧 우리의 영구한 소유,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약 1:12).”

 

고로,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히 10:35).”

 

하는 말씀에서 내가 나를 부정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임을 깨닫는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나를 부정한다는 것, 나의 체면과 판단과 나름의 가치관이나 의지까지도 모두 주 앞에서는 부질없음을 알 때,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 20:12).” 하는 오늘의 핵심이 눈에 확 들어온다.

 

아사 왕이 북이스라엘의 바아사 왕의 침략을 당했을 때, 그가 취했던 대처하는 방법과 오늘 여호사밧의 대응은 참 좋은 대조를 보여준다. 여호사밧은 모압의 연합군을 금식과 기도와 하나님께 대한 간절한 간구로 물리쳤다. 그러나 그의 부친 아사 왕은 어리석게도 아람 왕 벤하닷에게 도움을 구하여 승리를 거두기도 하였다. “아사 왕 제삼십육년에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아사가 여호와의 전 곳간과 왕궁 곳간의 은금을 내어다가 다메섹에 사는 아람 왕 벤하닷에게 보내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 그가 나를 떠나게 하라 하매… 바아사가 듣고 …포기하고 … 그친지라(대하 16:1-5).” 여기서 둘 다 위협적인 전쟁에서 승리하긴 하였으나, 두 승리는 동일한 의미의 승리가 아니다. 아사의 승리는 단지 바아사의 공격을 중지시키는 데 그쳤다. 그 승리에는 어떠한 기쁨과 축복도 동반되지 않았다.

 

이와 달리 오늘 여호사밧의 승리는 ‘오직 기도와 간구’로 어떠한 희생도 치르지 않은 가운데 이를 데 없는 기쁨과 축복의 승리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리석게 보일지 모르겠으나 신앙적 태도로 임할 때의 결과와 사람의 수단으로 얻은 결과가 비록 외형적으로는 같다 해도 의미가 전혀 같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오늘 여호사밧에게 닥친 전쟁의 위기는 예고된 징계였다. 모압과 암몬 연합군이 유다를 침공한 이유는 아람 왕 벤하닷이 자기 나라를 위협하는 유다의 압력을 제거하기 위하여 모압을 사주한 전쟁이다.

 

여호사밧의 무역 확장을 저지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당시 여호사밧은 아라비아와의 해상 무역을 재개하려 시도하였다(35-37). 곧 “여호사밧이 다시스의 선박을 제조하고 오빌로 금을 구하러 보내려 하였더니 그 배가 에시온게벨에서 파선하였으므로 가지 못하게 되매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내 종으로 당신의 종과 함께 배에 가게 하라 하나 여호사밧이 허락하지 아니하였더라(왕상 22:48-49).” 이 같은 그의 시도는 암몬과 모압의 무역권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었다.

 

따라서 두 나라는 상업적인 이권을 위해 동맹하였고 유다를 침공했다. 그러나 이 같은 이유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여호사밧의 범죄에 대한 예고된 징계이다. 즉 여호사밧은 아합과 연합하였었고(대하 18:2-3), 하나님께서는 이에 따라 징계하시겠다고 예고하셨었다.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19:2).”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눈물겨운 사랑을 징계를 느낄 수 있다. 당연히 잘못 행할 때 아버지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저녀들을 공의의 법대로 심판하신다.

 

이에 여호사밧이 취한 행동은 군사적인 자구책을 강구하기보다 전국에 금식을 공포하고, 백성들로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게 했다(20:3-13). 이는 자신의 과오를 회개하는 것이다. 여호사밧은 잘못을 알았고 자신은 물론 나라를 개혁하고, 사법 기구를 개편함으로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였다. 그렇게 하여 오늘과 같이 이러한 환난을 당했을 때 여호사밧은 나라와 국민들과 함께 타개하려 금식을 공포하고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의뢰하게 되는 것이다.

 

곧 우리의 합심 기도는 힘이 있다. 초대교회 때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 하신 말씀을 붙들고,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12-14).”

 

그리하여,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2:1-2, 17).”

 

곧 오늘 본문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죄를 인정하고, 전심으로 주 앞에 의지하심으로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20:17).” 하신 후에 연합하여 쳐들어온 저들끼리 싸우고 죽였다.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23).”

 

이에,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미 7:7).”

 

고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도와 말씀으로 의지하고 인내하여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사람이 다시 여호사밧을 선두로 하여 즐겁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이 그 적군을 이김으로써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20:27).” 이에 오늘도 다시금 주의 말씀으로 새 힘을 얻으며,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려 흩으셨고

분노하셨사오나 지금은 우리를 회복시키소서

주께서 땅을 진동시키사 갈라지게 하셨사오니

그 틈을 기우소서 땅이 흔들림이니이다

(시 60:1-2).

 

더러는 죄로 물들어 그릇된 길로 행하였다 해도 우리의 환난으로 우리가 참 인내를 배우며 회개하는 것이었으니,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주의 오른손으로 구원하시고 응답하소서

(5).

 

이를 확신함으로 기도도 나온다. 그러므로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주의 오른손으로 구원하시고 응답하소서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하게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이심이로다

(5, 1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