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하현. 2025. 12. 10. 04:42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에서 망하리라 하라

렘 10:11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시 31:3

 

 

우리가 온전히 주를 바랄 수 있는 게 복이다. 주가 내 안에서 믿어지는 일이 기적이다. 이성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된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나의 구주로 모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상 숭배는 죄악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를 알리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여러 나라의 길을 배우지 말라 이방 사람들은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거니와 너희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여러 나라의 풍습은 헛된 것이니 삼림에서 벤 나무요 기술공의 두 손이 도끼로 만든 것이라(2-3).” 이를 지목하여 말함은 ‘이스라엘 집’을 향해서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힐 것을 예언하면서 우상 숭배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우상 숭배자의 어리석음을 설명한 것은 바벨론에 끌려 갈 유대인들이 거기서 우상 숭배의 유혹을 물리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곧 바벨론에서 당하는 고초의 목적이 그들의 우상 숭배를 치료하는 것이다. 오늘 예레미야 선지자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교도의 사신 숭배 관습을 경계시키고 있다.

 

바벨론에 끌려가 있는 자들뿐만 아니라 남아 있는 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우상의 유혹에 빠질 것이다. 이는 우리가 눈으로 안 보이는 하나님보다 눈으로 보이는 신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에 말씀은, “여러 나라의 풍습은 헛된 것이니 삼림에서 벤 나무요 기술공의 두 손이 도끼로 만든 것이라 그들이 은과 금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흔들리지 않게 하나니 그것이 둥근 기둥 같아서 말도 못하며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이 메어야 하느니라 그것이 그들에게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느니라(3-5).” 이 얼마나 헛되고 처량한 일인가?

 

오늘에도 여전하여 이를 팔찌나 목걸이, 벽걸이 장식 등으로 꾸며 의미를 부여하고 그 앞에 절한다. 이에 ‘이스라엘 집’들이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 그들이 무덤 사이에 앉으며 은밀한 처소에서 밤을 지내며 돼지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것들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 사람에게 이르기를 너는 네 자리에 서 있고 내게 가까이 하지 말라 나는 너보다 거룩함이라 하나니 이런 자들은 내 코의 연기요 종일 타는 불이로다(사 65:3-5).”

 

어제도 살폈듯이 첫째,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이는 이방의 우상 숭배를 뜻한다. 이방인들은 자연을 무속적인 사고로 인식하였다. 그런 가운데 행위는 마을마다 솟대를 세우거나 오래된 나무를 신령하게 여겼다. 선왕당(仙王當)을 짓고 성황신(城隍神)을 모신다고 했다. 성황신은 서낭신이라 하여 마을과 토지를 지켜준다고 믿었다. 둘째,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이는 벽돌 위에 미신적 주문이나 형상 등을 새기고 그 앞에 기도하는 것이다. 가령 절이나 무당집에 가면 벽마다 온갖 잡신의 형상이 그려져 있다. 형형색색의 분칠을 하여 그 앞에서 분향(焚香)하였다. 셋째,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 하심은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였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신 32:21).”

 

하고 택하신 자들, ‘이스라엘의 집’을 향해 강조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이 무덤 사이에 앉으며/ 은밀한 처소에서 밤을 지내며/ 돼지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것들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사 65:4)” 하였는데, 첫째, 무덤 사이에 앉으며: 이는 곧 영매(靈媒)가 있어 묘지를 왕래했던 사실이다.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주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8:19).” 이는 조상을 섬기고, 죽은 자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영매술이다.

 

둘째, 은밀한 처소에서 지내며: 할 때 여기서 ‘은밀한 처소’는 ‘지키다’, ‘숨기다’, ‘숨다’의 뜻으로 이방 신상을 안치해 둔 신전이나 지하 토굴에 머물렀다는 의미다. 또한 셋째, 돼지고기를 먹으며: 이는 당시 불경한 짐승으로 이방인들은 돼지를 식용이나 제물로 사용하였다. 이스라엘은 일절 금하였다. 돼지고기를 먹었다고 하는 것은 ‘여호와 신앙’을 포기하고 배교하였다는 증거다. 돼지는 이방 제사에 사용되었고, 제물로 바쳐진 것을 의미한다. 이방에서 이들은 이를 영물(靈物)로 여겼다. 넷째, 가증한 물건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 이는 신에게 바치는 희생 동물의 살을 여러 토막 내어 바치는 의식이다. 돼지를 조각내어 드리기도 하였다. 가증함을 의미한다.

 

이에 “사람에게 이르기를 너는 네 자리에 서 있고 내게 가까이 하지 말라 나는 너보다 거룩함이라 하나니 이런 자들은 내 코의 연기요 종일 타는 불이로다(5).” 하고 이사야 선지자는 전하는데, 첫째, 너는 네 자리에 있고 내게 가까이 하지 말라: 하는 것은 영적으로 오만으로 함부로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당시 위선적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심하게 꾸짖으셨다. 그 이유는 저들의 위선과 오만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마 9:11).” 하면서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18:11).” 마치 자신들은 다른 듯 가증스러웠다. 그런데 성경은 일컫기를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유 1:19).” 하고 정의하였다.

 

둘째, 내 코의 연기요, 불이로다: 할 때, ‘코’는 분노를 뜻한다. 분노는 강한 호흡으로 씩씩거리게 한다. 이방 제사장들의 역겨운 행동이 온전히 주를 섬기고 바라는 우리에게 코끝의 연기 같이 맵고 불쾌하다.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짓이다. 이와 같은 이교도적인 행위와 우상숭배는 이어져왔다.

 

하여 “보라 이것이 내 앞에 기록되었으니 내가 잠잠하지 아니하고 반드시 보응하되 그들의 품에 보응하리라(6).” 하고 이사야는 덧붙였다. 첫째, 이것이 내 앞에 기록되었으니: 이는 오늘 우리에게 성경에 기록된 바 같이 저들에게도 이방 신에 대한 제사 금지와 이를 어길 때 따를 처벌에 관한 경고의 말씀이 율법에 기록되어 있었다. 둘째, 그들의 품에 보응할지라: 하시는데 ‘품’은 물건 따위를 넉넉히 받기 위해 길게 늘어뜨린 옷의 앞자락을 가리킨다. 곧 우리의 탐욕과 과욕을 의미한다. 저마다 품이 넓게, 더 많이 갖고자 하고 더 오래 품고자 하는 것들에 대하여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서야 어찌 그의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잠 6:27).”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너희의 죄악과 너희 조상들의 죄악은 한 가지니 그들이 산 위에서 분향하며 작은 산 위에서 나를 능욕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먼저 그들의 행위를 헤아리고 그들의 품에 보응하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사 65:7).” 이에 결국은 ‘이스라엘의 집’ 그들의 죄악이 결국 하나님의 엄중한 징벌이 되어 임하기까지 세대에서 세대를 지나면서 축적되어 왔음을 지적한다.

 

이와 같은 말씀으로 오늘 말씀은 이어진다. “여호와여 주와 같은 이 없나이다 주는 크시니 주의 이름이 그 권능으로 말미암아 크시니이다(렘 10:6).” 이는 우리의 고백과 간구다. 세상, 곧 이방의 길과 관습을 따르지 말라는 엄숙한 명령이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집은 이와 같은 말씀을 듣고 받들어야 한다. 즉 열방의 길을 배우지 말고, 그것을 덩달아 시인하지 말고, 그것에 대해 냉담히 하여야 한다. 생각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그 길을 모방하고 교회에 들여 교회를 세속화하는 데 무감각하지는 않은지? 그들의 풍습을 은연중에 답습하여 우리 속에 스며들게 하지는 않는지? 우리는 오늘도 이방 풍습을 부지중에 행하고 따른다.

 

낮 동안에는 이사야서를 설교원고로 준비하고, 아침에는 이처럼 예레미야서를 묵상하며 글로 쓰면서 서로 같은 한 목소리를 듣는 듯하다. 곧 하나님께서 가르치시는 길은 열방의 길이 거짓된 신을 섬기는 자리인 것을 알게 한다. 은연중에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는 저들의 제의(祭儀)가 배어있다. 여러 문양과 서로의 격식 등 생활 속에 너무 많은 행위들이 그렇듯 무의식적으로 자행되고 있었다. 그러면서 참되신 하나님을 예배하려고 생각한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다. 이에 대하여 일찍이 밝힌 바,

 

“너는 스스로 삼가 네 앞에서 멸망한 그들의 자취를 밟아 올무에 걸리지 말라 또 그들의 신을 탐구하여 이르기를 이 민족들은 그 신들을 어떻게 섬겼는고 나도 그와 같이 하겠다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는 네가 그와 같이 행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은 여호와께서 꺼리시며 가증히 여기시는 일을 그들의 신들에게 행하여 심지어 자기들의 자녀를 불살라 그들의 신들에게 드렸느니라(신 12:30-31).”

 

즉 일월성신을 경배하는 것이 이방의 길이다. 자연에 신적 영광을 바치고, 그것들로부터 신적 은총을 기대하며, 하늘의 징조가 길조이냐 흉조이냐에 따라 자기들이 신들에게서 지지를 받거나 못 받거나 한다고 생각하는 게 오늘도 여전하다. 우리가 흔히 운이 좋았다고 할 때, 하나님의 섭리를 천운(天運)으로 동일시하여 같은 뜻으로 받기도 한다. 그러나 엄연히 하늘의 징조를 살펴 일식이나 월식, 혹성의 접합과 충돌 등 온갖 천체의 기현상을 놓고 이를 신적으로 여기며 받드는 것이 우상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하늘의 징조를 두려워하며 별들을 신으로 경외하는 것을 몹시 싫어하셨다. 그런데도 오늘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리 여겨 감각적으로 하나님을 여느 신들과 같이 여긴다.

 

분명히 오늘 본문은 이방인의 이와 같은 짓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를, “그들이 은과 금으로 그것에 꾸미고 못과 장도리로 그것을 든든히 하여 흔들리지 않게 하나니 그것이 둥근 기둥 같아서 말도 못하며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이 메어야 하느니라 그것이 그들에게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하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느니라(4-5).” 그것은 본래 삼림에서 벤 나무였다. 장인이 나무를 사방으로 잘라 톱으로 켜서 형태를 만든 것이다. 그것에 은과 금으로 꾸미고 금박이나 옻칠을 입혀, 금실 은실 또는 박사로 장식한다. 그것을 지정한 장소에 놓고 못과 장도리로 든든히 하여 넘어지거나 도둑맞지 않게 한다. 그리고 그 앞에 절하며 복을 빈다.

 

그런 식으로 우리가 믿고 섬기며, 나아가 하늘의 징조와 마찬가지로 두려워한다. 이를 두고 “그들은 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것이니 우상의 가르침은 나무뿐이라(8).” 하며 오늘 말씀은 지적한다. 그것은 거짓을 가르치며 하나님께 대한 거짓으로 대적한다. 그것은 헛된 교훈이다. 나무뿐이다. 은과 금으로 꾸며놓은 우상이다. 이러한 신상이 실은 교회 안에도 은근히 많다. 그러나 “기술공의 두 손이 도끼로 만든 것이라… 이는 정교한 솜씨로 만든 것이거니와(3, 9).” 우리가 알 것은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이방이 능히 당하지 못하느니라(10).”

 

사실 이러한 비교가 유치하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우상이라 운운하여서 같이 생각하는 이방 신상과 나란히 비교 대조 유추하는 일 자체가 가소롭다. 이는 그저 거짓일 뿐이다. “사람마다 어리석고 무식하도다 은장이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가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14).” 곧 “그것들은 헛 것이요 망령되이 만든 것인즉 징벌하실 때에 멸망할 것이나(15).” 하고 단정하였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아파트를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서면 온갖 절집, 점집, 무슨 도령, 무슨 신전 하는 따위의 집들이 즐비하다. 어제도 아내와 그 앞을 지나면서 옛날 생각이 나는지 자신은 익숙하면서 무섭기도 하다면서 멀찍이 떨어져 걷기도 했다. 하긴 어릴 적 생각을 하면 곳곳에 무속적이고 미신적인 요소가 많았다. 강원고 조부 댁에 가면 심지오는 변소에도 귀신밥이 있었다. 장독대에도 대문간 옆에도 숟가락을 꽂은 흰쌀밥이 놓여 있곤 했다. 그만큼 우리 인간의 연약함을 방증한다. 마을 곳곳에도 온통 그러한 의미의 신령한 나무나 돌이나 서낭당이 있었다.

 

바울은 그 원인을 우리가 하나님을 무시하면서 생기는 현상으로 보았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롬 1:21, 28).” 곧 우리의 허망한 마음은 하나님을 모시기 싫어하는 자리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오늘 이처럼 말씀으로 듣고 묵상함으로 깨달아야 한다.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2-23).” 그러니 어쩔 것인가? 우선은 하나님께 대해 깊고 두려운 경외감을 가져야 한다. 오늘 본문에서 이를 아뢴다. “여호와여 주와 같은 이 없나이다 주는 크시니 주의 이름이 그 권능으로 말미암아 크시니이다 이방 사람들의 왕이시여 주를 경외하지 아니할 자가 누구리이까 이는 주께 당연한 일이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들의 지혜로운 자들 가운데 주와 같은 이가 없음이니이다 말한다(렘 10:6-7).”

 

그러므로 우리의 고함과 찬송은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하는 말씀으로 우리의 길라잡이를 삼아야 한다(계 15:3-4). 우리로서도 이와 같은 고백과 찬송이 드려지는 삶이어야 한다. 생활이 힘들고 여러 고초가 우리를 괴롭힐 때, 사람은 약하여서 누구라도 무엇이든 의지하고 기대고 싶은 것일 텐데… 이를 파고드는 사탄의 권세에 당당히 맞서야 한다.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나의 기도를 기쁘게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

(시 104:33-34).

 

이에,

 

“그가 서신즉 땅이 진동하며 그가 보신즉 여러 나라가 전율하며 영원한 산이 무너지며 무궁한 작은 산이 엎드러지나니 그의 행하심이 예로부터 그러하시도다… 산들이 주를 보고 흔들리며 창수가 넘치고 바다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높이 들었나이다(합 3:6, 10).”

 

하물며 자연 미물도 주를 알건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시고, 주의 자녀로 ‘이스라엘 집’으로 삼으신 이들로 우리가 주를 온전히 바라지 못한다면 이보다 더 비극적일 수 있을까?

 

안개를 땅 끝에서 일으키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를 만드시며

바람을 그 곳간에서 내시는도다

(135:7).

 

이에 “네가 눈 곳간에 들어갔었느냐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 내가 환난 때와 교전과 전쟁의 날을 위하여 이것을 남겨 두었노라(욥 38:22-23).” 하나님이 우리 수준에 맞춰 반박하신다. 이러한 현상이나 논의 자체가 유치하고 부끄럽다. 결국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것은, “목자들은 어리석어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므로 형통하지 못하며 그 모든 양 떼는 흩어졌도다(렘 10:21).” 하여 오늘 우리의 이 무지몽매함으로 이러한 헛된 논의와 망상으로 하나님께 향한 온전한 우리의 신앙이 허비된다. 던져 버려야 한다. 이러한 관심과 헛됨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경배하려고 만들었던 은 우상과 금 우상을 그 날에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지고 암혈과 험악한 바위 틈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땅을 진동시키려고 일어나실 때에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리라(사 2:20-21).”

 

하여 주 앞에 아뢰기를,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

(시 31:1).

 

나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고하기를,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3).

 

하여서,

 

내가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들을 미워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나이다

(6).

 

세상이 아무리 어떠하다 해도,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14-15).

 

그리하여,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23-2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