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더 4:16
여호와께서 공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억압 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심판하시는도다…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가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 103:6, 22
그리하여,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2:1).
하는 다윗의 교훈을 떠올린다. 오늘 본문은 다급함으로 주 앞에서 대처하는 성도의 기본자세를 알게 한다. 앞서 하만의 흉계가 적나라하게 전개되었다(3:1-11). 이를 모르고 왕의 조서가 내려졌다(12-15). 오늘은 그에 따른 위기가 민족인 멸절로 이어질 위기에 놓이자, 모르드개가 베옷을 입고 주 앞에 절규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 통곡하며(4:1).”그리고 에스더가 취한 모습이 언급된다.
앞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위기에 처한 사실을 기록한 후 오늘은 이를 대처하는 신앙적 모습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민족적인 위기 앞에서 모르드개가 애통하는 모습이 서론에 그려진다(1-3). 그런 뒤 이러한 사태를 해결을 위해 에스더에게 이 모든 사건의 전모를 연락하는 과정을 진술하고(4-7), 그에 따른 문제 해결을 위해 에스더가 그러한 음모를 폭로하기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자세로 목숨을 거는 장면이 나타난다(8-17).
오늘 우리의 신앙적 자세를 돌아보게 하는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곧 이러할 때 우리의 인간적인 노력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기까지 애통함이란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하심의 실질적인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알려준다. 이러한 섭리는 극적으로 나타난다.
사실 하만의 포악성은 오늘 이 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집단으로든지 개인으로든지 저마다의 자신들의 이익을 구사하는 데 있어 무슨 짓이든지 감수하는 게 사람이고 보면, 모르드개는 그러한 세력이 자신과 민족을 해하려 할 때 우선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먼저는 주 앞에 통회하는 것이었다. 자신에게 다가올 개인적 위기에 대해서는 앞서 각오하고 있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러면서도 하만이 자신의 동족(同族) 전체를 죽이려고 한 것에 대하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 한 사람만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온 민족이 모두 위기에 처해 전멸한다면 그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들로 유다의 멸절은 하나님의 왕국의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르드개는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한 일련의 노력을 개시한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섭리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늘 함께 하신다. 이는 저들 가운데 하나님께 속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신다는 것으로 이사야서에서 거역하는 백성들은 징계하시고 그들 가운데 속한 ‘이방인’과 ‘고자’라 해도 구원하심을 알게 한다.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그의 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내시리라 하지 말며 고자도 말하기를 나는 마른 나무라 하지 말라(사 56:3).” 상대적으로 이는 하나님의 거역하는 자들에 대해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10).”
어제오늘 설교원고 초안을 작성하면서 놀라웠다. 하나님의 자녀들로 저들을 우선 맹인이라 명명하셨다. 맹인이라 함은 앞을 볼 수 없는 자들로 그 특징이 네 가지로 나타났다. 첫째, 저들의 무지한 자들이라 하신다. 둘째, 저들로 꿈꾸는 자들이다. 셋째, 저들은 누워 있는 자들이다. 넷째, 저들은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다. 곧 무지와 몽상과 나태와 게으름으로 맹인된 자들로 규정하셨다.
또한 ‘이 개들은’ 하시면서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11).” 곧 이 탐욕의 네 가지 특징도 뚜렷하다. 첫째, 족한 줄을 알지 못한다. 둘째, 몰지각한 목자들이다. 셋째, 제 길로 가는 자들이다. 넷째, 자신의 이익만 구한다. 이는 탐욕과 자만과 고집(완고함)과 이기심으로 규정될 수 있다.
곧 ‘맹인’과 ‘탐욕’의 저들은 오늘도 쾌락을 즐기며,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마시자 내일도 오늘 같이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12).” 하며 마치 오늘의 자신의 권세가 영원한 줄 안다. 이에 대해 이사야는 앞서 여섯 가지의 ‘화 있을진저’ 하고 그들의 끝을 경고한 바 있다.
첫째, 욕심에 욕심을 더함으로 부자가 되려는 자들로,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8).”
둘째, 쾌락에 취해 맨 정신으로는 살 수 없는 자들로,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11).”
셋째, 거짓으로 거짓을 더하는 자들로,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 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진저(18).”
넷째, 악과 선을 혼재하는 자들로,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20).”
다섯째, 스스로 옳다 여기는 자들로,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21).”
여섯째, 더욱 더 악의 늪에서 즐거움을 찾는 자들로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잘 빚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22).”
이들에 대하여 <파수꾼>으로서 맹인 된 자들이고, <목자들>이면서 탐욕이 심한 자들이라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56:10-11).” 파수꾼이면 그 맡은 바 사명을 다하여 지키는 자들이고, 목자이면 양무리를 이끌어야 하는 자들로서 소위 사회의 지도계층을 의미한다.
그럴 때 상대적으로 ‘이스라엘 속의 이방인’과 ‘고자’들에 대해 저들이 비록 이방인이고 고자이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내가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4, 6)” 주가 책임지실 것을 알게 한다.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내가 내 집에서, 내 성 안에서 아들이나 딸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그들에게 주며 영원한 이름을 주어 끊어지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4-5).”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6-7).”
각각 이들은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자들이었다. 그러하다면 저가 설령 이방인이거나 고자라 해도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그의 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내시리라 하지 말며 고자도 말하기를 나는 마른 나무라 하지 말라(3).” 나는 이러한 말씀을 묵상하고 초안을 정리하다, 우리의 결핍이 우리의 풍요보다 복되다는 생각을 하였다. 주변에서도 보면 적당하여 오히려 풍족할 때 저마다 그 신앙이 해이하거나 그릇된 길로 빠지었다. 문득 떠오르는 이들이 있는데 보면 살만하여 안이하였고, 건강도 형편도 고약하여 주를 더욱 의뢰하였다. 서로 상대적인 이들을 생각하다 오늘 말씀에 다시 주목한다.
모르드개는 바로 이 같은 사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시고 끝까지 함께 하신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하시는 주님의 약속이 결코 허튼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렇게 구원의 능력을 드러내신 경우로,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창 12:17).” 그 누구도 주의 사람들을 건드릴 수 없고,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출 14:21).” 이는 자연까지도 그리 소용있게 하심이다.
하여,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 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수 10:12-13).” 즉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기적도 행사하시고, 그와 같은 섭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까지 변함이 없다.
곧 오늘 민족을 구원하기 위한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데, 모르드개는 자기 민족이 멸절의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기도에 힘썼다! 그리고 이를 왕후 에스더와 연락하여 당면한 과제를 같이 해결토록 애썼다. “모르드개가 자기가 당한 모든 일과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고 왕의 금고에 바치기로 한 은의 정확한 액수를 하닥에게 말하고 또 유다인을 진멸하라고 수산 궁에서 내린 조서 초본을 하닥에게 주어 에스더에게 보여 알게 하고 또 그에게 부탁하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 하니(7-8).”
이에 에스더는 당시의 위기 상황을 알고 그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였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16).” 여기서 이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는 신앙이 어려움을 타개하는 성도의 가장 절실하면서도 진실한 자세이다.
이는 내가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때 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하는 신앙을 기반으로 하는데,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하는 놀라운 통찰과 깨달음으로 인정하시는 믿음으로다.
이는 성경의 기본 원리와 같아서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1-12).” 곧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7-18).”
그러므로 오늘을 살면서 여러 어려움을 겪을 때도 주를 의뢰함은 우리에게는 본향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먼저는 생의 마감이 다가올 때 이를 알고, “해가 질 녘에 진중에서 외치는 소리가 있어 이르되 각기 성읍으로 또는 각기 본향으로 가라 하더라(왕상 22:36).” 다음은 어려운 처지에 놓여 쫓기듯 할 때도 안다. “그들이 쫓긴 노루나 모으는 자 없는 양 같이 각기 자기 동족에게로 돌아가며 각기 본향으로 도망할 것이나(사 13:14).”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우리는 아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불쌍히 여기리니 그도 너희를 불쌍히 여겨 너희를 너희 본향으로 돌려보내리라 하셨느니라(렘 42:12).”
그러므로,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6).”
하여 오늘 에스더의 각오와 결단은 무모한 게 아니다. 모르드개의 울부짖음이 헛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함과 더불어 힘써 일한다.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살후 3:8).” 그러므로 우리는 성도들로 항상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것에 예민하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을 깨달을 때 하나님의 뜻을 바라며 간구한다. 그러므로 주의할 것은,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롬 11:25).”
하여 오늘도 시편의 기도로 엎드리며,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시 103:1-2).
여기까지 나를 인도하신 주를 신뢰함으로,
여호와께서 공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억압 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심판하시는도다
(6).
그리하여,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8, 12-14).
이에,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가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2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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