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2-3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주의 힘으로 나를 변호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
시 54:1-2
우리의 믿음에 소망이 없다면 어찌 이를 지키며 살 수 있을까? 하나님은 이를 보증하시고 말씀이 근거가 된다. 오늘 본문은 위로의 내용으로 채워졌다. 30장 이후 형벌을 지나 31장에서 선민으로의 생활을 회복하실 것을 알리셨다. 32장에서 바벨론의 예루살렘 함락 직전인 주전 587년을 배경으로, 감옥에 갇힌 예레미야에게 아나돗의 밭을 사게 하고, 이를 갈대인에게 빼앗겼다가 회복하시는 예언을 다루었다.
이어 오늘 33장은 선민의 회복과 그에 따른 새로운 언약으로 심판 후의 회복과 다윗 왕권의 회복과 제사장직 회복 등의 약속을 보도하고 있다. 이 약속은 32장에 이어 여전히 예레미야가 왕궁 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 주어졌다.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1).” 이때 소개 되는 하나님에 대해 주목하게 된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2).” 곧 일을 행하시는 이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성취하시는 '여호와'가 이르신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일을 행하는 자’ 곧 ‘그것을 짓는 자’로 지칭하고 있다. 이는 창세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하는 명료한 진리를 떠올리게 한다. 이어 오늘 본문은 그 여호와 하나님께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하며 선포한다. 이는 명령과 다짐을 동시에 보이신다. ‘내게 부르짖으라’ 그러면 ‘응답하겠고’ 하신다. 이는 미래의 모든 일을 주관하고 계심을 우선한다. 오직 저는 창조자, 구원의 여호와로서 우리가 그분께 간절히 부르짖을 때, 이를 응답하실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
가령 삼손이 목마름을 부르짖을 때 들어주셨던 하나님,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 하니(삿 15:18).” 한나가 아이 때문에 부르짖을 때 사무엘을 낳게 하셨던 하나님,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의 아내 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삼상 1:16, 19-20).”
그 하나님이 오늘은 우리에게도 이르신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3).” 이를 두고 오늘 시편의 다윗도,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주의 힘으로 나를 변호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
(시 54:1-2).
곧 우리의 부르짖음에 대하여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로 다가오신다. 이를 알게 된 욥은 비로소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하고 고하였다. 결국은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에 대하여 바울은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20).” 하면서 우리로 주께 고하고 아뢸 때 주는 이루실 것으로, 우리는 이에 다만 '아멘' 하면 될 것이라고 한다.
고로,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롬 4:20-22).”
새롭게 시작되는 새해를 맞으며 나는 가족들과 둘러앉아 예배드릴 때 룻의 ‘굳게 결심함’을 우리도 가지는 한 해가 되기를 소원하였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룻 1:16-18).”
이는 단지 시어머니 나오미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그 어머니가 사는 곳에서 어머니의 백성들과 어머니의 하나님을 섬기겠노라, 하고 굳게 결심함이다. 어려서 일찍이 뜻을 정하였던 다니엘처럼,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단 1:8).” 저는 세 친구와 기도한다. “이에 다니엘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그 친구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에게 그 일을 알리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사 다니엘과 친구들이 바벨론의 다른 지혜자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하여금 구하게 하니라(2:17-18).” 그러므로 하나님은 응답하시는 이시다. “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환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니라(19).”
곧 우리의 기도에 따른 응답은 찬송으로 따른다. 죽은 줄로 알았던 아이를 놓고 기도할 때,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행 9:40).” 우리 삶에 있어서 때로는 더딘 줄로 알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심을 고백하게 한다. 이로써 성도는 한 가지 이상 그 가슴에 하나님의 응답에 따른 감격을 품고 산다. 더러는 이를 잊었거나 간과하는 경우도 있을지 몰르지만 하나님은 응답하시고 더 크고 놀라운 역사로 우리의 간구가 찬송이 되게 하신다.
가령 아주 어릴 때 나도 잘 모르면서 기도하여, 막연하게도 '주의 종'이 되게 해달라고 하였던 나는 자라면서 스스로 그 뜻을 저버렸다. 그랬으나 주는 돌이키셨고 기어이 오늘 이렇게 뜻을 이루시고 응답하셨다. 첫 애인 딸애가 천식이라 하여 응급실에서 호흡을 가빠할 때 나는 다시 주께 기도하였고, 하나님은 말도 안 되는 우리의 수고에 그 이상으로 응답하셨다. 그때 누가 겨울철 마른 벌집을 달여서 먹이면 천식이 낫는다는 소리를 해서 시골에 사는 작은 아버지가 산에서 몇 차례 빈 벌집을 따서 보냈고 이를 달여 물처럼 마시게 하였다. 설마 그것 때문이겠나만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천식은 사라졌고, 건강하게 자랐고, 몸도 마음도 물론 신앙도 주가 돌보심으로 신학까지 하고는 올해에 시집도 간다. 딸애의 생을 보면 그 또한 모두가 기도의 응답으로 거저 얻어진 삶이었음을 확신한다.
내가 그토록 거부하고 멀리 떠났을 때도 하나님은 강권하심으로 신학 학부를 하게 하셨고, 또 한참을 피했으나 결국은 다시 신대원으로 끌어다 말도 안 되는 여러 손길로 증명하시듯 등록금이며 생활비 일체를 채우시더니 결국은 오늘 이렇게 목사로 세우시기까지 하셨다. 나에게 응답의 파급효과는 교회를 이뤄가는 데 있어서도 조현과 우울로 아픈 아이 둘이 기존 성도의 전부이고, 우울로 시달리는 이와 뒤늦게 성경공부와 교회에 헌신을 보이는 이로 유지하신다. 뿐만 아니라 누군지도 모르는 이의 기도와 후원으로 오늘도 이처럼 교회는 건재하다. 이에 사무엘의 기도처럼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삼상 12:23).” 하여 오늘의 나로서는 기도로밖에 할 게 없어 송구하지만 기도뿐이다.
나로서는 할 수 있는 게 기도뿐이라, 누구의 사연을 듣고 또한 저 안타까운 현실에서 주의 이름을 부를 뿐이다. 속수무책으로 우울증에서 힘겨워하는 이를 위하여, 늘 사느라 사는데 고단한 현실로 힘에 겨워하는 이를 위하여, 아이를 중학교에 보내면서 장애판정을 받아야 할 것이라 서러워하는 아이엄마의 심정을 위하여, 강박과 조현으로 신음하듯 온 가족이 힘들어하는 어느 가정을 두고… 종일 나의 머리를 맴도게 하시며 마음이 쓰이는 이들을 생각하여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실 때,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
(시 13:3, 34:4, 118:5, 118:21).
우리의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음을 아는 것으로, 살아서 사는 동안에 나의 생의 남은 전부가 그러하였다고 감히 증언할 수 있기를. 어린 게 뭘 안다고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자살을 결심하고 수면제를 모을 때도, 이를 알고 나의 부친은 포효하듯 울부짖으며 내 목을 끌어안고 주의 이름을 부르고 나의 모친은 그 뒤로 평생을 예배당 바닥에서 잠이 들곤 하셨던, 사랑의 빚진 자로 살다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기까지의 모든 여정은 나로서 한 편의 영화처럼 극적이고 기묘한 일들이다. 주의 응답은 여실하고 확고하여 반드시 드러난다. 나 같은 둔재에서 저능아로 불리던 어린 시절 내 곁에 두셨던 소녀와의 편지쓰기가 나의 중학교 3년 내내 이어져서, 이처럼 글쓰기를 좋아하고 나의 직업으로 아이들 논술과 창작을 가르치며 여태 밥벌이로 살았으니 것도 신기하고, 모든 게 신기할 따름이다.
요즘은 아내가 휠체어 생활로 한 달 반 동안 가료(加療)를 요한다는 의사의 소견에 답답해하며 우울할 때, 공부하느라 집에 있으면서도 입을 다물고 시무룩하니 있던 아들이 나서서 집안일을 도맡아하면서 자연스럽게 입이 떨어졌다. 요즘은 같이 산책을 나가기도 하는데 내가 아내의 휠체어를 끌고 나가는 게 안쓰러웠는지 따라나서기 시작하면서 이런저런 말도 많아졌다. 곧 나의 근심과 눈물을 바꾸어 하나님은 언제나 응답하신다. 오히려 더 큰 은혜로 채워주신다. 사위될 아이는 싹싹한 성품으로 아직 결혼도 전인데 집에 자주 드나들고 딸애를 위해주는 마음에서도 감사하게 한다. 연말연시가 가장 바쁜 딸애의 일정에 새벽 일찍 출근을 도와주고, 밤 늦게 야근하고 돌아올 때면 회사로 찾아가 데려오고는 하는데, 나의 기도와 그에 따른 응답으로는 감사뿐이다.
나는 오히려 한 게 없어서 늘 송구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주가 돌보시는 일에서 나의 인생은 어느 것 하나 감사가 아닌 게 없고 은혜가 아니었던 순간이 없다. 예전에는 죽기보다 싫었던 가난과 외로움이 오히려 지금은 그때마다 채우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여실히 표가 나는 증거의 산물이 되었다. 바울의 고백처럼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그렇듯 이제 나는 나의 약한 데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남이 생에 증거가 된다.
고로,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
내 영혼에 힘을 주어 나를 강하게 하셨나이다
(시 138:3).
본문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위탁한 예언이 성취됨을 선포하게 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두 번째 말씀이다. 그만큼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격려하시고 그 약속을 실행하실 것을 강조하신다. 때는 여전히 왕궁 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에 예레미야에게 임하신 말씀이다. 곧 현실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 믿기지 않는 현실이다. 누구를 권면할 때 혹은 저의 아픔을 기도하겠노라 약속할 때 나의 처지도 그에게 처량하고 그의 현실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 우리의 믿음은 소망이 없으면 믿기지 않는다.
이러한 말씀 가운데 절망의 나락에서도 주를 바라게 하심인데, 일하시는 하나님, 그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시는 여호와시다.’ 예레미야는 기도할 때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렘 32:17).” 하는 확신으로 붙들렸다. 그 하나님은 곧 온전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출 6:2-3).” 우리로 소망을 갖게 하심은 주의 이름으로다.
천지가 창조되었을 때 그의 이름은 여호와라 불리었다.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창 2:4-6).” 고로 오늘 성취의 길은 기도에 의해 흐르는 길이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여기서 주목하는 두 원칙은 ‘내게 부르짖으라’는 것과 ‘내가 응답하겠다’는 것이다.
그저 막연히 기도합니다. 기원합니다. 하는 따위의 소원이 아니다. 이를 반드시 주의 이름으로 아뢸 때 주는 이루실 것이라 약속하신다. 우리는 이에 하나님의 자비로운 뜻을 알려고, 더욱 하나님 앞에 겸손히 기도한다.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 주는 은혜를 천만인에게 베푸시며 아버지의 죄악을 그 후손의 품에 갚으시오니 크고 능력 있으신 하나님이시요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이다(32:16-18).”
이는 오늘 우리의 기도가 되고 그와 같은 간구가 되어 응답을 근거로 한다. 주가 응답하심으로 이를 확신하고 증거하는 삶이 성도의 길이다. 고로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심을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믿는다. 그럴 때 주의 응답이 주어진다. ‘보이시겠다’는 말은 예레미야에게 앞으로 이루어질 일의 확실한 전망을 알리시는 것이다. 그렇게 올해도 성경은 나에게 듣게 하신다. 곧 기도를 힘쓰도록 격려하신다. 위하여 약속은 주어진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제사 드릴 양 떼 곧 예루살렘이 정한 절기의 양 무리 같이 황폐한 성읍을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겔 36:37-38).”
말도 안 되는, 불가능할 것 같은 현실에서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렘 33:6-8).” 이에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9).” 이는 일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약속이다.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와 여호와의 성전에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 이는 내가 이 땅의 포로를 돌려보내어 지난 날처럼 되게 할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1).”
하여 우리는 오늘, 저마다의 어려운 처지와 사정에서 주의 이름을 부를 때,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이 미천한 삶에서도 증명이 되는 모든 이야기의 근거이다. 새해 첫날에도 출근을 하였다가 귀가한 딸애와 식탁에 앉았을 때, 나는 자주 저 아이가 시집을 가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룰 것을 상상하다 울컥, 하고 감사가 저절로 인다. 다친 엄마를 대신해서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는 장성한 아들을 보면서 나는 정말 저 아이들을 놓고 한 게 없어서 부끄러우나 그만큼 주의 은혜라는 데서 감격스러워하곤 한다. 이런저런 염려가 많은 아내의 지청구에 나는 종종 그래서도 감사할 게 얼마나 많은지를 말하곤 한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14-15).” 오늘의 이 위로의 말씀이 우리 삶에 증거가 되어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주야와 맺은 언약이 없다든지 천지의 법칙을 내가 정하지 아니하였다면 야곱과 내 종 다윗의 자손을 버리고 다시는 다윗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다스릴 자를 택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 포로된 자를 돌아오게 하고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25-26).”
하여 올 새해에도 주는 나와 함께 하심을 알고,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주의 힘으로 나를 변호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
(시 54:1-2).
하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
주께서는 내 원수에게 악으로 갚으시리니
주의 성실하심으로 그들을 멸하소서
(4-5).
그러므로 오늘도, 이 새 날에도 ‘굳게 결심함’으로 주께 아뢰어,
참으로 주께서는 모든 환난에서
나를 건지시고 내 원수가 보응 받는 것을
내 눈이 똑똑히 보게 하셨나이다
(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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