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룻기 1장 / 굳게 결심함

하현. 2026. 1. 2. 08:29

260104 주일

 

 
룻기 1장
굳게 결심함

 
 

룻 1: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룻 1: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룻 1:18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들어가는 말
 

수잔은 어려서부터 의사가 되길 원했다. 의사가 되어 병든 사람을 치료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알리고자 하였다. 입시준비를 하던 나이에 골결핵이 찾아왔다. 이 병을 고치려고 여러 병원을 전전긍긍하였다. 그러느라 20대를 지나 30대를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 하는 음성을 들었다. 그녀는 병원 침대에 누워, 누가 한 말인지? 자신 속에서 들린 말인지? 이를 곰곰이 생각하였다.
 

여태 병을 고치는데 시간을 쏟았지, 한 번도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남을 생각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일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후 그녀는 불친절하게 굴던 간호사에게 상냥해졌다. 같은 병실 환우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하나씩 둘씩 병상에서도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고 이를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을 하려 했다. 수잔이 달라졌다. 그러면서 병실 분위기도, 간병을 하는 사람도 달라졌다.
 

여전히 환자고 아픈 몸이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그녀의 행동과 말씨는 주변을 바꾸기 시작했다. 좋은 일이 있냐고 누가 물으면 그녀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녀의 변화는 주변 모두를 바꿔놓기 시작했다. 그녀의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해!’ 하는 말은 구호처럼 바뀌면서 다른 병실로도 전파되었다. 얼마 지나면서 병원 전체가 그녀의 구호에 따라 바뀌듯이 달라졌다. 환자니까, 환자라서 못한다던 생각을 버렸다. 급기야 의사들도 의사들대로 평소 바쁘니까, 바쁘다고 미루던 일들을 찾아서 하게 되었다. 서로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서로에게 좋은 영향력으로 전파되었다.
 

급기야 그녀의 이름을 따서 이와 같은 운동은 영국 일대의 병원으로 확산되었다. 모임이 결성되고 수잔은 그 모임의 초대수장이 되었다. 그녀는 훗날 신앙을 고백하면서 말했다. 자신이 의사가 되었을 경우보다 환자로서 돌보게 된 환우의 숫자가 몇 배는 더 많아졌다는 것을 말이다. 이를 하나님 앞에 영광으로 올렸다.
 

본문이해
 

인생의 파경은 순간적이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온다.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진 것 같지만 실상은 축적된 시간의 산물이다. 늘 그 시간들은 신호를 보냈었다. 오늘 본문은 이에 두 가지 사실을 먼저 우리에게 던져놓는다. 첫째는 사는 날 동안 뜻하지 않은 외부적인 풍파가 온다는 것이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1).” 오늘 본문의 시대적 배경은 사사시대의 일이다.


 
여호수아 이후 사울 왕 전까지로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게 출애굽 후 480년 되던 해였으니까, 사사시대는 앞서 410년 동안 이어졌을 것이다. 그 전 7년 정도는 가나안 정복의 기간이다. 옷니엘 사사로 시작하여 삼손과 단을 마지막으로 엘리 제사장 후 사무엘 선지자 후 사울이 처음 왕으로 세워졌다. 광야 생활은 40년, 가나안 정복은 7년, 사사시대 410년, 엘리 제사장 40년, 사무엘 12년 등…. 그 가운데 사사시대 중 흉년이 들었을 때이다.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행 13:20).”

 
그렇듯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룻 1:1a).” 하고 오늘 본문은 시작한다. 흉년은 외적인 파경이다. 파경은 ‘깨진 거울’이란 뜻으로, 일상이 깨져버리듯 닥친 어려움이다. 그때에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1b).”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한 사람’의 선택에 의한 것이다.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2).”

 
곧 우리 삶이 ‘깨진 거울’ 같이 되는 경우는 이처럼 외적인 충격과 내적인 압력으로 파경을 겪는다. 흉년이 든 것은 선택할 수 없는 외적인 일이고, 모압으로 들어간 것은 개인적인 선택에 의한 일이다. 그곳에서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3).” 살기 힘든 흉년을 피해 모압 이방땅으로 들어갔으나 결국 엘리멜렉이 죽었다. 그의 처와 두 아들만 남았다. 이에 모압 땅에서 두 아들은 이방 여인과 결혼했다. 그러나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나오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5).” 그렇게 세 과부가 되었다.
 

이제 선택은 나오미의 몫이다.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6).” 나오미는 두 과부 며느리들을 모압 자신들 집으로 돌려보내고 자신 혼자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 한다.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8).” 세 과부가 된 슬픔도 짐작이 가는데,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9).” 결국 하나는 떠나고, 하나는 남는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14).”
 

곧 각각의 선택이다. 이때 둘째 며느리 룻의 결의가 오늘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부분이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16).” 이는 단지 같은 처지의 어머니에 대한 신의(信義)가 아니다.
 

우리의 주안점은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하는 것이다. 또한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하는 부분에서 모압 땅 이방 여인이나 ‘하나님의 선민, 주의 백성으로, 어머니의 백성’에 속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결정적으로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하는 것으로 초점을 맞춘다. 룻의 결단은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17).” 이는 단순히 감정적인 호소하는 게 아니었다. 룻의 굳은 결심은 여호와 유일신에 대한 믿음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증명한다. 그러자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18).”
 

여기서 우리가 붙들 수 있는 주제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하는 신앙으로 오늘 ‘룻의 결심’은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한 것임을 알게 한다. 그 하나님의 백성이 나오미가 속한 백성이고, 그 백성들이 사는 곳이 나오미가 사는 곳이라 여겨 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가겠다는 것이다.
 

룻의 굳은 결심이 우리에게 믿음으로 말미암은 결단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신 믿음은 선물이지만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선택은 개인의 몫이다. 같은 처지의 오르바는 모압 땅에 남았지만 룻은 나오미를 따라 나오미의 하나님의 백성들에 편입되기로 선택하였다. 이처럼 예수님의 계보에 오르는 여인 넷이 있는데 먼저는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다.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데려오니 그의 이름은 다말이더라…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창 38:6, 마 1:3).”
 

두 번째는 가나안에서 처음으로 정복한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이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수 2:1 히 11:31).”
 

그리고 세 번째로 그 기생 라합의 후손인 보아스의 아내가 된 오늘의 룻이다.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룻 4:12).” 그렇게 해서 보아스와 룻은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다. 룻은 다윗 왕의 고조모가 된다.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19).” 그러자 나오미는 정직하게 인정한다.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20).” 본래 ‘나오미’란 이름의 뜻은 감미로운자, 은혜로운 자, 사랑스러운 자란 의미다. 그런 의미의 자신을 ‘마라’라 하는데 ‘마라’의 뜻은 괴로움, 쓰라림, 쓰다는 의미다.
 

나오미가 자신을 ‘마라’라 불러달라 한 것은 그녀가 모압 땅에서 극도의 슬픔과 고통을 맛보았음을 인정하고, 다시 주의 백성들 가운데로 돌아오게 된 것을 감격하며 역설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나오미가 하나님의 명칭을 ‘전능자’로 부르고 있음은 자신이 ‘택함 받은 백성’임에도 순종의 길로 가지 못하고 어그러진 길로 갔었음을 인정하고, 저주의 길에서 돌아온 것을 회개하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마치 탕자처럼,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눅 15:18-19).”
 

이에 오늘 본문의 중심이기도 한 내용을 예수님의 설교에서 듣는다면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눅 15:10).”
 

나오는 말

 
돌이켜 나오미가 자기 백성에게로 돌아오는 것과 이에 이방 땅 모압 여인 룻이 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온 것은 그 의미가 크다. 나오미가 말한다.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21).” 하는 나오미의 진솔한 고백과 룻의 굳은 결심은 새해를 맞으면서 우리가 가지고 살아야 할 지표가 된다. 그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회개란,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룻 1:6).” 이는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났다가 다시 순종하는 삶으로 돌이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으로 산다는 것은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잠 16:3).” 하는 것이다.
 

둘째, 순종이란 “룻이 이르되 …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16-17).” 이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결국 우리의 모든 결과는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는 더러 실패하고 좌절하여 낙심하면서 파경에 이르기도 한다. 오늘 이처럼 파경을 맞은 나오미(1-5)는 결국 돌이켜 베들레헴 하나님의 백성에게로 돌아왔다(6-18). 그리고 회개하며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였다(19-22). 이와 같이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 12:11).”

 
올해도 우리 앞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으나 우리는 반드시 그 모든 것을 통하여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하는 승리의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하여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2-4).”
 

올 해 첫 번째 주일, 우리는 <굳게 결심함>으로,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16-17).” 하는 믿음의 결단으로 한 해를 시작하길 기도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