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하현. 2025. 9. 25. 16:46

 

그 날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령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을 지키던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하였는지라

더 6:1-2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시 105:4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서 보면 ‘하필, 어쩌다, 우연히, 느닷없이’ 등 우리의 허를 찌르는 일들이 여럿이고 이를 통하여 하나님은 뜻을 이루어 가신다. 더러는 이를 인정하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가장 현명하다는 것을 나중에는 필연적으로 알게 된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필’ 그 날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왕은 앞서 기록하였던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었다.

 

‘우연히’ 그 속에 기록된 내용을 알게 된다. 즉 문을 지키는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왕을 암살하려던 음모를 모르드개가 고발하여 자신의 목숨이 부지된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자 왕은 이 일에 대하여 무슨 존귀와 관직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는지 물었고, ‘느닷없이’ 추궁하는 왕의 득달같은 성화에 신하들은 당황하여 아무것도 베풀지 않았음을 알린다.

 

그런데 또 하필, 그때, “누가 뜰에 있느냐?” 하고 찾고 ‘마침’ 하만이 자기가 세운 나무에 모르드개 달기를 왕께 구하고자 왔다가 하만이 왕 앞에 섰는데, 왕이 물었다.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 그러자 하만은 생각하기를 자신을 왕이 존귀히 여겨 그리 묻는 줄 알고, “왕께서 입으시는 왕복과 왕께서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가져다 그 왕복과 말을 왕의 신하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맡겨서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게 하소서 하니라(8-9).”

 

누가 알았겠나? 저는 그게 자신인 줄 알고 그리 고하였던 것이고 실은 유대인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왕께 고하러 갔던 자리였는데, ‘느닷없이’ “이에 왕이 하만에게 이르되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10).” 하고 명령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돼서 저는 다른 말 못하고 왕의 명을 따라, “하만이 왕복과 말을 가져다가 모르드개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 성 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되 왕이 존귀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니라(11).”

 

돌이켜 보면 우리의 삶은 비극적인가 하였는데 희극적이고, 희극적인가 하였는데 비극적이다. 지혜자는 이를 정의하기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하고 반문하였다(전 7:13). 우리가 애써 굽은 것을 곧게 하려 편다고 기를 쓰고 사는데 평생을 굽은 길로 가게 되고, 누가 곧은길을 좀 피하여 굽게 갈까하여 기를 쓰고 굽힌 것인데 보니 여전히 곧은 것이라! 나는 오늘 딸애의 뜻밖의 연락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가 주의 길로 돌이킨 후 단 하나의 소원은 아이들이 믿는 가정에서 믿음으로 사는 자와 결혼하는 것이었다. 딸애가 오는 추석 전에 인사를 시키겠고, 추석 당일 날 가족들이 다 모이는 자리에 데리고 와서 온 식구들에게 인사를 시키겠다고 했다. 나로서는 감사뿐인 게 아이들 어려서 신앙으로 바로 키우지 못했고, 나 역시 신앙의 본을 보이며 산 게 아니어서 그러했다.

 

마침 오늘 가정예배를 드리는데,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에게서 홍수 심판의 결정적인 경고로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창 5:21).” 또한 가장 악명 높은 인물이랄 수 있는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28-29).” 하는 내용으로도 새삼 주의 은혜가 참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에 주목하였다.

 

하여 지혜는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 7:14).” 이는 솔로몬이 살아보고 나서야 깨달은 것으로, “내 허무한 날을 사는 동안 내가 그 모든 일을 살펴 보았더니 자기의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자기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악인이 있으니(15).”

 

그런 거 보면 세상 이치, 우리가 아는 정도의 그것으로는 함부로 단정할 수 없다. 그래서도 지혜자는 덧붙이길,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 이는 얼핏 들으면 허무주의자 같다(16-17). 그러나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식의 염세적 주장이 아니라,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18).”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참 두려움이 참 경외심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시편의 시각은 단호하다.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시 105:4).

 

오늘 본문의 내용도 상당히 소설적으로 허구 같지만 사실이다. 희극적이면서 비극적이다. 하만의 음모가 이처럼 초라할 뿐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하만의 음모로부터 구원하려는 에스더의 노력에 대해 언급하였던 앞장에서의 내용이 더욱 극적으로 오늘의 사건을 통쾌하게 한다. 곧 숨겨져 잊힐 줄 알았던 모르드개의 공로가 영광스런 등용으로 나타나고 상대적으로 수치스런 하만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기록하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얼마나 다양하고 놀라운 우연과 우연으로 우리를 놀래시는지…!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가 예상했던 일을 극적으로 전환시키심으로 더욱 ‘그의 능력’과 ‘그의 얼굴’을 구하게 한다.

 

숨겨졌던 모르드개의 충성심에 보상하려는 왕의 계획(1-9)과 그만큼 수치를 당하는 하만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연출하고 있다(10-14).

 

하나님의 섭리는 언제나 암시다. 우리로 알게 하시되 이를 아는 것이 우리의 영화가 되게 하신다.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잠 25:2).” 하여 우리들로 주목하게 하시는 것은 극적인 상황의 전개와 풍자로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가를 알리신다. 하나님이 묵시적으로 나타내시려는 섭리지만 우리가 알기를 또한 바라심으로,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 2:14).”

 

하여 나는 한 게 없는데 아이들이 먼저 나를 존중하고 위해주는 것에 고맙고, 그리하여 주의 뜻을 살피게 하시는 것이 감사하다. 정말이지 한 게 없고, 가진 게 없어서 줄 수 있는 것도 없는데도 내가 복이 많다. 예전에는 이것이 서러워서 억울하였고 분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모든 게 주의 은혜라,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사 12:2).” 하는 것이 삶으로 살아서 증명되는 일이 되었다.

 

하여,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히 13:6).”

 

여기서 나는 첫째, 전지(全知)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하만이 계획한 음모를 아시고, 오늘의 우연 속에 필연을 숨기셨다. 상대적으로 하만은 세운 장대에 모르드개를 달 계획을 세웠으나, 그와 같은 때에 ‘하필’ 그 밤에 왕이 모르드개의 공적이 기록된 역대 일기를 읽게 된 것이다. ‘마침’ 그때 하만이 왕궁에 또 들어온 일은 어떻고?

 

둘째, 하나님은 비록 유다 백성이 이방에 붙들려 살고 있으나 특별히 모르드개나 에스더와 같은 ‘지도자들’의 분별력과 노력을 통해 유대인 지도자들은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으나, 오히려 그 대적들의 계획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조차 기대하지 못했던 ‘구원의 일’을 이루심으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 드러나게 하셨다. 곧 주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충만히 드러난다. 오늘 시편은 요셉의 경우를 빗대어 이를 알리시는데,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시 105:17-19).

 

하심으로 우리가 결국 이와 같은 말씀으로 단련되어 우리의 믿음이 정금 같이 나올 것이라,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그리하여 오늘은 다만 말씀뿐이다! 날마다 우리는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이처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하는 것을 실증하는 삶이 되었다. 곧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하여 이는,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매우 깊으시니이다 어리석은 자도

알지 못하며 무지한 자도

이를 깨닫지 못하나이다

(시 92:5-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일에 은혜로우시도다

(145:17).

 

이를 인정하는 데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함이 증명된다. 곧 세상의 모든 형편과 사정이 상식 수준에서 치밀할지라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는 반드시 우리의 허를 찌른다. 그리하여 “악인은 엎드러져서 소멸되려니와 의인의 집은 서 있으리라(잠 12:7).”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은 모든 상황을 초월하여 그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새삼 발견된 모르드개의 공적이나, 이를 발견하고 늦게나마 그에 따른 보상을 행하게 하심이 하나님의 섭리다. 그것도 극적으로 하만이 모르드개를 매달기 위해 장대를 세운 뒤 왕에게 고하고자 갔을 때 하필, 어쩌다 이런 일이… 그리하여 우리가 적절하다고 여기는 때와 하나님의 때가 다르고,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름을 현실로 증명하신다. 곧 말씀은 허구가 아니고 막연하고 추상적인 개념도 아니다. 우리 삶의 실전으로,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전 3:1).”

 

어찌 우리가 이를 속단할까?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능히 낮에 대한 나의 언약과 밤에 대한 나의 언약을 깨뜨려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 내 종 다윗에게 세운 나의 언약도 깨뜨려 그에게 그의 자리에 앉아 다스릴 아들이 없게 할 수 있겠으며 내가 나를 섬기는 레위인 제사장에게 세운 언약도 파할 수 있으리라(렘 33:20-21).” 그러므로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단 2:21).”

 

그러니 나는 오늘도 일련의 상황과 사건을 겪으며 울컥, 하고 눈시울을 붉힌 것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 3:17).” 이를 나보다 더 몸소 체험하며 사는 자가 또 있을까? 설마 내가 그래도 주 앞에 자랑할 게 있고, 스스로가 한 게 있어 내세울 게 있으면 또 달랐을까? 그야말로 늘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한 게 없어 송구함과 감사함의 무게가 같은데,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시 16:3).

 

그리 여겨주시니 그것으로도 벅찬 감동이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롬 4:20-22).” 하여 오늘도,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시 105:1).

 

나로서는 다만 나의 삶이 증거가 되어,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말할지어다

(2).

 

하심의 전부일 뿐, 저는 나를 위해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18-19).

 

그리하여

 

그의 백성이 즐겁게 나오게 하시며

그의 택한 자는 노래하며 나오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땅을 그들에게 주시며

민족들이 수고한 것을 소유로 가지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그의 율례를 지키고

그의 율법을 따르게 하려 하심이로다

할렐루야

 

(43-4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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