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

하현. 2025. 9. 2. 16:45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을 따랐으므로 성전 건축하는 일이 형통한지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따라 성전을 건축하며 일을 끝내되 다리오 왕 제육년 아달월 삼일에 성전 일을 끝내니라

에스라 6:14-15

 

시 82:8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

시 82:8

 

 

마치 모든 일이 우연처럼 혹은 세상의 권세 잡은 자들에 의해 이뤄지는 것 같으나 그렇지 않다. 오늘 본문에서도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따라” 이 일, “성전을 건축하며 일을 끝내”는 것 같이 “다리오 왕 제육년 아달월 삼일에 성전 일을 끝내니라.” 하심으로 저들에 의한 일 같으나 이는 모두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하고, 이에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을 따랐으므로 성전 건축하는 일이 형통한지라” 하고 첫 운을 뗀다.

 

결국 하나님은 저들을 들어 “조서를 내려” 팔레스타인 지역의 페르시아 관리 닷드내의 보고에 대해 다리오 왕의 반응이 나타난다.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려 문서창고 곧 바벨론의 보물을 쌓아둔 보물전각에서 조사하게 하여(1).” 즉 ‘조서’는 문자적으로 ‘명령서’이다. 저들로 보물전각을 조사하게 함으로 문서 보관에 관한 업무를 살펴서 바벨론에 대해 조사하게 하였다. 다리오 왕이 페르시아 제국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문서 보관소 중 ‘바벨론’에 있던 것부터 찾아보도록 명령한 것도 희한한 일이다.

 

왜냐하면 페르시아 왕들의 명령문이 여러 곳에 나뉘어져 보관되어 있었다. 그런데 바벨론부터 한 이유는 그들의 역대 왕들이 계절이 바뀔 때마다 기후 조건이 적절한 지역으로 옮겨 다니면서 통치를 한 이유도 있다. 그러니까 당시 페르시아 왕들은 겨울에는 바벨론에 있었고, 봄에는 페르시아의 수산 궁에 있었고,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느 1:1)” 여름에는 메대의 악메다에서 정사(政事)를 처리했었다.

 

따라서 다리오 왕의 조서가 바벨론에서 내려졌던 것은 그 해 겨울에 내려진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그 조서는 바벨론이 아닌 다른 곳에서 발견되었다. 곧 “메대도 악메다 궁성에서 한 두루마리를 찾았으니 거기에 기록하였으되(스 6:2).” 즉 이것은 고레스의 조서(1:1)가 주전 538년 여름에 내려졌음을 깨닫게 한다. 악메다는 페르시아 왕들의 여름 휴양지이기 때문이다.

 

한편 악메다는 아람어로 헬라어로는 에크바타나, 그리고 페르시아어로는 하그마타나이다. 곧 이 도시는 원래 메대 제국의 수도였다. 고레스에 의해 주전 550년에 정복되었다. 여기의 궁은 비르타로써 ‘요새’의 의미다. 즉 악메다가 요새화된 도시였음을 보여준다. 악메다는 메대 왕국의 창건자 데이오세스에 의해 건설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왕이 살던 궁전은 일곱 중으로 원형 벽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이 두루마리가 얼마나 깊숙이 보관되었는가를 가늠할 수 있다.

 

여기의 두루마리는 토판(土板)이나 가죽으로 쓰인 모두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고대 중근동국가 중에 애굽은 파피루스라는 종이를, 바벨론은 토판을, 그리고 페르시아 사람들은 동물의 가죽을 사용했다는 역사적인 사실로 볼 때 본절의 두루마리는 가죽으로 된 두루마리로 봐야 할 것이다. 이를 먼저 살펴본 것은 그것이 어떤 것이었든지 그처럼 철저하게 잘 보관되어 보존되었다는 것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이때를 위해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으로 그렇듯 손길이 닿지 않게 보존하신 목적이 오늘을 위해서임을 말이다.

 

전반부(1-6장)에서와 후반부(7-10장)에서 지금까지 언급된 성전 재건의 노력들이 결실을 맺는 장면이 오늘 본문에 나타난다. 즉, 보서 전반부에서 지금까지 성전 재건에 관한 많은 우여 곡절을 언급했다(3-5장). 이어지는 오늘, 그러한 많은 사연들이 종식되는 대목에서 성전이 완공되고 봉헌 제사와 유월절 절기를 지키는 부분이 매우 감격스럽다. 성전재건을 위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력이 합법적인 것을 입증한다(1-12절). 이에 따라 재건 사업이 신속히 진전되어 공사가 완료되었다(13-15절). 성전 재건 공사가 완료된 후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 행사가 베풀어진다(16-22절).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대로 예루살렘 성전은 그들이 귀환했던 때 곧이어 완성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적인 계산에 불과하였다. 왜냐하면 사탄의 역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그 속에 분을 더하는 게 저들의 때가 가까울수록 더욱 더 그러하다. 오늘 가정예배 때 본문으로 같이 나눈 내용에서도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계 12:12).”

 

그러다 보니 때가 악할수록 사람들 속에 분이 점점 더 가득하다. 아비가 아들을 총으로 쏴죽이고, 두 살 된 아이가 보챈다고 아파트 베란다에 방치하고는 두 부부가 PC방에 가서 밤새 게임을 하다 돌아오기도 하였다. 나는 운전을 하다 행여 누가 시비를 걸면 무조건 피하거나 사과하고 만다. 보면 다들 화가 가득해서 누가 좀 건들기만 바라는 것 같다. 그러다 욱, 하고 올라오는 분을 가차 없이 발산하다 후회할 짓을 저지르기도 한다. 요즘 나는 아내와 늙으신 장모 사이에서 공평하기가 쉽지 않다. 솔직히 둘 다 너무한데 당사자들로서는 화가 날만도 하다.

 

하여 오늘은 말씀을 같이 나누면서 늙으신 장모께는 곧 죽으실 날이 가까워서 서로 정 떼려고 그러시는가? 하고 물었고, 아내와는 산책하면서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라고 말하였는데… 나로서야 한 발 비껴난 입장이라 또 이런 소리라도 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토요일에 수업 오는 60대 아무개 씨와의 대화는 피곤하다. 오죽하니 지난 시간에는 말이 고프신가? 하고 되묻기도 하였다. 너무 말이 많고 길다. 지겨워서 어지러울 정도이다. 글을 쓰려는 것인지, 말을 늘고 놓고 싶은 것인지… 조금은 단호하게 선을 긋기는 그어야 하는데…….

 

다들 그 영혼이 피폐해져서 그렇다. 우리의 성전이 헐리고, 포로로 끌려가 산 지 70년이다. 돌아와 바로 성전 재건이 가능할 것 같았으나 그러느라 또 20년의 시간이 허비되었다. 하나님은 불가능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 이는 최소한 본문으로도 충분히 입증되었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분명히 어떻게 해서든지 방해하는 세력이 있기 마련이다. 본문에서도 사탄의 세력은 귀환한 백성들의 주변 이웃과 세상 나라를 도구로 삼아 성전 건축을 방해하였던 것과 같다.

 

우리로 우리의 잃어버린 성전 재건을 방해하는 요인이 있다. 늙음으로 몸도 마음도 멋대로 구는 정신과 이를 온전한 사랑으로 받아내기 어려워하는 짜증, 분함, 억울함과 더하여서 이를 또 책동하는 우리 주변의 어쩔 수 없는 상황과 여건들까지도…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권능 앞에서 아무 효과가 없다. 하나님은 이를 모두 물리치셨다. 곧 먼저는 의심이 문제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롬 4:20-22).” 다음은 약속을 붙들 수 있는 힘의 문제다.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 6:17-18).” 결국은 하나님이 답인데….

 

우리의 오늘은 타산지석(他山之石)이다. 사회의 이런저런 다툼과 자기주장과 말도 안 되는 억지와 분냄과 끔찍한 사회적 풍파가 어찌 일어나는가? 결국 저들 산의 나쁜 돌이 내 산의 옥돌을 가는 데 쓰이는 것 같이 세상의 악함으로 우리의 신앙과 믿음을 점검하고 돌이켜 주 앞에 바로 서야 한다. 하여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살후 3:9).” 즉 우리 또한 왜 우리 안에 억울함이나 분함이 없겠나만 오히려 그러한 마음을 승화시켜 우리로 저들의 본이 될 수 있기를…. 이는 하나님은 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4).”

 

그러니 사람에게 백날 인정받고 존중받느라 그것으로 마음을 기울이느니, 하나님께로 온전하여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전 4:5).” 즉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전 재건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어떤 악의적인 판단에 대하여도 그러려니 한다. 저들은 그 역할을 위해서 낳다. 뉴스를 보다 어떤 이의 터무니없는 주장과 연설에 분이 올라오다가도 저의 역할이 오히려 고맙기도 하다. 터무니없는 계엄 덕분에 저들 부부의 악행이 드러나듯 오늘은 이를 두둔하고 여전히 옳다고 하는 주장들 덕분에 그나마 개혁은 명분을 쌓는 것이어서….

 

하나님은 결국 인간의 그럴듯한 수단과 수사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순종하고 겸손하는 것에 힘을 더하신다. 그리하여 모든 게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를 따라 이루어지는 일이어서,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하여 당장은 불리한 것 같고 억울한 듯하여도, 하나님의 전은 기어이 완성될 수밖에 없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이는 모든 소망하는 일과 모든 행사에 때가 있음이라 하였으며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인생들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시험하시리니 그들이 자기가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전 3:1, 17-18).”

 

이와 같은 인생의 원리가 바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정하신 때를 두고 차곡차곡 일이 진행될 수 있도록 주관하셨다. 그러는 동안 백성들은 더욱 강건하여졌고, 주의 전을 사모하는 것뿐 아니라 유월절도 드려졌다. “또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 곧 하늘의 하나님께 드릴 번제의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 양과 또 밀과 소금과 포도주와 기름을 예루살렘 제사장의 요구대로 어김없이 날마다 주어 그들이 하늘의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을 드려 왕과 왕자들의 생명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라(스 6:9-10).”

 

그렇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란 마치 오뚜기 같아서 넘어졌는가 했더니 도로 일어났고, 일어선 줄 알았더니 넘어지기도 하면서…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그러한 어지러움 가운데서 하나님의 진의를 확신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우리 믿음은,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7).”

 

이는 어쩌다 그리 되는 게 아니라, 이를 위한 필연적인 하나님의 각고의 노력, 그 놀라운 섭리가 우리 삶 가운데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었다. 하여 어려울수록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3-15).”

 

곧 하나님의 일은 그 되는 과정부터가 우리로 우리의 고정관념을 깬다. 그리하여 필경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7-58).”

 

하여,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벧전 5:10).”

 

은혜가 가장 은혜다울 때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의 넘치는 은총이어서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을 따랐으므로 성전 건축하는 일이 형통한지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따라 성전을 건축하며 일을 끝내되” 도저히 끝낼 수 없을 줄았던 일이 “다리오 왕 제육년 아달월 삼일에 성전 일을 끝내니라(스 6:14-15).” 그리하여 “하나님의 성전 봉헌식을 행할 때에 수소 백 마리와 숫양 이백 마리와 어린 양 사백 마리를 드리고 또 이스라엘 지파의 수를 따라 숫염소 열두 마리로 이스라엘 전체를 위하여 속죄제를 드리고 제사장을 그 분반대로, 레위 사람을 그 순차대로 세워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되 모세의 책에 기록된 대로 하게 하니라(17-18).” 그 감격이 두 배로 크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시느니라

너희가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낯 보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셀라)

(시 82:1-2).

 

악한 세상 중에서, 나의 분과 불안과 원망 속에서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여

흑암 중에 왕래하니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리도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그러나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 같이 넘어지리로다

(5-7).

 

하신 때에, 우리의 기도는 간절하다.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

(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