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201 주일
룻기 4장
기업 무를 자
룻 4:14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룻 4:15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룻 4:16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룻 4:17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들어가는 말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
보아스가 ‘기업 무를 자’로서 룻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기업 무를 자 가운데 더 가까운 친족이 있었다. 보아스는 이를 찾아 성문에서 재판을 열었다. 성읍의 장로들이 성문에 모여 이를 증언해야 한다. 보아스는 먼저 기업 무를 자에게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여 그리하겠는가? 결정하게 하였다. 기업을 무를 경우 나오미 대신 그녀의 며느리 룻과 결혼하여 엘리멜렉의 이름으로 기업을 잇게 해야 한다. 그에 따른 권리와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자 기업 무를 자는 자신의 이익을 우선 도모하려 기업 무를 권리와 책임을 포기한다.
축복의 장자권을 죽 한 그릇에 팔았던 에서의 아둔함을 떠올리게 한다.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창 25:31-33).” 에서는 당장의 배고픔으로 축복의 권리를 포기했다. 본문의 아무개는 당장의 이익을 생각하고 기업 무를 권리를 포기했다. 후에 야곱은 이스라엘이 되어 하나님의 선민을 이루었다. 대신하여 보아스는 룻과 함께 다윗 왕의 선조가 되었다.
유다가 며느리 다말에게서 기업을 무르면서 베레스로 이어지고, 여리고 성이 함락당할 때 약속 받은 기생 라합은 보아스를 낳았다. 다윗으로 이어지는 생명 계대는 다음과 같다. “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살몬(라합과 결혼하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18-22).” 오늘 우린 이 놀라운 계보의 한복판에서 펼쳐지는 보아스의 지혜롭고 기민하고 질서 있는 일처리를 통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이 우선인가를 알 수 있다.
1. ‘현숙한 여인’ 룻을 얻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보아스는 즉시 법정을 소집했다. 성문에 올라 장로들을 부른 것이다. 보아스는 유다 지파 나손의 손자요 살몬의 아들로 라합에게서 태어났다. 보아스는 급히 서둘러 혼례에 관심을 기울였다. 유추하면 그의 어머니 라합도 여리고의 이방 여인으로 선술집을 운영하던 미천한 출신이었다. 그때에 출애굽에 관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관하여 들었다. 라합은 ‘현숙한 여인’으로서 그 가문을 여리고성의 몰락에서 구원 받게 하였다.
보아스는 룻이 비록 모압 여인이었으나 그의 모친과 마찬가지로 <현숙한 여인>인 것을 알았을 것이다. <현숙한 여인>의 특징은, ① 그 가정의 산업, 가업이 핍절치 아니하게 한다(잠 31:11-19). ② 가난한 자에게 선을 행한다(20). ③ 남편을 존귀케 만든다(23). ④ 모든 언사에 지혜와 규모가 있다(26). ⑤ 부지런하며 게으르지 않다(27). ⑥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칭찬을 듣는 자이다(30-31).
2. ‘인애한 여인’ 룻을 얻는데 지체하지 않았다
룻은 단지 시어머니 나오미를 동정하여 따랐던 것이 아니다. 이에 잠언에서 말하는 ‘현숙한 여인’의 특징을 갖추고 있음은 물론 ‘인애한 여인’인 것을 보아스는 확신하였다. 룻은 나오미를 따라나서면서 가난을 자초하였다. 그녀의 본심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그에 따른 근거는, ①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그 시린 고통의 여정을 견뎌냈다. ② 고국인 모압을 떠나 머나먼 곳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와서 이삭을 줍는 처지에서도 시어머니 나오미를 공경하였다. ③ 기업 무를 자로 보아스는 나이가 들어 늙었으나 그녀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청혼하였다. ④ 룻은 모든 이웃이 인정하는 현숙함을 간직하였다. ⑤ 룻은 가문의 영광을 우선으로 하였다.
‘진주보다 값진 덕목’으로 현숙함과 인애함을 알아보았던 보아스는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건 부하건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그리고 이제 내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룻 3:10-11).” 이는 곧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잠 31:10).” 보아스는 그녀의 인애와 자신의 늙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3. 말씀에 따라 지혜롭고 기민하게 그러나 질서 있게 하였다.
이에 보아스는 율법에 어긋나지 않게 공정하게 일을 처리해야 했다. 관례대로 장로들을 모았다. 당시의 법정이라 할 수 있는 성문 어귀에서 판결을 내리듯 장로들과 사람들의 설득을 얻어 하나님 앞에 보증이 되어야 한다. 보아스는 서둘지 않으면서도 마음대로 처리하지 않았다. 모두의 인정과 지지를 끌어내는데 침착하였다.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 내가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만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만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3-4).”
기근이 들었을 때 엘리멜렉은 자신의 땅을 저당 잡히고 모압으로 떠났다. 보아스는 이를 되찾는 것이 자신들의 기업에는 금전적으로 이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3)” 그럼에도 자신보다 앞서는 기업을 무를 자에게 담보로 잡힌 기업을 되찾을 기회를 먼저 주었다.
이는 이스라엘의 관례였다.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 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신 25:5).” 이 문제는 재산상환법에 관계되었다.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레 25:24-25).”
4. ‘저당 잡힌 우리의 영혼’을 회복하라
여기서 우리에게 주시는 바 영적인 교훈은 먼저 죄로 인해 저당 잡힌 우리의 영혼을 물어야 한다. 분명히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하는 말씀처럼,
첫째, 우리는 스스로 죄의 삯을 무를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우리의 죄를 속량할 값은 너무 크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히 10:18).” 고로 오늘의 구원의 값은 하나님이 내어주신 독생자 예수의 피값으로 세운 교회요, 우리 성도의 영혼이다.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는 새 생명을 얻은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벧전 3:18).”
둘째, 우리의 죄 값을 무르신 것은 그리스도 예수이시다: 곧 “옛적부터 얻으시고 속량하사 주의 기업의 지파로 삼으신 주의 회중을 기억하시며 주께서 계시던 시온 산도 생각하소서(시 74:2).” 하는 시편과 같이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107:2).” 오늘 우린 잃어버린 ‘축복의 장자권을 회복한 에서’ 같다. 또한 기업 무를 자의 ‘온전한 믿음’을 발견할 수 있다. 본문의 아무개는 ‘값을 무를 자’였으나 당장의 손해를 염두에 두고 그 뒤에 있을 축복을 보지는 못했다.
“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5-6).”
나오는 말
영적으로 눈이 어둡고 귀가 막혔을 때 우린 저 아무개와 같다.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하고 교회를 다닌다, 예수를 믿는다, 하는 일을 포기한다. 즉 그는 이미 아내가 있었을 것이고 룻을 또 아내로 얻으면, 그들 사이에 논쟁과 싸움이 일거나 재산상속문제가 까다롭게 될까 두려웠다. 젊을 때, 아직 적당하여 간절함이 없을 때는 모른다. 때문에 그가 거절한 것은 룻이 낳을 자식들이 아니라 다윗 왕의 선조가 되는 영광과 궁극적으로 예수님의 계대를 잇는 영원한 상속의 기회를 잃은 것이다.
이 때문에 교회에 다니고 예수를 믿으면서도 ‘그리스도의 구속’을 떳떳하게 말하지 못한다. 자신이 교회 다니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를 꺼려하고 현실적인 문제에 우선하게 된다. 이러한 근시안적인 안목으로 당장의 현실이 더 합리적이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세상 사람들처럼 사는 게 더 옳은 것 같다. 다들 그러고 산다고 여겨진다.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게 꿈이 되었다. 기를 쓰고 스펙을 쌓고 노후 대책을 세워 스스로의 기업을 지키고자 ‘기업 무를 자’의 권리와 책임을 회피한다. 그렇게 해서 정당하게 값으로 무를 권리가 ‘보아스’에게 돌아왔듯이 오늘 우리가 받은 은혜는 크다.
‘신 벗김을 받는 자’가 되어 동행할 기회를 잃는 자들이 많다. 바울은 이를 두려워한 것이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곧 버림을 당한다는 것은 천성을 향해 가던 길에서 이탈하기 쉬운 시대에 우리로 경각심을 갖게 한다. ‘AI 시대’에 우리는 ‘룻과 같은 현숙함과 인애함’으로 신앙을 지켜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돈의 노예로 팔리기 쉬운 맘몬의 시대에 빠지면 안 된다. 우리는 ‘보아스와 같이 지혜롭고 기민하고 질서 있게’ 신앙을 지켜야 한다. 그리하여 룻은 다윗 왕의 고조모가 되었다. 보아스는 예수의 계대를 잇는 혈통이 되었다.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16-1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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