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하현. 2025. 12. 29. 04:28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렘 29:7

 

전능하신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언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시 50:1, 7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애굽이요, 바벨론 같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광야 같고, 믿음으로 사는 삶이란 가나안을 정복하는 일 같다. 성경은 우리로 그 시대마다의 인물과 선지자를 통한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오늘 이 한 구절의 말씀은 순응과 순종의 삶을 살라고 한다. 하나님의 섭리와 작정을 인정하게 한다.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렘 29:7).” 어찌 우리로 이처럼 아무렇지 않게 살라 하실까?

 

하여 시인은,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시 137:1).

 

이것이 성도의 심정이지 않을까?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2-3).

 

개탄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4).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이 불경건하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우리들로 하여금 확고한 삶을 살게 한다. 여전히 죄의 포로 된 자 같이 얽매여서 살고 있는 처지지만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롬 16:26-27).” 하심과 같이 말씀이 주어졌다.

 

곧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벧후 1:18-19).” 그런 것 같이 오늘 예레미야는 포로로 잡혀온 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편지로 쓴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이같은 편지를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끌고 간 포로 중 남아 있는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에게 보냈는데(렘 29:1).” 그런 가운데서도 주를 바라며 살라는 것이다. 아직 생은 끝나지 않았고 우리의 가야 할 길은 남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5).”

 

곧 산 자는 살아서 주의 영광을 나타내야 하는 사명이 있다. 오늘 이 형편과 사정이 어떠하든지,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6).” 이는 우리의 맡은 바 생의 목적으로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 것’은 삶으로 주의 영광이 되는 것이다. 이는 또한 우리 자신을 위한 것으로,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7).”

 

여기서 이 모든 환경과 여건의 조성을 하나님이 하신 것임을 바로 깨달을 때, 이런 가운데서 감사가 나온다. 산 자는 산다. 우리가 그리하는 것은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소망의 말씀이 등불처럼 우리 가는 길을 밝힌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10).” 이는 다 때가 있고 끝이 있어서 우리가 어느 시대를 살고 있든지 곧 이어 주의 나라로 들어갈 것이다. 하여 시편으로 사는 것은 말씀으로 사는 일이다. 지금 내 앞에 성경이 놓였고 이를 묵상하면서 주의 말씀을 듣는 것 같이,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시 119:105, 116, 130).

 

이는,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50).

 

하여서 나는 산다. 내가 사는 증거가 된다. 그리하여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50:15).

 

말씀의 핵심은 간단하다. 지금 여기가 애굽이든지, 바벨론이든지, 광야에서든지, 가나안에서의 전투 중이든지… 내가 주를 구할 때면 주가 나를 건지심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 된다. 고로 오늘의 이 처지나 사정이 영구적인 게 아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렘 29:10).” 이 말씀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유효하여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11).”

 

이를 세상에 속한 거짓 선지자들도 증거하여 우리로 미혹하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중에 있는 선지자들에게와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꾼 꿈도 곧이 듣고 믿지 말라(8).” 하여서도 말씀을 분별하여 듣고 이를 바로 새겨서 삶의 지표로 삶을 것은, “너는 모든 포로에게 전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느헬람 사람 스마야를 두고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그를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스마야가 너희에게 예언하고 너희에게 거짓을 믿게 하였도다(31).” 어느 때나 ‘스마야’ 같은 거짓은 존재한다. 우리로 거짓을 믿게 하는 자이다.

 

그러나 그의 결국은 분명하여서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느헬람 사람 스마야와 그의 자손을 벌하리니 그가 나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기 때문에 이 백성 중에 살아 남을 그의 자손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 내가 내 백성에게 행하려 하는 복된 일을 그가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2).” 저들의 거짓됨은 “내가 내 백성에게 행하려 하는 복된 일을 그가 보지 못하리라” 곧 오늘 우리의 처지나 형편이 어떠하든지 이를 통하여 주가 복된 일을 이루려하심이다. 고로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바벨론에 있는 포로들에게 편지를 쓴다.

 

거기에는 여고냐가 항복하여 포로로 잡혀가 있었고 그의 어머니와 환관이라고 불리는 내무대신들과 ‘유다와 예루살렘의 방백들’이 있었다. 또한 ‘목공들과 철공들’ 도 잡혀가 있었다. 이는 바벨론이 포로로 잡아갈 때 이와 같은 기술자들과 지도자들이 예루살렘에 남아 성을 수축하고 행여 전쟁을 위한 무기나 항거하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순순히 항복하여 끌려온 것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이다. 이는 약속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이 곳에서 빼앗아 바벨론으로 옮겨 간 여호와의 성전 모든 기구를 이 년 안에 다시 이 곳으로 되돌려 오리라(28:3).”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편지를 써서 위로하고 있다. 아무런 구원도 없으리라고 절망하지 말 것과 고국에 남아 있는 그들의 형제들을 부러워할 이유도 없음을 전달한다. 흩어진 듯 어려운 처지에 놓인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와 같은 소식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게 한다. 즉 오늘 우리로 새 힘을 얻고 주어진 생을 다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으로다. 비록 오늘 우리의 처지가 ‘~ 같으나, 그렇지 않다.’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8-10).”

 

하여서,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그리하여 오늘이 애굽에서 같고 바벨론과 같을지라도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으로 우리는 승리할 것을 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2-3).” 하여서 주께 기도한다.

 

그가 구푸려 엎드리니

그의 포악으로 말미암아

가련한 자들이 넘어지나이다

그가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의 얼굴을 가리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옵소서

(시 10:10-12).

 

그렇게 오늘의 어려움이 우리로 주를 더욱 간절히 바라게 한다. 비록 오늘 우리가 이고 지고 사는 현실이 죄의 결과라 해도 죄의 정죄함에서는 사하심을 받았고, 여전히 죄악 중에 살고는 있으나 이로써 우리의 연약함을 일깨워 주를 더욱 의지하게 하려 하심이다.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잠 3:11).” 이 또한 복인 것은 ‘내가 너희로 사로잡혀 가게 하였다’고 주께서 이를 주도하셨음을 알리신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렘 29:4).” 현실적으로 때론 이해가 안 된다 해도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과하신 것으로’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함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주를 인정함으로 주를 영화롭게 하게 하심이었다.

 

하여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 거하라’ 하심은 주신 상황에서 묵묵히 주를 바라게 하심이요, 우리들로 하여금 ‘시온을 기억하고 울게 한다.’ 역설적으로 슬픔이 우리 생활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게 하시려고 우리로 주 앞에서 욺으로 세상에서는 기뻐하게 하신다. 이를 나는 어느 가정을 생각하면 은혜가 된다. 부부는 꿈이 있었고 그만한 실력이 있어 이 사회에서 안정적인 삶이 보장되었다. 그러나 결혼하고 얼마 후 얻은 아들이 전신마비에 선천적인기형의 몸을 가지고 태어나 살면서… 저들을 날마다 교회에 올라와 기도하며 운다. 욺으로 오늘도 주신 상황 속에서 기쁨으로 산다. 주 앞에서 우리의 눈물은 현실에서 찬송이 된다. 우리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히 11:38).” 이를 성도라 한다.

 

주께서 기도하셨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요 17:15-16).”

 

곧 우리로 세상에 살게 하신 이가 세상에 속하지 않고 천국 백성으로 살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자칭 선지자들이라고 하는 자들이 거짓된 기초 위에 세운 건물에서 우리를 끄집어내셨다. 이를 오늘 본문을 알게 한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중에 있는 선지자들에게와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꾼 꿈도 곧이 듣고 믿지 말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8-9).” 세상에 살면서 세상에 물들지 않고 그와 같은 거짓에서 놓여나게 하심은 우리가 천국 백성인 것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를 속이는 거짓은 입에 달고 귀에 듣기 좋다. 세상이 우리로 병들게 하는 것은 “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사 30:10).” 하는 것이다.

 

우린 반드시 돌아갈 것이다.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29:14).” 그러므로 오늘 이 모든 현실은 ‘그의 뜻에 따라’ 우리들로 하여금 ‘시온에게 은혜를 베풀 때’와 ‘곧 그 정한 때’가 반드시 오리라는 것의 증거가 된다. 이로써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라.’ 하시는 주의 뜻을 알 수 있다.

 

전능하신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시 50:1).

 

하여,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을 판결하시려고

위 하늘과 아래 땅에 선포하여

이르시되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 하시도다

하늘이 그의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 (셀라)

(4-6).

 

하심을 들으며,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언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7, 15).

 

오늘이 아무리 어떠하다 해도,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2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