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하현. 2026. 1. 15. 04:17

 

내 종 야곱아 두려워하지 말라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보라 내가 너를 먼 곳에서 구원하며 네 자손을 포로된 땅에서 구원하리니 야곱이 돌아와서 평안하며 걱정 없이 살게 될 것이라 그를 두렵게 할 자 없으리라

렘 46:27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셀라)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시 67:1-2

 

 

모든 나라와 사람과 것들의 주인이심을 밝힌다. 이방나라를 심판하실 것을 알리신다. “이방 나라들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1).” 그러면서도 ‘야곱’을 위로하신다. “내 종 야곱아 두려워하지 말라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저는 개별적이면서 계통에 따른 모든 선민 이스라엘이다. 이미 죽은 자가 아니라 오늘도 살아 있어 동시적이다. 그에게 향하신 말씀으로, “보라 내가 너를 먼 곳에서 구원하며 네 자손을 포로 된 땅에서 구원하리니” 하심으로 이를 객관화하신다. “야곱이 돌아와서 평안하며 걱정 없이 살게 될 것이라 그를 두렵게 할 자 없으리라.” 하심은 이 시대에 대한 예언이며 영적으로도 영원한 메시지이다(27).

 

결국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며 재차 강조하신다. “내 종 야곱아 내가 너와 함께 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곧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살면서 사는 날까지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내가 너를 흩었던 그 나라들은 다 멸할지라도 너는 사라지지 아니하리라.” 모든 일의 주격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그는 법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일상이다. “내가 너를 법도대로 징계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28).”

 

오늘 본문은 요시야 시대부터 예루살렘의 함락 직후까지를 배경으로 한다. 선민의 이스라엘의 죄악에 상응하는 것으로 심판은 필연적이나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는 막을 수 없다. 그에 의한 구원과 회복은 우리 신앙과 존재의 이유로 주제이면서 동시에 그 상관성에 대한 예언이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법대로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공의는 살아있고 은혜는 또한 무한하다. 이 둘이 상충되지 않는 것은 “내가 너를 법도대로 징계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심으로 엄연하다.

 

하여,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1:32).”

 

성경은 이를 두고 여러 차례 강조하시는 바,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히 12:6).” 곧 우리가 겪으며 사는 여러 어려움으로도 궁극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가늠할 수 있다. 곧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7-8).” 그러므로 징계의 목적은,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10).”

 

고로,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11).” 하심으로 성경이 주목하시는 바,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9).” 우리의 열심과 회개를 위한 수단으로의 목적이 있다.

 

오늘 본문에서 예레미야의 예언과 사건들을 다루는 데 있어 이 예언의 말씀은 신적 권위가 있음을 보여준다. 예레미야의 소명, 주의 부르심은 분명하였다.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가 다스린 지 십삼 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고(렘 1:2).” 예레미야의 예언의 성취를 강조하기 위한 예루살렘 함락과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까지 모두 열 나라에 대한 예언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기록된 나라들의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 가운데 애굽이 먼저 나오고 맨 나중에도 기록하고 있다. 예루살렘 함락을 전후하여 급박한 상황에서 연속으로 그것도 집중적이고 반복적으로 애굽을 언급한다. 이는 선포된 유다의 패망과 바벨론 포로와 귀환을 다루면서 그때마다 다루신다.

 

이처럼 유다와 관련을 맺고 있던 열방에 대한 예언은 오늘 본문에 이어 이사야, 에스겔 등 모든 예언서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비록 주어진 배경과 각 예언의 대상 및 심판의 전개 양상이 다르게 표현된다 해도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절대 초월자요 창조주로서 선민 이스라엘은 물론 온 세상과 세상의 역사에 대하여 주관하고 계심을 알리신다. 그만큼 애굽은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유다는 항상 하나님보다 더 애굽을 의지하였다. 그러므로 애굽에 대한 심판은 결국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것이다. 선민들로 하나님보다 세상의 것들을 더 의지하는 것에 대한 결과다.

 

동시에 또 다른 세상 바벨론에 대한 예언을 가장 늦게 기록하고 있는 것은 바벨론이 앞서 아홉 개의 이방나라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 후이다. 곧 하나님은 세상을 세상으로 심판하신다. 오늘 애굽에 대한 예언을 다루면서 유브라데 강 가 갈그미스 전투를 다룬다. “애굽에 관한 것이라 곧 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 넷째 해에 유브라데 강가 갈그미스에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패한 애굽의 왕 바로느고의 군대에 대한 말씀이라(2).” 곧 갈그미스 전투에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패한 애굽의 왕 바로느고의 군대에 대한 말씀이다. 이어 하나님께서 그러한 느고 군대의 참담한 패배를 예고하신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본즉 그들이 놀라 물러가며 그들의 용사는 패하여 황급히 도망하며 뒤를 돌아보지 아니함은 어찜이냐 두려움이 그들의 사방에 있음이로다(5).”

 

갈그미스 전투는 주전 605년 애굽 제 26대 왕조 두 번째 왕 바로느고 2세가 앗수르를 멸망시키고 남하하는 바벨론을 견제하기 위해 하란을 근거지로 앗수르의 잔존 세력을 돕기 위해 북상하다 유프라테스 강 상류 지역에 위치한 갈그미스에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과 벌인 전투이다. 느고는 이 전투에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참패를 당하였다. 당시 애굽은 근동 지역의 맹주로 자처하였던 때이다. 이 전투에서 패배한 후 근동 지역의 맹주 자리를 바벨론에게 내어주었다. 이때부터 바벨론의 남하는 본격적으로 진행 되어 유다 역시 주전 605년에 바벨론의 의해 침공을 받아 항복하고 지배를 받았다.

 

이렇듯 애굽의 패배는 바벨론을 통하여 타락한 유다와 그 주변 나라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의 성취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통하여 유다와 그 주변 나라들을 심판하여 70년 동안 바벨론의 지배 하에 두기로 작정하셨다(25:1-11). 이에 따른 예언의 말씀과 경고는 앞서 수차례 주어졌다. 다만 이스라엘은 이를 듣지 않았고 오히려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박해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느고의 애굽 군대로 하여금 느부갓네살의 바벨론 군대에게 패하게 하심으로 바벨론의 남하는 가속되었고 예루살렘은 함락당했다.

 

하나님은 세상에 대한 심판을 세상의 손으로 다루게 하신다.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나 그 실행은 저들끼리 되풀이 된다. 45년 만에 내려진다는 계엄에 따른 내란재판의 구형을 지켜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역사는 되풀이하여 돈다는 게 무슨 말인지 실감이 간다. 전두환 노태우가 섰던 법정에 윤석열과 김용현이 섰다. 저들은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을 구형 받았다. 이처럼 성경이 제시하는 관점으로 오늘을 볼 때,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과 경륜에 따른 이치와 그 흐름을 알 수 있다. 이에 동조하며 여전히 사과와 반성이 없는 무리들을 보면서 지옥을 생각했다. 지옥에는 회개가 없다. 반성도 뉘우침도 없다. 억울함과 자기주장으로 아우성이다. 헐뜯고 남 탓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소리뿐이다. 살아서도 그러했던 자들이 죽어서도 같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세상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은혜는 상대적으로 ‘남은 자들’을 향하심도 본다. 오늘에 야곱은 영원하여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종 야곱아 내가 너와 함께 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흩었던 그 나라들은 다 멸할지라도 너는 사라지지 아니하리라(28).”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심을 이루신다.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1:9-10).”

 

이를 시편의 관점으로 보면,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상의 모든 거민들은 그를 경외할지어다

그가 말씀하시매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시 33:8-9).

 

곧 말씀은 이내 이루어져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눅 1:37).” 하심을 증명한다. ‘유다의 요시야 왕 의 아들 여호야김이 넷째 해에 유브라데 강가 갈그미스에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패한 애굽의 왕 바로느고의 군대에 대한 말씀’을 통해 오늘을 본다. 여전히 우리는 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굽’에 기대하여 세상으로 향하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세상을 바라다 세상으로 침노당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란 그 결과가 참으로 참혹할 따름이다. 오늘 본문 이전까지 예레미야를 통해 유다에 대한 심판은 수도 없이 예언되었다. 이를 듣고 돌이키려 하지 않는 백성인데도 그와 같은 증거와 권면과 예언은 반복하였다. 이러한 이방에 대한 예언은 애굽에 대한 예언으로 시작되는 것을 보면서 세상이 세상으로 하나 되듯 심판에 이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결국은 영원한 강국도 영원한 지배도 있을 수 없다.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

구원하는 데에 군마는 헛되며 군대가 많다 하여도

능히 구하지 못하는도다

(시 33:16-17).

 

이는,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

(145:13).

 

하심은 이루어져,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 1:24-25).” 우리로 오늘도 이를 알게 하시려고, 말씀을 붙들고 묵상할 때마다 오늘의 나를 돌아본다. 주어진 상황에서 주의 뜻을 살피게 된다. 당장은 유리한 것 같아도 한순간에 골리앗은 무너진다. 더러 저의 엄포가 두렵다.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그 블레셋 사람이 또 다윗에게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하는지라(삼상 17:43-44).”

 

우리에게는 결단이 필요하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45-47).” 할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48-49).”

 

이 통쾌한 장면은 우리로 용기를 갖게 한다. 결국은 “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이니 자기의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보전하느니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7-18).” 그러니 어쩔 것인가? 하고 오늘 이스라엘의 역사와 그 결국이 우리에게 묻는다.

 

내가 회초리로 그들의 죄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그들의 죄악을 벌하리로다

그러나 나의 인자함을 그에게서 다 거두지는 아니하며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깨뜨리지 아니하고

내 입술에서 낸 것은 변하지 아니하리로다

(시 89:32-34).

 

그러므로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신 8:5-6).” 하실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셀라)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시 67:1-3).

 

오늘도 주를 찬송함은 주가 더하시는 한 날의 삶으로 순종할 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

(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