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하현. 2025. 9. 4. 17:17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에스라 8:23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시 84:5-6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산다. 서로에게 주는 마음으로 새 힘을 얻기도 하고 그것으로 호된 상처를 입기도 하면서 우리는 살아가는 내내 서툴다. 하여 오늘 시편의 간증과 같이,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 84:5).

 

이것이 어찌 아무나의 고백이 될 수 있겠나? 종종 ‘돌싱들의 새로운 만남 프로’를 볼 때면 누구라도 그럴 줄 알았겠나? 서로는 호감을 가졌고 그와 같은 끌림으로 좋아하다, 사랑한다고 생각하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시작하였다가 이런저런 사연으로 끝이 났다. 살면서 사람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일이야 모든 피조물들이 그러하듯 창조주에 대한 갈망과 그에 따른 허기로 허덕이다 대체하는 마음으로이겠다.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쫓겨나면서부터 이와 같은 공허한 마음의 실체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그 허기진 마음을 채우려고 사람을 사랑하고 그 외에도 더 나은 무엇을 추구하며 좋아하다 생은 늘 허무하게 길 위에서 허물어진다. 하여,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6).

 

오늘도 우리는 주의 사랑하심과 자비하심으로 또 하루를 산다. 살아서 사는 동안에 마음을 의지하고 기대면서 사람한테 실망하기도 하고 우리가 추구하며 만들려고 했던 세상으로부터 배신을 당한다. 그리하여 시인은 비로소 주저앉아 고백하는 것이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10-11).

 

이처럼 시편의 간구와 고백으로 시작하여 나는 오늘 본문을 묵상한다. 여기에서 ‘모든 족장’들에 대한 언급을 본다. 이들을 ‘족장’이라고 하지만 결코 가족들의 대표는 아니다(2-14). 따라서 여기서의 ‘족장’은 다만 레위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영향력 있는 인물들, 곧 지도자로 보아야 할 인물들로 서술되었다. 물론 이들 중 한 가족의 우두머리가 포함되어 있었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이들은 각 자손을 대표할 만한 지도자들이다.

 

몇몇 이름이 눈에 띈다. 엘리에셀은 ‘도움의 하나님’이란 뜻이다. 아리엘은 ‘하나님의 사자(獅子)’란 뜻이다. 스마야는 ‘여호와께서 들으셨다’는 뜻이다. 엘리벨렛은 ‘구원의 하나님’이란 뜻이고, 여우엘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이란 뜻이다. 엘라단은 ‘하나님은 주시는 분’이란 뜻이고, 야립은 ‘그가 다툴 것이다’란 의미다. 나단은 ‘주어진’이란 뜻이고, 스가랴는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는 뜻이다. 므술람은 ‘동행한’의 뜻이고 이들은 통틀어 명철한 사람들로 ‘분별하다’ 혹은 ‘이해하다’의 뜻을 갖는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느 8:8-9).”

 

그렇게 요야립은 ‘여호와께서 아심’이란 뜻이다. 이처럼 저들 이름을 찾아보고 그 뜻을 대략적으로라도 뜻을 살핀 것은 학자 에스라가 인도한 2차 귀환을 언급하는 데 있어(7-8장), 지금까지는 귀환의 배경과 동기에 대해 언급했다면 이어지는 내용은 귀환의 과정과 결과를 기술한 대목으로, 귀환의 여정 속에서 발생한 사건을 중심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 같아서이다.

 

우리가 살면서 어제는 나빴고 오늘은 좋은 날들과 어제는 좋았는데 오늘은 나쁜 날들로 뒤섞여 있는 것을 통틀어 인생이라고 하지 않던가? 종종 나는 내가 살아온 날들과 달리 하나님이 은혜로 채워주심으로 거저 얻은 날들이 더 많다는 데서 늘 감읍한다. 두 아이가 잘 자라서 주 안에서 이제 성인이 된 것과 지지고 볶으며 살았지만 그래도 늘 고마운 사람으로 곁을 같이 했던 아내에 대해서도 나는 늘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사람이다. 즉 내가 한 것도 없는데 아이들은 저절로 잘 자라주었고, 나의 고약한 성미와 볼품없는 중에도 희생과 헌신으로 곁을 지켜주는 아내의 고마움에 감격한다.

 

설교원고를 정리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인자하심, 그 자비하심에 대한 ‘헤세드’를 서술하다 몇 번을 울먹거렸다. 나는 늘 허물뿐인데 주는 말씀하시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너는 공의로 설 것이며 학대가 네게서 멀어질 것인즉 네가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며 공포도 네게 가까이하지 못할 것이라(사 54:4, 14).”

 

그러나 가끔 나를 잘 아는 가족들 앞에서나 친구들 앞에서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하신 이러한 말씀이 나의 날들을 가려주고 숨겨주는 것만 같아서 감격스럽다. 오늘 본문은 이와 같이 백성들의 부흥 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음을 암시하고 있다. 저들, 당시 가족들의 대표인 사람들의 이름과 같이 성전 예배의 복귀를 종교 개혁의 관건으로 인식하고 사는 삶으로 충분하였다.

 

나는 가끔 오늘의 나로 감사하는 것이 나의 젊은 날 수치와 부끄러움을 주가 덮어주시고 이처럼 말씀 앞에 앉히시는 것으로도 송구하고 감사할 따름이어서, 내 인생의 바벨론에서 귀환하는 오늘 이 2차 귀환자들의 명단(1-14)으로 그 뜻을 헤아려보는 것이다. 그리고 레위인 및 성전 봉사자를 모집하는 과정과 결과(15-20)를 보면서도 에스라를 중심으로 한 영적으로의 부흥(21-23)과, 물질적으로의 준비(24, 30)를 살피면서… 이내 예루살렘까지의 도착여정(31-32)이 어떠한 감격이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어 예루살렘에 도착해서의 활동(33-36)도 눈여겨보면서, 우리의 영원한 본향으로의 귀환을 상상하게 된다.

 

이제 와 생각하면 영적 성장에는 희생과 결단이 필요하였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골 2:6-8).” 바울 사도가 설교하는 것도 그 내용이다.

 

즉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 9:25).” 그런데 나는 이 날까지 주의 은혜로 헤세드 안에 살았으니,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요 6:27).” 하신 주님의 말씀을 오늘에서야 귀히 들을 수 있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7-58).”

 

하여 요즘은 자주 의식하게 되는 것은 나의 선입견과 앞서는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어떤 일에 대해서도 더러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고, 궁금하고 조바심 나도 맡겨두고 기다리는 노력이 필요하였다. 오늘도 딸애와 이른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다 카페에 들렀다. 요즘 사귀고 있는 아이와 그 부모 사진을 보여주는데 아내는 안달이 나서 이것저것 앞서서 묻고 채근하는데 나는 무심한 듯 보여주는 것만 보고 말해주는 것만 듣고 있었다. 돌아오면서 아내가 슬쩍 채근하기를 이러저러한 걸 왜 안 물어보는가? 하고 타박인데, 그러기에는 어느새 아이들이 너무 자랐다.

 

문득 떠오른 말씀이,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욘 4:10-11).”

 

여태껏 내가 한 게 없는 것을 새삼 서둔다고 나을 게 무엇이겠나 싶어서, 어련히 자신들이 준비가 되면 데려오든지, 어떤 결정을 내리겠거니 하고… 나의 이러한 마음은 주가 함께 하신 데 따른 그동안의 나의 속수무책이 교훈이라면 교훈이다. 내가 감히 무엇을 옳다 그르다하기 전에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행 10:14-15).” 주의 뜻으로 이루어질 것을…. 하여 믿는 가정에 믿는 아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감사하였다. 우리의 올바른 신앙은 올바른 선진들의 모습으로 전가된다. 그러므로

 

너희 자녀들아 와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

(시 34:11).

 

곧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문제의 발견과 그것을 해결하는 데서, 에스라는 무리를 아하와로 흐르는 강 가에 모았다. 거기서 삼 일 동안 장막에 머물며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폈다. 그 중에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하여 모든 족장 곧 엘리에셀과 아리엘과 스마야와 엘라단과 야립과 엘라단과 나단과 스가랴와 므술람을 부르고 또 명철한 사람 요야립과 엘라단을 불러 가시뱌 지방으로 보내어 그 곳 족장 잇도에게 나아가게 하고 잇도와 그의 형제 곧 가시뱌 지방에 사는 느디님 사람들에게 할 말을 일러 주고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섬길 자를 데리고 오라 하였”다.

 

그런 뒤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 그들이 이스라엘의 손자 레위의 아들 말리의 자손 중에서 한 명철한 사람을 데려오고…” 하여서 “다윗과 방백들이 레위 사람들을 섬기라고 준 느디님 사람 중 성전 일꾼은 이백이십 명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지명 받은 이들이었더라.” 하는 말씀을 주목한다(15-20). 사실 귀환할 모든 여건이 조성되었지만, 에스라에게는 약 2,000킬로미터의 먼 길을 가야만 하는 험난한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라는 자신이 태어났고, 또 장성하였던 곳 바벨론을 떠났다. 이는 단순한 용기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또한 그 막중한 책임을 지고서 말이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맡기시는 하나님의 은총이라 하면 주가 행하실 것이다. 그리 믿고 믿음으로 가는 것이 관건이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눅 9:62).” 하심과 같이 더는 돌아볼 곳도 혹시나 하는 마음도 없다. 주가 주신 바, 오늘 이 한 날의 수고로 족한 것이어서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 4:4).”

 

하여 나는 말씀을 묵상하고, 글로 쓰고, 전하고 하면서 주신 바 나의 형편과 사정 가운데서 주의 이 길을 걸어가는 것일 뿐,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1-3).” 그렇게 힘써 지키다 주가 오라 하실 때 우리의 본향으로 귀환하는 것일 테고, 오늘은 그에 따른 과정으로 오늘 본문의 내용과 같을 터이니,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벧후 1:10).”

 

이 글을 쓰다 누구 전화를 받았는데, 난데없이 유방암이라나…. 삶이란 그런 것이어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딤후 2:21).”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나의 이 쓰임으로 다하는 것이겠다. 그렇게 해서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15-16).”

 

하여,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시 84:1-2).

 

내가 주를 바람은,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5-6).

 

이에,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10-11).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1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