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하건대 나에게 담보물을 주소서 나의 손을 잡아 줄 자가 누구리이까
욥 17:3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 126:5-6
어떤 고통은 그 실체보다 허상이 더 어렵게 한다. 사람의 위로를 구한다거나 저들의 시선과 말에 실망하게 되면서 더욱 자신의 고통으로 신음하는 것이다. 이에 욥은 ‘나의 기운이 쇠하였다’고 진술한다. 기운이라 하면 ‘영’을 의미하는 것으로 숨, 호흡을 뜻하면서 심한 쇠약함을 의미한다. 신체적으로는 호흡 장애를 뜻하기도 한다. ‘영’으로 볼 때는 극도의 고난으로 심령이 지치고 핍절된 상태를 가리킨다.
종종 상한 영혼을 마주할 때면 저의 외모나 실상과는 달리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온통 그 관심과 생각이 세상을 향한 것을 본다. 하물며 교회를 다니고 또는 실제 목회 사역을 감당하면서도 그 속에 감사는커녕 주를 신뢰하고 의뢰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 로이드 존스 목사의 ‘침체된 영혼에 대하여’ 이는 마치 유리하는 벌과 같이 떠도는 상태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이다. 차라리 안 믿는 자로 살면 사는 데서 보람을 얻거나 위로를 받기라도 할 텐데 그것도 어렵다. <영적 침체>는 가라앉아버린 난파선 같다.
오늘 욥의 표현에서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내가 스올이 내 집이 되기를 희망하여 내 침상을 흑암에 펴놓으매 무덤에게 너는 내 아버지라, 구더기에게 너는 내 어머니, 내 자매라 할지라도 나의 희망이 어디 있으며 나의 희망을 누가 보겠느냐(13-15).” 오죽하니 지옥에라도 들어 더는 떠도는 것으로부터 멈추길 바란다. 그런 가운데 실체 없는 ‘무덤에게 너는 내 아버지라’ 하고, ‘구더기에게 너는 내 어머니, 내 자매라 할지라’ 한다. 그럼에도 희망은 없다고 하니, 실제 이 땅의 현실도 다르지 아니한가? 무덤가 잔디를 고르고 풀을 뽑으며 죽은 이와 대화를 하거나 저에게 빈다. 친구도 그렇고, 이번 추석에도 성묘를 가고 풀을 고르고 왔다.
이와 같이 결국 더 이상 이 삶을 영위하기조차 어려운 위기에서 욥은 이전부터 자신이 고난당함으로 곧 죽게 될 것이라 생각하였다. “내 날은 적지 아니하니이까 그런즉 그치시고 나를 버려두사 잠시나마 평안하게 하시되 내가 돌아오지 못할 땅 곧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가기 전에 그리하옵소서(10:20-21).” 그만큼 고통이 심하여 “땅은 어두워서 흑암 같고 죽음의 그늘이 져서 아무 구별이 없고 광명도 흑암 같으니이다(22).”
하여 그는 차라리 현재와 같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사느니 차라리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음부에 숨겨달라고 한다. 죽음에 이르게 해달라고 부르짖는다. “사람이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눈을 뜨지 못하며 잠을 깨지 못하느니라 주는 나를 스올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실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규례를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14:12-13).”
고로 오늘 우리 괴롭게 하는 것은 늘 그 시점에서 절대적인 것이라 누가 어떤 때와 비교하면 오히려 그게 더 괴롭다. ‘위로와 조롱’은 단어와 단어 사이의 띄어쓰기 간격도 안 된다. 그런 것을 “나를 조롱하는 자들이 나와 함께 있으므로 내 눈이 그들의 충동함을 항상 보는구나(17:2).” 하고 지금의 실제를 두고 말한다. 그의 세 친구들의 비난과 책망이 견딜 수가 없다. 저들의 위로나 격려가 격동하게 한다. 괴로움을 더한다. 그만큼 더 괴롭고 씁쓸할 뿐이다. 이에 주 앞에 구한다.
“청하건대 나에게 담보물을 주소서 나의 손을 잡아 줄 자가 누구리이까(3).” 여기에 담보는 보증으로 일반적 경제 관계에서 상호 거래를 위한 ‘물질적인 계약 증표’를 가리킨다. 욥이 이를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그의 무죄함을 입증할 수 있는 보증을 해주십사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타인을 위해 보증을 서는 때도 필요한 이것을 하나님께 구함으로, 주는 아시지요? 하는 우리의 심정과 맞닿아 있다.
성경에 이 보증에 대하여 매우 신중하고 또 절제할 것을 당부한다.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잠 6:1-2).” 하면서 이를 다시 거둬들이기 위해 “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 네 눈을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을 감기게 하지 말고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3-5).” 왜냐하면 지금도 그렇지만 보증 잘못 서면 덩달아서 망하기 십상이다. 하여 저를 지혜 없는 자로 규정한다. “지혜 없는 자는 남의 손을 잡고 그의 이웃 앞에서 보증이 되느니라(17:18).”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 보증이 돼 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담보물을 요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저 세 친구들이 와서 저러는 것도 다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게 하셨사오니’ 그리 하라, 하심으로 허락한 일인 것을 욥은 알고 있다. 이 모든 일의 주체와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욥의 친구들이 스스로의 경험과 예로부터의 전통과 사고방식으로 욥을 정죄하고 비난하는 것도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그렇게 가리거나 그리 마음먹게 하셨기 때문임을 말이다. 곧 저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도 못하게 하신 분이 실은 하나님이지 않은가?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가리어 깨닫지 못하게 하셨사오니” 하고 난 뒤, “그들을 높이지 마소서” 하고 단호하게 하나님 앞으로 청구하듯 자신의 뜻을 고한다. 이는 마치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보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끝까지 신뢰하고 있는 욥의 마음을 나타낸다. 하여 ‘그들을 높이지 마소서.’ 하고 주께 고함은 무죄한 자를 비방하고 정죄하는 사람들의 종국적 패배를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이다. 이는 시편에서 여러 편 볼 수 있다. 우리로서는 주께 고발할 수 있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시 13:3-5).
이러한 기도가 누구보다 하나님과 가깝고 또 하나님의 모범이 된 다윗의 시들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원수로 하여금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30:1-2).
우리가 살면서 누구로 인해 또는 어떤 일로 인하여 죽을 것처럼 힘들고 어려울 때 더러는 세상 법정에 세우기도 하고, 성질에 못 이겨 자신이 직접 처리하려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이를 가져다가 내려놓는다. 하나님 앞에서 할 말 못 할 말이 따로 없다.
내 원수가 활발하며 강하고 부당하게
나를 미워하는 자가 많으며
또 악으로 선을 대신하는 자들이
내가 선을 따른다는 것 때문에
나를 대적하나이다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38:19-22).
이렇듯 우리가 주께 아뢰고 구할 수 없다면 어찌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참을 수 있다는 말일까?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41:1).
이러한 호소와 기도는 우리 믿는 자들이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로 청구하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당당히 외치게 하셨는데, 우선은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먼저와 나중의 원리를 알면 된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7:7-8).” 바로 이 앞에, 그러므로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1-2).”
그러니 어찌 살면서 비판하지 않고, 상대하여 싸우지 않을 수 있겠나? 그 해결방법으로는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눅 11:9).” 이와 같은 말씀으로 의지하여 시편의 다윗도 오늘 본문의 욥도 하나님께 청구서를 내미듯 요구하는 것이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12:31).” 이는 엄연히 주가 보장하시는 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곧 오늘 욥의 이와 같은 당당함은 교만이나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주 안에 거함으로 가능하였다. 1, 2절에서 욥은 임박한 죽음과 친구들의 정죄함으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다, 다음에는 3-5절에서 하나님께 그의 친구들의 위증을 밝혀 자신의 무죄함을 증명해 주시기를 호소하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주를 온전히 믿는 것이란 그만큼의 고난이 따르는 일이라고 엄연히 말씀하셨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그러므로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25).”
하여 주 앞에서 죽기를 바람으로 이 땅에서는 온전히 살고자함이었으니,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 그러할진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일은 단순히 생을 사는 동안 종교 하나쯤 의지하여 위로를 삼고자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우리 생을 담보로 하여 주를 온전히 섬기는 일이어서,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2-4).”
오늘 여기 욥의 요구에서도 그러하듯 우리는 우리의 어려움으로 오히려 당당하게 주 앞에 구하고 엎드려 주께 빈다. 여름이 지나면서 내내 비가 자주 오고, 비가 오려고 하면 나는 참다 못해 진통제를 맞으러 병원에 간다. 어제는 아내가 따라나서며 날씨가 이렇게 쾌청한데 왜 아픈가? 하고 이상하게 여겼지만 아니나 다를까 저녁이 되면서 비가 내렸다. 아픈 게 때론 지겨울 때도 있어서 나는 가끔씩 그만 아팠으면 싶을 때도 있다. 외람된 소리지만 그것 때문에도 천국을 사모하고 주의 나라에서 안식을 소망하기도 한다.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고난과 어려움 같으나 이 모든 게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알 때면 아픈 것도 복이라고, 그리하여 주의 이름을 부른다. 이는,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약 5:11).”
오늘 그 과정을 묵상하면서 욥이 주께로 담보물을 요구하여 “청하건대 나에게 담보물을 주소서 나의 손을 잡아 줄 자가 누구리이까(욥 17:3).” 하는 데서 새삼 새 힘을 얻는다. 이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그러므로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하는 데서 죽는 것 그 이상의 소망을 우리는 담보물처럼 믿음으로 간직하고 사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57-58).” 하고 이어지는 바울 사도의 설교 말씀이 가슴 깊이 새겨진다. 이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하여 오늘도 새 힘을 얻고,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고후 4:14).”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시 126:1-3).
우리를 위한 여호와의 큰 일을 알고 의지함으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5-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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