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 왕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 앞에서 죽이고 또 리블라에서 유다의 모든 고관을 죽이며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 왕이 그를 바벨론으로 끌고 가서 그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더라
렘 52:10-11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시 73:27-28
우리가 하나님의 뜻으로 산다는 일은 현실에서 부정된다. 세상은 어지럽고 혼란스러워서 온전히 하나님의 소리를 듣기 어렵다. 보이는 것은 오히려 악인들의 형통함과 하나님 없이도 잘 사는 사람들의 모습뿐이라, 믿는다고 하면서 저들처럼 따라하지 않기가 쉽지 않다. 더, 더 가지려고 기웃거리며 어디 좋은 몫을 찾아다니는 일을 뭐라 할 수 없다. 그런데 보면 하나님을 안 믿는 자들의 형통함으로 오늘 시편의 시인도 넘어질 뻔한다.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시 73:2-3).
앞서 저는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1).
그런데 보면 온통 하나님 없이도 잘 되고 잘 살고 모든 것을 누리며 죽을 때도 평안하니 스스로의 노력이 헛될 뿐이다. 일련의 우리 사회의 모습도 그러하고 전 세계적으로도 안 믿는 자들이나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자들이 부유하고 부강한 것 같다. 이에,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6-17).
세상에서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이 모든 것은 불가해하다. 그러다 이처럼 말씀 앞에 앉고 성전으로 나아올 때에야 깨닫는다. 오늘 시드기야의 최후를 보면서 그 참혹함과 비현실적인 상황을 목격한다. 소위 잘 나가던 사람들은 끌려가고 가난한 자들이 남겨져 밭을 일구고 포도원의 주인이 되는 데서 놀란다. 먼저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 왕이 그를 바벨론으로 끌고 가서 그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더라(렘 52:11).” 상대적으로 “가난한 백성은 남겨 두어 포도원을 관리하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16).” 이 또한 현실의 안목으로는 이해가 어려운 일이다.
내용은 그렇게 시드기야의 통치가 시작될 즈음에서부터 저의 최후까지 진술하고 있다. 시드기야 이전에 이미 두 번이나 유대인들이 사로잡혀갔다. 한 번은 여호야김 4년에 있었다. 다른 한 번은 여고냐 통치 1년에 일어났다. 본문은 시드기야와 함께 잡혀갔던 사람들 중 한 사람에 의해 작성된 것이다. 자기들은 형제들과 함께 사로잡혀 가지 않으리라고 생각해 온 사람들에 대한 조소적인 글이다.
하나님이 유다와 예루살렘의 지은 죄를 미워하셨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에게 진노하심이 그들을 자기 앞에서 쫓아내시기까지 이르렀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3).” 그들에 대한 진노는 ‘그들을 그 앞에서 쫓아내시기까지 이르렀다.’ 하나님은 아버지로서의 애정을 가지고 은혜를 베풀어오셨다. 그러나 의무를 전혀 다하지 않는 아들들에게 노하신 것이다. 하여서 그들을 자기 앞에서 나가라고 내쫓으신다. 그들을 한량없는 은혜로 함께 하시겠다는 징표로 아름다운 땅에서 살던 자들인데 이를 추방하셨다. 이는 아주 가까운 훗날,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
천상의 심판대 앞에서도 이뤄질 일의 표징이다. 은혜와 사랑의 징표로 그들에게 주신 거룩한 성과 성전에서 그들을 내쫓으셨다. 하나님의 법에서 떠난 자들을 그의 목전에서 추방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목전에서 추방당하는 경우는 없다. 우리가 무엇보다 먼저 돌아보아야 할 것은 죄이다. 다윗도 이를 절실하게 알고,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 51:11).
하고 기도하였다. 저는 밧세바를 취하였고 그녀의 남편으로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나단 선지자가 지적하기까지 다윗은 이를 숨기고 괜찮은 체 살았다. 그와 같이 시드기야의 악행과 악정은 여러 차례의 경고와 심판의 예언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떠나셨고 백성들을 미워하셨다. 시드기야는 21세에 왕위에 올랐다. “시드기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일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렘 52:1).” 물론 시드기야는 므낫세 같이 가장 악한 왕이라 할 정도의 죄는 없다. 심지어 그가 우상을 숭배하였다는 기사를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그의 특징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는 것이다. 마땅히 행하여야 할 선을 행하지 않는 것도 죄인 것이다.
무엇보다 나름대로 파멸을 재촉한 악행은 ‘그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였다!’ 그의 죄는 상식적으로 그른 게 아니다. 나라를 위해 침략자들과 맞서 싸운 게 전부다. 엄연히 민족적인 관점으로는 블레셋의 침노가 주권국가로서 맞서 싸워야 할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저는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다. 주가 들어 사용하시는 바벨론의 위상과 이에 순응할 것을 재차 강조하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증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의 어리석음은 옳고 그른 일의 결과가 아니라 그 중심의 결정이다.
결국 하나님은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모반한 사실을 대단히 좋지 않게 여기셨다. “그가 사절을 애굽에 보내 말과 군대를 구함으로 바벨론 왕을 배반하였으니 형통하겠느냐 이런 일을 행한 자가 피하겠느냐 언약을 배반하고야 피하겠느냐(겔 17:15).” 우리가 악을 평가하고 비난하여 부정할 수 없다. 이유는 모두가 악하기 때문이다. 하면 그 이유로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하셨던 이유를 시드기야는 묵과하였다. 이는 어리석은 짓을 행하는 것으로 시드기야와 그의 나라에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미치는가를 오늘 본문이 입증해 보인다.
예루살렘을 포위한 지 18개월 후 갈대아인들이 거기서 획득한 노략물을 취하였다. 갈대아인들이 예루살렘 주변에 진을 치고 포위한 것은 시드기야 통치 9년 10월이었다. “시드기야 제구년 열째 달 열째 날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그 성에 대하여 진을 치고 주위에 토성을 쌓으매(4).” 그리고 성을 점령한 것은 시드기야 11년 4월이었다. “그 해 넷째 달 구일에 성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양식이 떨어졌더라(6).” 이스라엘의 멸망에 결정적이었던 이 두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그들은 포로로 사로잡혀 간 후에 ‘사월과 시월에 금식하였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넷째 달의 금식과 다섯째 달의 금식과 일곱째 달의 금식과 열째 달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들이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리와 화평을 사랑할지니라(슥 8:19).”
스가랴서에 나오는 오월의 금식은 성전이 불탄 날을 기억하기 위하여 또 칠월이 금식한 것은 그달랴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예루살렘이 포위되었던 1년 6개월 동안 그들에게 얼마나 직접적으로 경고의 말씀이 집중되었는지 알 수 있다. 당연히 슬픈 때였는가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뼈아픈 고통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지 못한 결과는 참혹하다. 먼저는 그들로 성을 지킬 수 없게 ‘기근’이 들었다. “그 해 넷째 달 구일에 성중에 기근이 심하여 그 땅 백성의 양식이 떨어졌더라(6).” 그들이 기진하여 임무도 감당할 수 없을 때 ‘성벽이 부서졌다.’ “그 성벽이 파괴되매 모든 군사가 밤중에 그 성에서 나가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갈대아인들이 그 성읍을 에워쌌으므로 그들이 아라바 길로 가더니(7).”
곧 우리가 지키고 산다고 사는 삶의 울타리란 게 얼마나 허술하고 헛된 것인가를 알게 한다. 성벽 없는 삶이란 두려움이라, 사람들은 저마다 뇌물을 주거나 편법으로라도 이를 지키려한다. 서로가 굳건하여 신뢰할 줄 알았는데 어느 쪽이 어떤 시점에 녹취한 것을 폭로한다. 든든하게 숨겼다고 숨겼으나 하나하나 그 증거가 드러난다. 우리가 세운 안전이란 이처럼 한없이 불가능하다. 결국 오늘 왕과 그의 용사들은 불명예스럽게 후퇴한다.
그들은 밤에 성을 빠져나와 서둘러 도주하였다. 왕은 여리고 평야에서 잡혔고, 그의 경호병과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졌다. “갈대아 군대가 그 왕을 뒤쫓아 가서 여리고 평지에서 시드기야를 따라 잡으매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8).” 수 천 년 전의 성경이 오늘의 기사를 다루고 있는 것 같다. 죄를 지으면 위험에 직면하고, 두려워할 일에서 발각될 수밖에 없다. 그는 도망하였으나 무익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심판을 벗어날 길은 없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죄인을 따라와 그를 취하였다. 도망하고 싶은 대로 도망해 보아도 헛것임을 알았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신 28:15).”우리가 주의 손을 벗어나 살 수 있을 것이란 생각 자체가 죄다. 스스로의 방어가 무의미하다. “그들이 전국에서 네 모든 성읍을 에워싸고 네가 의뢰하는 높고 견고한 성벽을 다 헐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의 모든 성읍에서 너를 에워싸리니 네가 적군에게 에워싸이고 맹렬한 공격을 받아 곤란을 당하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자녀 곧 네 몸의 소생의 살을 먹을 것이라(52-53).”
슬픈 최후가 시드기야에게 임했다. 시드기야는 사로잡혔다. 바벨론 왕은 그에게 모반죄를 적용하였다. “그들이 왕을 사로잡아 그를 하맛 땅 리블라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그가 시드기야를 심문하니라(렘 52:9).” 다윗 왕가 출신으로 유다의 왕인 그가 이방 왕의 법정에서 죄인으로 심문당하였다. 저는 앞서 선지자 예레미야 앞에서 겸비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교만을 하나님께서 꺾으시고 낮추신 것이다. 거만한 정복자가 그에게 내린 형은 끔찍하다.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 앞에서 죽이고 또 리블라에서 유다의 모든 고관을 죽이며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 왕이 그를 바벨론으로 끌고 가서 그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더라(10-11).”
흔히 하는 말처럼 ‘갈 데까지 가야 안다.’ 죄란 그렇게 악착스럽다. 스스로를 인정할 수 없고 드러내지 않는다. 오늘 우리 사회의 법정에서 누구 하나 진심어린 사죄와 용서를 구하는 이가 없다. 잘못은 했으나 죄는 없다는 논리로 자기변명에 급급하다. 그렇게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의해 짓밟혔다. 약탈을 명한 자는 느부사라단이었다. 그는 시위장이고, 이번 원정에 총지휘관이다. 느부사라단은 병사들의 우두머리로 형을 집행한 것은 좋았으나 한 가지 문제점은 그가 하나님을 경외할 줄 몰랐다는 점이다. 그는 바벨론 왕에게 충성하였고 그의 계획대로 행하였다. 그가 예루살렘 깊숙이 들어와 하나님의 도성을 유린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조상들이 주를 찬송하던 우리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전이 불에 탔으며 우리가 즐거워하던 곳이 다 황폐하였나이다(사 64:11).”
그는 왕궁을 불살랐다. 그는 예루살렘 모든 집을 불살랐다. 모든 귀인들의 집과 특권을 누리던 자들의 집을 불살랐다. 이 재화를 모면한 곳이 있다면 그것은 그 땅의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거처는 초라한 것이었다. 그는 예루살렘 사면 벽을 헐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그의 군대의 진로를 가로막았던 것에 대한 보복조치였다. 성은 폐허가 되었다. “주께서 성읍을 돌무더기로 만드시며 견고한 성읍을 황폐하게 하시며 외인의 궁성을 성읍이 되지 못하게 하사 영원히 건설되지 못하게 하셨으므로(사 25:2).” 이처럼 이 일의 주동은 하나님이시다.
많은 무리를 포로로 잡아갔다.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백성 중 가난한 자와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와 무리의 남은 자를 사로잡아 갔고(렘 52:15).” 그런 가운데서도 “가난한 백성은 남겨 두어 포도원을 관리하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16).” 그렇게 성 중에 남아 있는 백성은 칼과 기근을 피한 자들로 바벨론에 항복한 자들이다. 느부사라단이 사로잡아갈 합당한 자를 선택하였다. 실상은 하나님이 그들을 사로잡아가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기셨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미 어떤 자들에게는 염병을, 어떤 자들에게는 칼을, 또 어떤 자에게는 기근을, 어떤 자들에게는 포로의 운명이 되게 할 것을 결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이 만일 네게 말하기를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죽을 자는 죽음으로 나아가고 칼을 받을 자는 칼로 나아가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나아가고 포로 될 자는 포로 됨으로 나아갈지니라 하셨다 하라(15:2).”
그런 가운데 립나에서 귀인 72명이 무참히 살해된다. 그 가운데 방백 스라야는 너그러운 인품의 소유자였었다. “유다의 시드기야 왕 제사년에 마세야의 손자 네리야의 아들 스라야가 그 왕과 함께 바벨론으로 갈 때에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에게 말씀을 명령하니 스라야는 병참감이더라(51:59).” 그러나 제사장 스라야는 그와는 달리 성급하고 불온한 인물이었다. 성격 때문에 처벌을 자초하게 된 것이다. 지도자들은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였다. 그들이 시범적으로 하나님의 정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만일 가나안 족속들의 추행을 반복하여 행하면 같은 운명을 만날 것이라고 수차례 말씀하셨다. 이전에 두 번 잡혀갔던 일에 대해, 한 번은 느부갓네살 통치 7년에 있었고, 다른 한 번은 그의 통치 18년에 있었다. “느부갓네살이 사로잡아 간 백성은 이러하니라 제칠년에 유다인이 삼천이십삼 명이요 느부갓네살의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 간 자가 팔백삼십이 명이요(28-29).”
그런 가운데도 은총은 흐른다. 여호야긴이 에윌므로닥에게서 은총을 받는다.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에윌므로닥 왕의 즉위 원년 열두째 달 스물다섯째 날 그가 유다의 여호야긴 왕의 머리를 들어 주었고 감옥에서 풀어 주었더라(31).” 그리고 “그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그의 자리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자리보다 높이고 그 죄수의 의복을 갈아 입혔고 그의 평생 동안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으며 그가 날마다 쓸 것을 바벨론의 왕에게서 받는 정량이 있었고 죽는 날까지 곧 종신토록 받았더라(32-34).”
여호야긴 왕이 포로 된 곳에서 다시 왕의 대우를 받는 본문은 열왕기하 25장 27-30절에도 나와 있다. 즉 새로 등극한 왕은 법을 새로 제정한다. 느부갓네살은 이 불행한 군주 여호야긴을 오래 옥에 감금하였다. 그의 아들 에윌므로닥은 죄수 여호야긴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된다. 여호야긴은 인생을 시작하면서 왕좌에서 옥으로 전락하였다. 본문에 보면 그는 비록 권력을 쥔 자리는 아니더라도 보좌에 오르게 된 것을 보게 된다. “그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그의 자리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자리보다 높이고(32).”
역경의 밤이 길더라도 우리가 절망하지 않을 것은 결국 동이 트고 하나님의 은총은 임하심이다. 여호야긴은 18세에 옥에 갇혀 37년이나 옥고를 치루며 수모를 겪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압제자로부터 호의를 얻게 하신다. 압제자들의 마음을 이상하게 변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고 위한다. 이를 시인도,
우리가 우리의 조상들처럼 범죄하여
사악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
그들을 사로잡은 모든 자에게서
긍휼히 여김을 받게 하셨도다
(시 106:6, 46).
원인과 결과가 선명하다. 아무리 높이 존경을 받는 교회나 개인도 타락하여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면 징계를 받는다. 불의한 생각을 품는 자는 망하리라는 원칙은 변함이 없다. 오늘에 누리는 특권이나 직업은 죄를 용서받는데 쓸모없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은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저들의 외형만 보다,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시 73:2-3).
하는 말씀으로, 설령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4-9).
이는 사실 부럽기도 한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7).
그들의 종말을 보고도 부럽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으나,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양심이 찔렸나이다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21-23).
그러므로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24-25).
하여 오늘도 주께 아뢰고 고백하는 말,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26-2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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