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백성 몇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고 이스라엘 무리도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라
에스라 2:70
오직 하나님은 긍휼하시므로 죄악을 덮어 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의 모든 분을 다 쏟아 내지 아니하셨으니 그들은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라
시 78:38-39
모든 게 하나님의 쓰임에 합당하도록 사용된다. 가령 사탄도 그 쓰임에 따라 허용 범위에서 활동한다. 가령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땅을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욥 1:7).” 하고 그 허용 범위 안에서의 상황을 아뢰고,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9).” 욥에 대한 하나님의 신뢰를 흔들려하자,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12).”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고레스라는 이방 왕을 도구로 사용해서 포로 생활을 하는 유다 백성을 해방시키게 하신다. 이에 오늘 본문은 고레스의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을 귀환하게 하여 그 돌아가는 백성들의 명단을 기록하고 있다. 본문은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심과 그에 대해 반응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그에 따른 명단이 기록되어 있는데, 먼저는 지도자들과 일반 백성들의 명단(1-35),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명단(36-42), 느디님 사람과 솔로몬 신복들의 명단(43-58), 그리고 계보가 불분명한 사람들의 명단(59-63), 그리고 돌아온 자들의 총 숫자와 그들이 드린 물품의 내역(64-70) 등으로 서술되고 있다.
고레스가 내린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귀환 명령은 강제적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이는 저마다의 선택으로 원하는 자들로 이뤄진다. 그런 점에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자유의지에 따라 판단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돌아갈 수도 있고 그대로 정착하여 그곳에 머물 수도 있었다. 이러한 허락이 고레스에 의해 내려졌다.
바벨론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벅찬 기쁨과 아울러 갈등에 사로잡혔을 것 같다. 70년 세월이면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 포로 생활이었다고 하나 그 사이에 터전을 일궈 살았고, 그런 가운데 이런저런 사정들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누구는 돌아가려면 물질적으로 손해도 감수해야 했을 것이고, 그곳에서 가정을 이루거나 어떤 사업을 벌였다면 그 또한 다 버려두고 폐허가 된 고향으로 돌아갈 처지가 아닌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대충 우리나라의 해방과 함께 이후 각지로 흩어졌던 이들의 처지와 사정을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실제 포로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온 자들보다 그곳에 정착하여 남은 자들이 더 많았다. 이스라엘 백성은 주전 605년, 597년, 586년 세 차례에 걸쳐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으나,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고레스를 들어서 저들을 귀환할 수 있게 하셨다. 이는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은총으로 약속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29:14).”
이러한 이스라엘의 귀환은 이사야의 예언과 같다.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사 44:28).” 하심으로 오늘의 이와 같은 일을 예언하셨고,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45:1).” 하심에 따라,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2-3).” 이를 이루셨다.
이러한 예언의 말씀은 이루어졌다.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렘 25:11-12).” 그래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29:10).” 정작 그때 당시에 이와 같은 말씀을 붙들고 산 자들은 돌아갈 준비를 하고 살았을 것인데,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4).”
하여 오늘 바사(페르시아)왕 고레스가 귀환을 허락하는 칙령을 발표하였다. 이에 저들은 포로생활을 청산하고 3차에 걸쳐 돌아오게 된다. 제 1차 귀환은 주전 537년에 이루어졌다. 하여 오늘 에스라는 귀환자 명단을 기록하면서, 귀환할 때 가지고 온 짐승들의 숫자까지 자세히 기록하였다. 말 736마리, 노새 245마리, 약대 435마리, 나귀 6,720마리로 모두 합하여서 8,136마리였다(66-67). 이를 느헤미야도 기록하고 있다(느 7:68-69). 이 짐승들의 수를 귀환자 중 ‘온 회중’의 숫자(42,360명)와 비교하면 “온 회중의 합계가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이요(스 2:64, 느 7:66).” 이를 대략 다섯 사람에 짐승 한 마리 정도씩 가지고 나온 셈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도 “양과 소와 심히 많은 생축”이 함께하였다고 했다. “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출 12:38).” 곧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 때도 짐승들과 같이 오게 하심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어려움이 없도록 긍휼하심으로 보살피신 것이다. 곧 우리 하나님은 만물을 하나도 빠짐없이 주관하시고 섭리하신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 11:36).”
그러므로 오늘 여기 귀환자들과 저들이 가지고 나온 재물에 대하여는 그들이 거하는 주변의 이웃들이 은 그릇, 황금, 기타 물건, 짐승, 보물을 내어주었다. 이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상의 차원이었다. 출애굽 때도 그러했듯이 그곳 주민들이 하나님께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도록 강권하신 것이다.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그 사면 사람들이 은 그릇과 금과 물품들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기쁘게 드렸더라(스 1:4, 6).”
이러한 기이한 역사를 누가 시켜서 가능하겠나? 또 고레스 왕은 옛적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옮겨다 자기 신전에 두었던 여호와의 전 기명(器皿)을 돌려보냈는데, 그 기명들을 가지고 돌아올 때 금반 30, 은반 1,000, 칼 29, 금대접 30, 그보다 은대접 410, 기타 기명 1,000으로 도합 5,400이었다. “금, 은 그릇이 모두 오천사백 개라 사로잡힌 자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갈 때에 세스바살이 그 그릇들을 다 가지고 갔더라(스 1:11).”
이는 1차 귀환자들이 신분에 관계없이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성전 건축의 역사를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해 헌신하였음을 말해준다. 이에 따른 계기를 꼽자면 다니엘은 당시 패권을 쥐고 있던 강대국 바사의 총리로 있었고, 메대 왕 다리오 시대뿐 아니라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까지 형통하였다. “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단 6:28).” 이 말씀을 볼 때, 다니엘은 정치적으로 바사 제국의 기틀을 확립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다니엘은 메대의 다리오 통치 원년,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단 9:2).” 하고 기록한 대로 저는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 만에 마칠 것”이라고 하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을 깨달았고 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귀환 1년 전(주전 538년) 때 고레스가 유대인의 해방을 공포한 일에 간접적으로 저의 영향이 미쳤을 것이다.
“바사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그의 백성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대하 36:22).”
한편 다니엘은 고레스 왕 3년에도 바사 제국에 남아 활동하였다. “바사 왕 고레스 제삼년에 한 일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나타났는데 그 일이 참되니 곧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 다니엘이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환상을 깨달으니라(단 10:1).” 그런데 다니엘의 최종 활동 시기를 고레스 3년이라고 하지 않고,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 또한 고레스가 귀환 조서를 발표하는 데 있어 다니엘이 그만큼 영향을 끼쳤음을 알게 한다.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1:21).”
이렇게 하여 애굽에서 출애굽 한 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우선적으로 성막을 완성한 것처럼, 바벨론에서 귀환한 백성들도 오직 성전 건축을 열망하였다. 그리하여 오늘 본문에서 주전 537년에 귀환한 백성들은 옛 성전이 있던 터 위에 단을 세웠다. “어떤 족장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 터에 이르러 하나님의 전을 그 곳에 다시 건축하려고 예물을 기쁘게 드리되(스 2:68).” 하여 “무리가 모든 나라 백성을 두려워하여 제단을 그 터에 세우고 그 위에서 아침저녁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3:3)”
즉 이는 아침저녁으로 번제를 드리고 초막절을 지키고 성전을 지을 준비를 하였음을 알게 한다. “이스라엘 자손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인지라 …아침저녁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 초막절을 지켜 번제를 매일 정수대로 날마다 드리고 그 후에는 항상 드리는 번제와 초하루와 여호와의 모든 거룩한 절기의 번제와 사람이 여호와께 기쁘게 드리는 예물을 드리되… 이에 석수와 목수에게 돈을 주고 또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기름을 주고 바사 왕 고레스의 명령대로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운송하게 하였더라(스 3:1-7).”
하여 주전 536년 2월에 마침내 성전의 지대를 놓고 성전 건축 역사를 시작하였다.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이른 지 이 년 둘째 달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다른 형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사로잡혔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이 공사를 시작하고 이십 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 여호와의 성전 공사를 감독하게 하매(3:8).” 그러나 이 일에 사마리아인들의 집요하게 방해가 있어 성전 건축이 중단되고 말았다. 이는 왕에게 조언을 하던 자들(모사)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뇌물을 받고 유대인들을 참소했던 것이다.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 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그들이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고발하니라(스 4:5-6).”
그렇게 하여 성전 건축은 16년 동안 중단되었다(주전 536-520년). 그러다 주전 520년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를 비롯한 백성들의 마음을 감화하여, 다리오 왕 제 2년 6월 24일에 재개되게 하셨다. “선지자들 곧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언하였더니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에 있던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있어 그들을 돕더니(스 5:1-2).”
이러한 상황을 보다보면 우리의 우여곡절이 우리들로 하여금 더욱 주를 간절히 바라게 한다는 것을 느낀다. 이 시기에 스가랴 선지자는 성전 건축의 진정한 의미가 ‘메시아의 도래와 그의 왕국을 맞이하는 데 있음’을 밝히었다(슥 9-14장). 그런 점에서 유다의 바른 신앙의 회복을 촉구하는 것이다.
이런저런 사정을 살펴보면 어느 때나 그런 시기에 누구는 다니엘과 같이 앞서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을 묵상하고 이를 말씀으로 붙들고 산다. 그러나 누구는 살아온 방식과 터전을 버릴 수 없어 귀환을 포기하거나 성전 건축과 예루살렘의 복원에서 빠진다. 그러니 같은 사안을 놓고도 누구는 이러하고 누구는 저러한데,
내 백성이여, 내 율법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시 78:1).
하시는 오늘 시편의 말씀이 눈에 들어온다. 이에 어지러운 때일수록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계 10:10).” 더러는 이 말씀이 입에 달아서 듣기는 쉬운데 이를 삶으로 소화하기가 어렵다. 무려 70년의 포로 생활 끝에 귀환이라 하면, 이를 다니엘처럼 앞서 예언의 말씀을 묵상하고 이를 붙들고 소망 중에 살았던 이와 이내 말씀과 상관없이 그에 젖어 포로 생활에 길들여진 이의 차이란 참으로 클 것이다.
이는 우리가 들어서 아는 바요
우리의 조상들이 우리에게 전한 바라
우리가 이를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3-4).
하는 삶이 오늘 우리에게 절실한 게 아닐까? 몸이 아파서 마음이 어려울 때에 이처럼 말씀으로 주의 뜻을 바라게 하심이 위로가 된다. 이 묵상글을 쓰다 3층 병원에 내려가 진통제 주사를 맞고 올라와 묵상글을 마저 쓰는 자리에서,
그들로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계명을 지켜서
그들의 조상들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들의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아니하는
세대와 같이 되지 아니하게 하려 하심이로다
(7-8).
오늘의 나의 날들이란 그럴 것이라 믿으며,
오직 하나님은 긍휼하시므로
죄악을 덮어 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의 모든 분을 다 쏟아 내지 아니하셨으니
그들은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라
(38-39).
나의 한낱 보잘것없는 날들이라 해도,
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
(7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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