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전쟁 소리로 암몬 자손의 랍바에 들리게 할 것이라 랍바는 폐허더미 언덕이 되겠고 그 마을들은 불에 탈 것이며 그 때에 이스라엘은 자기를 점령하였던 자를 점령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 49:2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시 70:4
유다와 관계 있는 열방을 향한 예언들이 이어진다. 오늘은 암몬으로 사해 북쪽 요단 동편에 위치하고 있었다. 암몬은 모압과 더불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예이다. 이스라엘과는 혈연적인 관계이나 언제나 적대적이었고 우상을 숭배한 나라이다. 이에 이스라엘을 침탈한 암몬에 대한 징계를 진술한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전쟁 소리로 암몬 자손의 랍바에 들리게 할 것이라 랍바는 폐허더미 언덕이 되겠고 그 마을들은 불에 탈 것이며 그 때에 이스라엘은 자기를 점령하였던 자를 점령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 앞서 말씀은 ‘말감’이 이스라엘 땅을 점령한 것으로 나온다. 말감은 암몬의 국신(國神)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인신 제사를 드리며 숭배하였던 몰렉을 가리킨다.
“암몬 자손에 대한 말씀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이 자식이 없느냐 상속자가 없느냐 말감이 갓을 점령하며 그 백성이 그 성읍들에 사는 것은 어찌 됨이냐(1).” 이는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의 침공을 받을 때 암몬이 갓과 르우벤 지파의 영토를 점령한 사실을 말한다. “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이욘과 아벨벳 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점령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겼더라(왕하 15:29).”
본문은 이렇듯 암몬이 갓 지파의 영토를 점령한 사실만 언급하고 있으나 암몬은 이외에도 바벨론이 유다를 칠 때 바벨론에 가담하였다.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왕하 24:2).” 그리하여 예루살렘이 멸망할 당시 저들은 ‘크게 기뻐하였다.’ “너는 암몬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 성소가 더럽힘을 받을 때에 네가 그것에 관하여, 이스라엘 땅이 황폐할 때에 네가 그것에 관하여, 유다 족속이 사로잡힐 때에 네가 그들에 대하여 이르기를 아하 좋다 하였도다(겔 25:3).”
그렇게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 그다랴가 유다의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유다의 왕족이었던 이스마엘을 사주하여 그다랴를 말살하고 유다를 위기에 빠뜨리기도 하였다. “그에게 이르되 암몬 자손의 왕 바알리스가 네 생명을 빼앗으려 하여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을 보낸 줄 네가 아느냐 하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믿지 아니한지라(렘 40:14).” 우리가 인간적인 확신에 빠진 맘몬에 대해 여호와의 분명한 심판 경고를 들을 수 있다. 이 예언대로 암몬 역시 모압과 함께 주전 582년 바벨론의 침공을 받아 멸망하였다. 모압에 대한 예언의 말미에 주어진 것과 같이 암몬 자손의 포로들에 대한 하나님의 회복 또한 약속하고 있다.
우리가 악을 상대하는 데 있어 곧 성도를 대적하는 무리에 대하여 그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임을 확신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이 이르기까지 인내하며 악인들의 대적을 견뎌내는 것도 성도의 사명이다. 세상에 있는 것으로 의뢰하지 않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의 심판 날에 세상 그 무엇도 우리를 구할 수 없다. 이처럼 유다 백성과 관련된 주변 열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예언되고 그 가운데 모압과 암몬에 대한 심판과 회복을 들으면서 새삼 묵상할 것이 깊어진다. 저들은 어쨌든 가장 가까운 사이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가장 가까이서 가장 오래도록 대적하는 상대이다. 곧 우리가 가장 친밀하게 여기는 사람이나 소중히 생각하는 일들이 실은 더욱 하나님을 멀리하게 하고 대적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같이 한 가정을 이루는 데 있어 사랑하는 자에 대해 생각하여야 한다. 또는 자신이 수고하여 애쓰는 일이나 생의 간절한 목적에 있어서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것들로 인하여 우리는 각양 우상의 올무에 걸리기도 한다. 저들과 교류함으로 뒤섞이게 되는 혼재된 신앙이 우리로 주를 망각하게 한다. 실제 남보다 못한 가족이나 친구의 잔인함을 우린 모압과 암몬과의 관계에서 이스라엘이 겪은 일을 본다. 가령 아모스서의 기록에 의하면 암몬 족속이 길르앗을 점령하여 영토를 넓히려 할 때, 임신한 여인의 배를 가르는 만행을 저지르기까지 하였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암몬 자손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자기 지경을 넓히고자 하여 길르앗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음이니라(암 1:13).”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겪는 일을 당신이 겪는 일처럼 여기신다고 말씀하신다. 자기 몸 가운데 가장 예민하고 가장 중요한 지체인 눈동자처럼 여기신다는 시인의 표현이 위로가 된다.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내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인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시 17:8-9).
모압과 같은 계통이며 인접한 암몬의 심판을 예언하는 본문에서 역설적으로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알 수 있다. 저들은 요단 동편 이스라엘의 두 지파 반과 경계를 접하며 존속하여 왔다. 이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암몬 자손에 예언으로, ‘갓 지파의 유업을 불법으로 점유한 것’과 앗수르 왕이 길르앗 자손들을 사로잡아 가자 이 빈 땅을 차지하려는 데 대해 “말감이 갓을 점령하며 그 백성이 그 성읍들에 사는 것은 어찌 됨이냐?” 하고 물으시면서 시작된다(1). 암몬 자손들은 앞에서도 찾아본 것처럼 차마 악한 일을 도모하였다. 곧 “그들이 자기 지경을 넓히고자 하여 길르앗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음이니라(암 1:13).” 하신 것 같이 잔인무도하였다.
오늘 날도 다를 게 없지만 “내가 모압의 비방과 암몬 자손이 조롱하는 말을 들었나니 그들이 내 백성을 비방하고 자기들의 경계에 대하여 교만하였느니라(습 2:8).” 가까운 세상일수록 우리가 믿는 신앙과 그 하나님을 조롱한다. 가벼이 여겨 대수롭지 않은 듯 상대한다. 하나님께서는 ‘전쟁 소리로’ 우리의 대적을 상대하시며 ‘랍바에 들리게 할 것이라’ 하신다. 그에 따라 하나님께서 직접 지휘하실 것이다.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두려움을 네 사방에서 네게 오게 하리니 너희 각 사람이 앞으로 쫓겨 나갈 것이요 도망하는 자들을 모을 자가 없으리라(렘 49:5).” 하나님은 우리로 두려움이 되는 자들을 두렵게 하시는 여러 방법을 갖고 계신다. 즉 하나님이 직접 상대하신다.
우리는 다만 우리의 노여움, 어려움과 고통과 슬픔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며 아룀으로 찬송이 된다. 그러므로 우린 이 멸망할 세상에서 멀리 도망치는 것이 순종이다. 마치 갈데아 우르를 떠나온 아브라함처럼, 멸망할 소돔을 급히 떠난 롯과 같이 “드단 주민아 돌이켜 도망할지어다 깊은 곳에 숨을지어다 내가 에서의 재난을 그에게 닥치게 하여 그를 벌할 때가 이르게 하리로다(렘 49:8).” 우리는 죄악 된 세상을 물리치고 승리해야 하는데 근신과 거리두기가 우선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그러므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그러므로 악인과 같은 세상을 산다지만 그 세상에 속하지 않음으로 우리가 주의 백성임을 알게 된다. 하여 말씀은 떠날 것과 깊은 곳에 숨을 것을 일깨운다. ‘드단 거민’은 아브라함이 첩 그두라에게서 낳은 아들 드단의 후손이다. 에돔 남부 지역에 살았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내 손을 에돔 위에 펴서 사람과 짐승을 그 가운데에서 끊어 데만에서부터 황폐하게 하리니 드단까지 칼에 엎드러지리라(겔 25:13).” 곧 ‘에돔’과 긴밀한 거래 관계에 있던 ‘드단’으로 하여금 에돔의 재난에 함께 휩쓸리지 않도록 피할 것을 경고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에돔 족속에 동화되어 그들과 함께 살았다.
곧 ‘성도’이면서 ‘교인’의 자리에서 벗아나지 못한 애매한 사람들이 있다. 교인과 성도를 굳이 구분하는 것은 그 삶의 중심이 다른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교인을 단지 어디 교회에 소속되어, 주일에 교회를 가고 예배에 참여하기는 하는데 언제나 ‘손님’ 같은 사람들이다. 왔다가는 ‘친절한 타인들’로 서로가 안면은 있고 가끔은 교제가 있어도 성도의 교제로는 아니다. 철저히 타인의 자리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아는 사람’ 정도로 족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다. 성도라면 함께 함으로 모든 것을 나눈다. 서로를 위함으로 중보하고 더 알고 싶고 돕는다. 마치 한 지체로서의 몸이 되어 손이지만 다리를 돕고, 다리지만 눈이 보는 곳을 향하는…. 성도의 교제는 말씀으로 하나 되어 교회로 일치하는 사람들이다.
실제 우리 곁에 ‘모압’과 ‘암몬’ 같은 사람이 있고, ‘드단’과 같은 사람도 있다. 지혜는 이르길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잠 13:20).” 한 것 같이 애매한 경계에서 이쪽도 저쪽도 아니면서 양족 모두와 잘 지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나 역시 긴 세월을 그렇듯 ‘드단 같은 성도’로 지내면서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지냈다. 안 믿는 친구들이나 같이 문학을 하고 예술을 논하는 이들과 합석을 하면서 더러는 저들 문화에 거리낌 없이 동참하였다. 가령 한참 낚시를 다닐 때 날이 풀리고 서로들 모여 고사를 지내고 떡을 돌리는 자리에도 있었다. 또한 무슨 의미의 물건이나 행위를 덩달아서 따라하거나 소유하려 했다.
이에,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고전 15:33-34).”
그래도 된다고 여겼고 다들 그러는 거라 합의했다. 그런 거라면 하나님도 굳이 마다하지 않으실 거라고 스스로 판단하였다. 그때 나타났던 나의 변화는 안 믿는 자들과 더 편했고, 같이 있음으로 자유로운 줄 알았다. 상대적으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나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과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땐 그래도 되는 것이라 장담하고 함부로 굴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듯 너그럽지 않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창 18:26).” 그러나 없다. 20명, 10명을 구하는데,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32).”
우리 안에 선하고 의로운 이가 그만큼 귀하다. 다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22:30-31).” 그렇게 우리의 교만은 스스로를 기만하면서 자신을 속인다. 이를 알만 할 텐데,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잠 11:2).” 그렇게도 돌아서는 일이 어렵다.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28:26).”
결국 ‘에돔’은 폐허가 되고 황무지가 되겠다. 에돔은 그의 옛 죄 때문에 이 재난을 받아야 했고 하나님은 오랫동안 이를 준비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송사하실 때가 온다. 그때에 그들을 파괴하는 자들은 만족을 모를 것이다. “포도를 거두는 자들이 네게 이르면 약간의 열매도 남기지 아니하겠고 밤에 도둑이 오면 그 욕심이 차기까지 멸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에서의 옷을 벗겨 그 숨은 곳이 드러나게 하였나니 그가 그 몸을 숨길 수 없을 것이라 그 자손과 형제와 이웃이 멸망하였은즉 그가 없어졌느니라(렘 49:9-10).” 일련의 사태와 현실이 증거하고 있었다. 우리가 나중에 누구도 몰랐다고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미 전하여졌고 여러 증표와 같이 균열 현상들은 나타났다. 그러므로 ‘그가 그 몸을 숨길 수 없겠고 그의 자손 또한 없어지리라.’ 하는 말씀으로 모두가 안개처럼 흩어질 것이다. ‘에돔’이 끊어졌으며 또한 ‘네 고아들을 남겨 두라. 내가 그들을 살려 두리라’고 말해 줄 사람도 한 사람이 없다.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벧후 2:5-6).” 이는 결국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말로 할 수 없는 위로가 된다.
우리는 저마다 이런저런 어려움에 처하기도 하여 누구에게도 위로나 도움을 받을 수 없을 때,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1-13).” 오직 주를 바람으로 천국을 사모함으로,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나의 영혼을 찾는 자들이
수치와 무안을 당하게 하시며
나의 상함을 기뻐하는 자들이
뒤로 물러가 수모를 당하게 하소서
(시 70:1-2).
주께 아뢰고 고함으로, “그 때에 이스라엘은 자기를 점령하였던 자를 점령하리라(렘 49:2).” 하시는 말씀으로 새 힘을 얻으며,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
(4-5).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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