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재앙이로다, 비상한 재앙이로다 볼지어다 그것이 왔도다 끝이 왔도다, 끝이 왔도다 끝이 너에게 왔도다 볼지어다 그것이 왔도다… 내가 극히 악한 이방인들을 데려와서 그들이 그 집들을 점령하게 하고 강한 자의 교만을 그치게 하리니 그들의 성소가 더럽힘을 당하리라
겔 7:5-6, 24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시 85:7-8
멸망의 날이 가까운 것은 구원의 날이 실현될 것을 말한다. 마치 피해자의 심정으로 간절한 재판을 구하는 일처럼 구원은 우리에게 멸망의 날이 되기도 한다. 상응한 날은 당연한 심판으로 남유다의 멸망을 다룬다. 여기서 선민의 대표적 범죄는 우상 승배이다. “이르기를 이스라엘 산들아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주 여호와께서 산과 언덕과 시내와 골짜기를 향하여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나 곧 내가 칼이 너희에게 임하게 하여 너희 산당을 멸하리니 너희 제단들이 황폐하고 분향제단들이 깨뜨려질 것이며 너희가 죽임을 당하여 너희 우상 앞에 엎드러지게 할 것이라(6:3-4).”
오늘 본문은 여호와의 말씀 선포되고 심판이 임박함을 알린다. 그 주체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 때에야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내가 이런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겠다 한 말이 헛되지 아니하니라(10).” 에스겔이 이 메시지를 선포한 때는 그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지 5년, 주전 593년의 때이다. 이에 바벨론은 3차 침공으로 유다가 패망하고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주전 586년까지 7년 정도 남은 때였다. 하나님께서 이를 알리게 하시며 막판의 안타까움을 토로하게 하신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재앙이로다, 비상한 재앙이로다 볼지어다 그것이 왔도다 끝이 왔도다, 끝이 왔도다 끝이 너에게 왔도다 볼지어다 그것이 왔도다(7:5-6).”
그런 가운데서 이처럼 다급히 알리는 것은 아직, 회개할, 기회가, 있기 때문임을 역설한다. 회개하고 죄의 길에서 돌이켰다면 비록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것 자체는 막을 수 없다 해도 긍휼 없는 심판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 날도 하나님의 최후 심판 경고는 끊임없이 들려온다. 즉 유다의 종말이 임박하였음을 선언하듯 오늘 우리에게도 그리 전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재앙이로다, 비상한 재앙이로다 볼지어다 그것이 왔도다 끝이 왔도다, 끝이 왔도다, 끝이 너에게 왔도다, 볼지어다 그것이 왔도다.” 하고 다급하게 울어대는 사이렌소리처럼 우리로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예언의 때는 주전 593년으로 유다가 멸망했던 주전 586년을 불과 7년 앞두고 있는 말씀이다. 어쩌면 우린 느끼고 알면서도, 설마 하고 미루며 애써 태연한 척 외면하고 산다. 그러나 유다의 종말과 같이 그 심판의 임박함은 본문의 이 짧은 구절에서 다급하게 울려 퍼진다. 그런 가운데,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렘 5:1).”
기회가 있었다. 아직 이와 같이 사이렌이 울리듯 우리의 삶에서 경고의 말씀이 들리고 위기의식이 느껴진다면 돌이킬 순간이 남았다는 것이다. 죄가 넘치도록 관영한 유다와 예루살렘이 심판을 당하여 파멸에 이르렀음에도 아직 완전한 멸망까지 7년을 남긴 시간으로 회개하고 돌이켰어야 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여 오늘의 징조와 나타날 일들에 대해 경고하신 바 그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마 24:4).” 먼저는 미혹당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늘 날 우리 사회의 분열과 교회의 분파로도 이를 알 수 있다. 각종 채널과 개인방송으로도 느낄 수 있다. 계속 더 주의 말씀을 상기하면,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5).” 하심이 실제 온갖 말같잖은 이단과 사이비종파가 부와 사람을 축적하고 있는 게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비화밀교와 같이 암암리에 사람들의 영혼을 잠식하고 있다.
이는 또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그리하여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6, 7-8).” 이러한 현상은 실제 온 세계가 앓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미국의 이민정책이나 우리의 실용주의니 하는 것들이 나름의 명분과 실리를 내세우지만 그런 가운데 압제와 핍박, 혼용과 혼재의 사상과 진리가 난무하다. 믿음으로 사는 이들도 각종 귀신과 사탄을 구사하는 노래와 춤, 영화와 애니메이션에 빠져서 문화라는 이름으로 흡수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판타지나 호로물 같은 장르의 것을 싫어하는데 주변에는 이제 그런 소재가 아니면 드라마나 영화가 설 자리가 없을 정도이다. 하다못해 무슨 캐릭터니 문양이나 로고에 있어서도 각종 신화의 우상이나 신전을 본떠서 만든 것들이 상징이 되고 그 자체가 브랜드로 가치를 높여 돈이 되고 권력을 낳는다.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9-12).” 이와 같은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과 같이 온전히 주를 바라는 교회는 점점 영세하고 개척을 면하지 못하고 월세 교회로 전전긍긍한다. 성도들은 부담을 느끼면서 큰 교회, 더 크고 자립도가 높은 교회로 몰리는 교회 양극화도 심화되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13-14).”
오늘 본문의 배경으로 7년 후 최종적으로 예루살렘이 멸망하기까지 아직도 돌이켜 회개하고 각성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바랄 것을 다급히 외친다. 세상의 종말은 임박하였다. 그때가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으로 우리는 안이하다. 그러나 우리의 종말론적인 신앙은 지금이 자다가 깰 때임을 알고, 영적으로 깨어 경성하여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을 알린다. “이 일이 유다에 임함은 곧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들을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 때문이며 또 그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그의 피가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왕하 24:3-4).” 그렇게 축적되어 오늘에까지 이른 우리의 나태와 안일함은 여전히 우상을 숭배한다. 이와 같은 말씀에도 두려워할 줄 모른다.
“말하기를 너희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주민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 그것을 듣는 모든 자의 귀가 떨리니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이 곳을 불결하게 하며 이 곳에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과 유다 왕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무죄한 자의 피로 이 곳에 채웠음이며 또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나니 이는 내가 명령하거나 말하거나 뜻한 바가 아니니라(렘 19:3-5).”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떠한지? 돌아보며 시편은 간구한다.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에 머무르리이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
(시 85:9-11).
궁극적으로 우리로는 심판의 날이 구원의 날이 될 것이다. 신속하게 다가오고 있는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한 경고를 우리가 듣는다. 하나님은 경고하셨고 또 말씀하심으로, 그와 같은 경고가 거듭되는 것은 그만큼 참고 또 기다리심이다. 우리는 시대마다 우둔하였고, 귀가 먹었고, 그것에 두려움이 없었음으로 1, 2차 세계대전을 치렀다. 냉전시대를 지났다고 하나 오늘도 여전히 일촉즉발의 현상은 거듭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끝났도다! 끝났도다! 종말이 왔다! 보라, 종말이 왔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고 선포하는 오늘의 말씀에 화들짝하고 놀라야 한다. 이처럼 ‘끝났도다, 끝났도다’ 하고 다시 ‘이제는 네게 끝이 이르렀다’고 하고 연거푸 외치는 말씀에 주목해야 한다.
“너 인자야 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땅에 관하여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끝났도다 이 땅 사방의 일이 끝났도다 이제는 네게 끝이 이르렀나니 내가 내 진노를 네게 나타내어 네 행위를 심판하고 네 모든 가증한 일을 보응하리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재앙이로다, 비상한 재앙이로다 볼지어다 그것이 왔도다 끝이 왔도다, 끝이 왔도다 끝이 너에게 왔도다 볼지어다 그것이 왔도다(2-3, 5-6).”
그런데 우리 사회나 세계 추세는 이 종말의 경고에도 아랑곳없이 온갖 사악함이 K-문화, 한류열풍 등의 이름으로 돈벌이가 된다. 각종 토속신앙과 귀신문화들이 난무하다. 하나님은 오늘 이 예언을 통해 우리의 자각을 돕는다. 정신 차려야 한다. 덩달아서 귀신들의 전투병처럼 이리저리 흔들려서는 안 된다. 심지어 가족들 사이에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제기하면 고리타분하게 듣고 만다. 졸지에 ‘꼰대’가 된다. 목사니까, 하고 조롱 섞인 웃음으로 치부한다. ‘이 결국이 어찌 되겠나?’ 물으면 마침내 오리라고 종종 말했던 바로 그 종말이다.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던 그 끝은 참혹하고 비참할 뿐이다.
눈앞에서 자식들이 도륙당하고 자신은 눈알이 뽑혀 끌려가는 시드기야의 신세가 될 것이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마 24:40-41).” 그러하기까지 저마다 알 수 없는 한 날을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창 6:13).” 하심이 끝내 이루어졌던 것처럼…. 종말을 곧 보게 될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경건한 자들에게는 ‘바라던 종말’이 된다. 그러하기까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 이를 우린 어찌 듣고 있는지, “그들은 모략이 없는 민족이라 그들 중에 분별력이 없도다 만일 그들이 지혜가 있어 이것을 깨달았으면 자기들의 종말을 분별하였으리라(신 32:28-29).” 이를 오늘 우리도 듣는다. “그의 더러운 것이 그의 옷깃에 묻어 있으나 그의 나중을 생각하지 아니함이여 그러므로 놀랍도록 낮아져도 그를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여 원수가 스스로 큰 체하오니 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애 1:9).”
우린 오늘의 이와 같은 현상으로, 또한 말씀으로 경각심을 새롭게 다한다. 나 자신을 다잡고 어떠하든지 주를 바란다. 오늘의 이 말씀이 오늘의 나와 상관없다면 이는 더 이상 말씀이랄 수 없다.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요 10:35).” 이것으로 오늘 우리에게 향하신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2-13).” 곧 말씀은 이루어진다.
고로 ‘보라, 재앙이로다. 오직 비상한 재앙이다.’ 하는 오늘 말씀에 우리가 엎드려 대비해야 한다. “너희는 여호와께 대하여 무엇을 꾀하느냐 그가 온전히 멸하시리니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나훔 1:9).” 이는 전무후무한 재앙일 것이다. 회개치 않은 자들에게 내릴 ‘하나의 재앙’이고 ‘비상한 재앙’이다. 그것은 죄를 범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며, 그들의 타락을 촉진시켰다. 그렇듯 오늘 우린 이와 같은 말씀에 오히려 아랑곳하지 않는다. 또 그러려니 한다. 이에 반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 재앙이 성화의 기회가 되고, 축복의 수단으로 변한다. 그런 우리들로 ‘축복을 위해 바벨론으로 보내어졌다’고 하셨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 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렘 24:5).”
곧 이 혼란하고 동일한 재난의 순간에도 우리의 행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절반의 재앙’이 되기도 한다. 비록 포로로 잡혀온 듯 같은 비극과 참상을 겪고 있는 듯하나 ‘비상한 하나의 재앙’이 아니다. 재앙이 ‘모든 무리에게 임하리라’ 하셨으나, “때가 이르렀고 날이 가까웠으니 사는 자도 기뻐하지 말고 파는 자도 근심하지 말 것은 진노가 그 모든 무리에게 임함이로다… 그들이 나팔을 불어 온갖 것을 준비하였을지라도 전쟁에 나갈 사람이 없나니 이는 내 진노가 그 모든 무리에게 이르렀음이라(겔 7:12, 14).” 모두가 같은 처지인 것 같아도 그 가운데 주의 백성은 느끼는 강도도 실제 다가오는 현실도 다르다. 비록 어려움으로 힘겨운 듯 한데 우리 이 작은 교회는 여전히 주의 손길로 운영이 가능하다. 더는 어려울 듯하여 다른 길을 모색하며 시무룩해할 때면….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신 31:6).”
하고 오늘도 말씀하신다. 오늘 이 심판의 무시무시한 경고의 말씀이 그렇게 들린다. 하여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고전 7:29-31).” 서로의 한 날이 같은 것 같아도,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출 15:2-3).” 하는 말씀으로 힘을 얻는다.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 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으며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셀라)
(시 85:1-2).
오늘 이 은혜를 사는 동안,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도록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보이시며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주소서
(6-7).
우리는 주 앞에 구하고 고한다. 하여,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
의가 주의 앞에 앞서 가며
주의 길을 닦으리로다
(12-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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