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성읍에 대하여 선언한 모든 재앙을 이 성읍과 그 모든 촌락에 내리리니 이는 그들의 목을 곧게 하여 내 말을 듣지 아니함이라 하시니라
렘 19:15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서 거두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시 40:11
경고하시고 기다리시고 다시 종을 세워 전하게 하심으로 경고하시고 기다리시기를 수도 없이 하신다. 이는 오늘에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부패와 타락은 경계에 경계를 더하고 교훈과 교훈을 더하여 일을 더 복잡하게 한다.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기에는 늑장이고 우상을 따르는 데는 신속하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는 따라서 경계에 경계를 다하고 교훈에 교훈을 더하사,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사 28:10).” 이를 돌이키지 않는 자들을 변명할 수 없게 하신다. 이를 건축할 때에 사용하는 표현으로 바울 사도는 주의 은총이 충만하심을 나타내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8-19).”
곧 우리가 경계에 경계를 더하고 교훈에 교훈을 합하면서 점점 더 멀리, 깊이, 높이, 넓게 악에 물들었다 해도 주의 은총은 그 모든 것보다 더없이 한없음으로 충만하시다. 이에 오늘 말씀은 우리로 한 영혼을 구하는 데 있어 지혜가 어떠함을 알게 한다. 곧 오늘의 옹기를 깨뜨려 ‘예루살렘’이 파괴되었음을 알게 한다. “너는 함께 가는 자의 목전에서 그 옹기를 깨뜨리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 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와 같이 내가 이 백성과 이 성읍을 무너뜨리리니 도벳에 매장할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하리라(렘 19:10-11).”
이와 같은 경고를 듣고 돌이킬 수 있는 것이 지혜다. 은혜란 “그것을 듣는 모든 자의 귀가 떨리니(3).”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으로 지혜가 그 안에 작동할 때이다. 곧 “의인은 영영히 이동되지 아니하여도 악인은 땅에 거하지 못하게 되느니라(잠 10:30).” 이에 대하여 예수님도 팔복의 교훈으로 이르시길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곧 주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온유할 때에 현재 우리에 맡기신 이 모든 상황을 딛고 설 수 있다.
이를 오늘 복음은 증인을 데려가게 하신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가서 토기장이의 옹기를 사고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과 하시드 문 어귀 곁에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서 거기에서 내가 네게 이른 말을 선포하여(렘 19:1-2).” 어른이라 하면 자신의 의사로 판단하고 증언할 수 있는 자이다. 저들과 ‘가서 토기장이의 옹기를 사고’ 하실 때, 옹기는 목이 좁고 윤이 나는 병의 용도로 만들어진 그릇이다. 목이 좁은 오지병으로 오짓물을 발라 만든 것으로 물이 쏟아져 나올 때 들리는 소리에서 착안한 이름이다.
불에 구어진 오지병은 부분적으로 고칠 수 없기 때문에 토기장이가 마음에 들지 않게 구어진 것은 깨뜨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다른 그릇으로의 용도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옹기라고 하였는데 옹기는 질그릇을 모두 포함하여 그 의미가 직접적이지 않다. 오지병은 말 그대로 주둥이가 작고 목이 길어 밑으로 항아리 모양의 술병이나 물병의 용도로 만든 것이다. 곧 예루살렘은 그렇듯 뚜렷하고 엄연한 용도의 성읍이라 하겠다. 온전히 하나님만을 섬기는 곳으로 여느 성읍들과 달리 아무나 들어와 정착하다 지어지는 동네와는 다르다. 그런 점에서 오지병이 그 모양이 틀어지거나 터지면 전혀 쓸모가 없다. 다른 용도의 그릇으로도 쓸 수 없어 깨어버린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첫 구절에서 오지병, 곧 옹기를 사서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과” 같이 가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병의 깨짐과 같이 예루살렘 곧 유다가 깨어질 것을 실물로 보이게 하신다. 그러는 데 있어 ‘어른들’을 같이 가게 하셨다. 이는 나라가 망하거나 흥하게 되는 원인은 그 나라의 지도자들로 흔히 어른들 때문인 것을 또한 알게 하신다. 하나님은 유대 민족 중에서 이런 자들을 경고하려 하신다. 저들도 같이 “하시드 문 어귀 곁에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서 거기에서 내가 네게 이른 말을 선포하여(2).” 하는데, ‘하시드 문’은 ‘질그릇 조각문’이라 하여, ‘태양문’ 곧 예루살렘의 동편 문을 의미한다. 여기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 즉 이곳을 ‘도벳’이라고 하는데, 이곳에 예레미야에게 유대 민족의 어른들을 데리고 가서 경고하게 하신 것이다.
그 목적은 유대 땅이 도벳 즉 ‘아이들을 죽여 몰록의 제물로 바치는 더러운 곳’으로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 같이 저주 받은 땅이 될 것을 보여주시려는 것이다. 유대 땅은 우상을 섬김으로 더러워졌다. 도벳은 살육(殺戮)이 가득 찬 땅이 될 것이다. 여기에 ‘백성의 어른들’ 곧 백성들을 대표할 수 있는 지도자급 장로들을 데리고 갔다. 이들은 증인이다. 예레미야가 탄압 받는 위치에서도 이와 같이 저들과 동행하게 하셨다.
고대 예루살렘의 ‘하시드 문’이란 곳은 일대의 토기장이들의 작업장이 있는 것으로 그들은 이 문 근처에다 깨어진 토기들을 내버렸다.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는 예루살렘 남쪽 아래에 가파른 지역에 있다. 쓰레기를 소각하는 장소로 쓰였다. 생각해보면 ‘하시드 문’ 역시 “너는 함께 가는 자의 목전에서 그 옹기를 깨뜨리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 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와 같이 내가 이 백성과 이 성읍을 무너뜨리리니 도벳에 매장할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하리라(10-11).” 하여 그 위치를 알게 한다.
‘내가 이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 하고 하나님은 그 위치와 장소를 분명히 설정하셨다. “말하기를 너희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주민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 그것을 듣는 모든 자의 귀가 떨리니(3).” 여기서부터 예레미야의 선포가 시작되고 있다. 그 대상은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거민들이다. 이 설교는 예루살렘 거민들에게 고하는 공개적인 선언이다. 실제 청중은 예레미야가 데리고 간 어른들과 제사장들뿐이다(1).
예레미야나 다른 선지자들에게 있어 직접적이고 그 실제적인 청중은 작은 그룹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저들로 민족 전체를 두고 설교하는 것이다. 복수로 언급된 ‘유다 왕들’이란 표현은 역시 그곳을 통치하고 다스렸던 유다의 왕들을 내포한다. 즉 예레미야는 유다 통치자들 전체를 가리켜 설교한다. 더군다나 예레미야는 살아생전 모두 네 명의 왕들이 다스리는 시대에 살았다. 그런 점에서도 이 표현의 의미는 분명해진다. 이에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다가올 재앙의 주체이신 것을 알린다.
신분이 높은 자들이 초라한 선지자의 배후에 있었다는 것과 성 밖으로 동행하자는 선지자의 부름에 행선지나 이유도 알지 못하면서 순순히 응하였다는 것이 놀랍다. 당시에 장로들과 다른 제사장들은 예레미야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다. 심지어 저를 죽이고자 하였다. 하여 예레미야는 주 앞에 기도하기도 했다. “그들이 말하기를 오라 우리가 꾀를 내어 예레미야를 치자 제사장에게서 율법이, 지혜로운 자에게서 책략이, 선지자에게서 말씀이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니 오라 우리가 혀로 그를 치고 그의 어떤 말에도 주의하지 말자 하나이다(18:18).” 그런 가운데 신분과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따라 나섰다는 데서 잠시 머물게 된다.
그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서 이 메시지를 선포해야 했다. 여호와의 말씀은 어느 한 장소에 메이지 않는데, 이번에는 ‘이곳을’ 분명히 하여 정하시고 보내셨다. 토기장이들이 깨진 토기 조각들을 버리는 곳이 아닐까, 쓰레기 처리장으로 쓰였을 장소로 우상 앞에 자식들을 제물로 바치던 피의 제단이 있던 곳으로도 짐작하게 된다. 성전 문과 마찬가지로 도벳 골짜기에서 설교가 선포되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산 위나 배에서도 설교하셨다. 이 골짜기의 일부는 예루살렘 남쪽에 놓여 있다. 선지자가 취한 길은 동문으로 난 길이다. 하시드 문 어귀는 ‘토기장이의 문’이라고도 하였다.
여기서 새삼 어디서든지, 어떤 상대를 향해서든지 말씀은 선포 돼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제 그제 아이의 글이 올라왔다. 아픈 아이라 주목하는 것 중에 개인적인 어떤 글을 쓰거나 표현이 유난스러워지면 눈여겨본다. 가령 문자에서 새삼 감사하다, 고맙다, 하는 표현이 자주 들어간다거나 어떤 몽상적인 내용의 문장들, 어찌 해석하기 어려운 난해한 내용의 글이 아이 프로필에 올라오면 주목한다. 어제는 그 일로 마음이 쓰여 점심을 먹기로 하고 아이 퇴근 시간에 맞추어 교회로 다시 왔다. 쌀쌀한 날씨로 인해 우리는 순댓국집으로 갔다. 아니나 다를까 전날에 엄마와 다퉜다. 잠들기 전에 먹는 약을 먹고 산책을 갔다가 쓴 글이었다.
그 약을 먹으면 30분 전후로 급격하게 잠이 쏟아진다. 아이는 글을 쓰고 갑자기 어지러워서 서둘러 들어와 잤다는 것, 그 사이 엄마는 벌써 불 끄고 자고 있었을 거라는 것, 아주 사소한 일인데 엄마한테 발끈하였던 자신의 잘못이고, 엄마는 어떻고… 중구난방 이어지는 아이의 말을 가만히 들으면서 나는 주께 빌었다. 그렇게 식사를 하고 산책을 잠깐 하는 동안 이런저런 말을 해주고, 아이는 운동을 갔다. 이 시간, 한 영혼, 우리의 고단한 현실에서 선포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이와 같이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선포되었다. 그곳은 그들이 극히 악한 우상 숭배를 자행했던 곳이다. 그들은 거기서 자기 자녀들을 몰록에게 제물로 바쳤다. 그것은 두려운 일이고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이다. 하나님을 능멸하는 극치의 장소다. 오늘 예레미야와 같이 온 ‘어른들’은 그 일들을 뚜렷하게 회상하고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그래야 한다. 그곳은 그들이 극히 처참한 재난의 장소가 될 것이다. 그들에 대한 최대의 살육이 거기서 있을 것이다. 이를 예언하고 경고한다. 도벳의 골짜기는 예루살렘 도성의 몰락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는 이곳으로 가라 명하신다. ‘네가 그리로 오면 내가 네게 말을 일러 줄 것이니 너는 거기서 그 말을 선포하라’ 하신 것이다. 오래지 않아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할 전체적인 파멸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함이다. “내가 이 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 그것을 듣는 모든 자의 귀가 떨리니(3)” 들으라고 데려갔다. 듣고 떨어야 한다. 무서운 말이긴 하지만 ‘유다의 왕과 그의 왕자들, 그의 방백들과 대신들은 왕 중 왕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듣지 않으면 안 되었다. 비록 그들이 높다고 하나 하나님보다 높지 않다. 예루살렘의 거민들도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들의 죄에 대하여 먼저 벌하실 것이다.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암 3:2)” 이 곳, 유다와 예루살렘에 놀랍고 두려운 재앙을 내리실 것이다. 그것을 듣는 자의 귀가 떨릴 것이다. 누구든지 그 일에 대한 경고를 듣고 그 일에 대한 두려운 마음으로 떨어야 한다. 엘리 집의 파멸과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삼상 3:11).”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하여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제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리니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왕하 21:12).”
이와 같은 말씀에서 오늘 내 안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는 것이 복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다투시려는 것은 그들의 죄이다.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이 곳을 불결하게 하며 이 곳에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과 유다 왕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무죄한 자의 피로 이 곳에 채웠음이며 또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나니 이는 내가 명령하거나 말하거나 뜻한 바가 아니니라(4-5).”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한 일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은총을 저버렸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렸다. 교회의 존엄성을 훼손하였다. 예루살렘을 황폐화했다. ‘이곳’을 불결하게 하였다. 예루살렘은 거룩한 도성이다. 성전은 거룩한 집이다.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곳으로 백성들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다. 이곳을 더럽혀서 우상의 제단으로 삼았다. 악행으로 예루살렘과 성전을 오염시켰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부인하고 파멸시키고 포기한 것이다. 거짓 신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들의 애착과 동경으로 꾸며졌다. 조상들을 데려다 이방 신들을 뒤섞어 신성화했다. 잡신들의 도성으로 만들었다. 새 유행 종교가 사람들의 기호에 맞게 성장하고 있다. 게다가 하나님을 능멸하게 하는 사탄의 무덤으로 전락시켰다. 무죄한 자의 피로 이곳을 채웠다. 그것은 므낫세의 죄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죄를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다.
“이 성읍으로 놀람과 조롱거리가 되게 하리니 그 모든 재앙으로 말미암아 지나는 자마다 놀라며 조롱할 것이며 그들이 그들의 원수와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에게 둘러싸여 곤경에 빠질 때에 내가 그들이 그들의 아들의 살, 딸의 살을 먹게 하고 또 각기 친구의 살을 먹게 하리라 하셨다 하고 너는 함께 가는 자의 목전에서 그 옹기를 깨뜨리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 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나니 이와 같이 내가 이 백성과 이 성읍을 무너뜨리리니 도벳에 매장할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하리라(8-11).”
미국의 어느 도시는 동성애자들의 천국이라 불린다. 사실은 도시 곳곳이 섹스와 마약과 술과 성매매로 돈벌이가 넘쳐난다. “내가 그들이 그들의 아들의 살, 딸의 살을 먹게 하고 또 각기 친구의 살을 먹게 하리라 하셨다.” 하는 말씀을 이와 같은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법적으로 허용하는 곳은 없으나 이미 암암리에 성행중이다. 온갖 우상 숭배와 살인과 끔찍한 지옥이 따로 없다. 이는 “또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나니(5).” 하였던 현상과 다를 바가 없다. 인류가 죄 중에 둔감해져 간다. 무례한 가운데 서로는 모욕을 즐기는 듯도 하다.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그들의 자녀들을 불에 살랐나니 내가 명령하지 아니하였고 내 마음에 생각하지도 아니한 일이니라(렘 7:31).”
이를 통해 오늘을 돌아보며, 옹기로 오지병 같이 특이하고 특별하게 만드셨을 ‘예루살렘’을 하나님은 도벳 곧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 같이 깨뜨리실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유다의 아하스 왕 시대에 이곳에서 바알 앞에 우상을 만들어 거기에 분향했다. 유다 사람들이 이곳에 암몬 족속의 신 ‘몰렉’을 위한 산당 ‘도벳’을 짓고 거기에서 어린 자녀들을 산 채로 불살라 제물로 바쳤다(대하 28:1-4, 렘 7:31-33, 겔 16:20-21). 그 후 요시야 왕이 몰렉에게 드리던 이방 제사를 파하고 골짜기와 도벳 산당 터를 더럽혀 우상을 타파하려 했다(왕하 23:10). 그때부터 이곳은 이방인의 무덤과 쓰레기 소각장으로 쓰였다. 이후 율법을 어겨 죽임 당한 사람, 이방인, 반역자, 문둥병자 등 부정한 질병으로 죽은 자 같이 살던 사람들이 오갈 데 없이 살다가 이름도 없이 죽은 장소가 되었다. 이후 거지나 유랑자들의 시체를 매장했다.
이와 같은 말씀을 묵상하며 시편으로 주께 아뢴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시 40:5).
그러므로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서 거두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8, 11).
이는,
수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나를 덮치므로 우러러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
여호와여 은총을 베푸사 나를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12-13).
우리의 죄 된 삶의 현실에서,
주를 찾는 자는 다
주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말하기를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16-1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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