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백성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하였더라
에스라 3:12-13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이니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에 전하리이다
시 79:13
우리에게 향하신 주의 인자하심이 크다. 주를 바랄수록 주가 내게 보이신 기이한 일들이 놀랍다. 지난날을 돌이킬 수 없지만 이를 발판으로 더욱 굳건하게 주의 뜻을 의지할 수 있다. 전에는 긴가민가하던 일에 대해서도 더는 주저하지 않고 주를 의뢰하게 한다. 그럴 수 있는 힘이 돌이켜 주를 바라게 하는 회개의 능력이다. 오늘 제사장들은 주의 성전에 기초를 놓으며 통곡하고 백성들은 기쁨으로 환호하여 외치는 것을 본다.
바사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귀환하게 된 것부터가 기이하다(1:1-4). 그리고 귀환자의 수와 그들이 바친 예물도 놀라웠다(2장). 오늘은 보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성전이 재건되는 역사적 배경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개괄적으로 설명한다. 이어지는 본문의 핵심은 성전 재건에 따른 사실과 그 증거다(3-6장). 기초 작업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으로 하나님의 명령이 신실하게 이행되는 것을 본다.
오늘 본문에서는 성전을 재건하기 위한 제반 준비를 갖춘다(1-7). 그리고 기초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과 그에 따른 백성들의 반응을 본다(8-13). 성전을 재건하는 데 있어 저들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그동안 잃었던 찬송과 기쁨으로 감회가 새롭다. 이는 우리가 돌이켜 주 앞에 회개하는 감격과 비례한다. 가령 노예선 선장이었던 존 뉴턴이 회심하여 목사가 되고 그 어떤 이보다 온순하여졌음을 어느 소회에서 읽었다. 저는 교회 내의 반대와 교회 밖의 부정적인 자들에 대해 누구보다 인자하였다고 한다. 누구도 저를 그 옛날 악명 높은 노예를 운반하는 선장이었다는 것을 믿지 못할 정도이다. 서아프리카의 노예 상인 밑에서 일하다 1748년에 노예선 선장이 되었던 그가 지은 찬송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와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 하리라 아멘
(새찬송가 305장 전문).
이를 보건대 은혜는 회개와 비례한다. 회개는 통회의 눈물의 무게와 같다. 오늘 본문에서 성전 기초가 놓이는 것을 보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다.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질렀다. “백성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려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하였”다(12-13).
곧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고 반응하느냐의 실제는 저가 겪은 삶의 무게와 일치한다.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레위 지파 사람들이 감당했던 역할에 대해 오늘 본문은 조명하고 있다. 곧 저들이 비록 포로로 끌려갔으나 제사장적 관심은 무시할 수 없었다. 이에 “무리가 모든 나라 백성을 두려워하여 제단을 그 터에 세우고 그 위에서 아침 저녁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2)” 이와 같은 기쁨은 고스란히 전해진다. 하여 “기록된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켜 번제를 매일 정수대로 날마다 드리고(4).”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하는 존 뉴턴의 고백과도 일치한다. 예전에 믿었던 사람은 물론 아예 무신론자로 살다 주를 영접했다 하여도 그 속에 숨었던 영생의 참 기쁨이 마치 유전인자처럼 살아나는 것이다. 이를 어찌 설명하여 알게 할까? 성전은 주전 516년(다리오 왕 제 6년) 아달월(12월) 3일, 약 4년5개월 만에 완성되었다. “다리오 왕 제육년 아달월 삼일에 성전 일을 끝내니라(스 6:15).” 이것은 주전 586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후 무려 70년만의 일이다.
분명 그때에 저들에게는 ‘70년’만에 귀환할 것을 예언하였고, 이를 어김없이 성취하신 것이다.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렘 25:11).” 이에 대하여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 내가 그 땅을 향하여 선언한 바 곧 예레미야가 모든 민족을 향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라(12-13).”
이는 오늘 우리가 읽고 묵상하는 성경의 장래 일과도 같다. 예수께서 말세의 때에 나타날 징조에 대하여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마 24:4-5).” 하신 데 대해 오늘 우리의 현실은 기가 막힐 정도로 그러하지 아니한가? 통일교를 위시하여 여느 권세 잡은 자들의 대형교회들이 정권과 결탁하여 이권사업에 눈이 멀었다가 세상 법정에 서고 있다. 온갖 이단과 가짜 뉴스들이 극성인데 이는 더욱 믿는다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고 있다.
하여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6-8).” 더욱이 개신교도들이 득세하면서 정치화되고 세상과 결탁하여 서로가 서로를 넘겨주는 꼴이라,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9).” 그러니 가시적인 현상으로도 교회가 사회의 지탄을 산다. 이를 또 환난을 당하는 것으로 스스로들 미화한다.
바울은 설교에서 이때에 나타날 징조로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1-23).” 점점 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는 끊기고 사람이 동물을 더 선호하고, 이것저것 꾸며서 만든 것들을 가방이고 어디고 주렁주렁 달고 다니면서 그 의미를 부여한다.
앞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저들의 속박과 구속을 예언할 때,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렘 29:10).” 저들은 과연 이를 귓등으로나 듣기는 했을까?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알리는 바, 귀환의 목적이 분명하다. 이방 왕인 고레스가 전하였다.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스 1:2-3).”
이를 보면서 우리가 듣고 전하여야 할 말씀에 침묵하면 돌들이 외칠 것이란 말씀이 강하게 느껴진다. 이에 “그가 경고를 받았던들 자기 생명을 보전하였을 것이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고를 받지 아니하였으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겔 33:5).” 그런데 우린 늘 닥쳐야 안다. 롯의 사위들이 농담으로 들었던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였다.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창 19:14).”
그러니 말씀이 있고 이를 전한들, “인자야 네가 반역하는 족속 중에 거주하는도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아니하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아니하나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라(겔 12:2).” 하여 예수님은 여러 번 외쳐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막 4:9).” 그러니 오늘 우리가 이처럼 말씀 앞에 앉아 듣거나 묵상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복되다. 내 안에 주를 바라고 말씀을 사모하는 영을 부어주신 것이 놀랍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막 4:23).” 결국은 제한적이어서,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눅 14:35).”
결국은 닥치고 난 뒤에는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뿐인데,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의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의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겔 33:9).” 하여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마 15:31).”
그날이 오리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 2:14).” 하여 바사 왕 고레스 때, 주전 538년에 귀환 조서를 내려서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을 비롯하여 저들로 귀환하여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성전을 건축하게 하였다. 이는 바벨론 포로 귀환에 대하여 예레미야 선지자는 성전 회복과 그것을 통한 예배의 회복을 예언하였다. 이방인에게 짓밟힌 성전의 수치를, “외국인이 여호와의 거룩한 성전에 들어가므로 우리가 책망을 들으며 수치를 당하여 모욕이 우리 얼굴을 덮었느니라(렘 51:51).”
오늘 이처럼 하나님께서 보수하실 것을, “바벨론 땅에서 도피한 자의 소리여 시온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보복하시는 것, 그의 성전의 보복하시는 것을 선포하는 소리로다(50:28).” 그리하여 “화살을 갈며 둥근 방패를 준비하라 여호와께서 메대 왕들의 마음을 부추기사 바벨론을 멸하기로 뜻하시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보복하시는 것 곧 그의 성전을 위하여 보복하시는 것이라(51:11).”
오늘 우리가 사회적으로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당하는 수치와 무시와 그에 따른 교회의 부정과 부패가 다시 정결하게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가리켜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다 하던 여기 곧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주민도 없고 짐승도 없던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와 여호와의 성전에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 이는 내가 이 땅의 포로를 돌려보내어 지난 날처럼 되게 할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3:10-11).”
나는 요즘 뉴스를 보며 소수, 극단적인 이들의 종교심에 온 교회와 복음이 수치와 모욕을 당할 때 속상하다. 누가 조롱하듯 말하길, ‘이 시대에 예수가 재림한다면 개신교도들이 다시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이라며 시시덕거렸다. 아, 우리의 영적 바벨론에서 돌아와야 한다. 귀환민들로 우리 믿는 자들은 성전을 재건하고,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예배드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한 시인의 슬픈 노래처럼 우리는 오늘도 바벨론 강가에 앉아 울었다. 저들이 우리더러 이 세상을 위해 노래하라 한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137:1-3).
마치 오늘 이 시대의 비극적인 교회의 수난이 아닐까? 정작 교회가 교회답지 못함으로 이 수치를 겪는 것일 테니, 그런 가운데 “건축자가 여호와의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 자손 레위 사람들은 제금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다는 데서 눈물겹다(스 3:10, 12). 이에 “백성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하였더라(13).”
오늘 이 시대에 이와 같은 감격과 환희의 순간을 꿈꾼다. 물론 이 모든 것이 협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것이나,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그러므로 더욱 더 회개의 참 기회가 있을 수 있기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오며 유다 자손도 함께 돌아오되 그들이 울면서 그 길을 가며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할 것이며 그들이 그 얼굴을 시온으로 향하여 그 길을 물으며 말하기를 너희는 오라 잊을 수 없는 영원한 언약으로 여호와와 연합하라 하리라(렘 50:4-5).”
오늘도 누구와 수업이 있다. 저는 예전에 교회를 다녔다. 지금은 글쓰기를 배우려고 온다. 주께 묻기는 환갑을 넘겨 저로 하여금 글쓰기를 다시 배우고 싶다는 마음을 두심으로 오늘 우리의 만남을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실 것인지…. 그런 가운데 주께 구하여,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 2:21).” 하여 우리의 만남이 우리로 속박당하던 바벨론에서 돌아와 주의 전을 새로 정비할 수 있게 하시기를.
하나님이여 이방 나라들이
주의 기업의 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나이다
(79:1).
이를 아뢰어 주께 고함은,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이웃에게
비방 거리가 되며 우리를 에워싼 자에게
조소와 조롱 거리가 되었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영원히 노하시리이까
주의 질투가 불붙듯 하시리이까
(4-5).
부디,
우리 조상들의 죄악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긍휼로 우리를 속히 영접하소서
우리가 매우 가련하게 되었나이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스러운 행사를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
(8-9).
그리할 때에,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주의 목장의 양이니 우리는 영원히 주께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대대에 전하리이다
(13). 아멘.
'[묵상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0) | 2025.09.01 |
|---|---|
|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0) | 2025.08.31 |
| 오직 하나님은 긍휼하시므로 (0) | 2025.08.29 |
|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0) | 2025.08.28 |
|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0) | 2025.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