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에스라 1:2-3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시 77:1
하나님은 참고 또 기다리신다. 하나님은 기회 있을 때마다 기회를 더하심으로 돌이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다. 가령 므낫세의 경우가 그러하여 저는 심지어 당대의 하나님의 큰 선지자 이사야를 톱으로 썰어 죽였다고 한다. 살아있는 자식들을 인신 제물로 우상 앞에 바쳤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악행이란 악행은 다 저질렀다. 그러나 저의 악정(惡政)에도 하나님은 므낫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곧 므낫세의 악정으로 “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이르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치게 하시매 그들이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지라(대하 33:10-11).” 이와 같은 원리는 성경의 기초다. 죄를 범하였을 때 하나님의 징계가 따른다. 그러자 그 악명 높은 므낫세도 기도하였다.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12-13).” 여기서 우린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에 놀란다. 더하여 어떻게 나 같은 자로 오늘 이처럼 주의 일을 감당하는 자로 삼으셨는지… 나는 자주 나의 옛 이야기를 떠올리다 섬뜩하다. 마치 오늘 시편에서의 고백처럼,
내가 옛날 곧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였사오며 밤에 부른 노래를
내가 기억하여 내 심령으로,
내가 내 마음으로 간구하기를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끝났는가,
그의 약속하심도 영구히 폐하였는가,
하나님이 그가 베푸실 은혜를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가 베푸실
긍휼을 그치셨는가 하였나이다 (셀라)
(시 77:5-9).
이는 주를 사랑할수록 행여 주의 사랑을 잃을까 하여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은 당연하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 사랑하는 만큼 더욱 큰 사랑을 바라면서도 받지 못할까 하여 조바심이 이는 것과 같다. 그런데 므낫세를 용서하시고 그의 노년이 180도 달리진 것을 보면 은혜 가운데 은혜인 것을 깨닫는다.
그는 하나님의 징계로 바벨론으로 끌려가 환난을 당하자 저는 겸비하여 회개하였다(대하 33:10-13). 저의 회개는 곧바로 우상을 파괴하고 여호와 신앙을 회복하는 종교 개혁으로 이어졌다(14-17). 그래도 므낫세의 노년은 신앙을 회복하는 것으로 맺음하였다(18-20).
오늘 본문 에스라서는 역대서의 끝부분, “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그의 백성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대하 36:22-23)”에 이어지는 내용이라 하겠다.
포로 귀한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순간이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렘 29:10).” 이는 이사야서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한 종을 세워 주의 백성들을 포로에서 풀려나게 하실 것과 그로 인하여 성전을 재건하고 뿐만 아니라 잊어버린 율법도 다시 교육하여 준수하게 하실 것임을 알리셨다.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왕들이 보고 일어서며 고관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신실하신 여호와 ‘그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사 49:6-8).”
이는 다시 예레미야의 예언과 같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1-13).” 하여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4).”
이를 오늘 본문으로 성취하고 계심을 알게 한다. 고레스와 에스라에 의해 각각 주도된 두 차례의 포로 귀한 사건을 중심으로 묘사되고 있다. 성전을 재건하고(에스라 1-6장),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개혁하는 운동에 대해 기술한다(7-10장). 이를 오늘 말씀은 서론으로 하여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백성 몇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고 이스라엘 무리도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라(2:70).” 하는 내용으로까지 진행된다. 고레스가 인도하는 제 1차 귀환을 언급하고 있다.
그만큼 유다를 귀하게 여기시는 동기로,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1).” 하면서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미 예레미야를 통해 예언하신 바, 그 언약을 이루려하심이다.
그 직접적 원인은 “바사 왕 고레스”의 입을 통하여 선포하신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2-3).” 하는 이 놀라운 고백과 선포가 이방나라 왕의 입으로 전파되는 것이 놀랍다.
또한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4).” 하심으로 인내하며 끝까지 남은 자들, 곧 남겨진 자들에 대한 은총을 가늠하게 한다. 이를 이사야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사 1:9).” 하고 증언하였다. 곧 “내가 네 재판관들을 처음과 같이, 네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불리리라 하셨나니(26).” 하고 오늘 이 본문의 현실을 예견한 바, “시온은 정의로 구속함을 받고 그 돌아온 자들은 공의로 구속함을 받으리라(27).” 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음을 이사야는 알리었다.
오늘 이 일의 성취를 위해 실행하셨다.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그 사면 사람들이 은 그릇과 금과 물품들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기쁘게 드렸더라(에스라 1:5-6).”
곧 이스라엘의 영적 지위가 다시 회복되는 모습은 우리들 곧 주의 자녀들을 끝까지 지키시고 인도하고 계심을 알게 한다. 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성전을 재건하라 명령하시고(1-3), 배상 예물을 이스라엘에게 주라고 바벨론 백성에게 명령하셨다(4-6). 그리고 성전 기물들도 모두 돌려주게 하신다(7-11). 즉 예나 지금이나 힘의 논리로 세상이 굴러가는 것에 비하여, 제국주의의 힘의 논리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로서 이 모든 일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와 있던 이스라엘이 이처럼 고국으로 돌아갈 것을 누가 상상이나 하였겠나?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앞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누누이 예언하게 하셨다.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 왕은 앞서 고대근동을 제패했던 다른 왕들과 다른 정책을 펼쳤다. 그의 통치는 피정복민들을 자신의 본토에 그대로 살게 하는 것이다. 또한 각국의 종교를 최대한 복원하여 보호하는 것이다. 저는 다신론자로 그리하였다. 이러한 고레스의 통치는 당시 모든 약소국에게 그대로 적용되었다. 따라서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만 고레스의 은총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런 가운데 저 같은 이를 종으로 세워 특별한 은총으로 임무를 부여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묵상하게 된다.
주전 8세기에 이미 고레스라는 이름의 한 왕이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장차 있을 포로생활에서 해방시킬 것이라 예언하셨다. 분명 성경은 저를 ‘내 목자’라 칭하면서 말이다.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사 44:28).”
이에 하나님의 주권이 모든 이방 국가에도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저 역시 ‘기름 부음을 받은’ 왕으로 지칭하신다.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45:1).” 그렇다고 저가 하나님의 유일사상과 그 신앙으로 그리한 것은 아니다. 엄연히 저는 그때 필요하여 쓰신 바 된 애굽의 바로 왕이나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이나 다를 바 없이 이방 나라 족속의 왕이다.
오늘 이 본문의 조서 내용(1-4)과 그 내용에 대한 반응(5-11)으로 저는 다만 그리 쓰임을 받은 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를 확장하시는 데 있어 세속 국가의 왕으로도 그를 도구로 쓰신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를 바울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롬 13:1).” 하고 저들의 권위는 인정하였다.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2).” 이는 곧 저를 세우신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여 오늘 어느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고 떠받드는 일에 치중하지 말아야 하고 또는 공격적으로 비난하고 비판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저 저들은 오늘을 위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도구일 뿐이다.
이에,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4).” 이는 곧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와 약속하심이 얼마나 신실하신가를 알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를 보고 오늘의 정치와 세계 정세를 이해하고 인내해야 한다. 그 이상의 의미부여는 금물이다. 길거리에서 허튼 구호를 외치거나 기도하는 이들을 긍휼히 여긴다.
하여,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계 3:10).”
우리의 진정한 성전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가운데 임재하시는 여기, 지금, 오늘이라 일컫는 때에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 3:13).” 이는 우리 자신이 주의 성전인 것으로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이를 위해 사도들의 한 목소리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점점 더 어지러운 세상에서 고레스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즉 고레스는 당시 페르시아 동부의 소국인 안산의 왕 캄비세스 1세인 부친과 메대 왕 아스타아게스(주전 585-550)의 딸인 만다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왕이 되자 최초로 페르시아 민족의 통합에 착수했다. 그리고 국내 문제가 해결되자 곧 부패함으로써 백성들의 신임을 잃었던 메대의 아스티아게스를 그의 수하였던 하르피구스의 도움을 얻어 축출하였다(560-546). 그리고 페르시아와 메대를 통합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목자’로 일을 해야 했다(사 44:28). 그는 바로 그 일을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였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당시 바벨론의 왕 나보니두스(556-539)가 애굽의 아마스스(568-526)와 리디아의 크로이스스(560-546)와 동맹을 맺어 대항하자, 나름 강력하였을 바벨론을 치기보다 비교적 열약한 리디아를 먼저 공격하고, 크로이스스를 완전히 패배시켰다. 그러자 애굽의 아마시스는 물러갔고, 이것을 기회로 바벨론을 공격하여 패망시켰다. 고레스의 이러한 군사적 활약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로 가능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200년 전에, 즉 아직 고레스가 태어나지도 않은 때에 그의 이름을 거명하시면서 오늘의 이 모든 일을 계획하셨다. 곧 세상 나라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데 필요한 도구일 뿐이다. 즉 하나님의 구속사에 근거하지 않고는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예언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세상 지식으로 세계사를 연구하는 일은 공허하다. 바벨론의 멸망은 애굽을 패퇴시켰던 갈그미스 전투에서 이미 예정된 수순이라 할 수 있었다(주전 605년). 이 전쟁에서 바벨론이 승리함으로 팔레스타인 전역에 영향을 끼쳤고, 이어서 유다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605-562)에 의해 네 번의 공격과 함께(605년, 597년, 586년 582년) 멸망한 것이다.
이에 오늘도 결코 우연일 수 없는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 앞에서,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나니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시 77:1-2).
하나님 외에 우리가 대체 무엇으로 위로를 삼을까?
또 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잘못이라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
곧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
(10-11).
오늘의 나로 증명이 되어야 한다. 하여 오늘도,
또 주의 모든 일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행사를 낮은 소리로 되뇌이리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도는 극히 거룩하시오니
하나님과 같이 위대하신 신이 누구오니이까
(12-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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