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룻기 2장 / ‘우연’과 ‘마침’ 사이

하현. 2026. 1. 8. 16:12

260111 주일

 

 

룻기 2장

‘우연’과 ‘마침’ 사이

 

 

룻 2: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룻 2:2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룻 2: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룻 2:4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들어가는 말

 

이야기가 전개되는 데 있어 ‘우연’과 ‘마침’은 톱니바퀴 같다. 맞물려서 우연히, 하필, 마침 돌아간다. ‘우연히’는 어떤 일이 뜻하지 않게 저절로 이루어져 공교로운 순간이다. ‘마침’은 어떤 경우나 기회가 알맞게 딱 맞아 떨어지는 시간이나 공간의 상황이다. 이러한 순간과 상황은 의외로 전혀 개연성이 없다. 개연성이 없음으로 우연하고, 하필 그러해서 마침하다. 아마 그럴 것이라는 추측이나 예상도 못한 상태에서의 실제가 우연이고, 우연은 마침 필연적인 것이어서 공교롭다. 공교롭다는 것은 생각지도 않았던 사실이나 사건을 뜻한다. 그리하여 우리 인생은 모두 지나고 보면 우연을 빙자하여 필연적이었던 마침이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잃고 돌아왔다. 10여 년 전 베들레헴을 떠날 때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우연히 흉년이 들었고, 하필 모압으로 들어갔다가 마침 엘리멜렉이 죽었다. 그렇게 10년을 살면서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도 과부가 되었다. 그런 가운데 오르바는 모압에 남았고 룻은 시어미 나오미를 붙좇아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다. 그런 가운데 기업을 물을 수 있는 친족으로 보아스였다. 이스라엘은 혈연 동족 중심의 단일민족 공동체로써 자식이 없이 남편이 죽으면 아우가 또는 가까운 친족이 씨를 주어 기업을 잇게 했다.

 

모압에서 따라온 룻이 시어미 나오미를 대신해 밭으로 가서 일을 해야 했다. 가난한 이들은 추수 때 털고 남은 이삭을 주워 연명했고 민족끼리는 이를 묵인하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 인색하게 곡식을 털지 않았다. 룻은 은혜를 입어 이삭을 줍기 위해 무작정 밭으로 갔고 이삭 베는 자들을 따라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그곳은 엘리멜렉의 유력한 친족 보아스의 밭이었다. 또 마침’ 밭의 주인인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 올라왔다.

 

마침, 그날, 하필, 우연하게 베들레헴 밭으로 온 것이, 서로 인사를 하다 보아스가 이삭 베는 자들을 관리하는 사환에게 ‘이는 누구의 소녀냐?’ 하고 물었다. 그렇게 마침 룻이 눈에 들어왔고, 호기심이 생겼다. 사환이 대답하여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온 모압 소녀인 것을 알렸고, 사환의 눈에 룻의 성실함이 들어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것 외에 그때까지 계속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는 것을 알리었다. 그러자 보아스는 룻에게 말을 걸고 권면하였다.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단지 그럴 수 있어 호의로 그런 듯하지만 사뭇 이 일은 ‘우연과 마침’ 사이에 <하나님의 의도>가 숨겨져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덧붙여 “내가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그들을 따라 줍고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며 모압에서 온 룻을 위하고 배려하였다.

 

룻이 물었다.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룻이 느끼기에도 보아스의 배려가 단지 예사롭지 않았다. 그러자 보아스가 말했다.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보아스는 자신의 관심이 단순한 호기심이나 호의가 아닌 여호와를 경외하는 이유로 그러한 것을 밝힌다.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룻으로서는 당황스럽고 황송하다. 그래서 말하길,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고 보아스의 사려 깊은 마음에 감격한다. 식사할 때도 보아스는 룻에게 권하며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하고 권한다. 그렇게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서 볶은 곡식을 배불리 먹고,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도 보아스는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며, 알 수 없는 마음쓰임을 드러낸다.

 

룻은 밭에서 저녁까지 이삭을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어 그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 시어머니에게 주었다. 뿐만 아니라 배불리 먹고 남은 음식을 가져다가 시어머니에게 드렸다. 시어머니 나오미가 궁금하여 물었다.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날의 수확에 복을 빈다. 룻이 시어머니에게 알린다.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 순간 나오미도 놀라는 기색으로 “그가 여호와로부터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고 의미심장하게 말한다. 덧붙여 이르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나오미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의 하나이니라.”

 

그러자 룻이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 “그가 내게 또 이르기를 내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너는 내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라 하더이다.” 그러자 나오미가 말했다. “내 딸아 너는 그의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나오미는 ‘어떤 눈치’를 채고 짐작하여, 하나님이 ‘어떤 의도’로 무슨 일을 이루시는가 알 것 같다는 듯 일렀다. 룻이 그렇게 보아스의 소녀들 사이에서 보호 받으며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시어머니와 함께 거하였다.

 

본문이해

 

여기서 우린 하나님의 일에 우연과 마침, 하필과 기어이 등 공교로운 일로 숨겨놓으신 섭리를 생각하게 된다.

 

1. 하나님의 역사: ‘우연과 마침’ 사이에서(1-3)

 

“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잠 25:2).” 사실 우리는 ‘우연’이 지나서야 ‘필연’을 알 수 있다. 필연은 그럴 수밖에 없는 일로 ‘틀림없음’이다. 이를 알지 못할 때는 긴가민가하다 이루어지고 확신이 든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는,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이를 알 수 없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실제 아직 보지 못한 것과 바라는 것은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로서는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 7:14).” 우린 그렇게 좋은 날과 싫은 날의 평행 속에서 산다. 정작 축복인지 징계인지 알 수 없을 때, 어떤 현상이나 사실 앞에서 궁금할 때가 있다.

 

가령 예수님의 제자들이 소경을 보고 물었다.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요 9:2).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3).” 곧 이를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어찌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을까? 하여 예수님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7:17).” 하셨는데, 결국 하나님의 뜻을 설명할 길 없어도 확신은 우리 안에 성령의 확신으로 든다.

 

부유한 친족 보아스는 기업을 무를 유력한 자였다. 보아스는 광야에 있을 때 유다 지파의 한 방백이었던 나손의 손자다. 여리고의 기생 라합이 낳은 살몬의 아들이다. ‘보아스’는 ‘그 안에 힘이 있다’는 뜻을 가졌다. 몰락한 엘리멜렉의 가문에 속한 자이기도 했지만 나오미의 처지는 가난하고 비천하였다. 친족으로서 부담을 느낄 수도 있는 처지다. 또한 나오미에게는 룻이라는 가엾은 모압의 며느리가 있었다. 룻의 형편은 그야말로 가련하였다.

 

2. 주어진 상황에 충실한 룻(4-16)

 

곡식을 추수할 때면 대부분 일용직을 고용하여 종을 산다. 룻은 자신의 처지에 비관하지 않고 일을 찾아 나섰다.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2).” 그러다 ‘우연히’ 이삭을 줍게 된 밭이 가까운 친족 보아스의 밭이었다. 룻은 그런 사실도 모르고 하인들 사이에서 이삭을 주웠다. 가난한 이들은 저들이 흘리고 가는 이삭을 주워 끼니를 연명했다.

 

보아스는 그의 추수꾼들에게 친절하였고, 경건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4).” 여기서 그의 성품을 엿볼 수 있다. 보아스는 하인들을 섬기는 훌륭한 주인이었다. 보아스의 이러한 성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경건함에서 나온다.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어서, 너희들을 번성케 하고 너희에게 건강과 힘이 깃들고 여호와께서 너희들을 재앙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기를 원하노라.” 종들에게 이렇듯 인사하기는 쉽지 않다.

 

룻은 비록 가난하였으나 성실하였다. 그러나 그 처지를 비관하지 않았다. 보아스는 부유하였으나 거만하지 않았다. 부리는 사람들에게 예의를 갖추는 경건한 사람이었다. 서로를 정중히 대했고, 이웃을 동정하는 사람이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축복이 임하기를 빌었다. 곧 하나님을 경외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12).”

 

3.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17-23)

 

룻의 일과는 성실하였다. 구김 없고 배려 깊은 마음과 존경하는 자세를 보였다. “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 그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서 시어머니에게 그 주운 것을 보이고 그가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내어 시어머니에게 드리매(17-18).” 룻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고, 저녁때까지 열심히 이삭을 주웠다. 일이 구차하고 처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룻은 시어머니를 공경하였다. 보아스의 사려 깊은 호의와 선의에 감사할 줄도 알았다. 어른을 공경함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 기본이다.

 

룻은 일과를 시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시어머니가 그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 룻이 누구에게서 일했는지를 시어머니에게 알게 하여 이르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 하는지라(19).” 이는 공경하는 첫걸음이다. 이로써 보아스의 호의를 들은 시어미 나오미는 의미 있게 이 사실을 경청하였고, 하나님 어찌 행하시려는가, 묵상하였다. “나오미가 며느리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의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하는지라(22).” 그런 점에서 나오미는 룻에게, 룻은 보아스에게, 보아스는 룻에게 룻은 다시 나오미에게… 서로를 공경하고 존중하고 위하는 마음이 사려 깊다.

 

나오미와 룻의 친족으로 기업을 물어야 하는 입장이면 난감할 것도 같다. 그래서 보아스보다 앞서는 아무개가 있었는데 아무개는 이를 포기하였다(4:4). 기업을 물은다는 것은 저들의 처지를 떠맡아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아무튼 지금의 나오미의 처지는 곤궁하여 곡식을 주워서 끼니를 해결해야 할 정도였다. 그런 가운데 룻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시어머니를 공경하였으며, 하나님을 경외하여 겸손하였다. 그것이 또 보아스로서는 귀하고 사랑스럽게 여겨졌다.

 

나오는 말

 

룻은 충성스럽게 나오미의 지시대로 행하였다.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워 겨울동안 먹을 수 있을 양식을 모았다. 곧 지혜자는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잠 6:6-8).” 마찬가지로 룻은 또한 소녀들과 가까이 있었고, 그들과 점차 사귀었으며, 이것은 그녀에게 도움을 주었다.

 

룻은 정숙한 여자였으며, 항상 적당한 시기에 일을 끝내고 돌아와 시어머니를 공경하였다. 룻은 밖으로 나다니지 않았고 집에서 항상 어머니와 함께 있었다. 그녀의 겸손과 근면이 축복의 밑바탕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이처럼 ‘우연과 마침 사이’에서 ‘하필과 기어이’ 주의 뜻을 이루신다.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의 시어머니와 함께 거주하니라(룻 2:2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