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렘 31:3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시 52:8
위로의 내용이 담겨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민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데 있어 더러는 이해가 어려운 어려움을 겪으며 갈등하고 회의한다. 이에 선민으로의 안위와 지위를 회복하실 것을 예언하는 말씀이다. 즉 바벨론과 같은 세상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는 주의 성도들로 주께서 이를 돌이켜 해방과 귀환과 축복의 회복에 이를 것을 노래한다.
하나님은 선민을 은혜와 사랑으로 반드시 해방시키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2-3).” 이에 선민의 땅이 회복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여러 민족의 앞에 서서 야곱을 위하여 기뻐 외치라 너희는 전파하며 찬양하며 말하라 여호와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하라(7).”
이는 북이스라엘도 포함된다. “네가 다시 사마리아 산들에 포도나무들을 심되 심는 자가 그 열매를 따기 시작하리라(5).” 이와 같이 선민을 향한 하나님의 해방과 회복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복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를 얻고 크게 기뻐하리라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12).” 주전 722년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된 앗수르는 멸망하고, 북이스라엘은 물론 남유다 역시 ‘이스라엘의 모든 종족’이라 일컬으시며 ‘내 백성’이라 하신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종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1).”
계시록 7장을 보면 하나님의 구원은 그 백성을 상정하여 이마에 인 맞은 자들이 나오는데 십사만 사천 명이라고 하였다. 이는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일만 이천씩이다. 각 지파의 ‘인 맞은 자’ 일만 이천에 이스라엘 지파의 수 열둘을 곱하여 나온 수로써 이는 완전수라 한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계 7:9-12).”
그리하여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17).” 곧 오늘의 이런저런 어려움으로 눈물짓는 우리들의 눈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하는 인자하심과 회복의 은총이 곧 이루어질 것이다. ‘인 맞은 자’의 수가 ‘십사만 사천’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하신 택하신 백성들로, 이는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작정하고 택하신 자의 모든 완전수를 뜻한다. 이를 믿는 우린 다 구원에 이른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 18:12-14).” 이와 같이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심인데,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요 17:12).”
고로 오늘의 이런저런 사정과 상황이 끝날 것이다. 이는 전부가 아니다. 내 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며 눈물로 기도한다. 저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씻으시고 그 눈물을 씻어주실 것을 간구한다. 마음이 아프고 속상한데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어서 가만히 눈물로 기도할 따름이다. 가령 아내 한 사람의 몫이 이렇게 컸는지 미처 몰랐다. 그래도 공부 중인 아들이 거의 집안일을 도와주는데도… 아침에 나는 아흔이 넘은 장모의 푸른주스와 유산균과 요실금 약을 챙기고, 밤새 본 실내변기를 비우고, 따듯한 물을 서너 보트에 담아 가져다 놓는다.
아들은 밥을 챙기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돌린다. 그러는 동안 나는 음식물 쓰레기와 분리수거를 치운다. 밤에 퇴근한 딸이 부신 변기를 가져다 놓고 실온의 두유와 갑상선 약을 챙긴다. 대충 떠오르는 일들만 기록하였는데, 아내는 이 모든 것을 혼자 하면서 지냈다. 무릎 수술 후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는 동안 새삼 한 사람의 역할이 이처럼 많고 광범위했다는 데 놀란다. 그러니 어느 집이나 다들 그렇듯 한 사람의 역할이 단순하지가 않다는 데서 놀란다. 아이엄마는 결국 아이의 정신과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는 말을 하며 울었고, 중학교에 들어가는 아이는 사춘기까지 겹쳐서 더욱 힘들게 했다. 저마다의 눈물과 어려움이 사방에서 아우성을 치는 듯하다.
이때에 오늘 이와 같은 위로의 말씀이 새롭게 다가온다. 저마다 40년 광야의 훈련이 지나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의 회복과 안식도 치열하다. 사는 동안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합당하게 다듬으시기 위한 연단의 시간은 각양각색이다. 그렇듯 우리의 오늘은 믿는 자들에게 귀하고도 소중하였다. 이는,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단 12:10).”
어제는 퇴원 후 아내가 병원에 가서 소독을 하고 물리치료를 받는 날이었다. 나는 혼자서 아내의 휠체어를 밀고, 태우고, 병원에 갔다, 정산을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일을 맡았다. 그러는 동안 아들은 아침을 준비하고 거동이 어려운 외조모의 수발을 들며 집에 있었다. 그렇게 모여 아침을 먹고 아내는 어느 때보다 가정예배를 원했고, 장모와 식탁에 앉아 평소처럼 예배를 드렸다. 산책 겸 답답해하는 아내를 밀고 아파트 단지를 돌고 카페라떼를 한 잔 사서 돌아왔다. 오후에는 아이가 오고 아내는 휠체어에 앉아 아픈 아이의 수업을 봐주었다. 가족구성원으로 한 사람의 역할과 그 몫이 이처럼 여실히 다가온 적이 없다. 새삼 아내의 소중한 역할에 경의를 표한다.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 4:9-11).”
우리로 각자의 삶에서 겪는 어려움으로 주를 바라게 한다. 안식을 사모하게 한다. 맡기신 생을 다하는 일이 자신에게는 물론 속하여 함께 하는 가족과 교회와 사회에 있어 얼마나 크고 소중한지를 알게 한다. 결국 이와 같이 “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르거니와 경계를 받는 자는 존영을 받느니라(잠 13:18).” 하여 오늘도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2-13).”
하여 성경은 우리 하나님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출 34:6).” 이를 알게 하시기까지 오늘도 이 모든 우리의 환경을 조성하신다. 하여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10:22).” 그리하여 우리의 심령은 물 댄 동산 같을 것이다.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복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를 얻고 크게 기뻐하리라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렘 31:12).”
오늘 본문의 이와 같은 말씀에서 위로를 얻는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산물은 은혜를 가리킨다. ‘물 댄 동산’은 하나님의 능력과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는 삶을 뜻한다. 결코 웃을 수 없고 기쁨이 더할 수 없는 조건인데도 주 앞에 감사가 넘쳐난다. 우리로 노래하게 하고 항상 기도하고 주를 더욱 바라게 한다. 비록 그 처지는 ‘라마의 눈물 골짜기’ 같다 해도 말이다. 당장의 현실을 그러해서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어져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15).”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북이스라엘의 귀환을 선포하고 있는데, 이들은 주전 722년에 포로로 잡혀갔다. 라헬은 북이스라엘의 주도적인 지파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의 선조를 뜻한다. 이들 지파는 북쪽 이스라엘 영토 중 넓은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라마’는 지명으로 실제 높은 곳에 위치했다. 이스라엘과 유다 국경의 베냐민 영토에 있다. 예루살렘 북쪽 약 8km 가량 떨어진 곳이다. 이곳에 라헬의 무덤이 있다. 라헬이 자기 자녀로 인해 통곡한다는 내용과 마태복음 2장 16-18절에서 헤롯이 베들레헴의 어린아이들을 살해시킨 사건에도 적용되었다.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18).”
우리의 현실은 더러 위로를 거부할 정도로 슬픔에 감싸여 있으나, 기쁨과 소망의 메시지가 동시에 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 울음 소리와 네 눈물을 멈추어라 네 일에 삯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의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16).” 곧 라마의 슬픔에서 소망의 메시지로 나아가게 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공의가 실현될 것을 알리신다. 이때에 비로소 위로가 있을 것이다. 어제 ‘쿠팡 청문회’에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애통하며 절규하던 소리가 중첩된다. 저들의 요구는 공의다. 올바른 심판으로 진심어린 사과를 요구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시련과 고통을 통해 영적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그에 따른 심판을 요구한다. 이에 ‘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정녕히 들었노니’ 하시는 주의 음성이 위로가 된다. “너의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지경으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17).” 에브라임은 포로에서의 고난을 통해 겸손을 배웠다. 겸비하여져, 그들은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므로 각각,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 2:3-4).”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내려놓고 주 앞에서 겸손하고 온전하기를. 서로가 돈을 어찌 보내고 말고 하는 데 있어, 혹시라도 나중에도 어떻게 하면 세금을 내지 않을까 해서 궁리하였다. 듣다못해 아들이 지나가는 말로 세금을 내야지, 하는 말에 머쓱해졌다. 나는 듣다말고 그것으로 서로들 복지에 관련한 이런저런 지원도 받고 하는 것인데… 하는 말을 하려다 그만두고 일어났다. 저마다의 입장이 다른 것이라, 교만과 겸손의 경계가 모호하다. 뭐라 한들 저마다 자신의 입장에서 듣고 해석한다. 말씀도 그와 같아서 오늘 이와 같은 말씀에서 우리는 어떤 위로를 받을 수 있을지…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 울음 소리와 네 눈물을 멈추어라 네 일에 삯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의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16).”
하여,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 11:28-30).”
우린 얼마나 서로의 슬픔과 아픔을 나눠지고 살려 하는지… 믿는 자들로 오늘의 나의 슬픔만이 크고 어려운지…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살전 5:14-15).” 사는 게 힘든 것은 혼자서 살려니까 그렇다. 나는 일련의 상황을 겪으면서 새삼 아내의 수고를 알게 되었다. 또한 한 사람을 돌보는 데 모두가 같이 하는 것이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마치 몰랐던 사실처럼 내가 얻는 교훈이 크다.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셨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정하였고 바다를 뒤흔들어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렘 31:35).”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주시는 소망이 막연한 게 아님을 알리신다. 주는 만군을 주시다.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2).” 곧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위에 있는 하늘을 측량할 수 있으며 밑에 있는 땅의 기초를 탐지할 수 있다면 내가 이스라엘 자손이 행한 모든 일로 말미암아 그들을 다 버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7).”
이 모든 우주만물의 주인이시고 주관하시는 이심을, “그는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시며 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하느니라(욥 26:7-8).” 상대적으로 우린 미약할 따름이라,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천지가 주의 규례들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까닭이니이다
(시 119:90-91).
이에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 11:5).” 하심을 붙들고,
포악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시 52:1).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어렵게 하고 억울한 심정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다 해도,
간사한 혀여
너는 남을 해치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
그런즉 하나님이 영원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붙잡아 네 장막에서 뽑아 내며
살아 있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 (셀라)
(4-5).
하심으로,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원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하시므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사모하리이다
(8-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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