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214 주일
이사야 65장
하나님의 성산에서
사 65:1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사 65:2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사 65:3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
…
사 65:24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사 65:25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들어가는 말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눈물겹다. 우리가 믿는 신앙은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릴 찾아오신다. 우리는 산 속으로 들어가거나 은둔 생활을 하며 신의 경지에 이르려는 종교가 아니다. 우리는 전적인 은혜와 불가항력적인 사랑으로 주를 만난다. 이는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하는 주의 확정적인 섭리 가운데서 부르심을 받았다.
이에 오늘 우리는 ‘바벨론 포로 전의 죄에 대하여’ 그리고 ‘바벨론 포로 후 새로운 나라에 대하여’ 즉 하나님의 성산에서 이루어지게 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집중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죄에 대하여(1-7)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사 65:1).”
여기서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는 하나님을 멀리 떠난 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물음을 받았으며’, ‘찾아냄이 되었으며’ 하시는데, 이는 수동태로 우리 자신이 묻거나 찾은 게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물음이 되셨고, 찾아냄이 되셨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스스로 우리에게 ‘물음과 찾음을 당하였다’는 것이다.
이를 바울은 인용하며,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말하였고(롬 10:20)” 이어 오늘 이사야서는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사 65:2).” 하신 것을 바울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롬 10:21).” 하고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밝힌다.
1) 우리의 실상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사 65:3).”
첫째,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이방에서 우상을 숭배할 때 자연의 삼라만상을 무속적인 사고로 인식한다. 그런 가운데 마을마다 솟대를 세우거나 오래된 나무를 신령하게 여겼다. 선왕당(仙王當)을 짓고 성황신(城隍神)을 모신다. 성황신은 ‘서낭신’이라 하여 ‘마을과 토지를 지켜준다’고 믿었다.
둘째,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벽돌 위에 미신적 주문이나 형상 등을 새기고 그 앞에다 기도한다. 가령 절이나 무당집에 가면 벽마다 온갖 잡신의 형상이 그려져 있다. 형형색색 분칠을 하여 그 앞에서 분향(焚香)하였다. 시대마다 문화는 벽화와 문신에 의미를 둔다.
셋째,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 한 번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즉 ‘항상’ 하나님을 거역하였다.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신 32:21).”
2) 우상의 실상
“그들이 무덤 사이에 앉으며 은밀한 처소에서 밤을 지내며 돼지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것들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사 65:4)”
첫째, 무덤 사이에 앉으며: 곧 영매(靈媒)가 있어 묘지를 왕래했던 사실을 말한다.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주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사 8:19).” 이는 조상을 섬기고, 죽은 자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려는 오늘날도 영매술이라 할 제사제도는 여전하다.
둘째, 은밀한 처소에서 지내며: 여기서 ‘은밀한 처소’는 ‘지키다’, ‘숨기다’, ‘숨다’는 뜻으로 이방 신상을 안치해 둔 신전이나 지하 토굴을 뜻한다. 곧 우리 안에 저마다 자신의 주관과 판단을 모셔두는 방이 있다.
셋째, 돼지고기를 먹으며: 이는 불경한 짐승으로 이방인들은 돼지를 식용이나 제물로 사용하였다. 돼지고기를 먹었다는 것은 ‘여호와 신앙’을 포기하고 배교하였다는 뜻이다. 돼지는 이방 제사에 사용되고, 제물로 바쳐지는 영물(靈物)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자존감’이나 ‘자기주도적인 삶’으로 추앙한다. 지혜서에서나 예수님은 ‘개’와 ‘돼지’를 죄의 습성으로 간주하였다.
넷째, 가증한 물건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 이는 신들에게 바치는 희생 동물의 살을 토막 내어 바치는 의식이다. 돼지를 조각내어 드리기도 하였다. 즉 우리의 가증함은 그처럼 여러 갈래로 분할한다.
3) 하나님의 분노
“사람에게 이르기를 너는 네 자리에 서 있고 내게 가까이 하지 말라 나는 너보다 거룩함이라 하나니 이런 자들은 내 코의 연기요 종일 타는 불이로다(5).”
첫째, 너는 네 자리에 있고 내게 가까이 하지 말라: 이는 영적으로 오만하여 함부로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에 대한 경고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혐오셨다.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마 9:11).” 하며 가증스럽게 물었고,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18:11).” 하고 위선을 떨었다. 성경은 이르기를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유 1:19).” 우린 자주 이런 사람들을 보지만 자신도 어딘가에서 오만하고 가증스럽다.
둘째, 내 코의 연기요, 불이로다: ‘코의 연기’는 분노를 뜻한다. 분노는 강한 호흡으로 씩씩거리게 한다. 오만하고 가증스러운 태도는 역겨운 행동을 드러내고 우린 이에 분노한다. 온전히 주를 섬기고 바라는 자라면 주의 이름이 망령되이 불릴 때, ‘코의 연기’ 같이 맵고 불쾌하게 느낀다.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것에 우리도 분노한다.
4) 성경의 경고
“보라 이것이 내 앞에 기록되었으니 내가 잠잠하지 아니하고 반드시 보응하되 그들의 품에 보응하리라(6).”
첫째, 이것이 내 앞에 기록되었으니: 곧 오늘 우리에게는 기록이 완성된 성경이 있다. 기록된 바, 저들 이방 신에 대한 제사와 이에 따른 처벌에 대한 예언과 경고가 담겨있다. 이를 묵상하며 우리는 스스로를 분별하고 근신한다. 깨어서 주를 경외하려고 성경을 가까이 한다.
둘째, 그들의 품에 보응할지라: 여기서 ‘품’은 물건 따위를 넉넉하게 넣기 위해 길게 늘어뜨린 옷의 앞자락이다. 우리의 탐욕과 과욕을 의미한다. 품이 넓어 더 많이, 더 오래 가지기를 원한다. 하여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서야 어찌 그의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잠 6:27).”
이상과 같이 이사야는 오늘 “너희의 죄악과 너희 조상들의 죄악은 한 가지니 그들이 산 위에서 분향하며 작은 산 위에서 나를 능욕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먼저 그들의 행위를 헤아리고 그들의 품에 보응하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사 65:7).” 하고 그에 따른 결국은 하나님의 엄중한 징벌이 있을 것을 알린다. 이와 같은 말씀에 무감각하다면?!
2. 새로운 나라에 대하여(17-25)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 후 평화로운 정착을 하게 되었다. 이는 영적으로 ‘새로운 나라’ 곧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한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갈 4:26).” 하는 약속은 오늘에도 이루어지고 있는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 곧 ‘하나님의 성산’에 대한 성취를 뜻한다.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위안을 얻는다. 우리는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고 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사 65:17).” 하신 오늘의 말씀을 바울은 우리 자신들로 놓았고, ‘새로운 피조물’로 간주하였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그리하여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전 3:21, 23).” 하고 전하면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벧후 3:13), 우리는 오늘을 산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노라’ 하심을 목격하고 체험하여 증인된 삶을 산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계 21:5).
나오는 말
1) 교회는 성도가 속한 영원한 기쁨이며 즐거움이다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사 65:18).” 그렇게 우리들로 ‘기쁨을 삼으신 뜻에 따라’ “이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먹을 것이로되 너희는 주릴 것이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마실 것이로되 너희는 갈할 것이니라 보라 나의 종들은 기뻐할 것이로되 너희는 수치를 당할 것이니라(13).” 하며 우리의 삶은 간증을 가지게 된다.
2) 교회는 하나님의 기쁨이다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19).” 그리하여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 3:17).”
3) 교회는 죽음의 슬픔이 없을 것이다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사 65:20).” 그리하여 울부짖는 소리도 없을 것이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19)” 슬픔도 없을 것이다. 하여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4).”
4) 교회는 거룩한 산성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모형이다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 안에 살겠고 포도나무를 심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사 65:21).” 그러므로 “그들이 건축한 데에 타인이 살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이 심은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내가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이며(22).” 즉 ‘나무의 수한’은 영원한 시간을 내포하여 우리는 같이 누릴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24-25).” 아멘.
* 8절부터 16절까지는 타락하고 가증한 선민들과 그들 가운데 돌이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비교한다. 먼저 6-7절에 이어 징계 중에 남은 자들에 대한 보존과 약속이다. 11-12절은 8-10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남은 자들’과 달리 ‘하나님을 떠난 악한 백성들’의 심판을 대조적으로 알린다. 13-15절은 ‘하나님의 종’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남은 자들’과 ‘악인들’이 심판 날에 철저히 구별되어서 결국 서로가 결과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밝힌다. 그리하여 16절에서 ‘새롭게 회복된 선민’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한다. 개인적인 묵상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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