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룻기 3장 /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현. 2026. 1. 22. 09:26

260125 주일

 

룻기 3장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룻 3:1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룻 3:2 네가 함께 하던 하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보라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룻 3:3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 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룻 3:4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

룻 3:5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룻 3:6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

 

 

들어가는 말

 

말씀대로 행한다는 것은 순종이다. 설령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 해도 자신의 뜻을 접는 것이다. 토론하고 타협하는 게 아니다. 늘 강조하지만 말씀은 선포다. 선언이다. 우리의 의사를 묻는 게 아니다. 이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 하는 말씀에 주목하게 하는 본문이다.

 

시어미 나오미는 아직 어린 며느리 룻의 장래를 생각하여야 했다. 룻을 계속 며느리로 구속할 수는 없었다. 나오미는 룻을 위해 ‘기업 무를 자’를 생각하였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1).” 소외 계층으로 과부들의 삶은 비참했다. 남편을 잃고 혼자 지내는 일은 기댈 데 없고 보호가 끊긴 것이다. ‘기업 무를 자’로 시댁의 근족을 통해 계대를 이어 혈통을 이어야 할 책임이 여자에게 있었다.

 

특히 이스라엘은 이방 족속과의 혼인을 금하였다. 혈통을 이어 그 가문의 계통으로 잇는 것이 여자의 책무였다. 나오미는 룻을 통하여 남편 엘리멜렉의 기업 무를 자를 생각하였다. 우연처럼 필연적으로 엘리멜렉과 가장 친족 중의 한 사람이 보아스였다. 결국 엘리멜렉의 계대를 이어야 말론과 기룐이 죽었으니 보아스는 율법적으로도 룻과 결혼할 의무가 있었다.

 

때는 추수기로 보아스는 곡식 베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이를 알고 나오미는 룻을 보아스에게 이끌었다. 보아스도 이를 알고 있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타작마당에서 보리를 까불 때 룻을 그의 잠자리 발치께에 눕게 하였다. 그 심정은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는’ 마음이었다. 즉 보아스가 거절하거나 싫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보아스의 나이는 얼추 시부모의 연배였다.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고 보아스가 놀라서 물었다. 그러자 룻이 슬기롭게 대답한다.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9).” 그러자 보아스가 감동하여 말했다.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10).” 이 말은 룻이 아직 젊은 여인으로 육신의 안목대로 기업 무를 더 젊은 남자를 찾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룻은 시어미 나오미의 뜻을 따라 가문의 명예를 우선 생각하였다.

 

이에 보아스는 룻의 순종을 ‘인애’로 여겼다. 자신의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시어머니 나오미를 좇아 베들레헴에 온 것도 놀라웠다. 또한 시모를 공경하는 마음도, 젊은 과부로 정욕을 좇지 않은 것도, 궁극적으로는 어머니의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던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즉 ‘처음 인애’는 남편을 사랑한 룻이며, ‘나중 인애’는 근족과 결혼함으로 남편의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 남기고자 하는 사랑의 행위로 인애였다.

 

룻의 결단을 ‘인애’라 표현하고 현숙함이라 여겼다. 엄연히 나이 든 보아스로서는 감동하였다. ‘인애’란 히브리어로 <헤세드>라 하여 ‘이스라엘과 맺은 하나님의 사랑의 언약’을 의미한다. 하여 보아스는 룻을 인정하였다.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11).”

 

현숙한 여인에 대하여 지혜자는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잠 31:10).” 곧 룻은 정숙하였고 현명한 여인이었다. 그것은 룻이 자신의 판단이나 선호보다 어머니의 뜻을 따랐고 어머니의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룻은 그 하나님의 백성 중에 속하고자 하여 “당신이 내게 하신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고 순종하였던 것이다.

 

1. 룻의 순종

 

1) ‘말씀대로’ 행하리이라.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5).”

 

말씀을 들을 때 인간의 말로 들으면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없다. 설교를 평가하는 성도는 교만하다. ‘말씀대로 행한다는 것’은 그 뜻을 하나님의 뜻으로 따르기 때문이다. ‘말씀대로 잉태’하고,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 ‘말씀대로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 바랄 수 없는 중에 따랐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롬 4:18).” 아무나 행할 수 있은 게 아니다.

 

2)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고 말씀대로 따랐다.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어머니의 명령대로’ 다 하니라(6).”

 

실은 과부가 되어 과부인 시어미를 따라온 것도 신통하고, 아직 어리고 젊은데 과부로라도 어머니의 백성 중에 자신이 속하길 바란 것도 놀랍고, 시아버지 나이였을 늙은 보아스에게 그리하라는 ‘말씀대로’ 행함도 놀랍다. 즉 믿음으로의 순종은 우리의 상식과 판단에 맞지 않는다.

 

2. 룻에 대한 보아스의 평가

 

1) 인애함을 높이 보았다.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10).”

 

인애는 ‘어진 마음’으로 박애(博愛)와 같다. 평등한 사랑이란 이상적인 하나님의 사랑의 언약을 떠올리게 한다. 보아스는 룻의 순종과 계대를 이르려는 마음이 귀하게 여겨졌다. 룻의 <처음 인애>는 ‘남편에 대한 마음’이었겠으나, <나중 인애>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의 의무를 이행함이었다.

 

2) 현숙함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11).”

 

현숙한 여자란 ‘힘 있는, 능력 있는’의 의미로 현숙한 여인을 얻는 것이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하는 지혜이다.

 

<현숙한 여인의 특징>

첫째, 산업이 핍절치 아니하게 한다(잠 31:11-19).

둘째, 가난한 자에게 선을 행한다(20).

셋째, 남편을 존귀케 만든다(23).

넷째, 모든 언사에 지혜와 규모가 있다(26).

다섯째, 부지런하며 게으르지 않다(27).

여섯째,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칭찬을 듣는 자이다(30-31).

 

3) 원칙과 양심을 따랐다.

“참으로 나는 기업을 무를 자이나 기업 무를 자로서 나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있으니(12).”

 

보아스도 자신의 소욕대로 행하지 않았다. 자기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룻에게 일러주었다. 이는 그 사람에게 먼저 ‘고엘의 의무’를 물어야 함을 일깨우는 것이다. ‘고엘’은 무르다, 되찾다 하는 뜻이다. 보아스의 조치는 원칙과 양심을 따라 하나님 앞에 분별 있는 행동이었다. ‘기업 무를 자’의 우선순위는 가장 가까운 친족부터이다. 나오미도 이를 알면서 더 가까운 친족을 두고 보아스로 ‘기업 무를 자’를 정했던 것이다.

 

4) 자신의 책임을 다한다.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워 있을지니라 하는지라(13).”

 

여호와께 맹세하는 보아스의 심정이 밝혀진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행하던 맹세의 방식이다. 맹세하는 것은 맹세한 자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전 인격을 걸고 실행할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맹세 속에 엄숙한 책임이 따른다.

 

5) 긍휼하는 마음을 가졌다.

“보아스가 이르되 네 겉옷을 가져다가 그것을 펴서 잡으라 하매 그것을 펴서 잡으니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지워 주고 성읍으로 들어가니라(15).”

 

보아스는 룻의 마음을 알았고 긍휼을 베풀었다. 겉옷을 가져다 주머니처럼 삼고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담았다. 보아스는 룻에게 보리를 줌으로 자신의 말이 헛된 것이 아님을 증명하였다. “이에 시어머니가 이르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하니라(18).” 하고 나오마의 신뢰를 얻었다.

 

3. 시어머니 나오미의 지혜

 

1)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방 며느리 룻을 대하였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1).”

 

‘안식할 곳’은 평화롭고 안정된 생활을 의미한다. 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보금자리’가 된다. 과부가 가정을 가지는 것은 안식을 얻는 것이다. 남편의 보호 아래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다(1:9).

 

2)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가르쳤다.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가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네 할 일을 네게 알게 하리라 하니(4).”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는 것은 당시의 히브리 율법에 근거할 때 지혜롭고 당연했다. 모세 율법에 근거하여 그렇게 할 때 ‘고엘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되었다(신 25:7). 이와 같이 결혼이란 ‘우연과 필연 사이’의 하나님의 섭리로 이루어진 것이다. 함께 가정을 이룬다는 일은 그만큼의 책무가 따른다.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하는 나오미의 설명은 하나님을 의뢰함에서 나오는 말이다.

 

나오는 말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16:1, 33).”

 

우리가 사는 동안 숱한 ‘우연과 우연’이 겹쳐 필연으로 이어진다. 하나님께 맡김으로 우리는 이와 같은 섭리를 경험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르시길,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곧 우리는 이 일이 잘될는지 못될는지 알지 못했다. 누가 함부로 장담할 수 없다. 결혼은 특히 그러하다.

 

오늘 날 우리가 가정을 이루는 일에 있어 너무 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르시길,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마 19:6).” 한데 이 원칙이 아무렇지 않게 무너지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창 6:2).” 이는 노아의 홍수 심판 때와 같다.

 

이와 같이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는 것 가운데 빠지지 않은 엄연한 관계가 있다. 곧 서로가 만나 가정을 이루는 일에 있어서,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막 10: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