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고 계략과 명철도 그에게 속하였나니 그가 헐으신즉 다시 세울 수 없고 사람을 가두신즉 놓아주지 못하느니라
욥 12:13-14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시 121:5-6
주 앞에서 바로 서고 온전하게 자라간다는 일은 ‘오직’ 주를 인정하는 데서이다. ‘오직’ 말씀으로 붙들려, ‘오직’ 기도와 함께 단단하여진다. ‘오직’은 여러 가지 가운데 단 하나, 다만 그러한 것이어야 한다. 내 안의 사람으로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 3:4).” 이로써 말씀을 바로 붙들고 서는 일이란,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 1:21).”
하여 나로 새벽에 깨우시고 이처럼 말씀 앞에 앉히심으로 누구를 생각하고, 어떤 일을 두고 마음을 다잡아 주 앞에 아뢴다. 늘 지고 가야 하는 육신의 연약함이나 마음의 무게도 궁극적으로는 그것으로 주를 더욱 바라게 한다. 아이가 쓴 묵상글을 읽고 우리의 삶의 계획이 얼마나 허망한지를, 일찍이 깨달아 주의 뜻에 온전하기를 기도하였다.
오늘은 욥의 변론을 듣는다. 저의 세 친구들의 언사가 강해질수록 욥의 간절함은 오직 하나님께로 집중하게 되는 것을 느낀다. 어제는 나아마 사람 소발의 지적을 들었다. 이에 대한 욥의 단호함이 서두에서 강하게 드러난다. “나도 너희 같이 생각이 있어 너희만 못하지 아니하니 그 같은 일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하나님께 불러 아뢰어 들으심을 입은 내가 이웃에게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의롭고 온전한 자가 조롱거리가 되었구나(욥 12:3-4).” 이는 오늘도 확연하게 드러나는 현실이다.
곧 “하나님께 불러 아뢰어 들으심을 입은 내가 이웃에게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이를 이사야는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진실한 이들이 거두어 감을 당할지라도 깨닫는 자가 없도다 의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서 불리어가도다(사 57:1).” 돌아보면 함께 어울리던 이들이 아직 거기에 있다. 가끔 통화라도 하게 되면 여전한 자리에서 늘 같은 일로 사는 게 지옥이다. 강남에 사는 아무개는 늘 돈돈거리고, 어느 친구는 뜬금없이 술자리에서 전화를 하곤 한다.
이러할 때에 의인이 되어, “그들은 평안에 들어갔나니 바른 길로 가는 자들은 그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리라(2).” 하는 이사야의 다음 시선이 오늘의 내 모습을 감사하게 한다. 하여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벧후 3:18).” 오늘에 이르러는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인지,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요일 4:1).”
저마다의 이상과 목표가 있을 테지만 “너희는 스스로 삼가 우리가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받으라(요이 1:8).” 이러한 말씀의 방향과 그 뜻을 살피는 일에 전념하는 것, 오늘 욥의 대답에서 소발의 공격적인 언사로 오히려 자신이 하나님께 향한 확신과 그 뚜렷한 믿음이 어떠한지를 보여준다. “땅에게 말하라 네게 가르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욥 12:8).” 사람들은 한사코 외면하여 자신들의 이상과 꿈을 좇는 시대에 나무와 새와 고기들이 하나님의 일을 안다. “이것들 중에 어느 것이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신 줄을 알지 못하랴(9).”
그렇듯 “모든 생물의 생명과 모든 사람의 육신의 목숨이 다 그의 손에 있느니라(10).” 이 단순명료한 진리를 외면하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오늘 우리 사회는 물론 미국도 전 세계도 마치 정해진 길을 가듯 점점 더 악으로 치닫는 듯하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아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점검하게 한다. 앞서 소발은 욥이 ‘들나귀와 같이 지각이 없어 하나님에 대해 바르게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향해 원망한다’고 책망하였다. 그러면서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겸손하게 회개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에 대한 답이 오늘 본문이다. 욥은 자신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만큼은 가지고 있다고 항변하였다.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만 참으로 백성이로구나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죽겠구나 나도 너희 같이 생각이 있어 너희만 못하지 아니하니 그같은 일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1-3).” 이어서 욥은 친구들의 독설에 비관하고, 자신이 아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전한다(7-25).
우리는 더러 남을 속단하고 비난하는 일에 거침이 없다. 하여 지혜는 하나님이 이 일을 보시고,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영달함은 수치가 되느니라(잠 3:34-35).” 바울은 우리의 겸손을 누누이 강조하였다.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롬 12:16).” 그런 거 보면 저마다의 이상이 현실을 허비하게 한다. 주신 상황에서 보지 못할 저 너머의 일을 놓고 씨름하다 해가 저무는 꼴이다.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고전 8:2-3).”
그러므로 내가 바라는 한 가지 일,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
그리하여 나는 새벽을 깨운다. 여기저기 이 사람 저 사람과 어울리기를 포기하면서 말씀으로 나를 이끈다. 이는 이상한 일이 아니어서 주방장은 식재료를 가지고 요리하며 하루를 보내고, 운전사는 핸들 위에서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운동선수는 운동장에서 아침과 저녁을 맞이하는 일과 같다. 목사로서 이 시간 말씀 앞에 앉은 것은 당연하다. 다들 저마다의 삶의 가치를 놓고 씨름하는 것이 현실일 텐데, 우린 지금 무엇으로 살고 있는지? “이것들 중에 어느 것이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신 줄을 알지 못하랴 모든 생물의 생명과 모든 사람의 육신의 목숨이 다 그의 손에 있느니라(9-10).” 하여 오늘의 나는 내 것일 수 있겠나? 오늘의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고 계략과 명철도 그에게 속하였나니, 그가 헐으신즉 다시 세울 수 없고 사람을 가두신즉 놓아주지 못하느니라(13-14).”
오직 주가 아시나니, 욥의 친구들이 한 말들에 일반 사람이 알지 못하는 귀한 진리들이 담겨 있다. 설마 자신들이 한 말을 자신들도 모를까? 저들은 당대 최고의 현자(賢者)들이었다. 그들은 지혜를 소유하였고, 그만한 지혜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욥이 오늘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은, 그들이 말하는 것을 자신도 알고 있고 다른 사람들도 알 수 있는 것으로, 새도 알고 고기도 아는 생명의 이치로서 하나님을 알만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을 두고 이른 말이다. 이는 곧 ‘아는 게 병’이라는 말처럼 자신들만 지혜자인 것처럼 말하는 친구들의 거만함을 일깨우려는 것이다.
지나친 것이 모자람만 못한 것도, 요즘 현실이 너무 과하다. 누가 일억을 넘겨 결혼식을 할까 했더니 바로 내 곁의 가까이 이도 거침이 없었다. 그만큼 넘치는 형편으로 누구는 자식들 내외에게 허접한(?)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인생을 즐기며 ‘주식’을 해보라며 각각 용돈처럼 일억씩을 주기도 했다니까….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곁의 가까운 이들이 보여주는 현실이다. 그것으로 신학까지 공부하고 신학부 조교로 일하던 아이는 요즘 주일도 빠지고, 화상으로 드려지는 녹화본 영상으로나마 예배를 대체하고 산다. 다들 시집 잘 갔다고 부러워하는데 안 믿는 가정에서 사는, 나는 늘 저 애 이야기에 마음이 아프다.
소설 같은 일이었지만 아무개 사촌은 일본으로 재혼하여 자식들을 버리고 떠난 모친이 십 수 년 만에 돌아와 아무도 모를 만큼의 거액을 주었다. 그동안은 부부가 맞벌이를 하며, 두 아이를 성실히 잘 키우며 우리와도 서로 왕래가 있었는데… 어느 날 고급차를 사는가 싶더니 어디 신도시에 과하다 싶을 평형의 아파트를 사서 집들이를 하고, 무슨 패밀리레스토랑을 개업했다고 하더니 고작 10여 년쯤 되었을까? 둘은 이혼을 하고, 자식들은 흩어지고, 남자는 어디 고시원에 살고, 여자는 어디 식당 주방에서 일하며 엄청난 빚에 시달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사이 모친은 죽고, 이번에 누구 결혼식에서 저들 소식을 들은 모양인데, 여전히 벗어나지 못할 빚에 허덕이며 산다고 하였다.
무언가 새로운 사실을 깨달아 아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상은 늘 같은 일의 연속이라,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전 3:15).” 하여 오늘 본문의 저들 친구나 욥의 말과 생각과 그 태도 모두가 오늘에도 같은 일들이다. 하여 지혜자는 말하길,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고 그의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겨지느니라(잠 17:28).” 부디 겸손하여서 있는 것으로 적당하기를. 오늘을 장래의 일처럼 살아가기를. “지혜로운 자는 지식을 간직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입은 멸망에 가까우니라(10:14).”
결국 우리의 인생은 어찌 감당해야 할까?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마 13:44).” 사는 게 지옥이라는 말, 이는 그저 사느라 사는 데 너무 정신이 팔려서 정작 언제든지 죽을 것인데 죽음 너머의 일에는 마음 쓸 겨를이 없는 것이 오늘을 지옥으로 만든다. 아직도 거기에 있는 나의 지난날 친구들이나 지금도 내 곁의 아무개의 삶을 두고 배운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롬 2:21).” 하시는 말씀 때문에도 나는 ‘이것만은’ 하는 심정으로 새벽을 깨운다. 묵상글을 쓴다. 허투루 사람을 따르지 않는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약 3:1).”
내가 하는 ‘바른 말’이 훗날에 나를 훈계할 것이다. 함부로 조롱해도 괜찮은 사람은 없다. 오늘의 정치가 이 모양인 것은 말의 격을 잃고부터, 품격 없는 말들이 자신들을 싸구려로 만들기 때문이다. 가장 강대국의 대통령이 허접한 말로 즉흥적이라 전 세계가 흔들린다. 나는 이 원인 중 하나가 쇼셜미디어 곧 저마다의 SNS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감정적으로 썼다 지웠다 하다, 그 흔적이 남아 고소를 당하기도 하고 아무 말이나 찍찍 써 갈기듯 자신들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배설하다 온통 시궁창이다.
일찍이 나는 신대원을 마치고 제일 먼저 한 것이 모든 통신을 끊은 것이었다. 묵상글을 쓰는 이 공간을 제외하고 모든 계정을 삭제했다. 한동안 통신에 사로잡혀 그 안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문화를 교류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는 천리안, 나우누리 시절부터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상당수 허상인 것을 알았고, 그곳에서 보이는 모습과 실상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알면서도 서로는 서로의 허상을 좇고 이를 추구하며 환상으로 살았다. 신대원 동안에는 페이스북 하나만 두었는데, 한 젊은 교수가 그것으로 과제를 내고 공지를 하고 가벼운 레포트를 받았다. 또한 같은 학년 학우들이 그것으로 소통을 했다.
이 말을 하게 된 것은 욥의 친구들이 보이는 언사가 결국은 당대의 유일한 언변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말로 아는 체 하고 말로 조롱하며, 말로 서로를 죽일 수도 있는 일이어서… 말은 유용하고 유익하나 말로 서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 11:1, 3-4).” 오늘은 더욱 다양한 SNS나 개인방송이 서로의 영혼을 미혹하듯 이리저리 얽히고 설켜 곪아간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요 9:31).” 곧 나의 입술로 찬송과 기도가 나오지만 남을 헐뜯고 저주하는 말도 나온다.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 5:16).”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이르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마 26:67-68).” 우리의 됨됨이가 얼마나 끔찍한가? 악성댓글로 사람이 죽기도 하는 시대에 살면서,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시 73:12)
그것으로 돈을 벌고 더 많은 사람을 끌어 이득을 얻고자 거짓에 거짓이 난무한 것이 기정사실이다. 이로써 오히려 만물이 탄식한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롬 8:22).” 이러한 때에 욥은 하나님을 의뢰함으로, “모든 생물의 생명과 모든 사람의 육신의 목숨이 다 그의 손에 있느니라… 어두운 가운데에서 은밀한 것을 드러내시며 죽음의 그늘을 광명한 데로 나오게 하시며 민족들을 커지게도 하시고 다시 멸하기도 하시며 민족들을 널리 퍼지게도 하시고 다시 끌려가게도 하시며(욥 12:10, 22-23).” 오늘도 주를 인정하는 자리에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막 13:28-29).” 즉 말씀으로 현실을, 오늘에 당면한 일들을, 나로 일깨우시는 주 앞에서,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하여,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시 121:2-3).
하여,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5-6).
이로써 오늘 하루도 주가 내게 맡기신 것으로,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7-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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