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215 주일
요나 2장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욘 2:7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욘 2:8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욘 2: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욘 2: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들어가는 말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삼켜졌다. 우리는 죄로 인해 내적인 감정 상태에 빠진다. ‘물고기 뱃속’은 ‘내면의 동굴’ 같다. 인생의 극심한 고난은 자신을 잃게 한다. ‘깊은 슬픔’은 물고기 뱃속 같다. 요나는 이곳을 ‘스올의 뱃속’이라 하였다.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2).”
스올은 지옥을 의미하며 절망과 고통의 장소이다. 고난 중에 우리는 기도할 수 있다.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하는 고백도 그에 따른다. 욥은 ‘스올의 뱃속’ 을 통과하며,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하는 고백을 하였다. ‘스올의 뱃속’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주를 만난다. 이곳은 ‘무덤의 깊은 곳’이라고도 한다.
요나는 풍랑 속에 던져졌다. 그때 하나님은 깊은 바다 속의 물고기를 미리 예비하셨다.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1:17).” ‘물고기 뱃속’은 또 다른 은혜의 장소이다. 이는 죽지 않고 살아서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곳이다. 죽은 자는 원망하거나 감사할 뿐이다. 곧 요나는 죽었으나 살았다. 심각한 역경은 우리로 하나님을 대면하게 한다. 더는 사람을 의지할 수 없는 ‘초월의 장소’가 된다.
요나는 비로소 신앙의 면모를 보여준다.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을 입었다. 이는 우리도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4).” 하심으로 성도는 새 사람으로 산다. 곧 우리는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골 3:10).” 이처럼 우리의 믿음은 성화한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고 선언한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욘 2:4).” 고난은 우리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은혜로우심을 의지하는 태도를 갖게 한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시 42:2).” 그러므로 요나의 고난은 ‘다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한다.
본문이해
죽음과 고통 중에 거한다고 해도 하나님을 소망하는 것은 새 힘을 얻는다는 것으로 역설된다. 이사야의 설교에서도,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 40:31).” 하심을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고난 중에 비로소 다시 신앙의 간증을 하게 된다.
사도 바울은 놀랍게도 고난으로 소망을 한다고 역설하였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5).” 궁극적으로 우리가 바라야 할 소망은 무엇일까? 이를 알 수 있는 처소가 ‘물고기 뱃속’으로 이해된다. 살면서 우린 뜻하지 않은 고난에 걸린다. 말도 안 되는 인생의 역습이 찾아오곤 한다. 애써 수고하여 살만하다 여길 때 죽을병에 걸리거나 뜻을 이루었다 싶을 때 끝이 온다. 실패와 낙심으로 순간 우리는 인생에서 내동댕이쳐친다. 마치 ‘따귀 맞은 영혼’으로 얼떨떨하게 주를 찾는다.
요나는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회피하여 다시스로 도망쳤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셨다. 하나님은 요나를 바다에 던지셨고 물고기를 예비하심으로 저를 삼키게 하셨다. 요나를 대속물로 배 위의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다. 뒤에 이어 저의 선포로 니느웨의 심판은 미뤄졌다. 끝내 하나님은 요나를 찾아서 저로 그 의무를 지게 하셨다.
1) 기도는 간절하고 절박할 때 나온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1)”
고난 중에 하나님의 진노의 의미를 깨닫는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된다. 우리가 기도할 때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간다. 인생의 기로에서 마음은 겸손해지고 부드러워진다. 그 마음은 기도할 생각을 갖는다. 이것이 고난의 목적이다.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호 5:15).”
2) 죄는 고난을 자초하고 고난은 겸손과 경건한 마음으로 이끈다.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2).”
요나는 기도의 동기로 고난을 꼽는다.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그리고 응답을 확신한다.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이에 부르짖었다.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이에 하나님은 응답하신다.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이로써 우리가 성실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은혜의 보좌’에 선다.
고난 중에 기도할 때, 고통은 참회하는 자를 내어준다. 요나는 범죄 했고,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쳤다가 고통의 ‘물고기 뱃속’에서 참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지혜는 말하길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니라(전 9:4).” 결국 살아서 돌이킬 수 있는 것이 복이다. ‘롯의 처’는 살았다고 여겼다가 기회를 잃고 소금기둥이 되었다. ‘스올의 뱃속’은 고통이 극단적이어서 지옥과 같다.
3) 기도는 항상 쉬지 않고 하는 것이다.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3).”
고난 중에 기도하는 것이 지혜다. ‘물고기 뱃속’에 던져졌다는 것은 기도조차 어려운 지경에 놓인 것인데, 기도밖에 할 수 없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딤전 2:8).” 곧 우리가 어디로 던져지든지 거기서 기도하면 ‘하늘 문’이 열린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살 때, 어디에서든지 우리는 기도하는 곳이 된다. 요나는 바다 속 ‘물고기 뱃속’에서,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차꼬와 수갑을 차고도 기도하였다.
4)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 여호와시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4).”
고난 중에 우리는 아뢴다.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 하는 고백이 가능해진다. 고난이 오기 전에는 이를 인정하기 어렵다. 모든 게 적당하여 그럴 기회도 없다. 그러다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하시니라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렘 3:22).” 고난 가운데 우리는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본다.
오늘 요나는 ‘내가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고 한다. 이는 고난 중에 나온 욥의 고백으로, 욥은 아뢰기를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 13:15).” 또한 다윗은 고난 중에 주의 인자하심이 자신의 생명보다 낫다는 것을 고백하였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시 63:3).” 바울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랐음을 믿음으로 증언하였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롬 4:18).”
5) 고난이 유익한 것은 기도하게 하는 것이다.
“물이 나를 둘렀으되 영혼까지 하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웠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쌌나이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5-7).”
시편의 세계는 노래하길,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하고,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하며 이를 고난 중에 알았다고 했다(시 119:67, 71). 요나는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6).” 하고 증언한다.
그리고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7).” 하면서 전에도 거기 있었을 ‘다시’의 단계로 “네가 바다의 샘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 밑으로 걸어 다녀보았느냐 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느냐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느냐(욥 38:16-17).” 하고 물으신 것 같이 요나는 ‘음부와 무덤의 뱃속’에서 주의 성전에 바랐다.
6) ‘풍랑’은 거짓을 숭상할 때 닥친다.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8).”
우리는 기도하길,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에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시 69:1).” 곧 밖에서 다툼을 겪다가 안에서 두려움으로 고통당한다. “우리가 마게도냐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 육체가 편하지 못하였고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다툼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이었노라(고후 7:5).” 즉 고난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깊이 바라게 한다.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 1:8-9).”
나오는 말
우리는 주 앞에 단단히 붙잡혀 있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6).” 심지어 해저의 암반에까지 내려가서 성전을 찾았다.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7).” 이처럼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잃었던 하나님의 찬양을 회복했다.
이제 서원한 것을 갚겠다고 한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하니라(9).” 이는 산 자의 복이다.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7).” 이것으로 고통의 유익이 증명된다.
또 하나 고통의 끝자락에서 구원의 확신과 보응의 참 은혜를 깨닫는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6).”
※ 고난의 유익
1. 거짓에서 벗어난다.
“무릇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8).”
2. 잃었던 서원을 되찾는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하니라(9).”
감사는 우리 ‘입술의 수송아지’다.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호 14:2).” 이는 우리 ‘입술의 열매’다.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 13:14-15).”
요나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예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로 인해 요나처럼 삼일삼야를 무덤에 계셨고 부활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요나와 같이 선민에게 뿐 아니라 이방인에게 회개와 용서를 약속하셨다. 호세아는 증거하길,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호 6:2).” 요나의 서원과 찬송으로,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하니라(욘 2: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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