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에스라 7:10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
시 83:18
우리의 염려와 근심이 우리로 병들게 한다. 실제 육신의 질병이 연약한 마음과 무관하지 않고 그 마음은 정신에 깃들어 우울감을 초래하기도 한다. 늘 어디가 아픈 나로서는 때로 나의 이 지겨움으로 주의 이름을 부른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어디가 아프다는 말, 그 연속적인 통증이 때론 참 면구스럽기만 하다. 이와 같은 연약함으로 홀로 주 앞에 있어야 하는 시간….
나는 점점 나이가 든다는 일이 경이로움으로 다가온다. 아흔이 넘은 장모에게 나의 인사는 늘 좀 주무셨냐? 몸은 좀 괜찮으시냐? 하는 것인데… 90년을 넘겨 사용하고 있는 몸이 여기저기가 아픈 것이야 당연한 일일 터, 그러니 어쩌면 좋을까? 하는 마음으로 때로는 눈물겹기도 하다. 나 역시 기를 쓰고 하루 30분 이상 한 시간 남짓 산책을 하고 걷기도 하면서 몸을 좀 움직인다고 하긴 하는데 타고 난 육신의 약함으로야 어쩌겠나?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하고 주의 긍휼하심을 바랄 뿐인데.
오늘은 전반부(1-6장)에서 스룹바벨이 이끌고 돌아온 유다 백성들의 1차 귀환을 성전 재건과 그에 따른 지상 과제로 다루었다면, 이어지는 오늘부터의 후반부(7-10장)에서는 ‘에스라’가 인도하는 2차 귀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 회복과 교육에 따른 개혁 운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에는 58년이라는 공백이 있다. 성전 재건이 주전 516년이었고, “다리오 왕 제육년 아달월 삼일에 성전 일을 끝내니라(6:15).” 2차 귀환은 주전 458년의 일이다. 이 58년간의 긴 침묵 사이에 ‘에스더 사건’이 발생하는 바, 이 사건이 2차 귀환의 동기가 되었다.
그렇게 58년간의 세월을 뛰어넘어 2차 귀환 후 진행된 신앙 개혁에 대해 오늘 본문은 설명한다. 그리고 3차 귀환에 얽힌 사건은 느헤미야에 소개되어 있다. 본문은 후반부를 통해 성전 재건에 이은 모세 율법 곧 하나님 말씀의 회복과 재정비, 이방인들과의 통혼 금지 등에 대해 강조하여,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 및 국가 살림과 행정재정비 등을 서술한다. 이렇게 볼 때 포로 귀환 후 먼저 신앙 회복이 이루어진 다음에 비로소 일반 생활의 재정비에 착수했음을 알 수 있다.
곧 이러한 역사의 흐름 가운데 에스라가 인도한 이번 2차 귀환에 대한 증거가 매우 중요하게 다가온다. 먼저 그런 점에서 에스라에 대하여 그 족보와 학문적 자질을 상세히 언급하고(1-10절), 귀환을 허락한 아닥사스의 조서 내용을 기술하고(11-26절), 이에 대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한 ‘에스라의 찬양’을 기술하고 있다(27-28절). 본문에서 이 같은 내용 구성을 통해 2차 귀환의 배경과 진행 과정과 하나님의 은혜를 짜임새 있게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근동 지역은 페르시아의 단일 통치 체제 아래서 모든 소국들이 복속되어 있었다. 그래서 각 민족들의 소규모 이주가 상당히 자유로웠다. 그런 점 때문에 팔레스타인 즉 유다 지역에는 순수한 이스라엘 백성들뿐 아니라 이방인들까지 함께 살고 있었다. 다시 말해 유다 지역에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종교 문화 그리고 혈통적으로 전혀 하나일 수 없는 이방 족속들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로 시험에 빠지게 하는 원인이었다.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은 블레셋의 다섯 군주들과 모든 가나안 족속과 시돈 족속과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입구까지 레바논 산에 거주하는 히위 족속이라(삿 3:1-3).”
그렇게 되어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를 향한 순수한 신앙을 지키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 주변의 이방 사람들로 인하여 상당한 종교적 유혹과 핍박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종교, 문화적 차이로 인하여 이방 사람들과 잦은 마찰을 빚었을 것이기 항상 불안한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 같은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련이 되었다.
나는 이런 부분에서 개인적으로나 우리 그리스도인들로 어렵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육체의 연약함이나 물질적인 어려움으로도 그러하고, 각종 문화나 사회적 풍토 때문에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다들 그러고 산다! ‘그럴 수 있지?’ 하는 회의와 갈등으로 우리의 신앙은 자주 좌절한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어떤 우울감으로 이중적인 어려움도 든다.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처지의 어떤 어려움이 ‘인생 다 그렇지 뭐’ 하면서 슬픔도 고통도 합리화해야 할 때, 또는 이미 생활이 된 문화나 어떤 사회적 교류로 인해서도 나 홀로 외따로이 떨어져 산다 한들?
시련이 장기화되면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들은 육신적인 안녕을 도모하는데 죄책감이 든다. 물질적인 어려움이나 늘 제자리걸음인 것 같은 성과에서도 위축이 들거나 죄의식도 든다. 그리하여 상당히 많은 이들이 배교하였거나 혼합종교나 타종교로 흡수된다. 굳이 이런 상황에서 신앙을 고수한다는 게 무의미한 것 같아서도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방인 자녀와의 통혼을 묵인한다. 그러다 결국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순수성은 파괴되어 혼합 종교로 타락해 버릴 것이다.
오늘 본문은 우리의 현실이나 이때의 사정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시킴으로, 그리하여 더욱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하고 이를 삶으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이러한 현상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묵상하고 연구함으로 나의 신앙과 맡기신 사명을 다시금 돌아본다. 이를 온전히 구원해 내기위해서라도 ‘에스라’ 자신의 신상과 그 귀환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앞부분에서 꽤 긴 지면으로 언급하고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곧 저는 누구인가? 하는 점에서 그 신앙의 계통을 밟아보는 것이다.
이어서 귀환을 허락할 때 조서를 내려, 아낌없는 협조의 의지를 극명히 드러내는 아닥사스다의 뜻도 이 의미의 논거로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저가 귀환에 대해 허락하고(11-13절), 귀환시 재정적 지원(14-20절)과 공무원들의 협조를 명령하는 내용(21-23절)도 밝힘으로 유다 백성들이 하는 일에 대한 ‘사법적 조처’ 즉 왕정제도에서 왕의 특별한 명령(24, 26절)과 에스라에게 주어진 임무(25절)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본문은 그렇게 에스라의 귀환 당시 페르시아 정부의 배려와 아울러 아닥사스다 왕이 베풀어준 협조에 대해 자세하게 그 조서 내용 언급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이 준 도움을 실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 일로 암시한다. 즉 왕의 조서 이면에 숨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우리는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섭리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에 감사해서, 에스라는 다음과 같이 찬양을 올린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 또 나로 왕과 그의 보좌관들 앞과 왕의 권세 있는 모든 방백의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내가 힘을 얻어 이스라엘 중에 우두머리들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오게 하였노라(스 7:27-28).”
여기서 보면, 먼저 하나님은 교회와 그 교회에 맞는 종을 세워 가장 합당하게 일을 이루신다. 오늘 1절, “이 일 후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왕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라 하는 자가 있으니라 그는 스라야의 아들이요 아사랴의 손자요 힐기야의 증손이요” 하면서 이어지는 저에 대한 소개와 그 계통에 따른 열거로 보면 알 수 있듯이 매순간 그 시대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삿 3:9).” 하고 옷니엘에 대해서도 그러했다.
또한 세례요한 또한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마 3:3-4).” 하고 그의 신분과 처지가 당시 그 상황을 대변하듯, 그 시절이 어떠했는가 알게 한다. 그렇게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1-12).”
하여 오늘의 나는 나의 있는 그대로 주 앞에 서는 용기를 가진다. 내일도 비가 오려고 해서 그런가, 약을 먹었는데도 시원찮아서 결국 주사를 한 대 맞고 올라와 이 글을 마저 쓰고 있다. 그러면서 왜 이런저런 마음으로 어려움이 없겠나만 이와 같은 말씀으로 다시 용기를 얻는다. 즉 이러한 나의 계통은 나의 부친과 형제들의 사역 현장으로도 논거를 삼을 수 있지만, 어릴 적 아직 철도 없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멀리하려 할 때에도 만나게 하셨던 내 기억 속의 사역자들을 나는 가끔 생각한다. 소경 장로님의 소경이어서 저의 일생에 성경을 암송하고 되새기며 나 같은 아이와도 마주하고 앉아 성경을 읽던 일이나….
꼽추이면서 난쟁이였던 어느 원장님의 기도원도 생각이 나는데 저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자기 주변의 목사님들을 섬길 줄 알았고 이런저런 사람과 전화로든지 만나서든지 상담하고 대화하면서 그의 쓰심에 합당하도록 자신을 맡아두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구는 지독하게 가난하면서도 더 가난한 나라로 선교사가 되어 나갔고, 누구는 자신이 가진 것으로 아낌없이 베풀면서 오히려 건네는 자신의 손을 부끄러워하였다. 이와 같이,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말 3:16).”
하여 나는 오늘 아무 것도 하는 게 없어서 그것으로 다만 말씀을 묵상하고 글로 쓰고 누구와 통화하나 만나나 하는 정도로 간신히 주의 일을 감당할 뿐이고, 그런 가운데 내게 두시는 나의 연약한 육신으로 힘들어하면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그와 같은 부름으로 간절할 뿐이다.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빌 4:3).”
그 누구와 비교도 할 게 없는 나의 이 하찮음으로 주 앞에 앉는 일이라,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그리하여 네가 눈으로 본 그 일을 잊어버리지 말라 네가 생존하는 날 동안에 그 일들이 네 마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신 4:9).” 늘 하루, 나의 날들은 이 하루 동안의 일로 충분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내가 나의 아흔 살 넘은 장모의 하루 일과를 보면서 두려움과 경이로움이 교차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나이 숫자로 놓고 보면 앞으로 30년은 더 살아야 한다는 소린데… 아, 나는 이 나의 육신이나마 온전하게 감당하며 살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가운데 오늘 이방 나라 아닥사스다 왕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신앙 개혁을 이루게 하시는 데 있어, 유대인 처녀 ‘에스더’를 왕비로 맞아들인 아하수에로 왕의 아들이 실은 아닥사스다였다. 물론 그가 에스더의 소생은 아니다. 주전 529-523에 정복했던 애굽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있어 국력을 동원해야 했고, 수많은 반란이 제국 곳곳에서 일어남으로 골머리를 앓았던 역사적 시점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여 모반을 꾀할지 모른다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참소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4:7-23). 그래서 성벽 재건을 중단시켰던 것인데, 그런 가운데 아닥사스다 왕은 어떻게 해서든 페르시아 제국 내에 발생되는 모든 반란을 막으려 애썼다.
하여 그가 에스라를 팔레스타인으로 보낸 것도 바로 그런 까닭이 깔렸을 것이다. 즉 아닥사스다는 에스라를 통한 율법 교육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실시하는 것으로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안정에 절대적 기여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에스라가 율법 교사로 온 것은 율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부흥을 이루려는 에스라와 율법 교육을 통해 제국의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려는 아닥사스다 왕의 상호 이해가 맞아떨어졌던 결과다.
이 얼마나 절묘한 일인가? 아닥사스다가 13년 후, 주전 445년에 느헤미야를 총독의 자격으로 이스라엘에 파송한 것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이다. “그 때에 왕후도 왕 곁에 앉아 있었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 날에 다녀올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좋게 여기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강 서쪽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그들이 나를 용납하여 유다에 들어가기까지 통과하게 하시고(느 2:6-7)” 이렇게 오늘 나의 날들도, 우리의 신앙을 위한 모든 환경과 여건도 어쩌다 우연처럼 벌어지는 일이란 있을 수 없다.
하면 오늘 나의 환경, 처지, 이 모든 상황에서 내가 느끼는 어떤 감정적인 변화나 혼자 쩔쩔매면서도 주를 신뢰하게 하시는 이에 따른 능력이 결코 나의 의지로 되는 게 아니었다. 하여 끝으로 다시 한 번 오늘 에스라의 송축은 귀하게 들린다. 먼저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하고 오늘의 이 모든 역사의 주관자가 앞선 믿음의 선친들을 인도하셨던 분인 것과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 곧 저는 이방 나라의 왕이었으나 주의 쓰임에 합하도록 역사하심을 인정하게 한다(7:27).
그리고 “또 나로 왕과 그의 보좌관들 앞과 왕의 권세 있는 모든 방백의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즉 오늘 자신이 어떤 신분으로 어떤 역할을 감당하든지 이건 결국 “내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가능한 일인 것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내가 힘을 얻어 이스라엘 중에 우두머리들을 모아 나와 함께 올라오게 하였노라.” 하고 오늘 이 모든 일의 진행 여부가 주의 주권 하에 있음을 주목하게 하는 송축이다(28). 그러므로 다윗과 솔로몬은 차례로 이를 인정하면서 주를 송축하기를,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시 40:1, 127:1).
그러므로 나는 이 날에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하시는 말씀으로 마음을 다잡는다. 그리하여
하나님이여 침묵하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시고 조용하지 마소서
(83:1).
하고 주를 부르며 오늘의 나를 굴복시키려는 것들에 대하여,
그들로 수치를 당하여 영원히
놀라게 하시며 낭패와 멸망을 당하게 하사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
(17-1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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