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드개를 매달려고 한 나무에 하만을 다니 왕의 노가 그치니라
더 7:10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사 여러 나라로부터 모으시고 우리가 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찬양하게 하소서
시 106:47
하만의 몰락은 하나님의 섭리(6:1-9) 가운데서 이루어졌다. 그의 몰락은 예견되었고(10-14), 오늘은 에스더가 하만의 음모를 폭로함으로(3:6, 5:14) 결국을 보여준다. 하만이 처형당하는 장면은 매우 극적이다. 에스더가 하만의 음모를 폭로하는 대목(1-7), 이에 왕의 진노가 하만을 나무에 달아 죽이는 대목(8-10)으로 오늘 본문은 나뉜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무자비하게 공격했던 아말렉,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신 25:18).” 저들을 멸망시키실 거였다.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출 17:15-16).”
이는 곧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나서 남은 자들을 그 성읍에서 멸절하리로다 하고 또 아말렉을 바라보며 예언하여 이르기를 아말렉은 민족들의 으뜸이나 그의 종말은 멸망에 이르리로다 하고(민 24:19-20).” 이와 같은 예언은 경고였고 반드시 실행될 것이었다. 성경이 우리에게 경고하시는 바, ‘화 있을진저’ 하시는 내용에 대해 우리는 두려운 마음으로 주의해야 한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사사를 통해 진멸하게 하셨고, “그 때에 모압 사람 약 만 명을 죽였으니 모두 장사요 모두 용사라 한 사람도 도망하지 못하였더라 그 날에 모압이 이스라엘 수하에 굴복하매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평온하였더라 에훗 후에는 아낫의 아들 삼갈이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삿 3:29-31).” 사울에게도 “사울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른 후에 사방에 있는 모든 대적 곧 모압과 암몬 자손과 에돔과 소바의 왕들과 블레셋 사람들을 쳤는데 향하는 곳마다 이겼고 용감하게 아말렉 사람들을 치고 이스라엘을 그 약탈하는 자들의 손에서 건졌더라(삼상 14:47-48).”
후에 다윗에게도 그 일을 행하게 하신 바,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올라가서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침노하였으니 그들은 옛적부터 술과 애굽 땅으로 지나가는 지방의 주민이라 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를 살려두지 아니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와 의복을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 아기스에게 이르매(삼상 27:8-9).” 이렇듯 그때마다 이들을 진멸하셨지만, 바벨론 포로 시대 이후까지 그들의 세력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렇게 본문에 나타나는 하만도 아말렉 족속의 후예로 기록되어 있다. “그 후에 아하수에로 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함께 있는 모든 대신 위에 두니(3:1).” 그런데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와 같은 하만을 아하수에로 왕을 통하여 오늘 이렇게 진멸하신다.
이렇듯 우리로 악에 대하여 ‘화 있을진저’, 이와 같은 경고의 말씀에 주목하게 한다. 그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군사력을 이용하여 아말렉을 완전히 진멸하는 일은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페르시아 왕의 허락에 의해 죽임을 당하도록 섭리하신 것이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만이 유대인들을 진멸하려는 시도를 알고 계셨고, 이를 결코 용납하실 수 없었다. 즉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악을 심판하심으로 만인으로 이를 알게 하신다.
이를 통해 우리의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와 결코 비교될 수 없음을 알리신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 그리하여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엡 3:8-9).”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는 확장하고, 이를 방해하는 대적들에게는 화가 있을진저, 하나님의 징벌은 지금도 움직이고 역사하신다. 그렇게 해서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전 15:24-26).” 이를 나는 이번에 설교원고를 작성하면서 새삼 우리의 죄악성과 그에 따른 경고, ‘화 있을진저’를 이사야의 설교에서 살필 수 있었다.
반드시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대적한 자들에 대하여는 심판이 따를 것이다. 뭐라 거침없이 풀어쓰기는 어려운데, 필리핀 사역 15년을 정리하고 귀국하게 하실 때, 하나님의 강권하심은 동생 목사로 하여금 엉뚱한 일로 모함을 당하게 하셨다. 아이와 아이엄마의 악의적인 고소와 촉법소년법이라는 다소 위악적인 처벌조항으로 심신을 어렵게 하셨다. 동생도 그렇고 십 수 년을 필리핀에서 사역에다 돌아와 이게 무슨 연고인가? 하고 억울한 누명으로 오랜 재판과 변론으로 지칠 정도였다.
그런 가운데 억울함은 뒤로 하고 하나님만 신뢰하게 하시더니 결국은 모든 일이 희한하다 싶을 정도로 얼토당토않게 정리를 하셨다. 상대는 결국 돈으로 합의를 치렀고, 그 돈 역시 전혀 예상치 못한 손길에서 저들 또한 하나님의 섭리로 풀려나듯 자신들을 돌아보게 하시는 역사로 이루어졌다. 우린 그럴 때면 확신하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분명히 선을 이루시는 데 있어 모든 것이 합력하게 하신다. 또 하나는 그 증거를 보이심인데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어렵게 한 경우 이를 징벌하신다는 것이다. 누구와의 대화에서 동생 일은 어찌 됐는가? 하고 설명할 때면 저절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란… 하고 서로 놀라워한다.
결국 오늘 우리 사회의 모든 현상도 그러하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마 24:5-6).” 하신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처럼, 오늘 날 이런저런 상황 속에서 ‘정교분리’의 원칙을 종교개혁의 기치로 시작한 개신교가 요즘 다시 이 문제로 휘말리는 것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4).” 하심에서 이에 명심해야 할 두 가지 있다. 먼저는 미혹 받지 말아야 한다.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10-12).” 정말이지 요즘은 부쩍 이단 종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 같다. ‘어머니 하나님’을 운운하며 다가오는 ‘하나님의 교회’ 쪽 사람들도 있고, 무슨 듣도 보도 못한 종파인지 무슨 교리를 운운하며 가던 길을 따라오는 이도 있다.
하여 다음으로는 우리의 기독교가 자칫 그릇된 죄악의 실태로 휘말리는 것에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이사야는 설교하길,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사 56:10).” 할 때, 여기서 ‘맹인’은 신체적인 장애를 비하하는 게 아니라,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며 망대를 지키는 파수꾼으로 오늘 날 우리 기독교의 무책임의 문제를 조명하게 한다.
하여 정리하기를, ‘맹인 된 파수꾼’의 네 가지 죄악성이다. 이에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사 56:10).” 하시는데 여기서 ‘네 가지의 죄악’을 찾을 수 있었다.
첫째, 무지: 저들의 무지함으로 분간하지 못한다.
둘째, 망상: 저들은 꿈꾸는 자들로 자아도취에 빠져서 안일하다.
셋째, 나태: 저들은 누워 있는 자로 무력하다.
넷째, 게으름: 저들은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로 게으르다.
이런 자들이 높은 망대에 올라 적을 살피고 사방을 주시한다고 하는 게 오늘 우리 교회 현실이지 싶다. 곧 ‘무지’와 ‘망상’과 ‘나태’와 ‘게으름’은 ‘맹인 된 파수꾼’들로 우리 믿는 자들이 빠진 죄악성이다. 교회를 다닌다면서 죄에 무지하고, 헛된 망상에 사로잡히고, 영적으로 나태하며, 그 영혼이 게으르다. 또한 ‘몰지각한 목자들’의 네 가지 죄악성을 찾을 수 있는데,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사 56:11).”
첫째, 탐욕: 족한 줄을 모른다.
둘째, 자만: 그런 자의 직분이 목자들이다.
셋째, 완고함: 제 길로 가는 자들이다.
넷째, 이기심: 자신의 이익만 구한다.
여기서 ‘몰지각(沒知覺)’이라 하면 무식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몰(沒)은 ‘빠질 몰, 어두울 몰’로, 어디에 빠져 지각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영적으로 어두워졌다는 의미다. 이를 ‘깨달아 인식하거나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 원인은 ‘탐욕’ 때문이다. 저들을 ‘개 같다’고 성경은 확언한다.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네 가지 죄악성’을 드러낸다.
곧 ‘탐욕, 자만, 고집(완고함), 이기심’으로 ‘맹인 된 파수꾼’과 같이 ‘이 개들 같은 목자들’은 군중에 의해 쓸려 다닌다. 정치가 그러하고 종교가들이 그러하다. 안개 같이 사람들의 표와 인지도에 휘둘린다.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느라 정작 성경의 참 진리를 훼손한다. 사람들의 인지도에 연연하는 것이다. 전 세계가 이제 그것으로 돈벌이가 된다. 사람들의 이목이 곧 돈이다. 남을 선동하여 ‘앵벌이’하듯 돈을 좇는다. 문제는 저들이 사회 지도층이 되고 교회에서는 ‘목자들’로, 오늘 ‘이 개들’이 이끄는 사회와 교회가 결탁하여 혼탁하다.
이들은 ‘맹인’처럼 더듬으며 ‘탐욕’으로 자신들의 신념을 정치, 종교, 진영논리로 끌어간다. 그러면서 군중을 획책하길,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마시자 내일도 오늘 같이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12).” 하며 모두가 ‘전에는 맞았고 지금은 틀리다’며 공격한다. 자기들이 그때 하던 짓을 잊은 채 오늘은 상대를 공격하며 자신들이 이로운 대로 옳다고 떠들어댄다. 이에 이사야는 앞서서 5장에 다음과 같이 ‘화 있을진저’ 하고 경고한 바 있다.
<여섯 가지의 ‘화 있을진저’>
첫째, 탐욕: 욕심에 욕심을 더함으로 부자가 되려는 자들은 화있다.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5:8).” 둘째, 쾌락: 술에 취해 맨 정신으로는 살 수 없는 자들에게 화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11).” 셋째, 거짓: 거짓으로 거짓을 더하는 자들에게 화있다.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 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진저(18).”
넷째, 혼재: 악과 선을 뒤섞는 자들에게 화있다.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20).” 다섯째, 자만: 스스로 옳다 여기는 자들에게 화있다.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21).” 여섯째, 무책임: 더욱 더 자극적인 쾌락으로 즐기는 자들에게 화있다.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잘 빚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22).”
하여 이사야는 ‘파수꾼으로서 맹인 된 자들’이 ‘목자들이면서 탐욕이 가득한 자들’로 이 땅을 지배하는 것을 주의하게 한다. 그렇듯 이제 우리와 같이 ‘이방인’과 ‘고자’들을 부르신다. 마치 처음 초대했던 이들이 하나 같이 거절하였고,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눅 14:18).” 저마다의 사연으로 그러하자,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23).” 하여 ‘이방인’이나 ‘고자’나 주가 인정하시고 다스리심으로 잔치자리를 채우고 즐거움으로 책임지신다.
오늘 본문은 하만의 음모을 공개하고(1-7), 그의 아내와 친구들이 하만의 몰락을 예견한 후(6:13) 곧이어 발생한 사건으로 에스더가 베푼 첫 번째 잔치(5:5-8)와 달리 왕에게 하만의 음모를 폭로한다. 에스더가 잔치에서 하만의 음모를 폭로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폭로가 왕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만큼 이제 저의 실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아하수에로 왕은 에스더가 그녀 자신의 소청을 말하기를 거듭 연기하자, 그녀의 소청이 무엇이든 반드시 들어주겠다는 확답하고 또 확답하였다.
“왕이 이 둘째 날 잔치에 술을 마실 때에 다시 에스더에게 물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냐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냐 곧 나라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시행하겠노라(더 7:2).”
그런 가운데 에스더는 자신이 하만의 음모를 폭로할 경우 왕이 반드시 자신의 말을 믿고 들어줄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녀는 더 이상 하만의 음모를 뒤로 미룰 이유가 없었다. 하만은 자신의 몰락을 예감하였으나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돼서 결국 하만은 처형되었다(8-10).
그러므로 말씀은 이르시길,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 그러므로 지혜는 이르신다.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들이 있나니 그것들이 사람에게 무슨 유익이 있으랴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를 누가 알며 그 후에 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전 6:11-12).”
그렇듯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합당하시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벧후 3:7).” 하여 시인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시 2:11-12).
그러므로 우리는 찬송한다.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누가 능히 여호와의 권능을 다 말하며
주께서 받으실 찬양을 다 선포하랴
(106:1-2).
곧
정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공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3).
이는
여호와여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로
나를 기억하시며 주의 구원으로 나를 돌보사
내가 주의 택하신 자가 형통함을 보고
주의 나라의 기쁨을 나누어 가지게 하사
주의 유산을 자랑하게 하소서
(4-5).
하여,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사 여러 나라로부터 모으시고
우리가 주의 거룩하신 이름을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찬양하게 하소서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할지어다
모든 백성들아 아멘 할지어다
할렐루야
(47-4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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