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019 주일
이사야 58장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사 58: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사 58:10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사 58: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들어가는 말
우리의 모든 희노애락(喜怒哀樂),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을 더하여 살고, 죽고, 화를 입고 복을 받는 생사화복(生死禍福)은 모두 주께 달렸다. 이에 욥은 “주께서 나를 시들게 하셨으니 이는 나를 향하여 증거를 삼으심이라 나의 파리한 모습이 일어나서 대면하여 내 앞에서 증언하리이다(욥 16:8).” 하여, 어려운 날에 주를 대면하겠다고 한다. 곧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시 125:1).” 하는 시편과 같이 오늘 우리의 삶은 증거다. 어려움으로든지, 기쁨으로든지, 우리는 그 순간으로 주의 살아계심을 나타낸다. 특히 어려울 때 이는 더욱 선명하다. 즐겁고 기쁠 땐 적당하여서 외면한다.
누가 기도를 부탁할 때도 대부분 어려운 일을 당할 때이다. 고난의 인물 욥을 통해, “나의 파리한 모습이 일어나서 대면하여 내 앞에서 증언하리이다.” 우리가 고난을 직면함으로 주를 증언한다. 하여 욥의 신앙은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 13:15).” 즉 ‘주가 나를 죽이시더라도 나는 주를 믿는다’는 것이다. 성경의 모든 믿음의 영웅들은,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히 11:13-14).” 이에 증인이다.
오늘 본문은 믿음의 소유자들인 우리를 일컬어 ‘물 댄 동산 같다’고 하였다.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 58:11).” 이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 본문에서 세 가지 중심내용을 다루고 있다. 첫째, 우리의 허물과 죄에 대하여 외치라는 것(1-2). 둘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하라는 것(6-9). 셋째, 안식일, 주일을 온전히 지키라는 것(13-14). 그러할 때 우리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하는 보장된 삶이 따른다(11).
앞서 57장에서는 ‘우상 숭배’로 물든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악상’을 지적하였다. 이에 오늘 우리에게 회개를 촉구하면서 59장까지 거듭, ‘회개할 내용’을 집중적으로 언급한다. 이를 위하여 오늘 본문을 다시 두 가지로 축약하면 첫째, 거짓 금식을 지적하고 이에 외치라 한다(1-5). 둘째, 바른 금식을 설명하고 이를 촉구한다(6-14).
본문이해
1. 회개와 금식에 대하여(1-9a)
회개는 죄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자신의 죄 된 모습을 직면해야 한다. 그러면 통회가 따른다. 통회는 진심으로 뉘우치는 것으로 자복을 전제로 한다. ‘통회와 자복’은 하나다. 죄악으로 인한 고통을 절감할 때 회개가 이루어진다. 즉 은혜 없이는 회개도 없고, 회개를 못하면 은혜도 모른다.
바울과 같이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롬 7:18-19).” 이를 알면서도 다시 범하게 되는 죄의 실상으로 우리는 괴로워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24).” 하는 절규가 나온다.
<거짓 회개의 특징>
1) 하나님 앞에 절박하지 않다.
“크게 외치라 목소리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높여 내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알리라(1).” 즉 죄를 자복하고 이를 서로 알게 하여 정직함을 요구해야 한다.
2) 남들 앞에서나 자신에게도 위선적이다.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공의를 행하여 그의 하나님의 규례를 저버리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거워하는도다(2).” 죄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서는데 즐거워한다는 게 말이 되나? 잘못했다면서 실실 웃는 것 같이 가증스럽다.
3)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해야 한다(6-9a).
금식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 가운데 먹는 즐거움을 억제하고 절제하는 것이다. 우리 육신의 욕구를 강제하는 데 있어, ‘육신의 소욕’은 모두 세상을 향한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6).” 이를 절제함으로 ‘성령의 소욕’을 따른다. 곧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17).”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는 세 가지로 정리한다. ① 자유함이 있어야 한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6).” ② 굶주린 영혼을 채워야 한다.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7).” ③ 빛의 치유가 따라야 한다.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8-9a).” 그리할 때,
2.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11).”
<느헤미야 선지자가 말하는 다섯 가지의 참된 금식>
1) 식욕을 절제함으로 꾸미지 않는다.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느 9:1).”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즐거운 것을 꼽으라면 먹는 즐거움과 자신을 꾸미는 즐거움이다. 물론 출세나 성공, 명성과 자아실현의 즐거움도 있지만 그에 앞서 본능적인 소욕이 우선한다.
2) 이방인과 절교함으로 죄와 허물을 자복한다.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2).” 사실 안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이를 자복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를 봐도 저마다 끝까지 거짓말하고 속이면서 스스로도 자신에게 속는 게 사람의 본성이다. 이에 ‘절교와 자복’는 같이 간다.
3) 말씀을 묵상하고, 죄를 자복하고, 예배한다.
“이 날에 낮 사분의 일은 그 제자리에 서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3).” 금식은 스스로를 절제하는 대표적인 것이고, 모든 절제는 말씀을 묵상하고, 죄를 자복함으로 주 앞에서 예배로 드려지는 시간이 된다.
4)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큰 소리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고(4).” 평소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을 일이 별로 없다. 욥의 경우를 예로 든 것도 저마다 적당하면 그렇게 절실하게 주를 찾지 않는다. 그러다 뜻하지 않게 어려움이 찾아오고, ‘예기치 못한 슬픔’이 닥치면 의식적으로 금식하고 무의식적으로도 주의 이름을 부르짖는다.
5)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한다.
“…너희 무리는 마땅히 일어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어다 주여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송축하올 것은 주의 이름이 존귀하여 모든 송축이나 찬양에서 뛰어남이니이다(5).” 곧 자신을 억제할 때 비로소 평소의 삶에서 미처 깨닫지 못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생각한다. 삶이 적막할 때 주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을 기뻐하며 송축하게 된다.
이에 오늘 이사야 선지자는 간곡하게 전하는 것이다.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10-11).”
3. 안식일(주일)에 대하여(13-14)
구약의 안식일과 신약의 주일은 개념이 다르다. 그러나 의미는 같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창조하시고 7일째 되는 날에 쉬셨다. 안식일은 말 그대로 ‘안식의 날’이다. 안식은 ‘편히 쉼’이다. 여기서 우리가 가장 편히 쉰다는 것은, 이 땅의 그 무엇으로도 얻을 수 없는 안식이라는 깨달음에서부터 온다. 즉 우리는 눈을 뜨기 무섭게 ‘걱정과 염려’에 사로잡힌다. ‘어떤 고난’이 시작된다. 육신의 질병은 말할 것도 없고 정신적인 문제에서도 같다. 그러므로 안식의 진정한 의미를 살펴야 한다.
1)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것(13).
① 오락을 피한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곧 자신을 즐겁게 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② 자신의 길로 행하지 않는 것과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않는다.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즉 쓸데없는 논쟁이나 어울림을 피한다.
2) 여호와 안에서 즐거운 안식을 위하여(14)
① 주일을 지키는 일은 예배에 참여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는 동시에 자신의 존귀함을 지키는 것이다.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가령 우리가 대통령 만찬에 초청되었다면 그 자체로 존귀하듯이 말이다. 성도의 즐거움은 주 앞에 예배하는 것으로,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② ‘야곱의 기업’ 곧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하게 될 자들로서 우리는 이와 같은 말씀을 가까이 한다.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14b).” 야곱은 이스라엘이고, 이스라엘은 선민으로, 선민은 창세전에 택함 받은 주의 자녀들로 오늘 우리를 일컫는다. 곧 하나님의 나라를 이을 상속자로 오늘 우리를 기르신다!
이에 나오는 말을 대신하여,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9, 1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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