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의 종은 즐거워하리이다

하현. 2025. 9. 29. 17:52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더 10:3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그들은 내게 저주하여도 주는 내게 복을 주소서 그들은 일어날 때에 수치를 당할지라도 주의 종은 즐거워하리이다

시 109:4, 28

 

 

하나님을 의뢰하고 말씀을 중심에 두고 사는 자의 결말은 복되다. 오늘 본문은 그야말로 긴 말이 필요 없다는 듯 딱, 세 구절로 정리가 된 셈이다.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왕들이 식민지로부터 세금을 받는 일은 흔하였다. 본문은 이를 강조하며 아하수에로 왕이 세금을 징수하고 이와 관련하여 대규모 개편 작업을 하였다는 내용을 진술하고 있다. “아하수에로 왕이 그의 본토와 바다 섬들로 하여금 조공을 바치게 하였더라(1).”

 

이는 선대(先代) 왕들이 이루어 놓은 세금 제도를 아하수에로가 다스렸던 시대에 맞게 개편하였다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했던 것은 그리스와의 전쟁을 통해서 영토 일부를 상실했다. 또 그 밖의 나라와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했다. 따라서 아하수에로 왕은 영토의 변화에 따라 그에 맞는 세금 징수 체계를 갖추어야만 했다.

 

역사적으로 그러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인데, 여기에 언급하는 것은 주로 노동력을 동원하고, 강제 노역과 농노 제도를 개편하였다는 의미다. 조공은 후기에 들어 세금을 뜻하며, 왕에게 돌아갈 소득이나 돈은 인두세를 가리킨다.

 

곧 ‘그 본토와 바다 섬들로’ 본토는 인도에서부터 구스에 이르는 ‘일백이십칠 도’를 가리킬 것이다(1:1). 바다는 섬과 해안 지역 그리고 무역과 군사 활동을 위한 해상로 등을 모두 포함한다. 또한 섬은 지중해의 여러 섬들 중 크레타 섬의 동쪽에 있는 섬들을 가리킨다. 해안 지역은 주로 팔레스타인의 지중해 연안, 즉 페니키아 사람들이 살던 시돈과 두로 지역을 가리킨다. 이러한 본 절은 페르시아 제국의 광대함을 암시하려는 의도이다. 곧 아하수에로 왕이 에스더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 곧 유다인을 구하고 모르드개에게 전권을 넘김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 따른 결과라 하였다.

 

이에 왕의 능력의 모든 행적을 설명하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왕의 능력 있는 모든 행적과 모르드개를 높여 존귀하게 한 사적이 메대와 바사 왕들의 일기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2).” 곧 아하수에로 왕은 그리스와의 살라미 전투에서 패배한 주전 479년 후부터 헤로도투스의 역사 기록에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행적 중 그 이후의 것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헤로도투스의 역사 기록 마지막 부분에 나타나 있는 페르시아 사람들이 비옥한 땅을 일구며 타국에 예속해서 사느니 척박한 땅에 살며 다른 민족을 지배하는 길을 택하기로 했었다.

 

이는 아하수에로 왕은 그리스와의 전쟁을 삼가고 오직 그 밖의 지역에 대한 정복을 펼쳤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기에 비록 그가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패배하기는 했지만, 그는 당대의 가장 강력한 군주였음이 너무도 분명하다. 또한 모르드개를 높여 존귀케 한 사적은 문자적으로 왕이 존귀케 한 모르드개의 위대함에 대한 분명한 설명이다. 따라서 왕의 위대함을 강조한 것은 바로 이, 모르드개의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한 전제가 된다.

 

일개 유다인으로 포로였던 모르드개가 이 위대한 페르시아 제국의 제 2인자가 된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왕이 하만에게서 거둔 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준지라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하만의 집을 관리하게 하니라(8:2).” 곧 이같이 모르드개를 존귀케 하심으로 유대인들이 존귀케 되었음을 가리킨다.

 

여기서 사적은 해석하다는 것으로 자세한 설명, 분명한 진술을 가리킨다. 이에 ‘메대와 바사 열왕의 일기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하는 것은 그만큼 이 사실은 확실한 역사적 고증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 같은 언급은 다른 역사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앞에 기록된 내용이 정확한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었다. 그런데 여기의 ‘메대와 바사 열왕의 일기’는 모르드개가 역모자들의 음모를 고발했던 사실이 기록됐던 ‘궁중 일기’와는 전혀 다른 것인 듯하다. “조사하여 실증을 얻었으므로 두 사람을 나무에 달고 그 일을 왕 앞에서 궁중 일기에 기록하니라(2:23).”

 

이 궁중 일기에 왕실내의 문제들이 기록되었다고 한다면, 여기의 ‘메대와 바사 열왕의 일기’에는 보다 더 공적인 내용으로 보다 중대한 사실이 실려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르드개에 관한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유다인들 곧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바로 이 메대와 바사 열왕의 일기에 기록됐다는 것은, 그와 유대인들에게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페르시아 열왕의 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메대와 바사 열왕의 일기’라고 한 것은 페르시아가 메대의 역사적 전통을 계승하는 등 두 나라가 갖고 있는 긴밀한 관계 때문이다. “왕위에 있은 지 제삼년에 그의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 바사와 메대의 장수와 각 지방의 귀족과 지방관들이 다 왕 앞에 있는지라(1:3).” 그리하여 모르드개의 일이 ‘메대와 바사 열왕의 일기’에 기록될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말하고 있다.

 

즉 모르드개가 당시 페르시아의 패권을 가진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었음을 입증하는 것으로 여기서 다음은 문자적으로는 ‘두 번째’를 의미하고, 구체적으로는 모르드개가 ‘총리대신’으로 그 사역을 감당했음을 알게 한다. 곧 그러한 직위에 올랐음은 매우 놀랍고 위대한 일로 요셉이 애굽의 바로 다음의 총리에 오른 것과도 같다. 모르드개가 바로 이러한 직위에 올랐던 것에 대한 증거는 그가 왕의 허락 없이도 자유로이 왕에게 나아갈 수 있던 사실로 입증된다. “그 날 아하수에로 왕이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집을 왕후 에스더에게 주니라 에스더가 모르드개는 자기에게 어떻게 관계됨을 왕께 아뢰었으므로 모르드개가 왕 앞에 나오니(8:1).”

 

또한 그가 제 2인자였던 하만이 갖고 있던 왕의 반지를 받았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왕이 하만에게서 거둔 반지를 빼어 모르드개에게 준지라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하만의 집을 관리하게 하니라(2).” 곧 그가 왕만이 입을 수 있던 제왕색(帝王色)의 옷을 입었던 사실도 그것을 입증한다. “모르드개가 푸르고 흰 조복을 입고 큰 금관을 쓰고 자색 가는 베 겉옷을 입고 왕 앞에서 나오니 수산 성이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고(15).” 그렇게 “유다인 중에 존대하여” 모르드개를 높였다.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10:3).”

 

이를 ‘존대하였다’는 것은 위대하게, 크게 된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표현은 그가 유대인들로부터 존귀한 인물로 인정되었음을 말한다. 곧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즉 ‘허다한’은 모든 헤아릴 수 없는 동족 유대인들로부터 그리 사랑을 받았음이다. 그리하여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하는 데서 참 귀하고 놀라운 마음이 든다. 저는 포로로 끌려와 일개 문지기로 일하던 하위직이다. 그러던 그가 왕 다음의 인물에 올라 ‘그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여’ 일하는 자가 되었다.

 

이는 저의 에스더의 순종에 따른 결과라 할 수 있고, 그와 같은 순종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순응하는 것으로 응종에 따른 결과이다. 응종(應從)은 ‘응할 응’에 ‘좇을 종’이다. 실은 자신의 뜻에 맞지 않고 다소 머뭇거리게 되는 점이 있더라도, 즉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더라도 대의를 위해 곧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압도되어 순응함을 뜻한다. 그렇다면 순응(順應)도 그 의미가 새로우면서 같다. ‘내 천(川)’에 ‘머리 혈(頁)’자를 붙인 ‘순할 순(順)’은 마음이 시켜서가 아니라 머리가 시켜서 이를 따른다는 의미로 보인다.

 

즉 우린 흔히 마음의 원하는 대로 해, 하는 따위로 서로 격려하는데 성경적으로는 그 반대로 마음은 내키지 않더라도 머리로 아는, 익히 배운 바 말씀을 따라 그리 ‘응할 응(應)’이다. 응은 ‘좇을 종(從)’으로 ‘조금씩 걸을 척(彳)’이 붙어서 응함 곧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해도 말씀이 원하시는 바, 그에 따라 머리로 이를 ‘조금씩 따라가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서 순응(順應)은 두신 바 그 형편과 사정이 어떠하든지, 설령 마음이 원하지 않는 것이라 해도 말씀이 원하시면… 우리 주님이 보여주신 것처럼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마 7:21).” 하심과 같이,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마 12:50).”

 

하시고,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눅 10:21).”

 

하여 결정적으로 십자가를 지심도,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눅 22:42).”

 

하여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갈 1:4).” 순응(順應)이란 응종(應從)을 더하였을 때 순종(順從)이 되는 것이다. 하여 “이는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그들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그들의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라(계 17:17).”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내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띠를 사서 내 허리에 띠니라(렘 13:2).” 하는 것으로,

 

여호와여 나의 부르짖음이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나의 간구가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건지소서

(시 105:19, 119:169-170).

 

하는 기도가 저절로 나오게 하신다.

 

오늘 모르드개의 영화가 단지 개인의 이야기로 그치는 게 아니고, 그렇다고 당시 이스라엘의 역사로 그치는 것도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도 동일하다는 것을 묵상한다. 누구의 결혼과 그에 따른 일정을 듣고 저들의 삶이 부럽지 않은 것은 우리가 주를 경외하는 데 있어 세상이 알 수 없는 영원한 복락에 대해 확신하기 때문이다. 즉 내년 이맘쯤 딸애가 결혼을 하지 않을까 싶은데, 우리의 제 1관점은 하나님을 경외함이다. 믿음의 가정으로 더욱 온 가족이 믿고, 그 아이 또한 신앙으로 사는 것으로 우리는 됐다. 누구처럼 1억이 넘는 호화예식이 무슨 의미이겠나? 서울 어디 몇 십 억대의 아파트가 또 무슨 복이겠나?

 

결국은 주가 하신다. 오늘 이 짧은 세 구절이 함축하는 의미도 그러하다. 오늘 마침 딸애가 연차를 내고 쉬면서 같이 산책을 하고 차를 한 잔 하면서 돌아오는 금요일에 그 아이가 인사를 오는데, 나는 같이 전도서 7장 말씀을 나누겠다고 말하였다. 곧 나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과 다르다 해도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13).” 우리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이 주의 것임으로,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14).” 이는 인생에 대한 성경의 이치다.

 

이를 야고보 사도는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약 5:13).” 이로써 우리가 할 일은 순응(順應)이고 응종(應從)으로 순종(順從)하면 복이다. 이에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고전 14:15).” 곧 나의 기도와 찬송까지도 주께 맡김으로,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의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

(시 42:8, 66:20).

 

이와 같은 고백으로 남은 생을 ‘한 걸음씩 걸을 척(彳)’에 응종이 순응이 되고, 순응이 순종이 되는 것으로…

 

그들이 생존하여 스바의 금을

그에게 드리며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항상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리로다

(72:15).

 

하여 오늘도,

 

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

(109:1)

 

하고 주께 아뢸 따름이다. 나의 어떤 마음, 그것으로 서글프든지 억울하든지 분하든지 주께 아룀으로 주가 들으신다. 누가 기도 부탁으로 새벽께 문자를 남겼다. 이런저런 사연을 두고 주께 아뢰고, 그리하여 나는 기도할 뿐이고 고하여 아뢸 따름이라….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4).

 

세상이 그렇다 해도,

 

그러나 주 여호와여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를 선대하소서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나를 건지소서

(21).

 

아니면 내가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한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여

나의 중심이 상함이니이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구원하소서

(22, 26).

 

그렇게 하심으로,

 

이것이 주의 손이 하신 일인 줄을

그들이 알게 하소서

주 여호와께서 이를 행하셨나이다

(27).

 

그러므로

 

내가 입으로 여호와께 크게 감사하며

많은 사람 중에서 찬송하리니

그가 궁핍한 자의 오른쪽에 서사

그의 영혼을 심판하려 하는 자들에게서

구원하실 것임이로다

(30-31).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