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가 레갑 사람의 가문에게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너희 선조 요나답의 명령을 순종하여 그의 모든 규율을 지키며 그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행하였도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렘 35:18-19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시 56:3
우리가 주를 의지한다는 것은 순종과 비례한다. 우리의 순종은 복종의 무게다. 본질적으로는 우리도 육의 소욕을 따르길 원한다. 세상에 살면서 세상에서 좋은 것을 추구하려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우리 기도의 대부분이 실은 세상에서 필요한 것에 관한 요구이다. 그래서 중보기도가 값진 것은 나의 문제에서 한 발 떨어져서 내 곁에 속한 사람들이나 환경을 놓고 기도하는 일이다.
오늘 본문은 순종하지 못하는 이스라엘과 상대적으로 여호야김 왕 시대에 선포된 두 장의 메시지 가운데 첫 번째 장이다. 본문은 레갑 사람들의 신설함과 유다 유성의 불순종을 대조하여 불순종한 유다에 대해 심판을 선언한다. 상대적으로 신실한 레갑 사람들에 대해 축복을 선언하신 사실을 눈여겨보게 된다. 이는 레갑 족속이 조상의 명령에 대해 모범적으로 복종하는 것을 보인다. 하물며 하나님의 백성들로 말할 수 없는 축복과 은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불순종을 일삼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주목하게 한다.
35장은 앞의 장들보다 훨씬 먼저 일어난 사건이다. 이 내용은 여호야김 때에 일어난 일이다. 그의 통치 말년에 바벨론이 군대를 끌고 이 땅에 올라온 후에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이 땅에 올라왔을 때에 우리가 말하기를 갈대아인의 군대와 수리아인의 군대를 피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자 하고 우리가 예루살렘에 살았노라(11).” 이 침략은 열왕기하 24장 2절에서,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 하는 것으로 주의 손길에 의한 일임을 밝혔다.
하나님은 반역한 백성에게 심판을 내리신 후에도 계속 그들을 잊지 않으신다. 예언자들을 통해 죄에서 돌아설 것을 종용하신다. 그러면서 언제든 진노를 거두실 생각이시다. 이런 목적으로 오늘 이 본문은 예레미야에게 백성들을 일깨우는 데 있어 ‘레갑 족속’을 예로 든다. 그들은 스스로를 구별하여 다른 이스라엘 족속과 같이 생활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구별하기 위해 엄격했어야 하는데도 이방 민족을 따라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거역하였다. 그런 가운데 레갑 족속은 본래 겐 족속이다. 그러므로 “야베스에 살던 서기관 종족 곧 디랏 종족과 시므앗 종족과 수갓 종족이니 이는 다 레갑 가문의 조상 함맛에게서 나온 겐 종족이더라(대상 2:55).”
실질적으로는 이방 족속 중에서 겐 족속들은 적어도 이스라엘 땅에 정착할 수 있는 권리가 없었다. 그런 가운데 유일하게 모세의 장인 호밥의 후예들은 예외였다. 겐 족속들이 아말렉 족속을 떠나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사울이 겐 사람에게 이르되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 가라 그들과 함께 너희를 멸하게 될까 하노라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그들을 선대하였느니라 이에 겐 사람이 아말렉 사람 중에서 떠나니라(삼상 15:6).” 이들 겐 족속 중 한 집안의 명칭이 레갑이었다. 이는 그들 조상 중 레갑이란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그의 아들이며 장남으로 요나답이 있다. 그는 당시 지혜와 경건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이 사건이 있기 300년 전인 이스라엘의 예후 왕 시대에 활동했다. 새로 등극한 예후가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동하였을 때 그가 요나답(또는 여호나답)을 등용하였다. “예후가 거기에서 떠나가다가 자기를 맞이하러 오는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만난지라 그의 안부를 묻고 그에게 이르되 내 마음이 네 마음을 향하여 진실함과 같이 네 마음도 진실하냐 하니 여호나답이 대답하되 그러하니이다 이르되 그러면 나와 손을 잡자 손을 잡으니 예후가 끌어 병거에 올리며 이르되 나와 함께 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 하고 이에 자기 병거에 태우고(왕하 10:15-16).” 요나답과 같이 명망 있는 인물을 병거에 태워 자기와 함께 동승시킴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끌어내기도 했다.
본문은 그때의 요나답이 그의 후손들에게 부탁한 생활 규범을 알리고, 이를 여러 대에 이르러서도 복종하는 것을 상기시킨다. “너는 레갑 사람들의 집에 가서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을 여호와의 집 한 방으로 데려다가 포도주를 마시게 하라 하시니라(2).” 그런 뒤 포도주를 권하자, “내가 레갑 사람들의 후손들 앞에 포도주가 가득한 종지와 술잔을 놓고 마시라 권하매(5).” 저들이 이를 정중히 거절하여 그 이유를 밝히는 데서 의미가 있다.
“그들이 이르되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겠노라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원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너희가 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을 소유하지도 말고 너희는 평생 동안 장막에 살아라 그리하면 너희가 머물러 사는 땅에서 너희 생명이 길리라 하였으므로 우리가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한 모든 말을 순종하여 우리와 우리 아내와 자녀가 평생 동안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살 집도 짓지 아니하며 포도원이나 밭이나 종자도 가지지 아니하고 장막에 살면서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한 대로 다 지켜 행하였노라(6-10).”
이는 지혜롭고 경건하였던 선조 요나답의 명령에 따른 것이다. 먼저 저들은 그래서 ‘영원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 한 것을 지킨다. 또한 ‘너희가 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을 소유하지도 말고, 너희는 평생 동안 장막에 살아라.’ 하는 명령을 순종한다. 여기서 우린 마치 청교도적인 신앙으로 우리가 본향을 향해 나아갈 때 이와 같은 구별된 삶이 요구되는 것을 수 있다. 인생을 살면서 믿는다고 하면서 안 믿는 자와 다를 것 없이 집을 소유하고, 스스로의 뿌림과 거둠을 반복하느라 일상을 삼고, 포도원을 소유하듯 술 취함을 용인한다. 정작 우리는 잠시 잠깐 장막에 사는 것이 인생인 것을 인정하면서도 말이다.
또한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한 모든 말을 순종하여” 하는 데서 우린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려하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와 우리 아내와 자녀가 평생 동안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곧 술 취함은 이 땅에서의 향락과 쾌락주의를 일삼는 것으로 실은 믿는 자들로서 세상에 대한 소유욕이 더하다. 유대인들로 저들은 세계적으로 보석과 땅과 돈 곧 대출을 일삼으며 자기 소유에 대해 남다른 집착으로 유대감을 형성하고 살았던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레갑 족속은 선조의 뜻을 따라 ‘살 집도 짓지 아니하며, 포도원이나 밭이나 종자도 가지지 아니하고, 장막에 살면서’ 선조 요나답의 명령을 지켜 행하며 살았다.
포도주 마시는 것은 마음에 즐거움을 추구하는 삶을 주의하게 한다. 성경의 관점에도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 이는 우리가 신앙을 지키며 믿음으로 살려 할 때면 직간접적으로 몸소 경험하게 되는 일이다. 그 가운데 술은 마시다보면 도가 지나쳐 그것으로 인하여 해를 끼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요즘은 흡연의 심각성을 부각시키고 규제하는데, 실은 음주가 우리 실상에서 더 많은 문제요인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음주운전을 비롯하여 심신미약을 가져와 술 취함으로 함부로 구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실 나 역시 경험한 것이지만 경건하게 살려할수록 술을 즐기지 않는다. 그런 자리를 피한다. 함께 어울리던 사람들과도 거리를 둔다. 이사야는 이를 일깨우듯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잘 빚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사 5:11, 22).” 그뿐인가? 소유에 있어서도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8, 12).” 술이나 소유나 모두 자신을 즐겁게 하는 일이다.
이에,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시 4:6-7).
정작 우리 영혼의 즐거움은 술 취함이나 소유하는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진정 하나님을 향한 마음으로라면 레갑 족속과 같이 ‘장막에 머무는’ 것으로 잠시 후에 있을 본향을 향해 나아가는 삶으로 족하다. 내가 존경하는 두 사람의 목회자가 있는데, 둘 다 말씀을 중심으로 성도들을 양육하고 전도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실천적인 목회를 한다. 그런데 다른 점은 각각 소유와 무소유의 차이다. 하나는 그래서 더 교회와 교육관과 그와 같은 시설을 선호한다. 물론 이를 허투루 쓴다거나 교세를 확장하는 일에 열을 올린다는 게 아니다. 또 하나는 전혀 그런 데 허투루 교회재정을 쓰기보다 그 돈으로 성도들과 더 나누고 그때마다 경건한 소비를 우선하느라 여전히 남의 건물에 세든 채 교회가 소유하는 것 없이 목회한다.
어느 쪽이 더 옳다 그르다는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시험이 찾아올 때 교회가 소유한 것으로 패가 나뉘고 서로가 소유권을 주장하는 시비가 종종 생기는 쪽을 보면 소모적이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에 오늘 레갑의 후손으로 ‘장막에 거하며’ 하는 데서, 이와 같은 규례는 본래 나실인으로 경건과 헌신을 전제로 자기 소유를 포기하는 고행과 엄격한 생활을 요구한다. 실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데는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 결코 쉬운 게 아니겠지만 ‘내일을 위해 무엇을’ 장만하고 준비하고 비축하고 쌓아두는 게 사실 성경의 원리는 아니다. 예수님도 이르시길,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
하면 오늘로 충실할 의무가 있다. 희망 없이 살란 소리가 아니다. 우리의 소망은 희망 그 이상의 힘이 있어서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롬 8:24).” 고로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골 1:5).” 이에 우린 요나답의 명령에 복종하여 삶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스스로의 경건을 도모하는 족속과 같이 말씀으로 순종하며 나의 소욕과 욕구로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 레갑의 조상 요나답이 이러한 규범을 명령한 것은 단순히 권유가 아니라, 인생에 있어 지혜를 보여 주는 것으로 더 나은 영생을 소유하게 한다.
우리로 하나님이 더하시는 유익으로 신실한 삶을 살게 한다. 곧 모세도 이르기를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출 20:20).” 다윗은 이를 찬송할 때,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
(시 26:1-2).
곧 우리가 이 땅의 소유나 쾌락을 추구하려 할 때 이는 단순히 그럴 수 있는 정도로 그치는 게 아니어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그렇게 뇌물을 가져다주고 자신들의 사업을 확장하는 데 있어 사회의 권력과 결탁하게 된다. 부정한 방법으로라도 이익을 추구하고, 그러느라 여느 종파의 교세 확장을 위한 전방위적 로비나 부정한 방식의 꾀를 따르게 된다. 말이 좋아 이상과 목적이지 실상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그렇게 가족 간에도 반목하고 친구의 우애나 사랑도 깨지기 일쑤다. 돈이 우선이라 하면 천박한 듯하나 그조차 낭만은 사라지고 아이들의 꿈조차 부자가 되는 것, 건물주가 되는 게 꿈이 된 세상이다.
하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딤후 3:2, 히 13:5).”
말씀이 미덥지 않고 세상이 더 가까울 때 안 믿는 자들 이상으로 소유하고 누리고 다스리며 더 많이 갖고자 하는 것이다. 이에 오늘 말씀이 묻는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는 가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내 말을 들으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겠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5:13).” 그리고 탄식함으로,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그의 자손에게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 한 그 명령은 실행되도다 그들은 그 선조의 명령을 순종하여 오늘까지 마시지 아니하거늘 내가 너희에게 말하고 끊임없이 말하여도 너희는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도다(14).”
그럼에도 주의 긍휼하심은 거듭 말씀을 더하시고 명령하시고 권면하시지만 “내가 내 종 모든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고 끊임없이 보내며 이르기를 너희는 이제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켜 행위를 고치고 다른 신을 따라 그를 섬기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가 너희와 너희 선조에게 준 이 땅에 살리라 하여도 너희가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15).” 그러니 얼마나 대조적인가? “레갑의 아들 요나답의 자손은 그의 선조가 그들에게 명령한 그 명령을 지켜 행하나 이 백성은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도다(16).” 주님의 탄식이 여실히 느껴진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에게 내가 그들에게 대하여 선포한 모든 재앙을 내리리니 이는 내가 그들에게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며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함이니라 하셨다 하라(17).”
궁극적으로 순종이 제사보다 나음으로,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19).” 하여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묻는다.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 따를 것인가? 끝까지 불순종하듯 스스로 거룩하고 경건할 터인가?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거룩하게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아 너희 가운데에 온전히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너희가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가운데에서 제하기까지는 네 원수들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리라(수 7:13).” 말씀으로 복종을 행할 때 어느 순간 자발적인 순종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내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하게 치는 자들이 많사오니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시 56:1-3).
사는 일이란 어쨌든 남들과 비교되고 세상을 보게 되는 일이어서 우리의 레갑 족속 같은 경건한 삶이 불안하게 다가오지만,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4).
그래봐야 세상이 우릴 어쩌지 못할 것을 믿음으로,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이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9-10).
그리하여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11-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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