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
욥 19:2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시 128:1
앞서 빌닷의 공격적인 말이 끝나자 욥이 외친다. “너희가 참으로 나를 향하여 자만하며 내게 수치스러운 행위가 있다고 증언하려면 하려니와 하나님이 나를 억울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을 알아야 할지니라(5-6).” 이를 얼핏 들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지금의 이 모든 괴로움의 출처는 하나님이심을 밝히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굴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은 알아야 할지니라.’ 하고 지금 이 개역개정 전 성경은 기록하였다. 그 의미는 다소 차이가 느껴진다. 곧 ‘나를 억울하게 하셨다’는 표현과 ‘나를 굴하게 하셨다’는 표현은 다르다. 그러나 본질은 같다. 그 주체가 하나님이시다.
하여 욥은 외친다.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21).” 지금 이 고난의 원인이 ‘죄에 있지 않다’는 확신으로 하는 말이다. 그래서 ‘억울하게 하셨다’는 것과 ‘굴하게 하셨다’는 것은 느낌이 다소 차이가 있지만, 욥은 스스로에게 설령 죄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만 하나님이 이 일을 주관하고 계신 게 아님을 확신한다. 하여 친구들의 지적에 “너희가 참으로 나를 향하여 자만하며 내게 수치스러운 행위가 있다고 증언하려면 하려니와” 하고 항변하는데, 곧 우리의 징계는 죄를 해결하기 위한 게 아니라, 더 나은 성화 구원을 위한 것임을 ‘구약의 관점’으로 밝힌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고 우리의 죄로 인한 정죄함을 대신 없이 하신 ‘신약의 관점’과 같다. 하나님의 용서는 이미 구속의 보혈로 해결되었다. 이는 전적인 하나님의 예정하심과 택정하심으로 그리된 자들의 그리되어짐이다.
곧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3-6).” 그러니까 구약의 시대에나 신약의 시대에나 이 모든 시대는 ‘창세 전에 이루어진 일’로 그리스도께서 거기 계셨고, 우리의 보증이 되심으로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14).”
이를 알았고 욥은 그리하여 고백하기를, 이 고난의 순간에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9-10).” 이 놀라운 신앙은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히 7:22).” 하는, 이미 오래 전 그보다 더 창세 전에 있은 일로 에녹도, 노아도, 아브라함도… 저의 말씀에 순종하여서 각자 동행하였고, 방주를 지었으며, 길을 떠났던 것이다. 이는 오늘 우리 안의 믿음의 일로 가장 믿기 어려운 게 내 안의 믿음이 아니겠나? 평소보다 이른 새벽, 시간을 확인하고 잠시 뒤척이다 일어나 앉아 말씀 앞으로 나를 세우는 일….
누가 우울함을 호소하며 기도를 부탁할 때 저와 그 딸아이를 위해서도 내가 ‘새벽을 깨우리라’ 하고 약속하였던 그 말에 답하듯이 이처럼 묵상글쓰기를 하며 주 앞에 앉았다. 내 어찌 주를 믿고 의지하는지, 나는 알 수 없으나 그리 하게 하시는 이로 인하여 누구와 누구를 생각하며 저들의 일을 놓고 주의 이름을 부른다. 나의 연약함과 오늘의 여러 당면한 일을 두고 주의 이름을 부른다. 나로 하여금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신 이가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
하여 욥은 1장에서 이미 전능하신 하나님을 인정함으로 그런 중에도 예배하였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1:20-22).”
왜 이 이른 시간에 나로 깨우시고, 주 앞에 앉게 하셨는지… 이 일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며 나는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누구의 어떤 일을 두고 ‘주님!’ 하고 부르며 저의 일을 아뢰는 것이다. 오늘 욥은 “하나님이 나를 억울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을 알아야 할지니라(6).” 이 모든 일은 고난과 별도로 원인이 하나님께 있다고 확신한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불신앙이 아니며 원망도 아니다. 그의 이 말은 사실대로 표현된 것이다. 사람들은 언제든지 자기 고난이 하나님의 섭리에 속한 줄 알게 된다. 그렇게 알 때 구원의 소망이 생긴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자는 구원의 소망이 생길 수 없음으로 스스로의 극단적인 선택으로라도 그런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
그 이유는 그렇게 아는 우리들은 하나님을 바라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쳐 주신다.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5:18)” 이는 데만 사람 엘리바스의 말이다. 욥의 친구들도 알고 있으나 이를 가지고 욥의 고난을 나무라듯 정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고난의 원인이 우연이라고 한다면 고난을 받는 자가 어떻게 소망을 가질까? 그런 가운데 어찌 찬송이 나오고 엎드려 예배가 드려질 수 있을까? 이에 섭리하시는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
하나님의 뜻에 따른 ‘자신의 고난’을 주장하는 욥의 믿음이 저로 구원의 소망을 더욱 강하게 붙들게 하였다. 욥은 납득할 수 없는 비논리적인 친구들을 향하여 언제까지 자기의 마음을 번뇌케 하며 말로 꺾기를 언제까지 하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들이 열 번이나 자신을 꾸짖고 있지만 그들의 주장대로 과연 자신의 잘못으로 당하는 고통이면 더더욱 간섭하지 말아달라고 하는 것이다. “비록 내게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그 허물이 내게만 있느냐(4).” 그러면서 오늘 이 자신의 고난은 악행과 상관없어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오히려 친구들을 충고한다. “너희가 참으로 나를 향하여 자만하며 내게 수치스러운 행위가 있다고 증언하려면 하려니와 하나님이 나를 억울하게 하시고 자기 그물로 나를 에워싸신 줄을 알아야 할지니라(5-6).”
우리는 주의 자녀들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12-14).” 이것이 오늘 우리가 각자 당하는 어떤 괴로움을 두고, 또는 누구의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하려 해야 한다. 하여 이 놀라운 진리,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고로 오늘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를 부탁하거나 부탁 받을 때,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롬 12:15-16).” 성경의 이와 같은 말씀이 오늘의 나로 하여금 주만 바라게 한다.
욥의 인식은 그가 아무런 소망도 가질 수 없는 처지에 있음에도 이 모든 일의 되어짐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세상이 아무리 무정하다 해도, 고난으로 인하여 모두가 떠나갔으나 그것으로 탄식하면서도 주를 바라였다(13-20). “내 아내도 내 숨결을 싫어하며 내 허리의 자식들도 나를 가련하게 여기는구나 어린 아이들까지도 나를 업신여기고 내가 일어나면 나를 조롱하는구나 나의 가까운 친구들이 나를 미워하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돌이켜 나의 원수가 되었구나(17-19).” 이 얼마나 가련한 순간인가? 그럼에도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21).” 하고 외친다. 결국은 ‘헤아려 본 슬픔’에서 우리는 그러하여 주를 바라며 더욱 주를 신뢰하게 되는 것을 안다.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시 107:9).
하여 누가 나 같은 자에게 기도해 줘, 하고 부탁할 때 나 역시 기도할게, 하고 답하는 확신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심을 알고 처한 상황에서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며 ‘남은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언제도 아내와 같이 병원으로 갔다. 유난히 비가 잦은 가을 날, 이상하게 비가 내리기 전에 온 몸이 아프다. 혹시 모르니 피검사도 하라고 해서 피검사와 함께 엉덩이주사를 맞고 돌아오는 길에 유난히 연세 많은 노인들을 마주치며 서글프기도 하였다. 하여서도,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40:1).
고로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롬 4:20-22).”
하시는 말씀 앞에서 다시 또 마음을 다잡는다. 오늘의 이 모든 일이 ‘토기장이와 토기’의 일 같이,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롬 9:20-21).” 주가 나로 오늘의 이 형편과 사정에 두심으로 이루시고자 하는 일이 있으신 것을 믿음으로,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감사가 나올 수 없을 때 감사할 수 있게 하시기를.
하여,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심판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 때문이니이다
(119:75).
오늘 욥의 이와 같은 고백도 그러하여서,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 때문이니이다” 하는 고백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고후 10:4-6).”
곧 오늘의 고난은 그 목적이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행여 허튼 나의 마음까지도 주의 뜻에 굴복시키려 하심이어서,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전 4:1).” 이와 같이 세상에서는 위로자가 없으나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9-10).” 결국은 이러한 말씀으로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젊은이가 늙고 둔하여 경고를 더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나으니(13).”
오늘도 이처럼 말씀 앞으로 나를 앉히심이 복이었다. 그리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 2:16-17).”그리하여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주 앞에 서는 날,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롬 14:11-12).”
그때에 우리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데,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주가 나의 대언자로 나의 모든 죄의 값을 지불하였음을….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시 128: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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