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 하고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느 4:4-6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시 90:16-17
앞서 성벽 재건 공사 공로자들의 명단을 구역에 따라 기록하였다. 이어 오늘은 성벽 재건 공사에 있어 집요하게 방해하는 자들을 밝히면서 이에 따른 하나님께 대한 의뢰가 기도로 드려진다. 실제 더 사랑하는 쪽이 언제나 낮아진다. 느헤미야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 하나님께 구한다.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하고 저의 아뢰는 기도가 거침이 없다. 곧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하고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하고 주께 구하는 내용이 너무도 당당하다. 이어서 그런 이유가 분명하였다.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 하고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하고 아뢴다(4-6).
이를 묵상하다 문득 드는 생각이…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늘 져준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사랑의 관계’를 갑을관계로 생각한다는 자체가 어폐가 있지만 성경은 늘 하나님이 참고 또 기다리시며 일방적으로 져주시는 것을 볼 수 있다. 말씀하시길,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하심으로도 알 수 있다. 하나님이 먼저, 더 많이, 일방적으로 사랑하심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그러니까 우리가 대체 뭐라고 이렇게까지 사랑하심일까?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요이 1:6).” 이는 우리로 그의 아들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시기 위함이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이는 도저히 그러실 수 없는 일이었다.
곧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 3:22, 24).” 하여 오늘 우리는 땅을 갈고 살아야 하는 것이었다.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23).” 이는 죄의 삯으로 죽음을 면할 수 없고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18-19).”
그렇게 끝났어야 마땅할 우리를 주는 사랑하셨고, 그 사랑은 먼저 더 많이 사랑하심으로 죽기까지 낮아지시면서 철저하게 ‘을’의 입장을 자처하심이다. 이 모든 것은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5-6).” 이를 알면서 우리는 비로소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된다.
그 가운데 하나가 구하는 것이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느헤미야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구한다. 시편의 여러 간구와 찬양도 그와 같다. 즉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사랑은 이처럼 일방적으로 자기를 낮추사 죽기까지 사랑하심인데, 이에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할 때,
여호와여 언제까지니이까
스스로 영원히 숨기시리이까
주의 노가 언제까지 불붙듯 하시겠나이까
…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시 89:46, 90:13).
오늘 이 느헤미야의 기도에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역설적으로 느끼게 된다. 하여 대적들의 조롱과 훼방으로 성벽 재건 공사가 방해를 받고 더 나아가 완성하지 못하게 하려는 저들의 악함을 느헤미야의 기도로 당당히 아뢴다. 이 기도는 그렇듯 대적하는 이들의 방해 속에서도 성벽 재건 공사를 강행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하여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일러 말하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1-2).” 하고 비웃고 조롱할 뿐 아니라,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3).” 하는 공격적인 언행도 굴하지 않고 주 앞에 아뢰게 되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 하고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4-6).”
이때 느헤미야의 기도는 당당하고 확신에 차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기 때문이었다. 곧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르셨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9).” 그러므로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1-12).”
곧 이와 같은 박해와 조롱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당부하시길,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곧 오늘 우리가 겪는 이 모든 일의 경우는 이미 다 이기신 싸움이었다. 즉 성경의 결론은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21:31).” 하심인데, 다윗은 어려서 이를 알았고 그리하여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 17:45).”
곧 이에 대한 확신은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전능하심을 믿었기 때문이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46-47).” 갈 바를 알지 못하고도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났던 아브라함이나 앞서 화창한 날에 방주를 지으라 하심으로 120년이나 방주 짓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던 노아도 같다.
저들은 다 한결같이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히 11:13-14).” 아, 이 놀라운 사랑의 결실은 확실한 믿음으로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우린 오늘 이 말씀을 붙듦으로 묵묵히 주의 사랑으로 산다. 고로 “그들이 실족할 그 때에 내가 보복하리라 그들의 환난날이 가까우니 그들에게 닥칠 그 일이 속히 오리로다(신 32:35).” 당장은 세상이 늘 이기는 것 같아서 더러는 미끄러질 뻔도 하지만,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시 73:1-3).
더러는 그렇기도 하지만, 성경은 이르시길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잠 20:22).” 즉 우린 다만 주께 맡김이다. 오늘 느헤미야의 기도는 의당 그리하실 것을 다 알고 구하는 기도였다. 그러므로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롬 12:17).” 우린 다만 주께 아뢰고, 믿고 맡길 뿐이다.
가령 동생 일로 마음이 어려웠던 날들, 선교 사역 15년이 억울한 누명으로 끝이 나는가? 했었다. 그러던 것이 고발한 이의 신세가 처량하게 되어 결국은 돈으로 합의를 하고, 그것도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 다 빚인 것을 주가 아실 터… 동생은 덤덤하니 감사하였고 탈탈 털고도 기천만원을 빌려 돈을 주었다. 겉으로는 우리가 진 것 같고 저쪽이 이긴 것 같지만,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하심이 그런 의미일 테니,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시 37:1).
주가 갚으실 것이다. 반드시 주가 상대하신다. 곧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2).
어릴 적부터 보아서 잘 안다. 부친의 목회에 있어 걸림이 되거나 훼방하는 이들이 결국은 다 하나님의 손길에 닿았다. 어린 나이 때는 왜 저런 일을 그냥 당하는가? 하고 오히려 부친의 사역에 있어 무능함과 무력함을 원망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주의 일은 결국 주께서 행하심이었다. 시인의 고백처럼,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7-10).
이와 같은 시편이 다름 아닌 다윗의 것이다. 결국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1-2).”
이를 느헤미야는 알았고 믿었고 구하였고, 당당히 맞서 성벽을 재건하였다. “너희는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느 4:20).” 그러는 동안 모두는 “건축하는 자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18).” 이는 우리에게 이르신 바,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빌 1:27-28).”
그러므로,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엡 6:11).” 곧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14-17).” 하여 오늘도 기도와 간구로 말씀 앞에서,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시 90:1).
하는 시인의 확신에 아멘, 한다. 비록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10, 12).
그러므로 오늘 나는 느헤미야의 기도와 저의 당당한 언행을 보며,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16-1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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