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고 왕이 내 소청을 허락하시며 내 요구를 시행하시기를 좋게 여기시면 내가 왕과 하만을 위하여 베푸는 잔치에 또 오소서 내일은 왕의 말씀대로 하리이다 하니라
더 5:8
나의 기도를 기쁘게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
시 104:34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사람 일이고, 세 치 혀로 생사가 갈리는 게 또 사람의 숙명이지 싶다. 오늘 날 우리 사회의 분열이나 세계적인 분쟁과 갈등의 정도도 그러하지 싶다. 그러면서 또 사람처럼 뻔뻔하고 거짓된 생명체가 또 있을까 싶기도 하면서…. 에스더서의 구성이 두 개로 확연히 구분되면서 앞서는 위기에 처한 유대인의 모습(1-4장)과 그러한 사태가 급반전되어 승리하는 유다 백성들의 모습(5-10장)으로 나눌 수 있겠다.
그중에서 전자의 마지막을 장을 장식하는 어제의 내용을 알고 읽으면서, 오늘의 내용은 맛깔스러울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즉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라, 하는 각오로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4:16).” 하고 왕 앞에 갈 때 왕이 먼저 이를 목격하고 에스더를 불렀다.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 규를 그에게 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 규 끝을 만진지라(5:2).”
이를 오늘 본문에 들어가면서 “제 삼 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왕좌에 앉았다가(1).” 곧 ‘제 삼 일’ 동안 금식을 하고 난 뒤였다. 성경에서 종종 이 3일은 ‘소망의 날’로 언급되곤 한다. “너는 돌아가서 내 백성의 주권자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왕하 20:5).”와 같이,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호 6:2).”
이에, 에스더가 3일 후에 왕후의 예복을 입었다. 금식을 하는 동안 에스더가 모르드개처럼(4:1)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는 등의 모습을 하고 있었음을 짐작해본다. 이제 왕 앞에 나아가기 위해 에스더는 ‘왕후의 예복’을 입었을 뿐 아니라, 몰약이나 향품 등으로 자신의 몸을 정결케 하였다. “처녀마다 차례대로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기 전에 여자에 대하여 정한 규례대로 열두 달 동안을 행하되 여섯 달은 몰약 기름을 쓰고 여섯 달은 향품과 여자에게 쓰는 다른 물품을 써서 몸을 정결하게 하는 기한을 마치며(2:12).” 곧 왕 앞에 설 때에는 최대한 단장하고 귀금속으로 몸을 장식했다.
그리고 ‘왕궁 안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섰다.’ 왕궁 안뜰은 왕이 보좌에 앉아서 정무(政務)를 보는 방의 바깥 부분이다. 안뜰이란 실내가 아니라 노천 공간으로, 그 바닥에는 아름다운 여러 색깔의 돌들이 깔려있었다. “이 날이 지나매 왕이 또 도성 수산에 있는 귀천간의 백성을 위하여 왕궁 후원 뜰에서 칠 일 동안 잔치를 베풀새 백색, 녹색, 청색 휘장을 자색 가는 베 줄로 대리석 기둥 은고리에 매고 금과 은으로 만든 걸상을 화반석, 백석, 운모석, 흑석을 깐 땅에 진설하고(1 :5-6).” 에스더가 이 자리에 자의적으로 들어선 것 자체는 이미 규례를 어긴 것이다.
왕 앞에 나아갈 때는 반드시 왕의 부름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각오로 왕의 처분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하니라(4:11).” 이에 저들은 금식하고 주께 먼저 아뢰었다. 실상은 왕의 처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자신을 맡긴 것이다.
왕의 처소와 정무실(政務室)이 있는 어전은 문자적으로 ‘왕의 집’을 뜻한다. 구체적으로는 왕의 정무실을 가리킨다. 그런 가운데 왕의 시선이 먼저 에스더를 발견하였고,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왕좌에 앉았다가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곧 이와 같은 감동으로 저절로 그리 되듯이 “손에 잡았던 금 규를 그에게 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 규 끝을 만진지라.” 하는 오늘 말씀은 가히 신비롭고 황홀하기까지 하다. 것도 정무를 보느라, ‘보좌에 앉았다가’ 그리 시선이 간 것인데, 여기서 보좌는 왕좌를 가리키는 것일 테고, 왕의 정무실 안쪽 거의 가운데에 위치했을 것이고, 그 아래는 몇 계단밖에 안 되는 짧은 층계로 이루어져 있어, 사극에서 보면 왕은 다른 사람들보다는 높은 곳에 위치해서 앉는 것을 상상하게 된다.
이런 일을 어찌 우연이라 하겠나? 본문은 유다 백성의 구원을 위해 모르드개가 노력한 사실을 다룬 전장에 이어, 민족 구원을 위해 에스더가 목숨을 걸고 벌인 용기를 사실로 증거하고 있다. 즉 에스더는 허락 없이 왕의 정무실로 들어갔다부(1-4). (2)에스더가 하만의 음모를 폭로하기 위한 적절한 때를 기다린 사실을 우리는 성경의 독자들로 묵상하게 된다(5-8). 그리고 에스더의 초대를 받은 하만의 교만과 스스로 무덤을 파는 듯한 파멸의 만족함이 유쾌하기까지 하다(9-14).
에스더의 활약에 초점을 맞추어 볼 때, 유다 민족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에스더를 사용하셨는가를 우리는 놀라운 심정으로 묵상하게 된다. 앞서 모르드개가 민족의 구원을 위해 애쓰는 사실도 알았다. 모르드개의 활동은 간접적인 것이었음에도 분명하였다. 즉, 모르드개는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지만, 그의 사역은 에스더로 하여금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도록 하는 일이었다. 곧 직접적으로 자신이 무대에 등장하는 게 아니라 에스더로 하여금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도록 하고, 이에 응하도록, 모르드개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에스더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했지만, 그녀의 사역은 유다 백성들의 구원을 위한 직접적인 참여였다. 자칫 죽을 수도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즉, 그녀는 왕께 나아가 유대인을 죽음의 함정에 몰아넣은 하만의 음모를 폭로하여야 한다. 자신의 동족(同族)을 구출하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역할을 하여야 한다. 그냥 모른 체하고 있으면 왕후로서 에스더는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다. 결국 에스더는 모르드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저와 같이 기도하며 금식하고 왕에게 나아갔다. 이에,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4:15-16).”
그녀는 그 기도를 통하여 자신에게 담대한 마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또한 왕의 허락 없이 나아가는 자신에 대해 왕의 마음이 호의를 갖고 호감을 얻도록 해달라고 간구하였다. 그렇게 왕 앞에서 하만의 음모를 적나라하게 폭로할 수 있도록 지혜를 달라고 구하였다. 분명히 그렇게 기도했을 것이라 짐작이 간다. 이는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구하였던 기도를 연상하게 한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
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하는 성경의 가르침은 여러 성경의 인물들의 기도와 응답으로 증명이 된다. 궁극적으로는 유대인들이 하만의 음모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기를 에스더는 분명히 간구하였을 것이다. 에스더는 이러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이 이루실 놀라운 사역을 모르드개나 에스더가 감당할 것을 알고 계셨다. 다시 말해 에스더는 자신이 바로 이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위급한 상황에 빠졌을 때, 이를 위하여 자신을 왕비로 세워셨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도 왕의 부름 없이 왕 앞에 나가는 일이 심히 두려웠을 것이다. 그리하여 기도하였고 이를 모르드개와 합심으로 구하였던 것이다.
에스더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해야 한다는 각오의 신념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담대히 응하였다. 자신의 인간적 생각대로라면 그녀는 결코 왕에게 나아갈 수 없었다. 이는 말이 쉽지 두려운 일이다.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 가운데 그녀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여호와 하나님의 도구로 부르심을 받은 자로 이 일에 자신을 던졌다. 순종이란 이와 같이 무모하여서 안 믿는 마음으로는 도저히 말도 안 되고 비합리적인 결정이다. 곧 자신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여야 함으로 기도가 아니면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다.
기도는 결국 하나님과의 교제를 하는 통로다. 그녀는 만왕의 왕 여호와 하나님의 특사로 아하수에로 왕 앞에 서는 담대함을 결행한 것이다. 즉 이는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로 하나님의 뜻을 믿고 의지할 수 없다면 실행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확인한 사람만이 세상에서 이와 같이 담대할 수 있다. 이에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행 4:29-30).”
나의 형편에서 교회를 이뤄가는 일도 그렇고, 내 코가 석 자인데 남의 이야기를 듣고 저를 위해 주 앞에 아뢰어 기도할 때도 그렇다. 비가 와서 아파트 지하 주차장으로 해서 상가까지 천천히 산책을 하는 동안 아내가 무슨 말 끝에 우리의 노후 생활에 대해 언급했다. 돈벌이가 없는 가운데 모아둔 것도 없으면서 어쩌려는가? 하고 걱정을 하는데 나로서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니 다들 아등바등 사느라 여념이 없고, 퇴직을 한 손위처남도 어떻게든 있는 것 가지고 좀 더 모아야 할 일에 열심인데… 아내의 그런 말들에 그저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하는 찬송으로 이겨낼 수 있는 것일까?
우리들은 주어진 상황에서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삼손이 밤중까지 누워 있다가 그 밤중에 일어나 성 문짝들과 두 문설주와 문빗장을 빼어 가지고 그것을 모두 어깨에 메고 헤브론 앞산 꼭대기로 가니라(삿 16:4).” 대체 뭘 믿고 살 것인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우리의 용기는 어디서 나올까?
먼저는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 1:8).” 그리고 지혜는 더하기를,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 앞에 있나니 그가 그 사람의 모든 길을 평탄하게 하시느니라(잠 5:21).” 그러므로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사 26:7).” 이와 같은 말씀으로 의지가 가능한지?
또한 기도하는 사람은 세상 그 무엇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어서,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잠 31:30).” 그렇다면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 3:3-4).” 하여 주께 기도하면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어서,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 11:38).” 곧 우리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렇듯 에스더는 믿음의 모험을 감행했다(더 5:1-4). 이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신앙에는 결단해야 할 때가 온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마 10:32-33).” 더욱이 요즘 교회가 세상과 결탁하여 교세를 확장하려 하는 것이 얼마나 초라하고 한심한가?
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결과가 항상 낙관적인 형태로 나타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도 각오해야 한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7-18).”
어떤 상황에서든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그러니 믿고 맡길 것인지, 믿음은 믿음대로 나의 수고는 수고대로 혹시 몰라 하는 마음으로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것인지…! 우린 다만 아뢸 뿐이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그러할 때, ‘에스더의 지혜’와 ‘에스더의 때’를 기다림과 같이 우리도 주가 주시는 지혜와 시간으로 견딜 수 있다(5-8). 사실 참 어려운 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것이다. 아브라함도 그러했고, 모세도 그러했듯이 이게 참 인내와 영적인 여유를 가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모든 일은 다 때가 있어서,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잠 21:5).” 하여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27:12).”
오늘 하만의 교만처럼(9-14), 저절로 어떤 일이 이루어진다. 자주 묵상하고 돌아보게 되는 나의 신대원 시절도 그렇고 오늘 이 작은 교회를 이뤄가는 일에 있어서도 그렇고… 생각지도 못한 때에 하나님이 신대원 모든 학기의 등록금을 준비하여 채우셨고, 매달 교회를 이뤄가는 데서도 모자라거나 남지도 않게 딱, 적당하게… 주변 모든 상황과 여건과 돕는 손길들이 있었다. 때로는 더 어려운 일이 쉽게 풀리면서 일이 순조롭기도 하다.
곧 나의 지혜로는 하나님의 지혜를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도 교만한 행동으로 행여 주의 길을 그르칠까하여 주의한다. 또한 인위적으로 무얼 계획하거나 억지로 하려 하지 않으려 긴장한다. 하여 오늘도 시편으로 눈을 감고 아뢰기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위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로 옷 입으셨나이다
(시 104:1).
이에,
젊은 사자들은 그들의 먹이를 쫓아 부르짖으며
그들의 먹이를 하나님께 구하다가 해가 돋으면
물러가서 그들의 굴 속에 눕고
사람은 나와서 일하며 저녁까지 수고하는도다
(22-23).
그러므로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24).
이에,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리로다
(30-31).
하여,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나의 기도를 기쁘게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
(33-3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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