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130 주일
이사야 63장
공의와 사랑
사 63:15 주여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며 주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에서 보옵소서 주의 열성과 주의 능하신 행동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주께서 베푸시던 간곡한 자비와 사랑이 내게 그쳤나이다
사 63:16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옛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사 63:17 여호와여 어찌하여 우리로 주의 길에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사 주를 경외하지 않게 하시나이까 원하건대 주의 종들 곧 주의 기업인 지파들을 위하사 돌아오시옵소서
사 63:18 주의 거룩한 백성이 땅을 차지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우리의 원수가 주의 성소를 유린하였사오니
사 63:19 우리는 주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는 자 같으며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지 못하는 자 같이 되었나이다
들어가는 말
주의 백성들이 이 세상에서 당하는 참상을 말해준다. 이를 의문형으로 진술하고 있다. 첫째, 에돔에서 오는 이 누구냐? 둘째, 붉은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이 누구냐? 셋째, 그의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이가 누구냐? 넷째,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냐? 다섯째, 네 옷이 포도즙틀을 밟는 자 같으냐?(1-2)
여기서 ‘에돔’과 ‘보스라’는 유다와 끊임없이 적대적이었던 국가이다. 곧 이 땅의 죄악이 가득하다. 위치상으로 모압에 가까우나 이두매, 곧 에돔의 주요 도시 중의 하나였던 곳이 보스라다. 이 두 곳은 세상이 우리 믿는 자에게 적대적인 이유를 밝혀준다. 곧 마지막 날은 ‘보응의 날’로 에돔도 보스라도… 곧 우리 성도들을 대적하던 사탄의 모든 세력들을 물리치실 것이다. 이에 ‘붉은 옷’ 곧 ‘피 묻은 옷’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나타낸다. 계시록에서 이를 상징할 때,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계 19:11-14).”
즉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패배의 십자가가 아니라 죄와 사망과 세력을 물리치신 승리의 십자가다. 그리하여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골 2:15).” 이는 오늘 날 이 땅에서도 정의를 구현하는 데 있어 과거를 청산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정의로 그 의미는 실행된다.
본문이해
“그는 나이니 공의를 말하는 이요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이니라(1b).”
1. 공의와 구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가 구속할 해가 왔으나(4).”
하나님의 사랑은 공의가 실현될 때이다. 승리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공의가 구원하는 이의 사랑의 능력임을 밝힌다. “만민 가운데 나와 함께 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곧 하나님이 홀로 “밟았고, 밟았고,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튀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이것으로 주의 사랑은 <내 원수 갚는 날>이 주의 마음에 있고, <내가 구속할 해>가 이루질 때에 홀로 공의를 행하셨다(3-4).
2.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된다.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만민을 밟았으며 내가 분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취하게 하고 그들의 선혈이 땅에 쏟아지게 하였느니라(6).”
이 세상의 참상을 바로잡기 위해 이 세상의 불의와 불신을 짓밟으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공의로 실현되는 때에 이루어진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의 찬송을 말하며 그의 사랑을 따라, 그의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7).” 궁극적으로 이와 같은 은총을 알기까지 그만큼의 시간은 고통이 따르거나 징계가 동반되어 목적을 이룬다. 가령 나를 돌이키실 때 동시에 나의 그릇된 삶을 물리치셨듯이 말이다.
하여, 첫째, 우리는 주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하지 않는 자녀다. 둘째,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려고 주님은 모든 환난에 동참하셨다. 셋째, 앞서 선지자들로 구원하시고, 그의 사랑과 자비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서 우리를 드시고 안으셨다(8-9). 하는 고백을 내 것이 되게 하신다. 곧 우리는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다. 그가 돌이켜 우리의 대적이 되사 친히 치셨다. 그러자 우리들이 ‘모세의 때’를 기억하였다. 그리고 비로소 묻기를 ‘우리 주가 어디 계시냐? 그들 가운데에 성령을 두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하고 찾게 되었다(10-11). 그렇게 그의 영광의 팔이 ‘모세의 오른손’을 이끄시듯 우리로 오늘 이 자리에 있게 하신다. 그의 이름을 영원하게 하려고 그들 앞에서 물을 갈라지게 하셨다. 즉 우리가 불가능하게 여겼던 일들을 행하시며 구원하셨다(12).
우리를 깊음으로 인도하시기까지 ‘광야에 있는 말 같이 넘어지지 않게 하셨다.’ 우리로 의지하던 것을 더는 의지하지 못하게 넘어뜨리신다. 그러시던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하고 오늘도 우리는 찾게 된다(13). 그럴 때 우리로 평화를 누리게 하신다. “여호와의 영이 그들을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 같이 편히 쉬게 하셨도다 주께서 이와 같이 주의 백성을 인도하사 이름을 영화롭게 하셨나이다 하였느니라(14).” 우리의 고백이 주와 화평할 때이다. 우리는 현실의 고난을 말할 때 미래의 소망을 간직한다.
3. 그는 공의를 말하는 이요,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이시다.
“에돔에서 오는 이 누구며 붉은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이 누구냐 그의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이가 누구냐 그는 나이니 공의를 말하는 이요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이니라(1).”
첫째, 그는 포도즙틀을 밟는 자이시다.
“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틀을 밟는 자 같으냐(2).”
이것은 원수를 진멸하는 자를 뜻이다.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계 14:19-20).”
둘째, 그는 심판을 홀로 행하신다.
“만민 가운데 나와 함께 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무리를 밟았고 분함으로 말미암아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튀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내가 본즉 도와 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 주는 자도 없으므로 이상하게 여겨 내 팔이 나를 구원하며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3, 5)”
마지막 심판 때에는 ‘고레스’의 협력할 일이 없고, 앗수르나 갈대아 같은 민족을 도구로도 사용할 일이 없으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홀로 이 모든 구원을 실행하실 것이다. 오롯이 하나님이 홀로 행하신다.
셋째, 최후의 승리는 그의 의로운 진노로 이루어진다.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튀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내가 본즉 도와 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 주는 자도 없으므로 이상하게 여겨 내 팔이 나를 구원하며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만민을 밟았으며 내가 분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취하게 하고 그들의 선혈이 땅에 쏟아지게 하였느니라(3b, 5-6).”
이 진노는 공의로 그가 친히 실행하시는 사랑이다. 곧 ‘내 팔이 나를 구원하며’라는 표현은 6절에서 “내가 노함으로”, “내가 분함으로” 이루어지는 이 땅의 공의다.
넷째, 원수를 진멸하는 행위는 그 백성의 구속을 완성한다.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가 구속할 해가 왔으나(4)”
이 일은 ‘원수 갚는 날’, ‘구속의 해’에 주께서 그 백성을 완전히 구원하시기까지 재림하시는 때까지 계속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 18:8).”
다섯째, 하나님의 진노로 비틀거리다가 세상은 망한다.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만민을 밟았으며 내가 분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취하게 하고 그들의 선혈이 땅에 쏟아지게 하였느니라(6).”
계속 강조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공의로 입증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그 사랑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를 용납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계 6:16).” 끝장에는 부끄러움뿐이다.
4. 주여 하늘에서 보옵소서.
“주여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며 주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에서 보옵소서 주의 열성과 주의 능하신 행동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주께서 베푸시던 간곡한 자비와 사랑이 내게 그쳤나이다(15).
현재의 재난과 역경의 문제에는 하나님의 은총이 개입되는 것이다. 이에 주의 은총은 첫째, 간절하게 기다리던 빗소리와 같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왕상 18:41).” 더하여지는 인생의 흉년으로 더는 소망이 없을 것 같은 때에 은총은 드러난다. 둘째, 향락에 빠졌을 때, 노랫소리 가운데 역경이 일어난다. “내가 네 노래 소리를 그치게 하며 네 수금 소리를 다시 들리지 않게 하고 너를 맨 바위가 되게 한즉 네가 그물 말리는 곳이 되고 다시는 건축되지 못하리니 나 여호와가 말하였음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26:13-14).” 곧 흥청망철 떠들고 시끄럽게 노래 부를 때 진노의 손길이 임하신다. 셋째, 주장과 주장이 대립하는, 무리의 떠드는 소리에서 난다. “사울이 제사장에게 말할 때에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 소동이 점점 더한지라 사울이 제사장에게 이르되 네 손을 거두라 하고 사울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백성이 모여 전장에 가서 본즉 블레셋 사람들이 각각 칼로 자기의 동무들을 치므로 크게 혼란하였더라(삼상 14:19-20).”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하고 떠들며 어지러울 때 주의 은총은 선명해진다.
이때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그들을 잊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하지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옛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사 63:16).” 즉 아브라함이나 이스라엘(야곱)은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자들이다. 이는 그리하여 더욱 잊지 않으심을 역설한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49:15).”
곧 우리가 냉소적이고 완고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할 때, 하나님께서는 은혜 베푸는 일을 멈추고 우리들로 하여금 방황하도록 내버려두신다! 이에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64:5).” 하여 우린 “주의 거룩한 백성”임을 알게 된다. “주의 거룩한 백성이 땅을 차지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우리의 원수가 주의 성소를 유린하였사오니(63:18).” 하여 더욱 주의 은총을 구한다. “우리는 주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는 자 같으며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지 못하는 자 같이 되었나이다(19).”
나오는 말
첫째, 우리의 구원은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 ‘에돔과 보스라’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승리하신 결과다. 바벨론은 이스라엘을 늘 괴롭혔고, 고레스는 그런 바벨론을 정복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로 에돔에서 고레스의 개입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시는지 보여주었다. 에돔은 실제 예루살렘 남쪽에 위치하였다. 우리 믿는 자와 근접한 곳에서 세상은 우리를 시험한다. 에돔에 대한 승리는 하나님의 영광의 공의가 실행되는 순간이다.
둘째, 우리는 이를 통해 하나님이 약속의 신실하심을 구원으로 이루시는 것을 본다. 하나님의 능력은 구원으로 입증되었다. 하나님은 순전히 홀로 승리하셨다.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다” 하심도 그런 이유다(3).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대적을 멸망시키실 때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직접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아무도 구원의 공적을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다. 곧 “내가 본즉 도와주는 자도 없었다” 하신 것도 그 때문이다(5). 하나님은 순전히 하나님의 열심에서 이 전쟁을 시작하신다.
아울러 ‘자기 백성들’과 ‘구원에 동참하도록 예정된 모든 자들’에 대해 하나님의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내 구속할 해가 왔도다.” 하심도,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출 12:41)” 곧 우리가 어디 있든지 주의 군대가 함께 주둔하신다. 그리고 해방시킬 날을 정하셨다.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단 9:2).”
하여 “그때가 왔다”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이제 나의 구원의 때가 왔도다. 자, 보라.’ 하심 같이 우리의 안전한 승리, 구원을 거두실 때 공의가 실천된다. 이에 오늘 본문은 공의를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감사하게 한다(7-14). 이는 그 이름을 영영케 하기 위해서다(12). 이는 오직 영광스러운 주의 이름을 위해서이다(14). 심판자 메시야를 전하고(1-6),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상기시킴으로(7-14), 우리들로 하여금 지치고 어려울 때 간절하게 기도할 수 있도록 하신다(15-19).
기도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구한다(15-17). 오늘도 ‘주의 성소’가 대적들로 인하여 유린당한다. 이를 회복시키기 위해, 그리하여 우리의 기도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시려고, “우리는 주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는 자 같으며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지 못하는 자 같이 되었나이다(19).” 하고 주 앞에 엎드리게 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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