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208 주일
요나 1장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욘 1: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욘 1: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욘 1: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들어가는 말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를 모든 말을 너는 마음으로 받으며 귀로 듣고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겔 3:10-11).”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자가 진정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할 수 있다. 이는 주의 성실하심을 알고 주의 성실하심으로 자신을 둘러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진정한 산악인이 산을 타는 즐거움을 자랑하는 만큼 주의하고 또 두려워할 줄도 아는 것과 같다. 초보자는 산을 얕잡아보다 사고를 당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실 때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 하심으로 ‘명령의 의도’를 살라고 하셨다. 곧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눅 10:42).” 하신 말씀을 바울은 풀어서 설교하길,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
즉 우린 우리에게 부여하신 사명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할 때가 곧 이를 것이다. 오늘 ‘요나의 교훈’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불순종할 때 생긴 일이다. 저는 결코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게 아니다. 다만 산을 얕잡아보다 사고를 당하는 산악인과 같이, 저는 ‘니느웨로 가라’ 하신 것을 다시스로 가면 될 줄 알았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이 부여하신 사명은 무엇이고, 어떻게 순복해야 할까?
1. ‘심판의 예언’을 전하는 것이다(1-3)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심판을 예언하라고 사명을 주셨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이다. ‘요나’의 이름의 뜻은 ‘비둘기’이다. 이는 우리 성도의 표징이 된다. 우리는 비둘기같이 순결해야 한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 또한 우리 성도는 이 땅의 죄와 재난으로 비둘기처럼 애곡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곰 같이 부르짖으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정의를 바라나 없고 구원을 바라나 우리에게서 멀도다(사 59:11).” 또한 우리는 더하여서 뱀 같이 지혜롭고, 곰 같이 부르짖으며 정의를 구해야 한다.
요나의 아버지 ‘아맛대’는 ‘나의 진리’란 뜻이 있다. 곧 우리 성도들은 모두 ‘진리의 아들들’ 곧 ‘빛의 아들들’이라 하셨다.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살전 5:5, 엡 5:8).” 이는 우리에게 ‘일어나 앗수르의 성읍 니느웨로 가라’는 명령이 주어지는 것과 같다(2). 어둠의 세상에서 빛의 자녀로 사는 일은 그러하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로 둘레가 77Km가 넘는 도시였다. 그 안에 사는 유아의 수효만 22만 명이었다.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욘 4:11).” 그만큼 부(富)와 문명이 발달한 큰 도시였다. 그러나 니느웨는 하나님께 죄악을 행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도시와 같았다(눅 1:79).” 그런 곳에 보내실 때 요나로서는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 당연하다.
‘그들의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하였다’고 전해야 한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2).” 악독이 하나님 앞에 올라갔다는 것은 공공연히 하나님을 모욕하고, 주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며, 온갖 추함과 더러움과 악독을 행한다는 것이다. 이를 요나는 지적하고 ‘쳐서 외쳐야 했다.’ 그러나 요나는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저들은 어차피 앗수르 이방 사람들이었다. 원래 하나님을 부정하는 족속들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순히 순종할 수는 없었다. 하여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3).” 요나는 그렇게 해서 사명을 회피하려 했다. 불순종의 단계는,
첫째, 하나님의 얼굴을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둘째, 하나님 몰래 ‘니느웨가 아닌 다시스로’ 가면 될 것이라 판단했다.
‘예언의 영’, 곧 ‘말씀을 전하는 일’은 이스라엘에서만 국한된다고 여겼다. ‘에스겔’이나 ‘다니엘’과 같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도 예언의 말씀은 부여받아 순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여겼다. 사실 이사야도 예레미야도 처음에는 이 ‘예언의 영’이 임하였을 때 거절하였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하게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복하리라(사 1:24).” 모세도 하나님의 사명을 거절했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출 3:11).” 주의 일에 전념하는 것은 세상 즐거움을 포기하는 일이다. 말씀을 선포하기란 두려운 일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하는 입과 듣는 귀도 열어 주셔야 한다.
이사야도 나중에야 고백하길, 첫째, 하나님이 귀를 여셨음으로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사 50:5).” 둘째, 인생을 의지하지 않음으로 하나님만 의뢰할 수 있었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2:22).” 이와 같이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용기를 더하시며,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하심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제자들이 흔들리고 요동하지 말 것을 당부하셨다.
2. 불순종으로 인해 폭풍 속에 던져졌다(4-10)
요나는 승선하여 다시스로 항해할 때까지 몰랐다. 이만하면 충분한 것으로 안심하여 깊은 잠에 빠졌다.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4-5).” 그런 와중에도 스스로 안주하였으나 하나님이 추적하셨다.
하나님의 손길은 바다 가운데 폭풍 같다. 첫째, 하나님은 곳간에 바람을 넣어 두셨다. “안개를 땅 끝에서 일으키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를 만드시며 바람을 그 곳간에서 내시는도다(시 135:7).” 둘째, 하나님은 바람을 장중에 모으신다.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잠 30:4).” 하나님의 추적은 모든 상황과 여건을 동원하신다.
그런 어려움 가운데서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신을 불렀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모든 인간은 어려울 때 인간 이상의 존재를 찾는다. 첫째, 우리는 환난으로 주를 더욱 앙모한다. “여호와여 그들이 환난 중에 주를 앙모하였사오며 주의 징벌이 그들에게 임할 때에 그들이 간절히 주께 기도하였나이다(사 26:16).” 둘째, 모든 사람은 저마다 신을 찾는다.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주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8:19).” 결국 요나는 제비 뽑혀 사람들 앞에 섰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원망했다.
요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의 면모를 살렸다. 첫째, 요나는 신앙의 양심에 따라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자기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10).” 둘째, 요나는 일의 책임을 자신에게 묻게 했다.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12).”
셋째, 폭풍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알았다. 요나는 자신의 신분과 이 일의 원인을 밝혔다.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9).” 넷째, 곧 자신의 사명을 망각하여 생긴 일인 것을 안다.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이 재앙이 누구 때문에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말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네가 어디서 왔으며 네 나라가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하니(8)”
결국 하나님은 자연의 모든 섭리를 동원하여 사명자의 그릇된 길을 바로잡게 하신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경외하고 섬기는 자가 거역할 때 벌하신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벧전 4:17-18).” 둘째, 우리도 그럴진대 그 외의 사람들의 어떻겠나?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19).”
3. 하나님은 징계하시면서도 긍휼하심으로 보호하신다(11-17)
요나는 자신이 책임을 진다. 첫째, 요나는 자신으로 인하여 바다가 요동치고 흉용해졌다는 것을 인정했다.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하니(11).” 둘째, 죄가 고난의 원인이라는 것을 알고 죄를 버리지 않으면 사태는 악화될 뿐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13).”
셋째, 요나는 자신을 흉용한 바다에 던지라 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징계를 인정함으로 정면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11).” 넷째, 요나의 말처럼 요나가 돌이키고 바다에 던져지자 풍랑이 멈추었다.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15).”
나오는 말
궁극적으로 요나의 불순종으로 이 같은 사달이 생겼지만 더하여 그 일로 인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16-17).”
첫째, 이번 일로 배에 탔던 사람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14).” 둘째, 하나님은 저들까지도 긍휼히 여기셨다.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15).”
셋째, 사람들이 이 일로 하나님께 서원하고 제물을 드렸다.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16).” 넷째,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그런 가운데 하나님은 요나를 연단하셨고, 잠시 은밀한 장중에 숨기시고 ‘회개와 회심의 시간’을 갖게 하셨다. 우리로도 돌이킬 수 있는 기회와 이를 위해 연단이 더해진다 해도 주께서 돌보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곧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욘 1:1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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