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내 죄악을 싸매시나이다

하현. 2025. 10. 13. 06:05

 

주께서는 나를 부르시겠고 나는 대답하겠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기다리시겠나이다 그러하온데 이제 주께서 나의 걸음을 세시오니 나의 죄를 감찰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주는 내 허물을 주머니에 봉하시고 내 죄악을 싸매시나이다

욥 14:15-17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시 123:1

 

 

나의 부친은 뭐라 한참 야단을 치고 꼭 끝에는 같이 기도를 하였다. 특히 매를 맞고 심하게 혼난 날에도, 아버지는 뭐라 욕하고 때리고 심히 야단을 치고 난 뒤에 심지어는 본인이 울면서도 기도를 하였다. 어릴 땐 더러 그러는 아버지의 이중적인 시간이 싫었다. 그러나 이제 오늘 이와 같은 본문을 읽다 문득 나의 부친이 그러하였던 일과 그 심정을 알 것 같다. 더러는 나 역시 누구와 대화를 하거나 만난 후에 그 끝으로 기도를 제안한다. 우리의 만남과 이 모든 시간을 통해 주의 뜻을 알게 하시기를 빈다.

 

욥은 세 친구들과의 논쟁과 변론을 할 때면 그때마다 기도를 곁들여서,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13:20-14:22). 자신이 당한 이 고난의 이유를 요구한다(13:20-28). 이어 하나님께는 도저히 상대가 될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함과 인생의 덧없음에 근거하여, 하나님께 아뢰는 것은 자기를 더 이상 대적하지 마시고 놓아주시기를 호소한다. 욥은 어느 때보다 인간의 연약함과 인생의 덧없음에 대하여 아뢴다.

 

먼저는 사는 날수가 적다는 것이다. 둘째는 그 사는 날마저 괴로움으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셋째는 그러한 인생이 마치 꽃이나 풀과 같이 연약하다는 것이다. 넷째는 우리의 인생이 그림자와 같아서 신속하게 지나간다는 것이다. 끝으로 다섯째는 인생을 사는 날수와 달수는 하나님께서 정하셨고, 한정되어 있음을 인정한다(1-6).

 

여기서 욥은 상당히 문학적으로 나무를 빗대어 설령 나무는 죽을지라도 다시 새싹이 돋는 것과 달리 인간은 한 번 죽으면 다시 살 소망이 없음을 강조함으로,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시는 동안에만 사는 날의 평안이 있을 있음을 인정한다(7-12). 본질적으로 우리 인생이 약하고 연약한 존재인 것을 우리는 다 알고, 그래서 더욱 겸손하여 주를 바라는 사람과 그와 반대로 그리하여 더욱 자신에게 애착을 두어 사는 날을 스스로 결정하고자 하기도 한다.

 

성경은 우리의 생을 질그릇으로 비유하여,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오늘 이와 같은 욥의 고백이 혹은 우리의 신앙이 더욱 값진 것은 그리하여 이 질그릇 같이 연약함 속에서 주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기를 바란다. 스스로를 자랑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사람이 또 있을까?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렘 9:23).”

 

우리는 스스로 자랑하고 자부할 게 없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일괄된 시각은,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사 40:6-7).” 하여 예수님은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2:20-21).”

 

같이 속상하여 그 심정을 이해하겠으나 누가 문자를 남겨 가게를 넘겨 정리하려고 하는데 좋은 조건으로 이루어지길, 기도를 부탁하였다. 오후께는 오랜만에 누구에게서 전화가 와 다짜고짜 우울하다며 어디에 새로 생긴 대형 병원에서 다음 달부터 정규직 약사로 일하기로 했다고 하였다. 나이 50에 오히려 축하할 일 같지만… 나는 그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아이 둘 낳고 미뤄두었던 박사학위를 따고, 그 공부를 하느라 고생을 하였는데 두어 곳 대학에서 시간 강사로나 수업이 있었을 뿐 전임교수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다. 강단에 서서 가르치는 게 꿈이라 여태 달려왔는데, 처녀 때 어디 대학병원에서 약사로 일하던 것처럼 도로아미타불이 된 것 같아서일까?

 

차마 그런저런 이야기까지는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이 여기저기 너무 돌아다니며 일하던 것을 한 곳에 정착하게 하셨고, 새로 생긴 종합병원이라 여러 시스템을 맡아서 정비해야 하니 그 책임도 막중할 것이라며… 그런 가운데서 보람을 더하실 것을. 전적이 있는 터라 우울하다는 말이 괜한 게 아님을 잘 알고 있어서 곧 정식으로 출근하기 전에 한 번 오라는 말만 하고 통화를 끊었다. 이럴 때 우리의 서로 인사가 기도해줘, 하는 것이고 기도할게, 하는 것이다. 누구의 애끓는 심정을 위로하느라 널 위해서도 요즘은 다시 새벽에 깨워서 말씀 앞에 앉는다고 말하며 기도할 것을 약속하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날들이 한정되었음을 알고,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 마소서

내게 굽히사 응답하소서

내가 근심으로 편하지 못하여 탄식하오니

이는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 때문이라

그들이 죄악을 내게 더하며 노하여

나를 핍박하나이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이르렀도다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 나는 말하기를

만일 내게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머무르리로다 (셀라)

(시 55:1-7).

 

실로 사는 날이 짧은 가운데서도 고통의 날을 제하고 나면 그 또한 더없이 보잘것없는 시간인데,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고후 1:8-9).” 결국 우리가 이러한 삶에서 누구를 의지하고 무엇을 바라며 살 것인가?

 

어제 그 전화도 오전 예배 후에 집 앞 병원에 들러 서둘러 진통제 주사를 맞고 나올 때였다. 젊은 의사는 이번 주에만 두 번째라 너무 자주 맞으시는 것 같다며 한 소리를 덧붙였다. 설교 전에 진통제를 먹을까 하다 약을 먹으면 속이 울렁거릴 것 같아서 참았던 것이다. 그리고 누구의 통화에서 다짜고짜 우울하다는 말이 새삼 인생을 통칭하는 말 같이 들렸다. 물론 욥이 당한 고난을 보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나 고난은 상대적인 게 아니어서 저의 고난은 상상도 할 수 없으나 누구나 다 자신의 현재 고통이 가장 끔찍한 법이다.

 

우리는 이 고난의 때에 무얼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이 우리로 고난을 당하게 하심은 우리를 위한 것으로,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행 17:25).” 그런 가운데서 우리의 진실 된 고백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내일 사자 굴에 던져질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크고 고마워서 창문을 열고 하나님께 향해, 그런 상황에서도 기도할 수 있는 것,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 6:10).” 이 놀랍고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을 묵상하면서 부디 오늘 우리가 저마다의 사정과 그 안타까운 심정으로 주의 이름을 부를 때, 오히려 그것이 감사가 된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히 11:33-34)”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우리는 또 저마다가 그러하여서 ‘기도해줘’ 하는 말과 ‘기도할게’ 하는 말 사이에서 위로를 얻는다. 이미 서로의 기도는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곧 그의 언약을 지키고

그의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시 103:15-18).

 

그러하여서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은 화 있을진저 술에 빠진 자의 성 곧 영화로운 관 같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여 쇠잔해 가는 꽃 같으니 화 있을진저… 그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있는 그의 영화가 쇠잔해 가는 꽃이 여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와 같으리니 보는 자가 그것을 보고 얼른 따서 먹으리로다(사 28:1, 4).” 우리의 사는 날은 각각이 다른 것 같아도 모두가 같아서 저마다의 시간 속에서 누구는 그리하여 더욱 하나님을 바라고 구하고, 누구는 자신을 추구하다 세월의 끝에서 마주한다.

 

그러므로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약 1:10-11).”

 

어느 인생이나 그 끝은 서로가 다르지 않아서 오늘 욥의 진술과 기도로 그 가운데서 답을 찾는다. “주께서는 나를 부르시겠고 나는 대답하겠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기다리시겠나이다… 주는 내 허물을 주머니에 봉하시고 내 죄악을 싸매시나이다(욥 14:15, 17).” 우리가 무엇으로 의를 얻어서 주 앞에 가져갈 수 있을까?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 1:24-25).”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하여 인생을 아무리 꽃과 같다 해도 그 끝은 시드나니,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시 90:12, 14).

 

우리로 즐겁고 기쁘게 하는 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든지’ 감사가 나온다는 것이다. 진통제 주사를 맞고 들어와 잠시 허리를 지지며 잠이 들었던가? 다시 또 살만하여서 나는 교회로 나와 잠을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이처럼 말씀 앞에 앉아 욥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 각자의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이야기를 읽고 묵상하며 기도한다. 오늘 지금 이 순간으로 족한 줄을 알고,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

 

우리는 곧 저마다의 사정 속에서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으로 감사를 배운다. 감사의 기도를 배우기까지 우리 영혼은 더러 우울하여서, 날자! 우울한 영혼이여.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 7:15-17).”

 

우리 영혼으로 우울하게 하는 것이 죄니라! 하여,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19-20).” 하여 바울의 절규하는 심정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어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1-2).” 우리의 반전을 기대한다. 그리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5).”

 

이 끔찍한 현실이 지나고 나면 광명의 새 날이 우리 생의 끝에 펼쳐질 것을 앎으로, “주께서는 나를 부르시겠고 나는 대답하겠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기다리시겠나이다(욥 14:15).” 오늘도 욥의 이와 같은 기도로 나의 것을 삼아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 6:35, 39).”

 

하여 오늘도 이 한 날을 살게 하심일 테니,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 10:4).” 이에 오늘 욥과 같이 모든 고통을 인내할 것을 우리도 자신에게 선포하고(13-15), 고통의 때에도 주의 은혜와 긍휼하심을 기다릴 뿐인 것을 고백한다(16-22). 그렇게 우리의 부활과 영생을 우리의 고난 뒤에 감추어 두셨음을 욥은 알고 있었다.

 

“주는 나를 스올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실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규례를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욥 14:13).”

 

오늘도 주를 바람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고전 15:12-13).” 그러므로 살자, 주신 날을 감사함으로 못한 것으로 우울해하기보다 할 수 있는 것으로 감사하며… 이 모든 상황이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하여,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약 1:12).”

 

그리하여,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

(시 123:1, 3-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