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르리로다

하현. 2025. 9. 21. 17:53

 

왕이 모든 여자보다 에스더를 더 사랑하므로 그가 모든 처녀보다 왕 앞에 더 은총을 얻은지라 왕이 그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와스디를 대신하여 왕후로 삼은 후에 왕이 크게 잔치를 베푸니 이는 에스더를 위한 잔치라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고 또 각 지방의 세금을 면제하고 왕의 이름으로 큰 상을 주니라

더 2:17-18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르리로다

시 101:6

 

 

에스더가 왕후가 되는 직접적인 배경으로 와스디 왕후의 왕명 불응과 아하수에로 왕의 와스디 왕후 폐위 사건이 먼저 일어났다. ‘그 후에’ 새 왕후 간택이 이루어지고 와스디 왕후를 대신하여 에스더가 간택되고 왕의 마음에 들어 왕후가 되었다. 아하수에로는 그의 재위 5년 주전 481년에 그리스 원정을 단행했다. 그리스 원정은 479년에도 이루어졌다. 이어 3, 4차 페르시아 전쟁은 그 유명한 살라미스 해전과 미칼레 전투이다.

 

곧 역사적으로 이는 사실이며 허구가 아니다. 불행하게도 아하수에로는 이 두 번의 원정을 모두 실패한다. 이후 페르시아는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반대로 그리스는 점점 강성하여져 갔다. 하여튼 아하수에로의 새 왕후 간택은 이처럼 3, 4차 페르시아 전쟁이 종결된 후였다. 전쟁에서 패하고 돌아와 심신이 피곤해진 아하수에로는 와스디를 그리워하며 그녀를 폐위한 자신의 처사가 지나쳤음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의 노가 그치매 와스디와 그가 행한 일과 그에 대하여 내린 조서를 생각하거늘(1).”

 

이것은 와스디의 폐위를 주도했던 왕의 측근들의 입장에서는 두려운 일이었다. “그 때에 왕에게 가까이 하여 왕의 기색을 살피며 나라 첫 자리에 앉은 자는 바사와 메대의 일곱 지방관 곧 가르스나와 세달과 아드마다와 다시스와 메레스와 마르스나와 므무간이라)(1:14).” 그 가운데 “므무간이 왕과 지방관 앞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왕후 와스디가 왕에게만 잘못했을 뿐 아니라 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의 관리들과 뭇 백성에게도 잘못하였나이다(16).” 하고 자신들의 입장에서 만일 아하수에로 왕이 마음을 바꿔 와스디의 복권을 결정하면 자신들의 목숨도 위험할 것이었다.

 

하여 저들은 서둘러 새로운 왕후를 선발하게 하였다. “왕의 측근 신하들이 아뢰되 왕은 왕을 위하여 아리따운 처녀들을 구하게 하시되… 왕의 눈에 아름다운 처녀를 와스디 대신 왕후로 삼으소서 하니 왕이 그 말을 좋게 여겨 그대로 행하니라(2, 4).” 그렇게 해서 일은 신속하고 긴밀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이를 통하여 유다인 처녀 에스더가 새 왕후로 발탁되는 배경을 보여준다. 곧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약점과 사악함까지도 사용하심으로 장차 하만의 간계로부터 유다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앞서 에스더를 역사의 전면에 등장시키시는 것이다.

 

이를 들어 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하심이 그대로 적용되는 순간이다. 아하수에로 왕이 와스디를 그리워하고, ‘그때의’ 신하들 입장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심각한 위기가 아닐 수 없었다. 하여 뜻하지 않게 왕후를 서둘러 새로 간택하게 되었고 에스더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분명 우리는 죄를 다스려야 한한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 4:7).”

 

그러나 우리의 죄, 허물과 실수까지도 하나님은 이를 선으로 바꾸신다. 하여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 4:26-27).” 하는 것은 결정적으로 이러한 죄로 우리는 스스로를 망칠 뿐이다. 결코 하나님의 뜻이 바뀌거나 그 영광이 소멸되기 때문이 아니다. 하여 지혜는 이르길,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32).”

 

간혹 우리가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고 주의 일에 큰 지장이 따를 것처럼 해석하는데, 하나님은 그것으로도 선을 이루심으로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창 45:7-8).” 비록 형들 손에 노예로 팔려와 억울하게 살았으나 요셉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잘 알고 있었다. 하여,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50:20-21).”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먼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 대하여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실제 아하수에로 왕이 그때 욱, 하여 와스디 왕후를 폐위시키지 않았다면 에스더가 어찌 이와 같은 역사의 무대 위에 등장할 수 있었겠나? 일련의 사태와 그러한 역사의 과정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선을 행하심이었다.

 

요즘 부쩍 생각나는 사람이 나의 어릴 적 소경 장로님인데, 그때 어린 내가 물었다. 앞이 안 보여서 답답하지 않으세요? 그러자 곱은 손을 휘저으며 나병으로 잃은 두 눈과 뒤틀린 몸을 꼼지락거리며 저는 말해주었다. 한때 저는 꿈이 많은 젊은이였다. 공부도 잘하고 명석해서 대학을 마치면 미국으로 유학을 갈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가족들 형편도 적당히 살았고, 본인도 그 정도의 능력은 갖추었다. 그러다 불현듯 찾아온 나병으로 소록도로 격리되면서 저의 꿈과 가족은 일순간에 산산이 깨졌다. 죽으려고도 했었다. 몇 번이고 소록도 앞바다로 뛰어들기도 했었다.

 

결국 치료를 끝내고 전염성이 없는 음성환자로 판명 받아 여수 애양원 나환자 정착촌으로 오게 되었다. 그땐 이미 가족들도 외면하였다. 마침 애양원 교회의 손양원 목사님의 설교로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다. 젊은 저의 일생은 시력을 잃은 상태에서 봉사자들이 녹음하여 보내주는 성경 낭독 테이프를 듣고 또 들으며 성경 66권을 다 암송하였다. 저가 대답하였다. 내가 두 눈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에 와서 이처럼 성경을 모두 암송할 수 있었을까? 저는 그것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었다. 일생을 두고 저는 성경 66권을 암송하고 또 암송했다. 

 

말 나온 김에, 영국의 수잔은 16세에 골결핵 판정을 받았다. 그녀의 꿈은 의사가 되는 것으로 많은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게 목표였다. 그렇게 여러 병원을 전전긍긍하며 자신의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하며 치료하기를 20여 년 동안 계속이었다. 서른을 훌쩍 넘긴 어느 날 그녀는 순간 ‘네게 할 수 있는 일을 해!’ 하는 마음의 확신을 들었다. 늘 자신이 낫기를 위해 기도하며 수십 년을 보내던 그녀는 거반 평생을 병원 신세로 세월을 보냈는데, 그 순간 병실에 누운 자신으로서 할 수 있는 일…. 그리하여 옆 침대의 환자에게 말 한 마디라도 친절하게 하는 일, 늘 짜증스러워하던 간호사에게 상냥하게 웃으며 먼저 인사하고 위로하기 등등.

 

달라진 수잔 하나로 인해 그녀와 같이 쓰던 병실 분위기가 달라졌다. 피곤에 찌들어서 대부분 어둡던 간호사들의 말과 얼굴이 환하게 바뀌면서 덩달아 다른 병실까지도 그러한 변화의 물결이 서서히 온 병원에 퍼졌다. 저마다 수잔의 말처럼 ‘지금 할 수 있는 걸 해!’ 하는 기치 아래 환자들도 의료진들도 동화되면서, 수잔의 이름을 딴 ‘수잔 무브먼트’가 결성되었다. 환자들과 간호사들이 모임을 가졌다. 같이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하다못해 먼저 친절을 베푸는 일로 그 병원에서 이러한 운동이 하나둘 다른 병원으로 전파되면서 수잔의 이름을 딴 재단이 설립되었다.

 

훗날 수잔은 어느 연설에서 말했다. 하나님은 내가 의사가 되어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것보다 더 많은 환자들의 마음과 상한 영혼들을 치료하게 하셨습니다. 의사보다 수십 배 수백 배 더 많은 사람을 치료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곧 이와 같이 우리 안의 분을 그치고 노를 더디할 때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는 오늘도 우리 현실에서 나타난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시 37: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약 1:19-20).” 곧 오늘 본문에서는 아하수에로 왕의 순간적인 분냄으로 와스디 왕후를 폐위시킨 것으로 오히려 에스더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당시 역사의 무대 위에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된다. 곧 우리의 실수와 잘못이 난감한 현실이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것으로도 하나님은 선을 이루신다는 것을 돌아보게 된다. 곧 우리의 ‘어떤 불행’이 정작은 하나님의 선을 이루시는데 땔감이 되기도 한다.

 

본래 우리는 다 악하다.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창 8:21).” 다들 나름의 선을 추구하며 산다고 하지만 의외로 악하고, 그러한 악으로까지도 하나님은 선으로 바꾸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7).”

 

왜냐하면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6).”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일은 말씀을 묵상함으로 삶을 주 앞에 내려놓는 일이다. 여기서 에스더를 거두었던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자기의 민족과 종족을 말하지 아니하니 이는 모르드개가 명령하여 말하지 말라 하였음이라(더 2:10).” 이는 하나님이 어찌 행하실지 모르기 때문이다.

 

당시 페르시아 사람들은 유일신 여호와를 섬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해 배타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이 일을 맡은 ‘헤개’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에스더를 왕과 가까이 할 기회조차 주지 않을 수도 있었다. 또한 모르드개가 굳이 에스더를 이방인의 왕후로 앉히려 했던 이유는 명예나 권력을 탐해서가 아니었다. 왕후인 사촌 누이를 배경으로 자신의 정치적 야욕을 펼치려던 게 아니었다. 단지 약소민족으로의 설음을 극복해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이루실 일에 대비하였다. 분명한 것은 이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주도적인 섭리가 개입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4:14).”

 

그러므로 그는 오늘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앉았을 때에 문을 지키던 왕의 내시 빅단과 데레스 두 사람이 원한을 품고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꾸미는 것을 모르드개가 알고 왕후 에스더에게 알리니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왕에게 아뢴지라(21-22).” 일의 전개가 또 이렇게 연계 되어 복합적으로 이뤄지는 것을 본다. 빅단과 데레스는 ‘신의 선물’이란 뜻과 ‘굳건한’이란 뜻을 가졌는데, 그것이 아하수에로 왕을 향하여 원한을 품고 있던 것이었다.

 

즉 불만이 있던 것으로 와스디가 왕후의 자리에서 쫓겨난 일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이를 어쩌다 우연히 모르드개가 먼저 듣고 알게 되었다. 모르드개는 자신의 직분을 이용하여 다방면에 걸쳐 여러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곧 두 내시의 하인이 밀고함으로써 모르드개가 그들의 음모를 사전에 알았고, 이를 왕후 에스더에게 고하였다.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왕후에 오르기 전부터 그녀를 수종들던 시녀들과 친분을 갖고 있었다. “ 모르드개가 날마다 후궁 뜰 앞으로 왕래하며 에스더의 안부와 어떻게 될지를 알고자 하였더라(11).”

 

하여 그녀들을 통해 에스더와 안부를 교환할 수 있었다. 금번에 이 일도 모르드개는 그녀들을 통해 그와 같은 음모를 에스더에게 알릴 수 있었고,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이름으로 이 일을 고하여 음모를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 이에 낱낱이 살핀 결과 그 진위 여부를 파악하였고, 저 두 사람을 나무에 달아 죽였다. 이처럼 모반이 있을 뻔한 것을 모르드개라는 사람의 밀고에 의해 발각됐던 사실을 기록하긴 했으나 그에 대한 다른 조치는 없었다. 즉 일을 수습하느라 정작 그 일을 막은 모르드개의 공로를 가볍게 치부하고 잊은 것이다.

 

훗날에 보면 이 일이 더욱 극적으로 밝혀지면서 역시 하나님의 일은 절정의 때에 영광을 삼으신다. 그러므로 성경은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2-23).”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함은 주를 사랑하고 경외함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24).”

 

그러므로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약 1:12).”

 

그래서 때론 답답하고 억울하고, 하나님조차 몰라주시는 것 같을 때도,

 

내가 인자와 정의를 노래하겠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양하리이다

내가 완전한 길을 주목하오리니

주께서 어느 때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

(시 101:1-2).

 

곧 주를 섬기는 일은 주만 바라는 마음으로다. 하여,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살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따르리로다

(6).

 

서로가 알아본다. 바로 믿는 자는 거짓으로 섬기는 자를 경계하고, 주를 온전히 사랑하는 자는 그와 같이 주를 사모하는 자를 알아본다. 이는,

 

거짓을 행하는 자는 내 집 안에 거주하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는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

아침마다 내가 이 땅의 모든 악인을 멸하리니

악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에서 다 끊어지리로다

(7-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