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이사야 64장 /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

하현. 2025. 12. 4. 15:06

251207 주일

 

이사야 64장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

 

 

사 64:5 주께서 기쁘게 공의를 행하는 자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래 되었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사 64: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사 64:7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사 64:8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들어가는 말

 

하나님의 길에서 사랑은 공의를 따라 임하신다. 이에 에돔에 대한 심판의 예언과 이스라엘 백성의 기도를 묘사한 63장에 이어, 오늘은 계속해서 백성들의 호소를 기록하고 있다. 자신들의 현재 상태를 긍휼히 여겨달라고 기도하는 내용에서(63:15-19), 과거를 회상하며 용서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는 주의 긍휼하심과 은총을 바라는 데 회개가 전제돼야 한다. 우리의 회심과 회개는 동전의 양면 같다. 회개가 이루어져야 회심(돌이킴)도 가능하다. 돌이킴은 회개를 전제로 한다.

 

앞서 우리의 기도를 포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면,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의 기도가 구체적인 성격을 띤다. 곧 오늘 ‘회개 기도의 특징’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회개 기도의 구조>

 

1.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정한다.

이는 일반론적인 죄의 인정이 아니라, 자신의 부정함과 죄악과 더러움에 대한 직접적인 고백이다.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6).”

 

2. 주의 이름을 갈급해하며 갈망한다.

주의 이름을 부르고 주를 붙잡으며 그 얼굴 뵈옵기를 원한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7).”

 

3. 하나님을 아버지로, 창조주로 인정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요, 나를 지으신 주인이다.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8).”

 

4. 그러므로 주께 향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를 원한다.

우리의 신분이 백성인 것을 알리며 용서하시기를 구한다. “여호와여, 너무 분노하지 마시오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9).”

 

이렇게 오늘 본문은 우리의 호소가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주의 강림을 기도하고 있다(1-2).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고백한다(3-9). 그렇게 시온의 회복을 구한다(10-12). 오늘 본문의 기도는 다니엘서의 기도(단 9:4-19)와 공통적인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이다(1-2):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단 9:4).”

둘째, 죄의 고백이 담겨있다(6-9):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곧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맹세대로 되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단 9:5, 11).”

셋째, 주의 용서를 바란다(8-12):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단 9:17-19).”

넷째, 하나님과 우리의 언약관계를 상기한다(8-9):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단 9:4).”

 

하나님의 강림을 언급하면서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1)”, 이스라엘의 지나온 역사 가운데 괄목할 만한 사건으로, ‘산들이 진동하기를’ 곧 ‘하나님이 시내 산에 임재하셨던 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그런 가운데 십계명을 주셨다(출 19:18). 사실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의 역사 가운데 매우 비상한 시기에 일어난다. 그중에 시내 산에서의 하나님의 강림은 성경의 저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 위엄에 눌리는 대목이다.

 

“산들이 여호와의 앞 곧 온 땅의 주 앞에서 밀랍 같이 녹았도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흔들릴 것이로다(시 97:5, 99:1).” 사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무한하고 형용할 수 없는 차이가 있음을 우리가 묵상할 때, 두려움이 먼저 생겨나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우리는 주를 경외한다. 오늘 본문의 기도는 그 문맥이 하나님 앞에 우리의 무가치함을 고백하는 것이다. 곧 ‘우리의 죄’와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대조되면서 이방에 대한 여호와의 나타나심을 열망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본문이해

 

1. 주의 강림을 구하는 기도(1-2).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1).”

 

63장 기도내용으로, “주여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며 주의 거룩하고 영화로운 처소에서 보옵소서 주의 열성과 주의 능하신 행동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주께서 베푸시던 간곡한 자비와 사랑이 내게 그쳤나이다(15).” 이어 오늘 기도에서도,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사 64:1)” 하면서 하나님의 강림을 바란다. 하나님은 ‘하늘을 가르고’, ‘산들이 진동’ 하게 하심으로 만물이 주의 것임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 세상의 진정한 통치자가 되는 것을 나타낸다.

 

성경의 배경은 앗수르의 위협으로부터 여호와께서 진정한 통치자라는 사실이 위협받고 있음을 알린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속히 임재하심으로 역사의 주인이심을 보여주기를 간구한다. 곧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이 주의 임재를 바라는 정도와 비례한다. 마치 응급 환자가 다급하게 의사의 치료를 바라듯이 말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실질적인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이다.

 

2. 죄를 고백하는 기도(3-9)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6).”

 

우리가 어려움을 겪을 때,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주의 강림을 간절히 호소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고백하게 된다. 곧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주 앞에 아룀으로, 이제까지 기도가 하나님께 집중되었다면, 오늘 본문은 하나님 앞에 서는 우리의 상태를 돌아보게 한다. 즉 ‘자신의 본질을 깨달을 때 필연적으로 회개가 이러진다.’ 하나님 앞에 서는 모든 주의 자녀들은 우선적으로 용서를 구하며, 죄로 인한 절망적인 상태를 고백한다(3-7). 그러므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다(8-9).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토기장이와 진흙’으로 비유되었다. “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29:16, 외 30:14, 41:25).” 이 비유는 예레미야서에서도 사용되고 있다(렘 18:1-6). 바울도 이를 언급한 바 있다(롬 9:20-24). 이러한 비유는 각각의 의미가 뚜렷하다.

 

-심판의 상황: 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사 29:16). ② 그가 이 나라를 무너뜨리시되 토기장이가 그릇을 깨뜨림 같이 아낌이 없이 부수시리니 그 조각 중에서, 아궁이에서 불을 붙이거나 물 웅덩이에서 물을 뜰 것도 얻지 못하리라(30:14). ③ 내가 한 사람을 일으켜 북방에서 오게 하며 내 이름을 부르는 자를 해 돋는 곳에서 오게 하였나니 그가 이르러 고관들을 석회 같이, 토기장이가 진흙을 밟음 같이 하리니(41:25).

 

-긍휼을 구하는 상황: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사 64:8).”

 

-경고에 따른 상황: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렘 18:4).”

 

-하나님의 주권적인 상황: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롬 9:20)”

 

1) 우리의 의는 하나님의 구원과 전혀 상관이 없다(5-6)

곧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은 전혀 의가 없다. 6절,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곧 우리는 ‘더러운 옷’ 같이, ‘시든 잎사귀’ 같이 바람이 몰아간다. 이를 예수님은 ‘회칠한 무덤’이라 하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27).”

 

2)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께 철저히 의존할 때 가능하다(8-9)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바라고 있을 때야 말씀이 와 닿는다. 모든 인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할 때 죄의 형벌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바울은 그래서 무려 164회나 ‘그리스도 안에서’라 표현하였다.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엡 1:20).”

 

3. 시온의 회복을 호소한다(10-12).

이스라엘이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는 가운데(3-9), 결국 회복은 ‘시온의 회복’으로 완성된다. 우리 개인의 구원이 모여서 시온은 완결된다. 하나님의 세계는 공동체의 회복을 전제한다. 우리의 현재 상태를 묘사하고(10-11), 비참한 상황에 대한 호소를 담고 있다(12).

 

1) 우리의 참된 기쁨은 성전을 통한 교제로 가능하다: “우리 조상들이 주를 찬송하던 우리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전이 불에 탔으며 우리가 즐거워하던 곳이 다 황폐하였나이다(11).” 이는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빌 1:18).”

 

2)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공동체의 회복이다: “여호와여 일이 이러하거늘 주께서 아직도 가만히 계시려 하시나이까 주께서 아직도 잠잠하시고 우리에게 심한 괴로움을 받게 하시려나이까(12).”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공동체의 회복’을 갈망하는 가운데 자신의 죄를 회개함으로 주의 긍휼하심을 호소한다. 동시에 우리 모두의 회복을 간구하면서 하나님 나라는 ‘회복과 영광’을 공동체에서 중점적으로 부각시킨다(65-66장). 즉 교회 공동체의 회복은 신약교회의 탄생을 암시하였고,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있게 될 하나님의 나라를 완전하게 회복한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여호와여, 너무 분노하지 마시오며 죄악을 영원히 기억하지 마시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64: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