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하현. 2026. 1. 10. 04:29

 

일곱째 달에 왕의 종친 엘리사마의 손자요 느다냐의 아들로서 왕의 장관인 이스마엘이 열 사람과 함께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이르러 미스바에서 함께 떡을 먹다가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그와 함께 있던 열 사람이 일어나서 바벨론의 왕의 그 땅을 위임했던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칼로 쳐죽였고 이스마엘이 또 미스바에서 그다랴와 함께 있던 모든 유다 사람과 거기에 있는 갈대아 군사를 죽였더라

렘 41:1-3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 62:1-2

 

 

악을 행한 사람으로 인해 놀란다. 이를 허용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살피게 된다. 다소 천박하고 촌극 같은 현실의 내란재판을 보면서 저런 사람들의 소행을 통해 저런 사람들까지도 허용하시는 하나님의 의중을 살피게 된다. 저들은 나름 배운 자들이고 스스로의 명예와 명분을 중히 여기는 자들이었다. 자신들의 국가와 지지자들과 그에 따른 가치와 나름의 논리로 자부심이 강한 사람들이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문득 어제 열렸던 내란재판의 1심 선고공판을 떠올리게 된다.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그와 함께 있던 열 사람이 일어나서 바벨론의 왕의 그 땅을 위임했던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칼로 쳐죽였고 이스마엘이 또 미스바에서 그다랴와 함께 있던 모든 유다 사람과 거기에 있는 갈대아 군사를 죽였더라(2-3).” 당시 그들은 모두 승리에 도취한 갈대아인들의 세력 하에 있었으며 하나님의 심판 아래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반항할 능력도 없었고 유리한 조짐도 없었다. 모든 것은 끝이 났다. 곧 이스마엘이 그다랴를 암살한 사건의 기록이다.

 

“일곱째 달에 왕의 종친 엘리사마의 손자요 느다냐의 아들로서 왕의 장관인 이스마엘이 열 사람과 함께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이르러 미스바에서 함께 떡을 먹다가(1).” 이 해는 예루살렘이 함락 되던 주전 586년이었다. 예루살렘 함락은 사월로 명시되어 있다. “시드기야의 제십일년 넷째 달 아홉째 날에 성이 함락되니라 예루살렘이 함락되매(39:2).” ‘일곱째 달’은 현대력으로 10월경이다. 그다랴에 대한 암살을 유다인들은 큰 사건으로 여겼다.

 

그 후 칠월을 이에 대한 기념의 달로 예식을 거행하기도 하였다.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슥 7:5).” 그렇게 이스마엘이 미스바에서 함께 떡을 먹다가 그다랴를 암살하였다. 유다인의 관습에 따르면, 주인은 손님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손님은 주인에게 신뢰를 가지고 그에 맞는 답례를 하였다.

 

그렇게 그다랴는 이스마엘을 손님으로 정중히 대접했을 것이고, 이스마엘을 믿고 무장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함께 떡을 먹는 것은 단순한 식사만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돈독한 우정을 나누는 자리였다. 그런 가운데 그다랴를 살해한 행위는 그를 유다의 총독으로 임명한 갈대인들에 대한 공격이고 도전이었다. 그래서 ‘거기 있는 갈대아 군사를 죽였더라.’

 

이와 같은 살육은 그다랴와 함께 있던 몇몇 유다인들이 곧이어 살해 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미스바에 거주하고 있는 백성들의 대표였다. 이어 미스바에 주둔하던 갈대아 군사들도 살해했다. 이스마엘은 그곳에 참석해 있던 갈대아인 주둔 병사들을 모두 처치하였고, 이 일로 바벨론 군대의 보복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살해된 갈대아인들은 총독의 관저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었으며, 일시적으로 미스바에 주둔하고 있던 자들이었다.

 

이 일은 그다랴를 살해하기 위한 사전의 각본에 따라 주도면밀하게 진행되었다. 그것은 “그가 그다랴를 죽인 지 이틀이 되었어도 이를 아는 사람이 없었더라(4).” 이후 “그 때에 사람 팔십 명이 자기들의 수염을 깎고 옷을 찢고 몸에 상처를 내고 손에 소제물과 유향을 가지고 세겜과 실로와 사마리아로부터 와서 여호와의 성전으로 나아가려 한지라(5).” 이는 북이스라엘의 옛 종교 중심지였던 세겜과 실로, 그리고 사마리아 등지에서 온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미스바에 도착하는 기록이다.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제사하기 위해 가던 중이었다.

 

이 사실은 ‘소제물이나 유향’이란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다. 그때가 칠월이었으니 이들은 가을의 큰절기인 초막절에 참석하고자 했던 것 같다. 7월은 신년도와 같은 것이다. 한편 순례자들이 북쪽에서 왔다고 하는 사실은 북이스라엘 지역에 살던 사람들 중에 적어도 얼마 정도로 추정된다. 저들은 주전 622년 요시야의 개혁으로 그때부터 계속 충실하게 이를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들은 중앙 성소에서 예배를 드릴 것을 명하고 있는 신명기의 규례들을 따르고자 했던 것이다.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제물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의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소와 양의 처음 난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신 12:5-6).” 그렇게 순례자들은 수염을 깎고, 옷을 찢고, 몸을 상하게 하는 등 슬픔과 회개의 표시를 하고 있었다. “큰 자든지 작은 자든지 이 땅에서 죽으리니 그들이 매장되지 못할 것이며 그들을 위하여 애곡하는 자도 없겠고 자기 몸을 베거나 머리털을 미는 자도 없을 것이며(렘 16:6).” 이는 성전이 파괴된 것에 대한 애곡의 표시였다. 전체 포로기에 걸쳐서 성전 파괴에 대한 애도는 중요한 주제이다.

 

아삽의 시나 교훈시에 따르면,

 

하나님이여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주께서 기르시는 양을 향하여

진노의 연기를 뿜으시나이까

옛적부터 얻으시고 속량하사

주의 기업의 지파로 삼으신 주의 회중을 기억하시며

주께서 계시던 시온 산도 생각하소서

영구히 파멸된 곳을 향하여 주의 발을 옮겨 놓으소서

원수가 성소에서 모든 악을 행하였나이다

(시 74:1, 아삽의 마스길).

 

또한

 

하나님이여 이방 나라들이

주의 기업의 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나이다

(79:1, 아삽의 시).

 

또한 이사야 선지자 역시 “주의 거룩한 백성이 땅을 차지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우리의 원수가 주의 성소를 유린하였사오니 우리는 주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는 자 같으며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지 못하는 자 같이 되었나이다… 주의 거룩한 성읍들이 광야가 되었으며 시온이 광야가 되었으며 예루살렘이 황폐하였나이다(사 63:18-19, 64:10).” 이와 같이 성전 파괴 이후에도 성전의 존엄성은 계속 유지되었고, 성전 지대에서의 종교 행위도 계속되었다.

 

오늘의 이 살인과 파괴는 공동체에 치명적이다. 이스마엘은 나라의 중요한 인물로 이스마엘은 “왕의 종친 엘리사마의 손자요 느다냐의 아들로서 왕의 장관”이었다(1). 저가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칼로 쳐죽였고” 하는 것은 엄연한 반역이고 파괴행위이다. 이를 성경은 엄히 금하여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갈 5:25-26).” 스스로들 정당성을 부여하고 주장하나 하나님은 이를 용납하지 않으시고 또한 다툼과 혼란을 원치 않으신다. 곧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약 3:15-16).”

 

여기서도 보듯이 죄를 지은 것도 문제지만 이를 은폐하거나 정당화하려 하는 것으로 더 큰 죄악을 저지르게 된다. 지혜서는 말하길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 그러므로 성경의 결론은 회개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또 다섯째 천사가 그 대접을 짐승의 왕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종기로 말미암아 하늘의 하나님을 비방하고 그들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더라(계 16:10-11).” 그러므로 어떤 죄라도 하나님 앞에 숨길 수 없고 정당화할 수 없다.

 

이스마엘의 응징인지 탐욕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당장은 어느 정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름은 치밀하여서 이틀이 되어도 총독이 살해된 중대한 사건을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를 끝까지 비밀로 덮을 수 없었고, 그다랴 암살 사건을 숨기고자 성전 순례단 80명 중 70명을 학살하는 등 더 큰 죄악까지 저질렀다. 이후 11절에 지적된 것처럼 그 모든 죄악이 요하난을 비롯한 군 지휘관들에게 들통나게 되었다.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군 지휘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행한 모든 악을 듣고(11).” 결국 그들을 피해 암몬 땅으로 도주할 수밖에 없었다.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여덟 사람과 함께 요하난을 피하여 암몬 자손에게로 가니라(15).”

 

죄는 결국 더 큰 죄로 덮어야 하는데, 그 시조는 가인이었다. 앞서 하나님은 이미 경고하신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창 4:6).” 그러나 저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8).” 이에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9).” 하며 하나님 앞에서 들통이 났는데도 거짓으로 시치미 떼며 이를 덮으려 했다. 그러나 소용없는 것은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10).”

 

여리고 성은 함락하고 작은 실수 같은 탐욕이나 아간의 죄로 하나님은 진노하시기도 하였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수 7:1).” 그리하여 작은 성이라 여겼던 아이 성에 패하고 쫓겨 “아이 사람이 그들을 삼십육 명쯤 쳐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가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5).”

 

이와 같이 죄의 결국은 비극적이다. 일련의 내란재판과 그와 관련된 주동자나 조력자나 이를 변호하는 사람들의 의견과 사고체계가 단적으로 우리의 모순된 죄의 실상을 보여주는 듯하다. 더욱이 맹목적으로 저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본심을 모르겠다. 정말 그 자가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그처럼 사람들의 존경과 지지를 받아서일까? 아니면 상대적으로 반대를 위한 반대 진영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의 명분일까? 오늘 이 본문과 같이 저마다의 이유나 명분은 다르겠으나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면 이처럼 사람을 통해 대리만족을 누리려하거나 또 다른 명분을 찾게 돼 있다.

 

고로,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잠 28:9).”

 

결국,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 4:6).”

 

누구의 말처럼 마귀는 선한 천사처럼 다가오고 친구가 되어 분별이 어렵다. 오늘 6절에서도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들을 영접하러 미스바에서 나와 울면서 가다가 그들을 만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가자 하더라(6).” 하고 실상은 저들 순례자들 80명 가운데 70인을 죽이게 된다. “그 때에 사람 팔십 명이 자기들의 수염을 깎고 옷을 찢고 몸에 상처를 내고 손에 소제물과 유향을 가지고 세겜과 실로와 사마리아로부터 와서 여호와의 성전으로 나아가려 한지라… 그들이 성읍 중앙에 이를 때에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자기와 함께 있던 사람들과 더불어 그들을 죽여 구덩이 가운데에 던지니라(5, 7).”

 

그러나 사람 참 어렵다. 우리의 악함은 스스로 제어할 있는 게 아니다. 이사야는 이에 한 줄 거짓이 더해지고 더해져서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 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진저 그들이 이르기를 그는 자기의 일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에게 보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는 자기의 계획을 속히 이루어 우리가 알게 할 것이라 하는도다(사 5:18-19).” 그렇듯 거짓은 자가당착에 빠진 우리 속의 괴물이고 마귀다. 오죽하니 예수님은 경고하시길,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 10:36).” 늘 믿었던 사람이 더 세게 우리를 친다.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 11:13-15).”

 

돈과 탐욕이 우릴 쓰러뜨린다. 일련의 사회 사건과 정치계의 여러 사건들을 놓고 보면 온통 다 돈 때문이다. 그놈의 권력 때문이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그리고는 이를 덮으려고 순한 양 같이, 거짓의 천사로 우리를 미혹한다. 그래서 바울은 이어 설교하면서 디모데를 향하여,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17-18).”

 

우리의 기쁨은 이 땅의 어떤 성취나 보람으로 얻는 게 아니다. 그것은 일시적이고 언제든 시들어서 버려질 뿐이고, 우리의 참 기쁨은 구원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5-6).” 그리하여 우리가 참 두려움으로 경외할 이는 하나님으로,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눅 12:4-5).”

 

하여,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시 56:4).

 

하는 신앙으로,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 62:1-2).

 

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스스로에게 다시 선포해야 한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5-6).

 

‘나의 영혼이’ 그러하기 위해 ‘나의 영혼아’ 하고 이처럼 말씀으로 나 자신에게 선포할 때야 우리 안의 근심과 걱정이 거짓의 사람들을 따라가지 않는다. 그러할 때,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7-8).

 

사람, 뭐 없다.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9).

 

오직 주만이 우리에게 갚으시리니,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1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