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렘 30:22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 51:10
우리의 근본은 죄를 따름이라, 누구라도 스스로 자신을 변호하려 든다. 거짓으로 순간을 모면하려 한다. 우리의 죄의 문제는 예수를 믿음으로 해결 받았으나,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 죄악의 문제는 사는 내내 우리를 괴롭힌다. 바울도 이에 힘겨워하며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 7:20).”
이는 우리의 속성이 그러해서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19).” 그러므로 누군들 죄에서 자유할 수 있을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24).” 오늘 시편의 주제도 밧세바를 범한 후 선지자의 지적에야 이를 인정하며 주 앞에 고하는 다윗의 기도로 되어 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시 51:11-12).
죄로 인하여 성령이 내 안에서 잠잠하시면 구원의 즐거움을 잃고 그저 사는 데 마음이 쫓겨 심적으로나 물적으로 고생스럽다. 하여 주께 바라는 바, ‘자원하는 심령’을 회복시켜 ‘나를 붙드시길.’ 내 곁의 여러 영혼들도 고통 중에 아우성이다. 느닷없는 우울증으로 시달리고 각각의 질병과 생활고에 허덕인다. 그러면서 비로소 주가 함께 하심을 바라게 되는데, 오늘 본문은 이를 감당해야 할 것을 경고하신다. 분명히 “내가 너를 먼 곳으로부터 구원하고 네 자손을 잡혀가 있는 땅에서 구원하리니…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할 것이라” 하시면서도 “그러나 내가 법에 따라 너를 징계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만 여기지는 아니하리라” 하신다(10-11).
하여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네 송사를 처리할 재판관이 없고 네 상처에는 약도 없고 처방도 없도다 너를 사랑하던 자가 다 너를 잊고 찾지 아니하니 이는 네 악행이 많고 네 죄가 많기 때문에 나는 네 원수가 당할 고난을 네가 받게 하며 잔인한 징계를 내렸도다 너는 어찌하여 네 상처 때문에 부르짖느냐 네 고통이 심하도다 네 악행이 많고 네 죄가 허다하므로 내가 이 일을 너에게 행하였느니라(12-15).”
우리가 살면서 사는 동안에 겪는 이와 같은 고초로 인하여 주를 더욱 간절히 찾고 구하게 된다. 아담이 에덴에서 쫓겨날 때 “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 3:17-19).” 그러므로 일련의 상황은 영원한 형벌의 문제가 아니라 죄에 따른 스스로의 몫으로, 그리하여 주를 더욱 바라게도 한다.
이를 두고 바울은 세 번씩이나 고하였으나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그렇다면 우리의 태도 변화도 필요하다. 날마다 문제 해결과 병 낫기만을 구할 게 아니라 그것으로 주를 바랄 때, 주를 인정함으로 복에 복을 더할 수 있다. 그래서 다윗은 기도하는 것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시 51:7-8).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하는 것은 문둥병에서 완쾌되어 부정(不淨)의 상태에서 벗어난 자가 자신의 몸에 짐승의 피를 뿌리는 데, “제사장은 그 정결함을 받을 자를 위하여 명령하여 살아 있는 정결한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를 가져오게 하고… 나병에서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일곱 번 뿌려 정하다 하고 그 살아 있는 새는 들에 놓을지며(레 14:4, 7)” 이와 같이 시체나 무덤 등 부정한 것을 만진 자에게 물을 찍어 뿌렸던 정결 의식이다. “정결한 자가 우슬초를 가져다가 그 물을 찍어 장막과 그 모든 기구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뿌리고 또 뼈나 죽임을 당한 자나 시체나 무덤을 만진 자에게 뿌리되(민 19:18)”
이는 그만큼 자신의 죄악이 매우 심각한 상태인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도 사죄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가능하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9-10).”
수잔은 어려서부터 의사가 되길 원했다. 자신이 의사가 되어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널리 알리고자 하였다. 그렇게 입시준비를 하고 의과에 들어갈 무렵 골결핵을 앓게 되었다. 이를 낫고자하여 여러 해 동안 병원들을 전전긍긍하였다. 그러느라 30대를 다 보내고서야 어느 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해’ 하는 음성을 들었다. 그녀는 병원 침대에 누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평소 짜증스럽기만 하여 불친절하게 굴었던 간호사들에게 상냥하게 대했다. 같은 병실의 환우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다가가기도 하였다. 달라진 수잔의 모습은 병실 분위기는 물론 간병하는 모든 이들에게 전파되었다.
여전히 환자이고 아픈 몸이었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 하는 말과 행동으로 주변을 사로잡았다. 그와 같은 구호와 변화가 병실 환우들을 바꾸어놓았고 병원 전체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후 저의 이름을 따서 이와 같은 운동이 영국 일대의 병원으로 확산되었고 모임이 결성되어 수잔은 초대수장이 되었다. 이후 그녀는 신앙을 고백하는 자리에서 자신이 의사가 되었을 경우보다 환자로서 돌보게 된 환우의 숫자가 몇 배 더 많았음을 밝히면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올렸다.
오늘 말씀에서 다소 두렵고 서운한 마음도 사실이다.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할 것이라 너를 흩었던 그 모든 이방을 내가 멸망시키리라 그럴지라도 너만은 멸망시키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법에 따라 너를 징계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만 여기지는 아니하리라(11).” 그럼에도 그것으로 주를 나타내심인데,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네 송사를 처리할 재판관이 없고 네 상처에는 약도 없고 처방도 없도다(12-13).” 우리는 이와 같은 고통으로 주를 부르게 된다. “너를 사랑하던 자가 다 너를 잊고 찾지 아니하니 이는 네 악행이 많고 네 죄가 많기 때문에 나는 네 원수가 당할 고난을 네가 받게 하며 잔인한 징계를 내렸도다(14).” 이러한 징계가 당연히 달갑지 않을 것이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쫓겨난 자라 하매 시온을 찾는 자가 없은즉 내가 너의 상처로부터 새 살이 돋아나게 하여 너를 고쳐 주리라(17).”
궁극적으로는 ‘내가 너를 치료하여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 하심인데, 앞서 12, 15절에서 언급된 것은 ‘고칠 수 없는’ 것이 ‘치유할 수 있게’ 될 것이라 약속하신 것이다. 여기서 ‘시온’이란 비로소 하나님은 회복을 다루신다는 포괄적 의미를 가진다. 여전히 질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그리하여 목회에 더 전념하여 오직 말씀으로, 오직 주의 뜻으로만 교회를 섬기는 이가 있다. 누구는 느닷없이 찾아온 희귀병으로 병원마다 진단이 어려운 질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주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기독교 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하루에 네다섯 번 안정제와 진정제를 먹어야 하는 처지에서도 목회를 감당하는 이도 있다. 저들의 공통점은 ‘올인’이다. 다윗의 고조모가 되는 룻이 그러했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룻 1:16-17).”
기어이 울면서 두 손 들고 승복하여 신대원을 할 때였다. 그야말로 나의 전부를 걸었다. 그렇게 간신히 신대원을 마치고 목사고시를 두 번째 떨어졌을 때도 나를 위로하러 온 면접관 목사님께 했던 말은 다음번에 또 오겠습니다, 하는 인사였다. 나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평생을 그렇게 떨어지고 또 떨어진다 해도 상관없다고 여겼다. 그쯤 되자 하나님은 저들을 감동시켜 나를 붙여주신 것 같다. 오늘도 같은 심정으로 이 새벽을 지킨다. 돌이켜 주 앞에 오면 모든 게 끝이 아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았으면 된 게 아니다. 이루어가야 하는 구원이 남았다. 굳이 ‘성화구원’이나 ‘영화구원’이란 표현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렘 30:22).”
하심은 “여호와의 진노는 그의 마음의 뜻한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돌이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끝날에 그것을 깨달으리라(24).” 하심으로 귀결된다. 곧 이 땅에서 승부를 내는 게 아니다. 온전한 사죄의 은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 1:18).” 그렇게 하여 다윗도 기도하는 것이다.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 51:8-10).
곧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하는 것은 우리가 사느라 사는 데 정신이 팔려 나름의 수고와 노력으로 얼룩져 있는 자신의 공적을 씻음으로, 구원의 참 기쁨을 회복시켜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이 기쁨은 단순한 감정적 차원의 즐거움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께 온전히 의뢰함으로써 생기는 희락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 믿고 구원 받아 천국에 가는 것으로만 만족할 게 아니다. 그것은 구원의 기쁨을 알아야 한다.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그의 구원을 기뻐하리로다
(시 9:14, 13:5, 35:9).
이 기쁨의 출처는 하나님께만 있다. ‘즐겁고 기쁜 소리’는 사죄가 됐다는 하나님의 선포와 같다. 그래서 일생을 바쳐 전 재산을 들여 주의 선교사들과 함께 기독교 공동체 마을을 건립하려다 모든 것을 잃고도 주께 감사함으로 남은 생을 산다. 매일의 삶이 치열한 전투 같아서 객담을 받아내고 행여 각혈이라도 할 때면 가슴 졸이며 몸을 사려야 마땅한데도 꾸준히 개척교회를 운영한다. 한 달에 몇 차례씩 쓰러져 응급실로 달려가고, 하루 일과가 끝나면 녹초가 되어 주 앞에 엎드렸다가 잠들면서도 기독교 학교를 이어간다. 내 곁의 여러 믿음의 사람들은 안타까움 속에서도 꽃을 피우며 살아있다. 나는 저들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는다.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저들의 구원 사역에는 ‘주께서 꺾으신 뼈들로도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찬송’이 있다. 그야말로 자신들 한 몸 건사하며, 잘 먹고 잘 사는 게 능사일 세상에서,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사 52:7).” 다들 저마다의 일그러진 삶 가운데서도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4-15).”
하다못해 세상에서도 자신들 꿈을 이루려고 죽기 살기로 산다면서 하물며 영원한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확신하면서도 안일하게 그저 그리 된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라면… 말이 안 된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단호하였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약 2:17-18).” 오늘 본문은 그렇게 들린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20).” 그러므로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26).”
이를 위하여 오늘 우리로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하며 간구하게 한다. “선지자들에 대한 말씀이라 내 마음이 상하며 내 모든 뼈가 떨리며 내가 취한 사람 같으며 포도주에 잡힌 사람 같으니 이는 여호와와 그 거룩한 말씀 때문이라(렘 23:9).” 이로써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시 51:17).
하여 오늘도 주 앞에 구하는 말,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라 그 날에 내가 네 목에서 그 멍에를 꺾어 버리며 네 포박을 끊으리니 다시는 이방인을 섬기지 않으리라(렘 30:8).” 다시는 돌아갈 수도 없는 오늘에 서서 “너는 어찌하여 네 상처 때문에 부르짖느냐 네 고통이 심하도다 네 악행이 많고 네 죄가 허다하므로 내가 이 일을 너에게 행하였느니라(15).” 그저 낫고자 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주께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로써 주께 간구함이니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22).” 이를 이루시기까지, “여호와의 진노는 그의 마음의 뜻한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돌이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끝날에 그것을 깨달으리라(24).” 하여,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시 51:1).
오늘도 주 앞에 엎드려 고하기를,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0-11).
그러므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그 때에 그들이 수소를 주의 제단에 드리리이다
(12, 17-1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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