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욥 7:17-18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시 116:1-2
너무 괴로울 때는 긍휼하심도 자비도 은총도 모두 떠나고, 모든 게 그만 이루어지길 바라게 된다. 오늘 욥의 외침이 그리 느껴진다. 살고자 하는 마음보다 죽기를 바라는 마음이어서,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지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 것이니이다(16).” 이는 지극히 비극적이고 끔찍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하게 되는 것이 ‘내 날’이다. 나의 날, 나에게 주어지고 허락된 날들을 두고 하는 소리다. 그렇게,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17-18).”
말씀 앞에 앉아 더러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오늘이 너무 어렵고 힘들기도 하다. 할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내가 생명이 있는 땅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시 116:8-9).
그런 가운데서 주를 바라게 하심을. 앞서 욥은 인생의 고달픔과 자신의 인생에는 더 이상 소망 없음에 대해 탄식하였다. 오늘에 던져진 고통을 안고 인생의 허망함을 징집되어 전쟁을 치르는 군사의 형편과 비교한다. 낮의 힘겨운 노동에 지쳐 날이 저물기만을 바라는 종의 형편으로도 비유한다. 품삯을 받을 때만을 기다리는 품꾼의 형편을 빗대어도 토로한다. “이 땅에 사는 인생에게 힘든 노동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그의 날이 품꾼의 날과 같지 아니하겠느냐 종은 저녁 그늘을 몹시 바라고 품꾼은 그의 삯을 기다리나니(1-2)” 아,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고통을 받으니 고달픈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3).”
하여 이러한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에 대해 하소연하는 것이다. 실제 이 육체의 악창으로부터 오는 고통에서 인생의 덧없음과 소망 없음을 탄식하는 것이다(3-6). 내가 감히 나의 인생으로 이러한 심정을 이해한다고 말하기에는 면구스럽다. 날 때부터 기형적으로 태어나 결국은 그 부모가 어느 보육원 앞에 버리고, 그렇게 여러 곳을 돌면서 성인이 되었으나 혐오스러운 외모와 장애와 어눌한 말과 지적장애로 힘에 겨워 한탄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 또 어느 부모는 그러한 자식을 낳고 주 앞에 엎드리며 일생을 그 아이 하나 돌보는 것으로 생의 작정에 순응하듯 밤마다 교회로 올라와 눈물로 지새기를 어느덧 십 수 년을 그리한다.
당장 내 곁에 이처럼 자신이 직접 고아 아닌 고아로 혼자 생을 짊어지고 사는 친구가 있고, 그러한 아이를 낳아서 십 수 년째 아이를 돌보면서 자신의 모든 생을 다하는 부모도 있다. 그들 앞에서면 나는 늘 과분하여서 감사가 저절로 나온다. 어쩌면 나의 지독했던 사춘기 시절 나로 하여금 나환자촌에서 목회하는 부친의 사역으로 곁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으로 견딜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사자들인 한센병자 부모나 그러한 부모를 두고 사는 내 또래의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 앞에서 차마 나의 고달픔은 오히려 과분하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욥의 탄식을 보면서 자신의 처지에 대한 친구들의 몰이해로 더욱 고통당하는 것을 이해한다. 내 곁의 사람들이나 나의 경우로도 더러는 위로가 폭력처럼 가해질 때도 있었다. 나름은 옳은 말들이 슬픔을 가중시키고 고통을 더하기도 하는 것이라, 나는 말 없이 우는 것을 배웠다. 저가 울 때 가만히 같이 있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배우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해 원망의 토로와 고난으로 인한 불평을 할 수 있다. 그래도 된다. 사람 앞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는 괜찮다.
그렇게 예배당 자리마다 각자의 휴지가 놓여서 할 말 못 할 말 하나님 앞으로 퍼붓듯이 쏟아내다, 울고불고 할 수 있어서 살았다. 그렇게 어느 집사 내외의 삶을 나는 가끔씩 전해 듣다 눈물이 핑, 돈다. 아이의 수명이 이십대 초중반이라 하는데, 특히 남 집사님은 장래가 촉망되던 자신의 생을 접고 주신 바, 아이를 건사하는 일로 오늘까지 살았는데 만약에 아이가 먼저 떠나면 어찌 살까? 늘 마음에 각오는 하고, 한 달에 두세 차례 응급실로 달려가기를 수 십 년째인데…. 누군 또 그러한 자신의 육신을 건사하는 것으로 주가 주신 과업을 이행하며 산다! 삶을 사느라 사는 것으로 저들은 사역을 감당하는 일이다.
오늘 욥의 한탄을 그러한 심정으로 듣는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이를 알고 주를 찾고 영광을 주 앞에 돌리는 일, 어제는 날씨 탓으로 오전 내내 몸이 아파서 예배 끝나고 병원에 들러 진통제를 맞았다. 그래도 아직은 진통제를 맞고 나면 좀 나아지는 것이라, 그것으로도 충분하였다. 추석 명절 앞날이나 부모님이 집으로 오시고, 같이 산책을 나가 아파트 어디 조용한 야외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여서 그 정도로도 과분하였다. 감히 내가 어찌 고통을 두고 뭐라 투덜거릴 입장인가? 나보다 더한 이들을 생각하면 그저 오늘도 감사뿐이라,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셀라)
(시 39:5)
사람, 참 가소롭고 한순간이다. 늙으신 부모와 마주 보고 앉아 딸애 결혼에 대한 이야기나 그간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다들 이제 여든을 훌쩍 넘기고 아흔을 내다보는 연세를 생각하면, 하나님이 주신 이 몸으로 여기까지 사는 일 자체로 경이롭다. 그러므로 나는 이를 묵상할 때면 바울의 신앙고백 앞에서 저절로 감사와 영광을 올리게 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저녁 시간에 교회로 올라와 자고, 새벽 일찍 저절로 눈을 뜨고 말씀 앞에 나를 앉히면서 내게 주신 은혜로 감격스럽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시 127:2).
어제도 저녁 여덟 시도 안 돼 잠들었다가 누가 전화를 해서 잠결에 뭐라 대꾸하다 도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이른 새벽, 주가 나를 깨우심으로 낮이면 낮 동안에, 새벽이면 새벽 시간에… 나는 말씀을 묵상하고 이를 글로 쓰며 나의 삶으로 가져다가 주변의 사연들로 연관 지어 실질적인 삶으로 적용할 수 있어 감사하다. 뻑뻑한 눈을 슴벅거리면서도, 늙으면 늙어서 늙은 몸으로 생을 다하는… 그리하여 부친은 전립선문제로 밤에 대여섯 번을 자다 깨다 고역이다. 몸이 약하고 입이 짧은 모친은 기력이 없어서 힘들고, 아흔 살 장모는 가누지 못하는 몸으로 며칠 전 주저앉아 엉덩이가 아프다고 하여 추석 명절 후에 종합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다들 주어진 생을 사느라 사는 게 곧 사역이었다.
“이는 내가 그 피곤한 심령을 상쾌하게 하며 모든 연약한 심령을 만족하게 하였음이라 하시기로 내가 깨어 보니 내 잠이 달았더라(렘 31:25-26).”
그러므로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만으로도 축복인 것을. 세상에서 다들 기를 쓰고 악랄하게 돈을 추구하고 명예와 권세를 위해서면 그 어떤 거짓도 불사하며 사는 게 인생이라지만… 참으로 부질없다. 스스로의 영화를 꾀는 것처럼 어리석은 인생도 없다. 성경은 일러 ‘자랑하지 말라’고 하신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렘 9:23).” 그 모든 게 지극히 한 때의 몽상과 같아서,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
그런 가운데도 보면 세상의 공통점은 반성이 없다. 용서와 사과를 할 줄 모른다. 당연히 회개가 안 되는 게 지옥인들의 특징이다. 이를 근거로 지옥을 생각하면 서로가 저마다 억울함을 호소하느라 아우성일 것 같다. 그런 가운데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사 40:7-8).” 하면,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 1:24-25).” 나는 오늘도 무엇으로 사는가? 이른 새벽에 잠은 달아나고 뒤척거리다 여느 때보다 일찍 말씀 앞에 앉아 자주 고개를 숙인다.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 90:4, 6, 9-10).
모처럼 명절을 앞두고 부모님과 오후를 같이 보낸 뒤 자리를 봐드리고 나는 교회로 왔다. 고요한 교회의 정적 속에서 나는 늙음을 생각하고 우리 육신의 유한함을 절감하였다. 누구의 사연을 듣고, 생각하다 깊은 한숨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다… 우리에게 맡기신 일이란, 인생으로 사는 동안에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 4:5-6).”
다들 저마다의 맡기신 생을 다하는 것으로 욥은 욥의 고난으로 오늘도 교훈이 된다. 저는 말하길,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내가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사람을 감찰하시는 이여 내가 범죄하였던들 주께 무슨 해가 되오리이까 어찌하여 나를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셔서 내게 무거운 짐이 되게 하셨나이까(19-20).” 오늘의 고통이 극심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따지고 묻고, 한탄하고 원망하다 주의 크신 은혜로 지금의 모든 생을 사랑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모두가 죽으나 죽음으로 사는 이가 있고 삶으로 죽는 이도 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어서 말씀하시길,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24).” 아, 이 옮겨짐의 과정이 생의 한복판에서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욥 7:18).” 하여 우리는 건짐 바 됨이니,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시 40:2).
이를 위하여 “형제들아 우리가 …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 1:8-9).” 나는 종종 나의 고통 덕분에 주께 기도한다. 병원으로 가고 오는 길, 대기하여 기다리는 동안에도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우리 주님의 긍휼하심은 위대하심을,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사 42:2-4).” 이 놀라운 은혜로 산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시 116:1-2).
기도의 맛은 들으심이다. 주가 들으심으로 나는 더러 어린아이처럼 꺼이꺼이 울며 떼쓰듯 고한다. 그러할 때,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6-7).
이는,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14).
그리하여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을
그의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가 지키리로다
예루살렘아, 네 한가운데에서 곧
여호와의 성전 뜰에서 지키리로다
할렐루야
(17-1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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