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마음을 나약하게 말며 이 땅에서 들리는 소문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소문은 이 해에도 있겠고 저 해에도 있으리라 그 땅에는 강포함이 있어 다스리는 자가 다스리는 자를 서로 치리라
렘 51:46
홀로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아멘 아멘
시 72:18-19
우리에게 지혜와 공의가 필요하다. 주의 판단력으로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이 요구된다. 세상이 너무 어지러운데 이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재래식 언론은 차차 물러나고 저들끼리 공유하는 유튜브나 개인방송이 활개 친다. 이러한 날에 대하여 예수님은 일찍이 예언하셨다.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 24:9-12).”
오늘 전 세계적으로 이러한 현상은 자연스럽다. 곧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하는 말씀으로 오늘의 현상을 진단하셨고, 이에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곧 오늘도 서로에 대한 극한 대립으로 양극화는 심화된다. 이는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마 21:34).” 사람들이 어떠한가?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35).”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은데, 심지어는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38-39).”
그러므로 “이르시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으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눅 21:8).” 저마다 진리를 부르짖으나 우리로 분별의 영을 부어주심으로 때가 가까움을 알고 경각심을 갖게 된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
오늘 본문은 그렇게 바벨론이 누린 위력과 그들의 교만을 하나님의 직권으로 보복하실 것을 명시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행함이 하나님의 섭리로 이루어진 것을 밝히신다. “바벨론은 여호와의 손에 잡혀 있어 온 세계가 취하게 하는 금잔이라 뭇 민족이 그 포도주를 마심으로 미쳤도다(7).” 그러므로 본문에 바벨론을 가리켜 ‘금잔’이라 하였다. 바벨론은 부강하였고 번영하는 제국이었다. 포도주로 채워진 잔과 같았고, 온갖 좋은 것을 갖고 있는 ‘강포한 성’이다. “너는 바벨론 왕에 대하여 이 노래를 지어 이르기를 압제하던 자가 어찌 그리 그쳤으며 강포한 성이 어찌 그리 폐하였는고 여호와께서 악인의 몽둥이와 통치자의 규를 꺾으셨도다(사 14:4-5).”
하나님께서 온 세상으로 이 잔의 포도주를 마시게 하여 그들을 미치게 하셨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상황에서도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할 수 없다. 저쪽에서는 계엄을 선포하고 이를 동조하거나 방조하였고, 한쪽에서는 굳은 표정으로 정의를 부르짖으며 공천헌금을 받고 각종 갑질을 일삼았다. 그렇듯 바벨론이 베풀어주는 쾌락에 도취되어 서로가 미혹되었고 미친 것 같다. 죽어도 자신은 옳았고 억울하다며 주장하는 게 어린아이 떼는 것보다 유치한 논리일 뿐이다. 이렇듯 ‘세상의 열왕들’은 취하였다.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계 17:2, 18:3).”
우리 영혼이 혼미한 것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오늘도 이 땅의 바벨론의 포도주 잔에 취한 까닭이다. 그런 가운데 바벨론은 하나님이 쓰시는 철퇴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의 철퇴 곧 무기라 나는 네가 나라들을 분쇄하며 네가 국가들을 멸하며(20).” 바벨론 군대는 하나님이 쓰시는 병기요, 그의 손에 들려진 도구이다. 그것으로 “네가 말과 기마병을 분쇄하며 네가 병거와 병거대를 부수며(21).” 또한 그 철퇴로 나라의 구성원들인 남자와 여자와 노년과 유년을 부수셨다. “네가 남자와 여자를 분쇄하며 네가 노년과 유년을 분쇄하며 네가 청년과 처녀를 분쇄하며(22).” 또한 나라의 경제력을 부수셨다. “네가 목자와 그 양 떼를 분쇄하며 네가 농부와 그 멍엣소를 분쇄하며 네가 도백과 태수들을 분쇄하도록 하리로다(23).”
이처럼 하나님이 열국을 치시는 진노의 도구로 바벨론을 도구로 사용하신다. 곧 오늘의 이런저런 현상은 그러므로 예고된 수순이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대한 송사한다. 멋대로 부리는 악행이 원성의 이유가 된다. “우리가 바벨론을 치료하려 하여도 낫지 아니한즉 버리고 각기 고향으로 돌아가자 그 화가 하늘에 미쳤고 궁창에 달하였음이로다(9).” 즉 우리 믿는 자들이 사회를 정화하고 세상을 바로 잡으려, ‘바벨론을 치료하려 하여도 낫지 아니한다.’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간 하나님의 백성들 같은 우리들이 주어진 사명을 따라,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에서 망하리라 하라(10:11).” 하고 외친들 소용이 없다.
결국 ‘그 화가 하늘에 미쳤으므로 그 화를 저지한다거나 피한다는 것은 헛일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호소한다. 그러할 때 주께서 이르시길, “나의 백성아 너희는 그 중에서 나와 각기 여호와의 진노를 피하라 너희 마음을 나약하게 말며 이 땅에서 들리는 소문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소문은 이 해에도 있겠고 저 해에도 있으리라 그 땅에는 강포함이 있어 다스리는 자가 다스리는 자를 서로 치리라(45-46).” 곧 오늘 우리의 마음이 나약해지지 않도록, 이 땅에서 들리는 소문으로 의기소침하지 않기를, 그와 같은 소문은 예전부터 앞으로도 계속되는 거짓이다.
어제는 아내를 병원에 데려가 의사 진료를 받고 2주 더 지금 상태로 유지하되 굽어지지 않도록 이제 다리를 곧게 펴는 것과 살짝 딛고 서라는 소리를 들었다. 바람이 차서 얼굴이 금세 창백해지는 추운 날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를 위로하며 우울하게 자신을 두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으로 감사를 찾으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감사할 게 얼마나 많은지… 딸애가 시집 가운데 뭐하나 보태는 것도 없는데 그때마다 필요한 손길로 차고 넘친다. 아이들도 서로가 그렇듯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자신들 처지에 맞게 자신들이 준비한 것으로 만족스러워하니 이 또한 귀하고 감사한 일이었다. 그렇게 하나둘 생각하며 돌아보면 우리 아이의 모든 날들이 은혜뿐이었음을…. 말하다 울컥, 하였고 아내 역시 돌아와 다소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 그와 같이 여전한 오늘의 바벨론의 소문은 끝이 없고 우린 더러 혹하여 두렵고 근심도 찬다.
하여 우리가 주께 아뢰며 구하는 것이다. 오늘 이 세상 여러 환경과 여건 곧 ‘바벨론 왕’이 나를 먹으며 나를 멸하려 한다. 나를 멸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가치 있는 모든 것을 취하여 감으로 나는 빈 그릇이 되었다. 그렇듯 용같이 나를 삼키며 작은 물고기들을 한 입에 삼켜버리는 고래 같다. 때로는 근심과 염려로 속수무책으로 세상이 입 벌린 구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다. 시온과 예루살렘이 간구하듯 우리도 주께 고한다. 그러할 때,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네 송사를 듣고 너를 위하여 보복하여 그의 바다를 말리며 그의 샘을 말리리니 바벨론이 돌무더기가 되어서 승냥이의 거처와 혐오의 대상과 탄식 거리가 되고 주민이 없으리라(36-37).”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생각하면 비로소 우리의 구원의 날인 것을 알게 된다. “이제도 그들은 더욱 범죄하여 그 은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되 자기의 정교함을 따라 우상을 만들었으며 그것은 다 은장색이 만든 것이거늘 그들은 그것에 대하여 말하기를 제사를 드리는 자는 송아지와 입을 맞출 것이라 하도다 이러므로 그들은 아침 구름 같으며 쉬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 타작 마당에서 광풍에 날리는 쭉정이 같으며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으리라(호 13:2-3).” 하여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벧후 3:7).”
우리는 세상과 같이 멸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심판의 때가 구원의 날이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 생의 죽음에 대하여도 우린 곧 주의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고로 하나님께 의뢰함이 우리의 특권이다. 세상은 우리로 마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나를 먹으며 나를 멸하며 나를 빈 그릇이 되게 하며 큰 뱀 같이 나를 삼키며 나의 좋은 음식으로 그 배를 채우고 나를 쫓아내었으니 내가 받은 폭행과 내 육체에 대한 학대가 바벨론에 돌아가기를 원한다고 시온 주민이 말할 것이요 내 피 흘린 죄가 갈대아 주민에게로 돌아가기를 원한다고 예루살렘이 말하리라(34-35).” 이와 같은 고통으로 괴로울 때, “그들이 실족할 그 때에 내가 보복하리라 그들의 환난날이 가까우니 그들에게 닥칠 그 일이 속히 오리로다(신 32:35).” 하나님이 보복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잠 20:22).”
이는 오늘 우리를 괴롭고 힘들게 하는 모든 것을 두고 가리킨다. 병마는 물론 뜻하지 않은 실패나 좌절도 마찬가지다. 모두는 세상에 속한 가운데 주어지는 죄의 산물이다. 며칠 미루다 어제부터 헬리코박터균 2차 제균치료를 시작하였다. 항생제가 두 개씩 들었고 그 외 서너 알도 포함하여 하루 네 번을 먹어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았다. 늘 육신의 어디가 아픈 게 일이고 불편한 게 생활이라 담대할 법도 한데, 두려움과 고통은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주께 맡기며 약을 털어 넣었다. 두 번째부터 속이 울렁거리고 잘 때 또 먹어야 하는 것으로 부담이 컸다. 만일 속이 뒤집히면 새벽에 이처럼 주 앞에 나올 수 없는데… 하는 마음으로 주께 구하였다. 나의 사소한 어려움도 주어진 고통이라,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인다.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3-24).”
우리로 이 바벨론의 압제로부터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무엇으로 다시 새 힘을 얻으며 살 수 있을까?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 5:15-16).” 결국은 믿음의 기도로 산다. 어디가 어떻고 무슨 문제가 우리로 힘들게 할 때 우리는 무엇보다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 주께 아뢰어 나의 나 된 것으로 구할 수 있다. 하면 주가 들으신다. 이때의 금물은 교만이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자주 내려놓는다. 내 주장이나 생각을 자주 멈춘다.
보니까 노인이 된다는 것은 그 완고함이 말로다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경향이 있다. 부쩍 늘어난 장모의 참견과 같은 말의 반복은 서로를 피곤하게 한다. 본인은 그걸 모른다. 뭐라 이르며 권하면 서운하다고 한다. “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사 2:11-12).” 멋모르고 나는 더러 노인이 되고 싶어 했다. 늙으면 보다 관조적으로 세상을 보고 여유가 생길 줄 알았다. 어디쯤 늙은 나이가 되면서 더 늙은이들의 괜한 말들이 고역이란 것을 알게 된다. 말이 많은 까닭은 알겠는데 굳이 안 해도 될 말이 대부분이다. 우리가 평생을 살아온 게 바벨론이었다면 뭐 그리 깨달은 게 보고 들은 것에 비해 많을까? 그저 자신의 경험을 늘어놓는데 이를 듣고 있으려니까 고단할 따름이다.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롬 12:16).”
그래서도 나는 요즘 입 다무는 연습 중이다. 아이 결혼에 대해서도 가급적이면 맡겨둔다. 예배로 예식을 치르는 것 외에 달리 나는 요구할 게 없다. 그리 하는 것으로 서로가 좋다고 하였으니 다음은 다 알아서들 할 일이다. 아들 녀석은 잔소리가 늘었다. 약은 먹었는지, 산책은 어디까지 걷고 왔는지, 엊그제부터는 커피도 끊고 카페인 들어간 차는 모두 못 마시게 한다. 그때마다 그냥 따른다. 나는 노인이 되고 싶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시선으로 소유에 둔감하고 욕심에서 멀어진 마음으로 주는 것으로 감사하며 살기를…. 어릴 때 가끔 두 조모의 깊은 주름과 시선을 신기해했다. 무심히 내다보고 있는 텃밭 어디쯤 시선이 다 닿은 곳이 궁금했다. 고개를 숙여 더듬거리며 성경을 짚어가며 소리 내어 읽는 성경소리가 좋았다. 마치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별로 놀랄 것 같지 않던 느릿느릿한 거동까지도.
이제는 안다. 세상의 성공은 하나님 없이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모래 위에 지은 성 같이 허무하다는 것을 말이다. 오늘 본문의 바벨론의 최후가 그렇다. “슬프다 세삭이 함락되었도다 온 세상의 칭찬 받는 성읍이 빼앗겼도다 슬프다 바벨론이 나라들 가운데에 황폐하였도다 바다가 바벨론에 넘침이여 그 노도 소리가 그 땅을 뒤덮었도다(41-42).” 그저 그게 다인 것을, “두 왕이 서로 연합하고 배를 만들어 다시스로 보내고자 하여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만들었더니 마레사 사람 도다와후의 아들 엘리에셀이 여호사밧을 향하여 예언하여 이르되 왕이 아하시야와 교제하므로 여호와께서 왕이 지은 것들을 파하시리라 하더니 이에 그 배들이 부서져서 다시스로 가지 못하였더라(대하 20:36-37).”
하여,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시 73:18-19).
바벨론의 끝과 같이 세상의 끝을 안다면 오늘처럼 기를 쓰고 살고자 살아서 뭔가 누리려 애쓰지 않을 것이다. 하여 다만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우리로 자유하게 하심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그러므로 더는 이 세상의 멍에를 메지 않아도 되는 일인 것을. 그러므로 오늘의 시편은 솔로몬의 시선으로,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시 72:1).
이는 엄연하여서,
홀로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아멘 아멘
(18-1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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