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의 성실하심이 주를 둘렀나이다

하현. 2026. 2. 5. 04:39

 

그룹들에게는 각기 네 면이 있는데 첫째 면은 그룹의 얼굴이요 둘째 면은 사람의 얼굴이요 셋째는 사자의 얼굴이요 넷째는 독수리의 얼굴이더라

겔 10:14

 

하나님은 거룩한 자의 모임 가운데에서 매우 무서워할 이시오며 둘러 있는 모든 자 위에 더욱 두려워할 이시니이다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여 주와 같이 능력 있는 이가 누구리이까 여호와여 주의 성실하심이 주를 둘렀나이다

시 89:7-8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자가 진정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할 수 있다. 이는 주의 성실하심을 알고 주의 성실하심으로 둘러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진정한 산악인이 산을 타는 즐거움을 자랑하는 만큼 주의하고 또 두려워할 줄도 아는 것과 같다. 오늘도 이어지는 환상 속에서 에스겔은 그발 강가에서 보았던 네 얼굴과 그 형상을 본다. “각기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으며 날개 밑에는 사람의 손 형상이 있으니 그 얼굴의 형상은 내가 그발 강 가에서 보던 얼굴이며 그 모양과 그 몸도 그러하며 각기 곧게 앞으로 가더라(21-22).”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굳어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이니라(3:7).”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주어진 사명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를 모든 말을 너는 마음으로 받으며 귀로 듣고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10-11).” 청중의 반응이나 성과로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순종일 뿐이다.

 

누가 이 글을 읽든지 안 읽든지, 주의 뜻에 관심이 있든지 없든지 나로서는 오늘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는 것이 본분이 된다. 이것이 우리 성도의 직분이다. 이때의 각각 네 얼굴은 계시록에서도 나타나는 바,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계 4:7-8).” 이를 제자들이 사복음서에서 각각의 관점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서술하고 묘사하였다.

 

본문은 남유다에 대한 심판에 있어 주전 592년 6월 5일에 받은 계시이다. 우상숭배로 더럽혀진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환상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이에 심판을 집행하는 자에 의한 선민의 구분과 살육의 환상을 기록하였다. 이어서 예루살렘에 대한 불심판을 위한 하나님의 숯불 살포 명령이 내려지는 환상을 기록하고 있다. 앞서 남보석과 같은 보좌 위의 한 형상 곧 하나님께서 선민 중 불을 받아서 성읍 중으로 나아간 사실을 설명한다. “이에 내가 보니 그룹들 머리 위 궁창에 남보석 같은 것이 나타나는데 그들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 것 같더라 하나님이 가는 베 옷을 입은 사람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그룹 밑에 있는 바퀴 사이로 들어가 그 속에서 숯불을 두 손에 가득히 움켜 가지고 성읍 위에 흩으라 하시매 그가 내 목전에서 들어가더라(10:1-2).”

 

이는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1:26).” 앞에서 보이신 것과 같다. 첫 번째 환상 가운데서 에스겔에게 보이신 하나님께서 다시 두 번째 환상 가운데서 계시하심을 암시한다. “내가 보니 불 같은 형상이 있더라 그 허리 아래의 모양은 불 같고 허리 위에는 광채가 나서 단 쇠 같은데 그가 손 같은 것을 펴서 내 머리털 한 모숨을 잡으며 주의 영이 나를 들어 천지 사이로 올리시고 하나님의 환상 가운데에 나를 이끌어 예루살렘으로 가서 안뜰로 들어가는 북향한 문에 이르시니 거기에는 질투의 우상 곧 질투를 일어나게 하는 우상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8:2-3).” 여기서 예루살렘에 숯불을 살포하는 환상은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 의해 함락될 때 완전히 불살라지게 될 것임을 나타낸다.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하나님의 불 심판은 죄로 더럽혀진 곳은 그곳이 어떤 곳이든 하나님의 엄정하고 두려운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우리는 이러한 성경의 증언을 접할 때마다 경각심을 갖고 심판이 임하기 전 소멸되어야 하며 불태워야 할 것들을 우리 손으로 먼저 제거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곧 의인과 악인을 구분하기 위한 방편으로 의인의 이마에 표를 하게 하셨던 서기관 복장을 한 천사를 향하여 하나님께 수종하는 그룹들 밑에 있는 바퀴 사이로 들어가 그 속에서 숯불을 가지고 나와 예루살렘 성읍 위에 살포하도록 명하신 것과 천사가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바퀴 사이로 들어간 사실을 우리로 알게 한다.

 

“하나님이 가는 베 옷을 입은 사람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그룹 밑에 있는 바퀴 사이로 들어가 그 속에서 숯불을 두 손에 가득히 움켜 가지고 성읍 위에 흩으라 하시매 그가 내 목전에서 들어가더라(10:2).”

 

가는 베옷 입은 사람은 애통하고 두려워하는 자의 이마에 표식을 남기는 천사였다. “내가 보니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부터 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죽이는 무기를 잡았고 그 중의 한 사람은 가는 베 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찼더라 그들이 들어와서 놋 제단 곁에 서더라(9:2).” 이처럼 앞장에서 그는 이스라엘에서 ‘남은 자들을 위하여’ 인치는 사역을 행하였다. 그리고 그가 오늘은 하나님의 심판을 집행하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의 충성된 사역자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성실하게 실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너는 그룹 밑에 있는 바퀴 사이로 들어가 그 속에서 숯불을 두 손에 가득히 움켜 가지고 성읍 위에 흩으라 하시매 그가 내 목전에서 들어가더라(10:2).”

 

여기에서 숯불은 ‘소멸하시는 불’을 뜻한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히 12:29).” 그룹 가운데 거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룹은 하나님을 보좌하며 수종하는 네 생물의 모양으로도 묘사된다. 성경에서 ‘숯불’은 불의와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위해 쓰이는 도구를 상징한다. “가마가 빈 후에는 숯불 위에 놓아 뜨겁게 하며 그 가마의 놋을 달궈서 그 속에 더러운 것을 녹게 하며 녹이 소멸되게 하라(24:11).” 이는 곧 “그의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삼하 22:9).” 하는 말씀과 같이,

 

그의 코에서 연기가 오르고

입에서 불이 나와 사름이여

그 불에 숯이 피었도다

 

그 앞에 광채로 말미암아

빽빽한 구름이 지나며

우박과 숯불이 내리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우렛소리를 내시고

지존하신 이가 음성을 내시며

우박과 숯불을 내리시도다

 

뜨거운 숯불이 그들 위에 떨어지게 하시며

불 가운데와 깊은 웅덩이에 그들로 하여금

빠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소서

(시18:8, 12-13, 140:10).

 

숯불은 또한 긍정적인 의미에서 죄악을 소멸해서 정결케 하는 역할도 함축하고 있다.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사 6:6-7).” 그런데 여기서 이 ‘베옷 입은 자’가 숯불을 예루살렘 성읍 위에 흩었다는 것은 그곳에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행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심판은 이전에 에스겔 선지자의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 3등분해서 불사르고 칼로 치고 흩으라, 하신 비유에서도 암시되었다. “너 인자야 너는 날카로운 칼을 가져다가 삭도로 삼아 네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서 저울로 달아 나누어 두라 그 성읍을 에워싸는 날이 차거든 너는 터럭 삼분의 일은 성읍 안에서 불사르고 삼분의 일은 성읍 사방에서 칼로 치고 또 삼분의 일은 바람에 흩으라 내가 그 뒤를 따라 칼을 빼리라(5:1-2).”

 

그렇게 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이동 수단인 그룹들이 성전 오른쪽에 대기하자 하나님의 영광이 지성소의 그룹에서 올라와 성전 문지방으로 이동하신 사실을 보여준다. “그 사람이 들어갈 때에 그룹들은 성전 오른쪽에 서 있고 구름은 안뜰에 가득하며 여호와의 영광이 그룹에서 올라와 성전 문지방에 이르니 구름이 성전에 가득하며 여호와의 영화로운 광채가 뜰에 가득하였고 그룹들의 날개 소리는 바깥뜰까지 들리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음성 같더라(10:3-5).” 이러한 환상의 내용과 그 의미를 머리에 그리며, 일일이 그 의미와 근거를 찾아보면서 새삼 이와 같은 심판이 얼마나 진심이신가를 생각하게 된다.

 

결국 오늘에 이 말씀을 접하면서 우선은 오늘도 우리의 삶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존엄을 경외하게 한다. 곧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렘 23:24).” 가령 우리가 신앙으로 산다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자기 스스로 얼마나 합리적이고 이기적으로 자신의 잘못과 죄악을 감추고 숨기며 살고 있는지를 알게 한다. 가령 요즘 이슈로 집값 안정을 위한 다주택자들의 끝없는 탐욕과 이를 드러내어 모두에게 나누려는 정부의 방침이 대립하는 것을 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있는 자가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야 당연한 이치이겠으나,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주할 자가 없을 것이며 열흘 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의 종자를 뿌려도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 하시도다(사 5:8-10).”

 

곧 가진 자가 더 많이 누리는 세상의 이치가 교회에서도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이를 축복의 기준으로 삼으려는 시도도 ‘화 있을진저’ 하나님은 이 땅의 소유가 많은 것으로 잘하였다, 칭찬하지 않으신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

(시 11:4).

 

분명히 오늘도 이 심판의 주 하나님은 우리의 면면을 감찰하신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실 때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 하심으로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눅 10:42).” 곧 많은 보유와 과한 열심을 경계하신다. 하여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

 

그리할 때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8:26).” 주께서 날 위해 기도하신다. 오늘 내게 맡기신 사명을 다하기까지 주가 돌보시고 함께 하신다. 그러므로 한 날의 수고로 족한 것인데,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하심으로 오늘을 살게 하신다. 어차피 우린 한 번 사는 생으로 다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이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7-28).”

 

그렇다면 지혜는 오늘과 같이 엄중한 심판의 예언의 말씀을 묵상하며 두려워할 줄 알고, 두려워함으로 주를 경외하여 이마에 표를 받듯이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다. 분명히 예수는 오실 것이고 우리는 이를 기다리는 신앙으로 산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곧 우리는 이 땅의 심판을 대비하고 이를 위해 중보하나 동시에 멸망으로 인한 구원의 날을 고대하는 사람들이다. 이는 만물도 같은 것이라 모든 피조물도 인간의 탐욕과 온갖 죄악으로 몸살을 앓고 있으면서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전 1:8).”

 

결국 예루살렘의 심판은 스스로들 자초한 일인 것 같이 우리들도 이를 명심함으로 오늘과 같은 예언의 말씀 앞에서 두려움과 경각심으로 신앙을 돌아봐야 한다. 이를 위하여 주님이 기도하셨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요 17:6-7).” 하여 오늘도 이와 같은 말씀 앞에서 주를 더욱 바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시 73:28).

 

그러므로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

(27:9).

 

이와 같이 기도로 오늘 하루도 올려드리며,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

내가 말하기를 인자하심을 영원히 세우시며

주의 성실하심을 하늘에서 견고히 하시리라 하였나이다

(89:1-2).

 

아이의 결혼을 앞두고 이런저런 마음들이 엉겨서 때로는 미안하고 속상하나 더 많은 것으로 감사할 뿐이어서, 일어나는 서러움과 속상함을 주 앞에 아룀으로,

 

하나님은 거룩한 자의 모임 가운데에서

매우 무서워할 이시오며

둘러 있는 모든 자 위에 더욱 두려워할 이시니이다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여

주와 같이 능력 있는 이가 누구리이까

여호와여 주의 성실하심이 주를 둘렀나이다

(6-8).

 

이에,

 

나의 때가 얼마나 짧은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사람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자기의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 (셀라)

(47-48).

 

그리하여,

 

여호와를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아멘 아멘

(52). 아멘.