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
렘 8:11, 21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시 29:11
사는 게 너무 힘들 때 저마다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한다. 이는 죽음으로 평안이 찾아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침묵 같은 고통으로 오히려 ‘무덤으로 내려가는 자 같다’고 다윗은 표현하였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
여호와여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영이 피곤하니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을까 두려워하나이다
(시 28:1, 143:7).
여기 살아있는 자들이 죽은 자의 뼈를 끌어내어 섬기고 경배하는 것 같이 “이 악한 민족의 남아 있는 자, 무릇 내게 쫓겨나서 각처에 남아 있는 자들이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원하리라.” 하고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경고하시고 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 8:3). 이는 앞장 7장 끝부분에서, “이 백성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을 쫓을 자가 없을 것이라(33).” 하신 것에 이어진다.
이는 곧 하나님의 심판으로 유다에 침략해 들어온 자들의 악행이다. 이들은 패배자들을 더욱 모독하기 위해 왕들과 귀족들, 그리고 선지자들과 일반 시민들의 무덤을 파헤쳤다. 그 뼈들을 끄집어내어 욕보였다. 이스라엘에게 있어 시체가 매장되지 못한 채 버려지는 것은 큰 저주와 수치로 간주되었다. 무덤이 파헤쳐지는 것은 이와 같은 것이다. 바벨론 군대에 의해 이와 같은 만행이 저질러질 것을 예언한다. 유다 백성을 능멸하기 위한 목적이다. 뿐만 아니라 외에 무덤 속에 묻힌 패물들을 약탈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때에 사람들이 유다 왕들의 뼈와 그의 지도자들의 뼈와 제사장들의 뼈와 선지자들의 뼈와 예루살렘 주민의 뼈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1).” 이를 그들이 사랑하던 것 앞에 펼쳐놓고 능멸 당하게 할 것이다. “그들이 사랑하며 섬기며 뒤따르며 구하며 경배하던 해와 달과 하늘의 뭇 별 아래에서 펼쳐지게 하리니 그 뼈가 거두이거나 묻히지 못하여 지면에서 분토 같을 것이며(2).” 그와 같이 우리가 사랑하고 귀히 여기며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던 것들 앞에 우리의 결국은 수치뿐일 것을 강조한다.
곧 우리가 사랑하고 섬기며 경배하던 이 세상의 소중하고 사랑하였던 것 앞에 ‘흩어진 뼈들을 무관심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버려질 것이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은 포로로 잡혀갈 것이라 경고한다. 그 때문에 이 뼈들을 주워 다시 장사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 뼈들은 지면의 분토처럼 버려진다. 그리하여, “이 악한 민족의 남아 있는 자, 무릇 내게 쫓겨나서 각처에 남아 있는 자들이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원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
결국 산 자가 죽은 자들을 부러워할 고통의 날들이 찾아올 것이다. ‘남아 있는 자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원하리라.’ 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경고의 말씀인가? 그럼에도 도처에서 살육이 자행되고 죽은 자의 시체가 무덤에서 끌어내어져 팽개쳐지는 등 하나님의 심판이 아무리 가혹할지라도 앞으로 하나님께서 살아남은 자들에게 내리실 징벌에 비하면 이는 오히려 경미하다는 것인데… 이와 같은 예언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자는 복이 있다. 아직 살아서 사는 동안에 이로써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은혜이다.
나는 가장 두려워하면서도 되새기게 되는 말씀이 “롯의 처를 기억하라(눅 17:32).” 하시는 것이다. 다 된 줄 알고, 구원 받았다고 여기며 안이하다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순간에 정지되는 삶이다. 즉, 살아남은 자들의 생은 죽은 것보다 훨씬 더 비참할 것이란 오늘 본문의 말씀을 두려움과 떨림으로 듣고 돌이켜서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이 은혜이다. 하나님의 수많은 권고와 견책을 무시하고, 앞서 보내신 선지자들의 예언을 허투루 들은 것에 대한 결과가 얼마나 끔찍하고 견딜 수 없는 심판 그 이상의 고통이란 것을 깨닫게 하신다.
이 땅에서 오늘을 사는 동안 하나님을 무시하며, 온갖 악행-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모든 배역의 삶에 대하여… 육신의 배만 불리던 자들에게 최종적 영원한 심판은 이보다 더 참혹할 것이다. 유다의 선한 왕으로 지목되는 요시야 왕은 우상 숭배하는 제사장들의 해골을 불사르면서 하나님의 사람의 뼈는 경건히 보호하였다. “요시야가 이르되 내게 보이는 저것은 무슨 비석이냐 하니 성읍 사람들이 그에게 말하되 왕께서 벧엘의 제단에 대하여 행하신 이 일을 전하러 유다에서 왔던 하나님의 사람의 묘실이니이다 하니라 이르되 그대로 두고 그의 뼈를 옮기지 말라 하매 무리가 그의 뼈와 사마리아에서 온 선지자의 뼈는 그대로 두었더라(왕하 23:18).”
참혹한 현실을 아삽의 시에서 읽을 수 있다.
하나님이여 이방 나라들이
주의 기업의 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나이다
그들이 주의 종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밥으로,
주의 성도들의 육체를 땅의 짐승에게 주며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방에 물 같이 흘렸으나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나이다
(시 79:1-3).
이러한 결과에 대해 오늘 본문은 그 원인을 제시한다. 첫째, 우리는 그것들을 우상으로 사랑하였고 섬겼다. 곧 우리가 살면서 흔히 애착인형 같이 사랑하는 것들이 있다. 이에 대해 죄인 걸 알면서도 관대하고 존중히 여기고 기뻐하는 삶은 믿는 자들도 다르지 않다. 사랑하였을 뿐 아니라 이를 섬겼다. 그것들로 영화가 깃들고 평화가 온다고 여겼다. 우상 숭배란 이처럼 은연중에 빌고 소원한다. 그것으로 흡족하다 생각한다. 둘째, 하나님 외의 것으로 숭배하였다. 우리는 아무런 주저함 없이 교회 안으로 이를 끌어들인다. 은연중에 미신적인 행위처럼 예배의식을 전락시키기도 한다. 누구를 해하거나 공격할 때 주의 이름으로 이러한 일을 자행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셋째, 우리는 그것들에게 순복하고 산다. 교회가 세상을 모방하고 닮고자 노력한다. 사람들의 기호에 따라 교회를 꾸미고 더 나은 편의시설을 제공하느라 안달이다. 마치 대형마트와 같이 온갖 사람의 필요를 채우려고 혈안이 된 것 같다. 넷째, 그렇듯 예배의식은 신탁으로 삼듯이 경건의 모양과 화려한 장식과 형식으로 꾸려지기 시작하였다. 어떤 의식이나 사물에 신적 영광을 의미부여하여 거룩히 여긴다.
이처럼 오늘 본문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특히 믿는 자들에 대한 심판의 원인과 결과를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이 총체적 신앙의 오염을 집중적으로 고발하고 내용으로 앞서 7장에서부터 앞으로 10장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악행을 의식화하고 고집하여 회개하지 않는 성도들을 향하여 오늘 본문(4-12)은 그에 따른 절망과 선지자의 비탄을 기록하고 있다. 이에 13-17절에서는 먼저 종교 지도자들에 대해 가증하고 거짓된 증거를 삼가게 한다. 오늘도 저들은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11).” 한다.
앞서도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7:4)”고 경고하신 바 있다. 그런데 여전하여서 문제는 소위 지도자들이다. 하여 바울은 항상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당부하였다. 그것은 저들 한 사람의 잘못된 가르침이나 결정이 그에게 부과된 교회나 그 교인들의 영혼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하여 또한 조심하라고 하였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 2:2).” 자칫 우리는 무분별하게 저들의 가르침에 따른다.
그래서도 말씀에 분별력을 가지고 한 사람을 우상화하듯 대표해서는 안 된다. 오늘 날 우리 사회도 그렇고 전세계적으로 종교지도자들이 거론될 때마다 덕이 없다. 세상 앞에서 막말을 하고 정치적인 입장으로 세상과 결탁하여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된다. 이에 “그 가지들은 강하여 권세 잡은 자의 규가 될 만한데 그 하나의 키가 굵은 가지 가운데에서 높았으며 많은 가지 가운데에서 뛰어나 보이다가… 불이 그 가지 중 하나에서부터 나와 그 열매를 태우니 권세 잡은 자의 규가 될 만한 강한 가지가 없도다 하라 이것이 애가라 후에도 애가가 되리라(겔 19:11, 14).”
이는 우리의 싸움이 단순히 이 땅의 것이 아님을 성경을 가르친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그러므로 “모퉁잇돌이 그에게서, 말뚝이 그에게서, 싸우는 활이 그에게서, 권세 잡은 자가 다 일제히 그에게서 나와서 싸울 때에 용사 같이 거리의 진흙 중에 원수를 밟을 것이라 여호와가 그들과 함께 한즉 그들이 싸워 말 탄 자들을 부끄럽게 하리라(슥 10:4-5).” 오늘 우리가 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온갖 거짓 선동과 개인의 견해가 난무하여 성경을 재해석하고 그릇된 길로 확산시키는데, 이를 위해서도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그 지도자들을 놓고 주 앞에 기도해야 한다.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딛 3:1-2).”
그런데 어찌 교회가 나서서 ‘너는 어느 쪽이냐?’ 하고 묻는 세상에서 덩달아 장단을 맞추듯 춤을 추는지 모르겠다. 행여 우리가 저들 앞에 섰을 때 두려울 것 없다. 꿀리지 않는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강조하시길,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눅 12:11).” 우린 믿음의 사람들로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12).” 괜히 눈치보다 어느 쪽으로 붙을까 하여 자신들의 이해득실을 따져 진영논리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 이로 인하여 오늘 본문은 비통해한다.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렘 8:21).”
이는 일차적으로 예레미야가 침략군에 짓밟히는 동포의 모습에서 연민과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우리 주님의 마음으로 느껴진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그러므로 두려워하되 낙심하지 말고, 이와 같은 예언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이켜 바로 세워야 한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는, 교회는 종종 치명적인 질병에 걸렸으나 주께서는 그때마다 치유하셨고 다시 회복시키셨다. 그러기 위해 환자 스스로 질병을 인정하고, 곧 회개함으로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치유 계획과 은혜에 순종하고 고질적인 병폐인 죄악에서 돌아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것 같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눅 12:15, 20).” 자칫 스스로 붙든 것이 자신을 옭아매고, 자신이 파놓은 구덩이에 스스로가 묻힐 수 있다. 지금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에 대하여 우리가 주 앞에 내려놓고 주께 맡길 때,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시 31:19).
결국 우리로 주를 경외함으로 주 앞에 더 정직하고 성실하기를. 그럴 때 바울의 고백은 내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그러므로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 하심을 토대로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이는 그의 손으로 행한 대로 그가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사 3:11).” 이와 같은 말씀이 당장은 와 닿지 않아서 농담으로나 들릴지 모르겠으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하고 물으시는 듯하다. 그러므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하실 때 오늘 우리는 “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잠 19:3).” 이런 자리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1b-2).”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내 마음이 병들었도다(렘 8:18).”
할 때 우리가 주의 말씀 앞에서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 5:14).” 하심을 붙들고,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시 29:1-2).
오늘도 말씀 앞에서 느끼는 바,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4-5).
여호와의 소리, 곧 말씀으로 나를 붙드심이니,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시키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을 낙태하게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의 성전에서
그의 모든 것들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
(7-9).
하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1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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